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구강산(九江山)
보라빛 석산(石山)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박목월의 시 산도화(山桃花) 다. 이상향(理想鄕)을 그린 시인은 보랏빛 석산을 이상향의 무대로 삼고 있다. 물론 구강산이라는 산은 실제로 존재하는 산은 아니다.
자병산(紫屛山) - 산봉우리 하나가 뭉텅 잘려나가 지금은 그 모양을 알 수 없지만 산 이름대로라면 아마도 보랏빛 병풍을 두른 것 같은 산이 이었던 모양이다. 박목월 시인이 머리 속에서 그린 구강산 못지 않게 아름다웠을지도 모른다.
<900.2봉 오르다 본 머리 잘린 자병산- 남은 능선이 보랏빛을 띤 것도 같다>
<생계령 부근에서 본 훼손된 자병산 - 철탑 부근이 추가 허가지역 ?>
이 아름다운 산이 지금은 없다. 개발허가를 내준 행정관서나 돈벌이에만 급급한 한 기업에게 책임을 돌릴 일이 아니다. 대대손손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유산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공사 현장 - 생태계 복원 노력을 한다지만, 이런 모습에서는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버스가 임계를 지나 백봉령으로 향하는 곳곳에 백두대간 보호법 시행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눈에 뜨인다. 백두대간을 보호하자는 것에 반대하기보다는 개인 재산권의 보호와 지역 주민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인 듯 싶다.
<산림청을 야유하는 현수막>
모든 걸 법으로만 해결하려든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개인의 재산권, 지역의 발전이 충분히 고려된 융통성 있는 법 운용이 바람직하다.
2004년 10월 16일(토)
오늘은 백두대간 제 43 소구간을 산행한다. 코스는 『백봉령(710)-42번 철탑-자병산 삼거리796봉-생계령(640)-922봉-고병이재-석봉산(1,055.3)-두리봉(1,033)- 삽당령(680)』, 도상거리는 약 16.5Km, 산악회가 제시한 소요시간은 약 6시간 30분이다.
대원들을 태운 버스가 영동고속도로를 달린다. 시간에 쫓겨 마치 산악 훈련하듯 내 달리느라 정신이 없는 대간 산행과는 달리, 높직한 고속버스에 앉아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을 경치를 여유 있게 즐긴다.
벼를 베어낸 텅 빈 논들이 한가롭다, 단풍은 이미 마을 뒷산까지 내려와 곱게 물들고, 그 사이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그림 같다. 2차선 길이지만 어느 구간은 갑자기 4차선으로 넓어지면서 버스 앞창을 통해 보이는 도로는 마치 미국의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는 것처럼 시원하다.
강릉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한 버스는 35번 국도로 바꿔 타고 정선군으로 진입한다. 국도 변의 정다운 농촌 풍경, 도로를 따라 흐르는 맑은 개울, 산과 골짜기에 절정을 이룬 단풍 - 맑은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우리의 아름다운 산하를 마음껏 즐긴다.
임계에 도착한 버스는 42번 국도로 들어서더니, 11시 15분 경 백목령 정상에 도착한다. 등산로 입구에 예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백두대간 운운치 말고, 풀 한 포기 보호하라." 자병산의 참상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임계면 향우회의 산림청에 대한 통렬한 야유다.
<백복령 정상>
단체사진을 찍고, 11시 20분 경 산행을 시작한다. 등산로는 북북서 방향으로 서서히 오른다. 10여분쯤 지나, 42번 철탑을 통과여, 자병산 공사현장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조금 진행하자, 오른 쪽 숲에 걸린 리본들이 우리들을 숲길로 유도한다. 하지만 등산로는 숲길을 채 10m도 진행하지 못하고 다시 도로로 내려선다. 그리고 다시 숲으로 이어진다. 한 치도 놓치지 않고 대간 길 마루금을 밟아 보겠다는 대간꾼들의 의욕이 눈물겹다.
오름 길이 끝나자, 대간 길은 급경사 사면을 내려선 후, 참나무 숲을 지나,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796봉을 지나고, 12시 43분 경 생계령에 도착한다. 산악회가 제시한 2시간 보다 30분 이상 빠른 진행이다. 생계령은 붉게 물든 키 작은 활엽수들과 하얀 억새가 둘러쳐진 조그만 공터다. 무참하게 잘려나간 자병산이 건너 보이는 이곳에 산림을 훼손하면 처벌하겠다는 산림청의 경고 판이 세워져 있다.
<생계령>
<생계령의 산림청 경고문>
1시 14분 경 노송지대에 도착한다. 보기 좋은 노송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노송지대가 끝나는 곳에 조그마한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는 가야할 능선 길이 한 눈에 보인다. 전망은 좋지만 장소가 비좁아 온 길을 되돌아, 보기 좋은 노송 아래서 점심 도시락을 푼다.
<역광으로 잡은 노송>
<전망대에서 본 가야할 능선길>
<석병산 가는 길>
업 다운이 별로 심하지는 않다지만, 약 17km의 거리를 6시간 30분 동안에 주파하려면 갈 길이 멀다. 20여분만에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출발한다. 922봉으로 향하는 길은 비교적 경사가 급하다. 이윽고 922봉에 오르고, 등산로는 북쪽으로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멀리 동해가 보인다.
등산로 오른 쪽은 깊은 낭떠러지가 계속되면서 능선 길이 좁아진다. 주위는 온통 키 작은 잡목들이 무성하여 배낭을 당긴다. 하지만 좌우로 굽어보는 경치가 그만이다. 오른쪽으로 멀리 동해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단풍이 고운 능선과 골짜기 너머로 35번 국도가 아련하다. 2시 43분 삼각점이 있는 900.2봉을 통과하여 산죽밭 길을 걷는다.
<능선 길에서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동해>
2시 59분 고병이재에 이른다. 고병이재에서 멀리 북동쪽으로 보이는 산세가 아름답다. 이 곳에는 백두대간과 석병산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석병산(石屛 : 바위가 병풍을 펼친 듯하다)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하나의 산줄기로 웅장함과 화려함이 겸비된 산이다." 라고 설명한다. 자병산은 어떻게 설명했을까? 궁금하다.
<고병이재 이정표>
3시 12분 경 이정표가 서 있는 헬기장에 이른다. 이정표는 일월봉(석병산)까지 1시간 15분이 소요된다고 알려준다. 정면으로 석병산이 보인다. 등산로는 전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아름다운 숲길을 지나. 산죽이 무성한 오름세로 이어진다. 뒤돌아 922봉, 900.2봉을 카메라에 담고, 오른쪽으로 상황지미로 보이는 마을을 굽어본다.
<헬기장에서 본 석병산>
<뒤 돌아본 900.2봉과 922봉>
3시 58분 상황지미 갈림길에 선다. 석병산에 접근하자 다시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는 석병산을 가려면, 오른쪽으로 5분을 더 가라고 일러준다. 왼쪽은 두리봉 가는 길이다.
<일월봉(석병산) 5분을 알리는 이정표>
3시 59분 석병산 앞에 솟은 암봉을 카메라에 담고, 4시 경 석병산 정상에 오른다. 육산에 올돌하게 이 곳에만 웅장한 석벽이 솟아 있는 게 신기하다. 정상에서 아래를 굽어보니 계곡이 까마득하여 어지럽다.
<석병산 정상 앞의 석봉>
<석병산 정상석>
석병산 정상에서의 조망이 훌륭하다. 남쪽으로는 오늘 걸어 온 봉우리들이 굽이굽이 펼쳐져 있고, 사방으로 산줄기들이 우쭐우쭐 흐른다. 남서쪽 가까운 능선에는 단풍이 곱다. 아름다운 전망에 취해 20여분 가까이 머물다, 해 떨어지기 전에 삽당령에 도착하기 위해 아쉽지만 정상을 뒤로하고 서둘러 하산한다.
<석병산 정상에서 본 걸어온 능선>
<석병산 정상에서 본 가야할 능선>
<석병산 정상에서 본 남서방향의 단풍과 능선>
4시 58분 두리봉을 지난다. 이제부터는 평지 길이다. 기우는 해를 향해 숲길을 혼자 달린다. 하늘에는 반달보다 조금 커진 달이 떠있다. 마음은 급해도 어둑어둑해지는 한적한 숲길을 걷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해가 산 너머로 지고 사방이 컴컴할 때 버스에 도착한다. 6시 3분 경이다.
<두리봉 정상>
<해는 서산에 지고..>
후미 일행이 6시 30분 경 도착하고, 버스는 바로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004.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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