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암산(布岩山, 961.7m) 일명 베바위산이라고도 하였는데 문경읍에서 갈평리를 지나 관음리로 접어들어 옛고개 하늘재를 보고 오르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우뚝 솟은 포암산이, 마치 베를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희게 우뚝 솟은 모습이 껍질을 벗겨 놓은 삼대, 즉, 지릅 같이 보여서인지, 이 산을 마골산이라는 옛 기록도 보이고 있으며 계립산이라고도 한다. 옛 신라 때 고개인 하늘재를 지나서 오르면 백두대간 상에 있다. 소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깔나무가 많다. (문경시 홈페이지에서 발췌)
<지난번 탄항산 오르다 본 포암산>
<만수봉 삼거리 쪽에서 본 포암산>
"저희 이대로 산행하게 해주세요!"
지난번 두타, 청옥 무박 산행 중, 알바를 해서 고생했던 여자대원들 중 한 분이 산악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절규(絶叫)다. 힘은 부치지만 대간 산행은 계속하고 싶은데, 도움을 주지 않는 남자 대원들에 대한 원망과 호소가 담긴 절규다.
이 호소의 영향인지. 오늘의 산행모습은 이제까지와는 놀라울 정도로 달라진다. 회장님을 포함한 후미 15명이 809봉을 넘어, 점심식사를 하러 한자리에 모인다. 약 30여분간 즐겁게 함께 식사를 하고, 1시 15분 경, 모두 함께 출발한다. 일행 중 세 사람이 속력을 내어 앞서 나가지만. 나머지 대원들은 여자대원을 선두로 일렬 종대로 진행한다. 누구도 추월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중평리에 도착할 때까지 약 3시간 동안 이 아름다운 대오가 그대로 유지된다. 일본 산악회와 산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아름다운 기러기 편대 1>
<아름다운 기러기 편대 2>
중평리에 도착한 시간이 4시28분, 오전 10시 조금 못 미쳐 하늘재를 출발했으니, 약 6시간 30분정도가 소요된 산행으로, 비록 기준 시간을 약 30분 초과했지만 그 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얻은 산행이었다. 중평리에서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5시 10분 경,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서울에는 8시가 못되어 도착하고, 대원들 대부분이 즐거웠던 산행 뒤풀이를 위하여 수산시장으로 몰려간다.
"서울에서 세시간 여 차를 타고 내려오더니, 그 사람들이 어느 산 아래에서 우르르 내려, 갑자기 미친 듯이 헉헉대며 다투어 다섯 시간여 산을 오르고 내리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세시간여를 달려가서는, 떠나 온 그 장소에서 제 각기 흩어지는 인간들의 모습."
한 여자 대원이 게시판에서 우리들의 산행모습을 묘사한 글이다. 하지만 오늘의 산행모습은 이 묘사와는 한참 다르다. 우리도 후미의 다소 걸음이 느린 사람을 따라, 질서 정연한 산행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멋진 장면이다. 등산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우리의 산행문화도 달라질 때가 됐나보다.
2004년 11월 13일(토).
오늘은 백두대간 제28소구간을 산행한다. 『하늘재(520)-포암산(964)-마치골삼거리(923)-938.봉-897봉-꼭두바위(838)-1032봉-너덜지대(1.030) -부리기재(870)-중평리』 도상거리 약 14Km, 산악회가 제시한 소요시간은 약 6시간이다.
주중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뚝 떨어진다. 바람도 있어, 오늘 아침 중부 산간지역의 체감 온도는 영하 5-6도 정도까지 내려간다는 예보다. 겨울 겉옷까지 꺼내 챙겨 입고, 이른 새벽 집을 나선다. 쌀쌀하다.
서초 구민회관 앞은 버스를 기다리는 많은 등산객들로 붐빈 다. 오늘 아침은 쌀쌀한 날씨인데도 유난히 복잡하다. 5일 근무제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우리가 타고 갈 버스는 20여분 늦게 도착한다. 산악회 인솔자가 신입회원들과 연락이 충분치 못해 늦었다고 양해를 구한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린다. 주위가 밝아지면서, 하얗게 서리가 내린 농가의 지붕,논밭들이 스쳐 지나간다. 스산한 늦가을 풍경이다.
<차창 밖 풍경 - 서리내린 도로변 농가>
<차창 밖 풍경 - 만추의 농촌>
충주휴게소에서 30분간 정차한 후, 버스는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를 지나 하늘재에 도착한다. 하늘재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10시 경 오른 쪽으로 난 등산로를 오른다. 조금 오르니 등산로는 옛 산성 위 너덜 길로 이어지고, 다시 왼쪽으로 굽어 지더니, 산성 길을 버리고,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간간이 암릉이 이어진다.
10시 20분 전망바위에 선다. 남쪽으로 주흘산이 멀리보이고, 우뚝 솟은 바위 뒤로 보이는, 가까운 산의 단풍은 이미 윤기를 잃었다. 가파른 언덕길이 계속 된다. 지난 주, 두타, 청옥을 무박으로 산행 한 후라 그런지 기분이 무척 느긋하다. 최후미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오른다. 포암산 주능선에 올라, 10시 32분 미륵리 갈림길을 지난다.
<전망바위에서 본 주흘산>
<전망바위에서 본 기암과 가까운 골짜기의 단풍>
<전망대에서 본 남서 방향 조망>
정상이 가까워지나 보다, 슬랩 구간이 펼쳐지고, 자일이 늘어져있다. 정상으로 오르면서 북으로 월악산을, 남서 방향으로 조령산 줄기의 부봉을 찾아본다. 10시 54분 포암산 정상에 오른다. 산악회 기준 시간보다 진행이 약 6분 정도 빠르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돌탑이 서있다. 이미 대원들은 다 거쳐가고, 정상은 텅 비어있다.
<포암산 정상석>
<포암산 정상에서 본 월악산>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내어 앞선 대원들을 쫓는다. 내리막길이 북쪽 사면이라 그런지, 검은 부엽토의 등산로 위로 하얀 서리가 뒤엉켜 비쭉 삐쭉 솟아있다. 산 속은 이제 완연한 겨울이다. 억수리 갈림길 전에 후미 팀을 따라잡고, 11시 19분 억수리 갈림길 이정표를 지난다.
<부엽토 위로 솟은 서릿발>
참나무에도 종류가 많다고 한다.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물푸레나무,... 물푸레나무에는 줄기에 흰 반점이 있어, 쉽게 구분하지만, 나머지는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구분이 어렵다. 온 산이 이런 참나무 군으로 덮여 있는데, 이 참나무들이 이미 나뭇잎들을 다 털어 버리고 가지만 앙상하게 드러낸 채, 도열해 있다. 등산로에는 낙엽이 두툼하게 깔려 있다. 산 사면을 따라 앙상한 나무사이를 오르는 대원의 뒷모습이 외롭게 느껴진다.
<낙엽 속을 걷는 대간꾼 - 뒷모습이 외롭다>
11시 40분 지리산/백두산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고, 11시 52분 만수봉 갈림길에 선다. 기념사진을 한 컷 찍고, 오른 쪽 급사면을 오른다. 여전히 최후미로 걷지만, 여기까지의 기준시간 2시간보다는 그래도 약 8분 정도 진행이 빠르다.
<만수봉 갈림길 이정표>
12시 7분, 884봉 전망대에 이른다. 대원들이 모여 확 트인 조망을 즐기고 있다. 저 멀리 북서쪽으로 신선봉의 삼각형이 선명하고, 남서쪽으로는 조흘산의 웅장한 산세가 흐른다. 가까이 서쪽으로, 오늘 넘어 온 포암산과 지나온 능선 길이 뚜렷하고. 그 아래로 관음리가 아득하다. 포암산 오른쪽으로 만수봉도 보인다. 동쪽으로는 다음 주 우리가 오를 대미산이 조용히 누워있다. 하지만 이 좋은 전망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 것은 모두 발 빠른 남자대원들 뿐이다. 아마도 갈 길을 걱정한 여자대원들은 서둘러 길을 떠난 모양이다. 이 전망대에서 10여분 가까이 조망을 즐긴다.
<포암산과 걸어온 능선>
<전망대에서 본 만수봉>
<멀리 본 대미산>
897봉을 지나 내리막길을 달려 내린다. 12시 36분 경 809봉을 넘어서니, 회장님을 포함한 한 무리의 대원들이 점심 채비를 하고 있다. 이 곳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곧 같이 걸었던 산악회 후미대장은 앞서 치고 나가고, 나는 이들 후미구룹에 합류,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모두 15명이 벌이는 큰 점심 파티다. 여자대원이 7명, 남자대원이 8명이다. 나를 제외한 남자대원들은 모두 쟁쟁한 준족들이다. 30여분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점심을 즐긴다.
1시 15분 경, 일행은 점심을 마치고 출발한다. 남자대원 둘, 여자대원 한 분이 앞서 나간다. 나머지 일행은 여자대원을 선두로 일렬종대의 행렬을 이루고 나아간다. 안부를 지나 앙상한 참나무 숲길을 따라 844봉을 향한다. 황량한 숲을 배경으로 컬러풀한 등산복 편대가 질서 정연하게 흐르는 모양이 무척 아름답다
1시28분 전망대에 선다. 함께 모여 조망을 즐긴다. 저 아래 문경읍이 손에 잡힐 듯 누워있다. 사진을 찍는다. 모두들 즐겁고, 느긋한 표정들이다. 이윽고 일행은 다시 편대를 형성, 844봉을 오른다.
<꼭두바위봉에서 본 문경읍>
<문수봉, 용암봉, 미륵리>
2시 26분, 1.032봉에 선다, 조망이 좋다. 무엇보다도 포암산에서 이곳까지 이어진 능선길이 발아래 펼쳐져 있어, 먼 길을 걸어 온 발자취를 돌아보고, 모두들 흐뭇해한다. 너덜바위 위에 모여 사진을 찍으며 쉰다. 이 좋은 조망을 두고 어찌 한잔 술이 없을 까 보냐? 남자들은 소주를 마시고, 여자들은 과일을 즐긴다. 모두들 일어나기가 싫은 눈치다. 남자대원 한 사람이 남은 시간을 계산한다. 1시간 45분에서 2시간 정도는 더 가야한다. 일행은 서둘러 출발한다.
<1,032봉 너덜지대를 오르는 대원들>
3시 4분, 1,034봉 삼각점을 카메라에 담고, 3시27분 부리기재 이정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여자 대원들은 이미 중평리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길은 참나무들이 온통 산을 뒤덮고있다. 나뭇잎은 다 떨어져 낙엽이 발등을 덮는다. 급경사 사면을 완화시키기 위해 등산로는 지그재그, 그야말로 구절양장이다. 이 사면을 예의 기러기 편대가 질서정연하게 내려간다. 보기가 좋다.
<부리기재 이정표>
길이 평탄해 지면서 손질이 잘 된 무덤 몇 기가 낙엽을 덮고 있다. 이제 다 내려 왔나보다. 하지만 웬걸, 길은 백두대간 마루금으로 통하는 들머리를 깔보지 말란 듯, 한 구비 휘어지더니 다시 급사면이 계속된다. 지난번의 신선봉 너덜길이 지옥길이라면, 이 낙엽 길은 황홀한 천당길이다.
<낙엽에 덮인 무덤>
이윽고 냇물이 보인다. 여자들은 간단히 손만 닦고 내려간다. 남자들 몇몇이 상의를 벗고 땀을 닦아낸다.
중평리는 두메 산골이다. 하지만 산자락에 도열해, 노란 잎으로 치장하고 하늘로 뻗은 나무들이 무척 아름다운 평화로운 산골이다. 저 너머 버스가 서있고, 논에서는 화톳불이 붉게 타오른다.
<아름다운 중평리>
화톳불 가에서 선두대원 한 분이 줄지어 내려오는 우리 후미 일행을 박수로 맞이한다. 화톳불 가에는 선두로 내려온 대원들이 벌써 저녁을 마치고 불장난을 하고 있다.
<동심 - 불장난>
간이 식당 평상에 배낭을 내려놓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중위구룹 멥버들의 저녁식사가 한창이다. 이제는 꿀릴게 없는 후미구룹이, 그 세를 과시하며 당당하게 안방으로 진입한다. 오늘 아침에 빗었다는 생두부에 양념장, 두부찌개가 맛이 담백하고, 간장에만 담근 듯한 깻잎의 맛이 일품이다. 깡통에 담긴 깻잎과는 질이 다르다.
맥주에 소주에 후미팀, 남녀가 한데 어울려 왁자지껄 건배를 한다. 모두 즐거운 표정들이다. 5시에 출발 예정인 버스를, 부탁하여 10분간 지연시킨다. 버스는 5시 10분 서울로 향한다.
8시가 못 된 시각. 버스는 복정역에 정차하고, 대부분의 대원들이 수산시장에서의 뒤풀이를 위해 하차한다. 버스 안이 썰렁하다. 일이 있는 몇 분 대원과, 눈치껏 자리를 사양한 늙은이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버스는 복정역을 출발한다.
(2004.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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