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과 경북 문경시를 경계짓는 대미산은 북으로는 월악산 국립공원 남으로는 문경새재 도립공원 등 주변의 수려한 산세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백두대간상의 육산이다.

 

조선 영정조시대에 발간된 문경현지에는 대미산을 黛眉山으로 표현, 검푸른 눈썹의 산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문경의 모든 산의 근원이 이 대미산에서 시작된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대미산은 大美山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퇴계 이황께서 대미산(大美山)이라 이름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평리에서 본 대미산>

 

<황장산 오르다 본 대미산>

 

출범할 때는 100여명 가까이 참여했으나, 머나먼 대간 종주 길의 70% 정도를 소화한 지금, 남아 있는 인원은 1/3이 채 못된다. 특별한 등산 경험도 없이, 무조건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 재미를 붙이고, 여기까지 꾸준히 산행을 계속해 온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엄청나게 체력이 강해졌다고 만족해한다.

 

후미에서 출발, 지금은 중위 구룹을 형성하는 이들의 재미는, 이제 선두를 쫓는 재미인 모양이다. 일부는 이미 선두 구룹에 편입됐고, 횟수를 거듭할 수록 선두와의 시간차는 줄어든다.

 

후미(後尾)는 이런 중위 팀을 쫓으려는 욕심을 버리는 순간부터 자유로워지고, 널널해 진다. 하지만 이런 후미도 2가지 점에서는 결코 자유스러울 수가 없다. 첫째는 혼자 뒤로 쳐져 걷다가 알바를 하면 어쩌나? 또 하나는 너무 늦게 도착해서, 먼저 도착한 분들의 차가운 눈총을 받는 건 아닌가?

 

차련 님은 무리하게 중위 팀에 합류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후미로 쳐지지도 않는다. 누가 무어라 해도 고집스레 자기스텝으로 꾸준히 걸어간다. 이런 차련 님의 모습이 은영 님은 좋았던 모양이다. 대간 팀원 중에서도 최상의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은영 님은 차련 님을 에스코트한다. 차련 님은 더욱 당당하게 걷는다.

 

후미가 중위 팀을 쫓으려면 힘이 들겠지만, 차련 님 정도를 목표로 쫓아보면 어떨까? 자유롭고 널널하게 걷고 싶은데, 뒤로 쳐지면 왠지 불안하고, 창피하게 느껴져서, "미친 듯이 헉헉대며" 중위 팀을 쫓는 이들에게, 즐거운 산행이 되도록 새로운 거점을 만들어 줄 수는 없을까?

 

변화된 상황에서 이렇게 별도로 후미 구룹을 조직화 할 필요성이 커진다. 그러면 알바 걱정이나 차가운 눈총에서 해방되어 산행을 보다 즐길 수가 있겠다.

 

두타, 청옥 무박 산행 시. 차련, 은영의 명콤비는 기준시간 13시간을 거의 다 소비하는,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여유 있는 행보로 여유있게 산행을 마친다. 오케이, 후미 구룹을 조직화 해 보자. 후미당을 창당하자. 당 대표는 당연히 은영 님이다.

 

차련 님이 앞장서고, 은영 님이 뒷받침하는 행보는 변함 없이 계속된다. 후미당 당원들은 이 두 사람을 목표로 그 뒤만 쫓으면 된다. 이들보다 뒤졌던 사람들은 조금 더 열심히 걸어 이들을 따르면 되고, 무리하게 중위 팀을 쫓으려던 이들은 여유를 갖고 산행을 즐기면서, 이들을 뒤따르면 된다. 당수는 뒤따르는 당원들의 상황을 보고, 가끔씩 속도를 조절한다. 점심은 모두 함께 모여서 한다. 혹시 차련 님이 결간 할 경우에는 다른 여자 당원이 앞장을 선다.

 

후미당 창당의 또 다른 이유는 산행 기본사항에 대한 교육, 훈련의 필요성에서 찾는다. 이미 잘 알아서 몸에 익은 분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산행 속도를 떨어뜨리는 주요한 요소가 될 수가 있다. 등산화 끈 매는 법, 배낭 꾸리는 법, 비탈 길 보행법, 보행 시 호흡법, 스틱 사용법, 발가락 아픈 것 해결 방법 등 모두, 모두 중요하다.

 

2004년 11월 20일(토)
오늘은 백두대간 제 29 소구간을 산행한다. 산행코스는『안생달(500)-작은 차갓재(740)-차갓재(740)-981봉-새목재(820)-삼거리(1,051)-대미산!1,115)-부리기재(870)-중평리』,이다. 도상거리 약 15.5Km, 산악회 기준 소요시간은 약 5시간 30분이다.

 

은영 대표가 정식으로 후미당을 창당하고, 이를 공고한다.

 

늦가을 고속도로는 안개가 자욱하다. 상행 선은 한적한데, 이 안개 속에서도 하행 선에는 차들이 줄을 잇는다. 수능고사가 끝나, 한숨 돌린 학생들이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르겠다. 버스는 충주 휴게소에서 30분간 정차한다. 안개는 여전하다.

 

버스는 안개 속을 달려, 문경에 도착하고, 다시 901번 지방도로를 타고 달린다. 오늘의 하산지점 중평리를 거치더니, 여우목 고개를 넘고, 바깥산다리에서 북으로 진로를 잡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안생달에 도착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도로에 붉은 재킷을 입은 산림 감시원이 길을 지키고 있다. 산불조심기간(11월 15일 - 12월 15일까지)이라 산행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산악회 인솔자가 나가서 양해를 구해 보지만 감시원이 고개를 젓는 모습이 차안에서도 보인다. 할 수 없이 버스는 외길을 후진하여 내려오다 겨우 차를 돌려 50여 미터 후퇴한다.

 

길이 굽어 감시원이 보이지 않는 곳에 버스가 정차하고, 대원들은 서둘러 버스에서 내린다. 등반대장이 앞장을 서서 산아래 두 서너 채 모여있는 민가로 향한다.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댄다. 아마 산림 감시원도 이 개 짖는 소리로, 상황을 알고 있겠지만, 집요하게 막겠다는 의욕은 없는 눈치다.

<길없는 길을 찾아>

 

개 짖는 소리에 응해, 민가에서 아저씨 한 분이 나와, 집 뒤로 난 희미한 길을 알려준다. 10시 10분 경 대원들은 이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밭둑을 지날 때까지만 해도 그럴 듯하던 길이 산 사면으로 이어지면서 온통 한 여름 자란 넝쿨들로 뒤덮여, 길 찾기도 쉽지 않고, 넝쿨들이 발목을 휘감는다. 거친 길에 익숙하지 못한 여자 대원들이 뒤로 쳐진다.

<밭 둑길을 따라 편대산행>

 

경사가 급해지면서 넝쿨들은 사라지고, 두텁게 덮인 낙엽으로 한 발 오르면, 두 발 미끄러지는 어려운 산행이 이어진다. 길 건너에 바라보이는 산세가 수려하다. 아마도 황정산과 감투봉인모양이다. 이윽고 능선에 올라선다. 길은 능선을 따라 북으로 이어진다. 한결 수월하다. 816봉을 지나, 묘 1기가 있는 근방에서 겨우 대간 마루금과 만난다 10시 54분 경이다.

<대간 마루금을 맞나고>

 

안생달에서, 작은 차깃재를 거쳐 차깃재에 이르는 삼각형의 두 변 대신, 안생달에서 밑변에 해당하는 산 사면을 치고 올라, 차깃재 가까이 오른 셈이다. 시간도 기준시간 50분에 비해 약 6분정도 단축됐다. 이제 일행은 울창한 낙엽송 숲길로 이어진 대간 마루금을 따라 923봉으로 향한다.

 

923봉으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는 가파르지 않다. 약 20여분 오르니 길가에 백두대간 중간 지점임을 알리는 의미 깊은 이정표가 서있다. 경기 평택 여산회 백두대간 구간 종주대가 2004년 5월 11일 세운 이정표다. 이 지점에서, 천왕봉과 진부령까지의 거리가 공히 367.325Km라 한다.

<대간 중간 지점임을 알리는 이정표>

 

11시 27분, 923봉을 지난다. 정상에는 아무 표시도 없고 산행 리본만 무수히 걸린 작은 공지다. 비탈길을 내려선다. 다시 울창한 낙엽송 숲이 이어진다. 뒤돌아보니 923봉이 나뭇가지사이로 뾰족하게 보인다. 꽤나 높은 봉을 넘었다는 느낌이 든다. 날씨는 잔뜩 흐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다.

<아름다운 낙엽송 길>

 

11시 56분 너른 헬리포트에 도착한다. 삼각점이 있는 것을 보아. 새목재인 모양이다. 한 무리의 일행이 모여 사진을 찍고, 과일을 먹으며 쉬고 있다. 차련 님, 은영 님도 보이고, 언제 앞섰는지 오름길에 강한 후미당원 한 사람도 이미 도착해 쉬고 있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많이 올 비 같지는 않다. 이윽고 다른 후미당원들도 도착한다.

 

삼거리 오르막을 오르는데 비가 굵어지더니, 우박이 섞여 내린다. 대원들이 서둘러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비옷을 챙겨 입는다. 비가 많이 올 것 같지 않아 버텨보던 나도 방수 재킷을 꺼내 입는다. 바람도 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그치더니 해가 비친다. 변덕이 심한 날씨다.

 

12시 35분 경, 또 다른 헬리포트에 도착한다. 그 동안 내린 비로 바닥은 젖어 있으나 다행이 비는 멎었다. 앞서 도착한 일행들이 점심 채비를 한다. 은영 님과 차련 님이 자리를 잡고 있다. 후미당원들이 모두 도착하여 함께 점심을 한다. 넓은 헬리포트에 대원들이 가득 모여 식사를 한다. 모두 28명이나 된다.

<28인의 중식>

 

1시경 점심을 마친 대원들이 차례로 대미산으로 향한다. 헬리포트를 벗어나자 바로 삼거리다. 이정표가 서있다. 〈대미산 약 40분, 황장산 약 4시간〉, 모여서 사진을 찍는다. 점심을 먹고 났더니 더 춥게 느껴진다. 바람이 심해진다. 바람에 쫓기듯 대원들이 서둘러 대미산을 향한다.

<삼거리 이정표>

 

1시 8분 눈물샘 이정표를 지난다. 날씨가 차고 바람이 불어, 누구도 눈물샘에 내려가 보지 않고, 지나친다. 사진을 찍느라 뒤쳐졌던 나는 앞선 대원들을 따라 속도를 낸다. 대미산으로 오르는 길은 완만한 오르막이다. 선두에 후미당 당원인 여왕봉 님이 서고, 그 뒤로 긴 대열을 이루고, 대원들이 따른다. 누군가 장난삼아 번호를 부쳐보라고 소리친다. 번호 부쳐가 시작되고, 19번째가 최종 후미라고 신고한다.

<눈물샘 이정표 - 진눈개비 속, 샘으로 가는 사람은 없다>

 

<번호 붙여 앞으로 - 지난 산행부터 보이는 편대모습이다.>

 

1 시 20분 경 대미산에 오른다. 사방이 확 트였지만 지금은 비구름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맑은 날에는 속리산에서 소백산에 이르는 대간 능선을 볼 수 있다 했는데 유감이다. 증명 사진들만 찍고, 서둘러 하산한다. 여전히 여왕봉 님이 앞장을 선다.

<대미산 정상석>

 

내리막길에서 걸음이 느린 여왕봉 님이 앞장을 서니 길이 막힌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뒤따른다. 대원 한 사람이 참나무 가지에 매달린 겨우살이를 가르치며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다른 나무에 붙어 겨우겨우 살아간다고 해서, 겨우살이라는 등, 새가 열매를 부리로 쪼아먹고, 다른 나무에 가서 주둥이를 비벼 닦을 때 옮겨진다는 등, 이 겨우살이가 암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등 강의가 그치질 않는다. 과연 나무 박사다. 1시 49분 부리기재에 도착한다.

<겨우살이>

 

중평리를 향해 낙엽 쌓인 급사면을 내려선다. 젊은 남자대원이 여왕봉 님에게 자기 스틱 2개를 넘겨주고, 그녀의 스틱 한 개를 받아 쥐더니, 쏜살 같이 앞서 달린다. 나는 그 여자대원 앞에 서서 비탈길에서의 스틱 사용법을 설명하고, 시범을 보이며 따라 해 보라고 한다.

 

"허리를 펴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채, 지그재그로 스틱을 앞에 놓아라, 놓여진 스틱에 가볍게 체중을 싣고, 보행 폭을 좁혀 잽싸게 걸어라," 말로 설명하고 앞서 시범을 보이면서 내려온다. 얼마가지 않아 여자대원은 감이 잡히나 보다. 속도가 빨라진다. 하산 길의 낙엽이 벌써 지난주 보다 못하다. 바람에 휩쓸렸는지 많이 줄었다.

 

개울가에서 땀을 씻고 있는 중위 팀을 만난다, 함께 내려온 여왕봉 님이 지난주보다 빨리 내려왔다고 스스로 대견해 한다. 한 두 번 더 연습해 몸에 익히면 이 여자대원의 주력도 몰라보게 빨라질 것이다.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중평리에 도착하니 2시 40분 경이다. 4시간 30분 정도 걸은 산행이다. 중평리는 여전히 아름다운 산골이다. 지나 온 대미산이 구름 한 덩이를 이고, 파란 하늘위로 솟아 있다, 아름답다. 버스에 배낭을 내려놓고, 식사가 준비된 식당에 들어선다.

<아름다운 중평리 마을>

 

선두 팀에게서 맥주 한잔을 받아 마신다. 하산 후 마시는 맥주 맛은 언제나 천하일미다. 후미보다 2시간 넘게 빨리 하산한 선두 팀은 벌써 10병째 맥주를 비운다고 한다. 돼지고기 수육에, 두부 찌개, 신선한 야채 등 좋은 안주에 술도 가지가지다. 맥주, 소주, 복분자 술, 오가피 주 등, 등,

 

버스는 4시 20분 출발 예정이라 한다. 이술 저술 받아 마시다보니 꽤 취한다. 4시 경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밖은 대낮이다. 대미산이 아름답고, 노란 단풍을 이고 도열한 쭉쭉 뻗은 나무들이 곱다. 출발 전에 사진을 몇 장 더 담아 둔다.

 

4시 20분 경 버스는 서울로 향한다.

 

 

(2004. 11. 21)




Posted by Urimah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