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길, 산을 송두리째 뒤집어엎을 듯 사납게 불어대는 바람, 그리고 포효하는 바람소리... 도상거리 약 26Km, 따라서 실제 거리는 30Km를 훨씬 넘는 거리, 이 거리를 약 13시간 동안에 달린 산행이다. 모두들 힘들어했지만 한편으로는 보람을 느낀 산행이었다.

 

2004년 11월 5일(금)
오늘은 백두대간 제 42구간을 무박으로 산행한다. 『댓재(810)-목동령(980)-두타산(1,32.7)-박달령(1,100)-청옥산(1,403.7)-고적봉(1,353.9)-갈미봉(1,260)-이기령(800)-상월산(960)-원방재(730)-백봉령(810)』. 도상거리 약 26Km. 산악회가 제시한 소요시간은 약 13시간이다.

 

장거리 무박여행이 부담이 되는데, 거기다 오후 늦게부터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진다. 잠도 안자고 걷는 30Km 이상의 산길인데, 비라도 내리면 완주가 걱정이 된다. 서둘러 일기 예보를 본다. 영동 지방 산간지역은 금요일 오후에는 눈이 예보되고, 토요일 오전에도 비가 온다고 한다. 집사람이 걱정을 한다. 내가 밤눈이 어둡다는 것을 잘 알아, 더욱 더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이런 날씨인데도 한 밤중에 나서겠냐고 묻는다. 가지 말라는 소리다.

저녁을 먹고, 8시경부터 배낭을 챙긴다. 여벌옷을 충분히 준비하고, 눈길에 대비하여 아이젠을 찾아 배낭 밑바닥에 넣는다. 헤드랜턴도 점검, 이상 없음을 확인한다. 체념한 듯, 집사람은 TV를 보면서 주먹밥을 마련한다. 도시락 준비를 마친 집사람이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더니, " 여전히 비가 오네," 라고 혼잣소리를 한다. 날더러 들으란 소리다. 배낭을 대강 꾸려 놓고, 산행계획 메모를 보며, 다시 산행할 구간의 특징, 소요시간 등을 기억한다. 10시 30분 경, 출정하는 병사처럼 비장한 기분으로 집을 나선다. 다행히 비는 멎었다.

 

서초 구민회관 앞. 오늘따라 대원들이 늦는다. 두 사람이 보일 뿐이다. 여자 대원 한 분이 모습을 나타낸다. 몇 사람되지 않는 대원들을 보더니 여자 대원이 걱정이다. "여자는 나 혼자만 가는 건 아니겠지?" 이런 여자 대원 앞에 다른 여자 대원이 나타나자 서로 반갑다고 얼싸 안는다. 이윽고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자 대원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온다. 과연 모두가 대간병 환자들이다. 복정역에서 몇몇 환자들을 더 태우고 버스는 어둠 속을 달린다.

 

산악회에서 나온 인솔자는 오늘은 힘든 산행이 될 터이니, 버스에서라도 잠을 좀 자 두라고 간단히 인사를 한다, 버스가 어느 도로를 어떻게 달리는 지도 모르는 채, 가물가물 잠 속으로 빠져든다.

 

새벽 1시경 버스는 소사 휴게소에 정차한다. 30분간 정차할 터이니 아침 식사를 하고, 필요한 준비물들을 마련하란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는 오지 않으나 안개가 자욱하다. 불빛 속에서 사람들이 유령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이 보인다. 한밤중이라 식사할 생각이 없어 커피를 마시면서 안개를 바라본다.

 

버스에 오르자 산악대장이 오늘의 산행자료를 배포하며, 아직도 2시간 정도는 더 가야하니 더 자라고, 체력 비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자료 설명은 댓재 도착 직전에 하겠단다. 다시 소등하고 버스는 달린다. 댓재에 가까웠나 보다. 버스 안에 불이 켜지고, 산악대장이 산행자료를 설명한다. 차창 밖에는 바람이 거센지 도로 위로 나뭇잎들이 어지럽게 휘날린다.

 

3시 40분 경 버스는 댓재에 도착한다. 비는 멎었지만 바람이 거세다. 대원들이 버스에서 내려 어둠 속에서 못다 한 산행준비를 한다. 차안에서 준비를 마친 부지런한 대원들은 벌써 왼쪽으로 난 등산로를 재빠르게 오른다. 아마도 선두 경쟁을 하는 분들인가 보다. 3시 45분 경 산행준비를 마치고 산행을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랜턴 불빛만 번득인다. 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왼쪽으로 산신각이 보인다. 다른 때 같으면 사진을 찍어 두었겠지만, 오늘은 먼 길이다. 사진 찍기도 생략한 채 길을 따라 오른다. 토사 붕괴를 막으려고, 땅에 깔아 놓은 철망이 미끄럽다. 고도가 높아지며 바람이 점점 더 거세어 진다. 바람소리가 비명소리처럼 귀에 거슬린다. 윈드 재킷을 걸쳐 춥지는 않지만 오름길인데도 땀은 나지 않는다. 먼 길의 체력 안배를 위해 천천히 걸어야 한다는 생각과는 달리 걸음이 빨라진다.

 

이윽고 길 오른쪽으로 햇댓등 임을 알리는 돌 표지가 서있다. 『댓재 30분. 두타산 3시간』 시간을 아끼느라 사진 찍기를 또 생략하고 시계를 본다. 4시 정각이다. 15분만에 올라 온 거다. 바람에 불려 왔나보다.

 

한차례 급경사 내리막을 지나 등산로는 934m봉 오름길을 오른다.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걸음의 속도를 죽인다. 앞사람과의 거리가 점점 벌어진다. 다행이 내 뒤로는 올해 환갑인 대원과 그분 친구 분이 따라와. 천천히 걸어도 길을 양보하란 독촉이 없다. 앞사람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지만, 길을 양보했다가 어둠 속에서 뒤쳐지면, 밤눈 어두운 내가 혼자서 길 찾느라 고생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어, 시침 뚝 따고 모른 체 길을 걷는다. 바람이 점점 더 거세지고,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근래에 이런 바람을 경험하기가 처음이다.

 

934봉에서는 동해도 보인다지만 어둠 속에서 언제 지난지도 모르고 지나고, 1,031봉 오르는 긴 오름길에서 이제껏 참고 뒤따라오던 대원이 갑갑했던지 앞으로 제치고 나간다. 다행히 친구분은 여전히 뒤따르며 뒤를 막아준다.

 

5시 31분 통골재 이정표를 지난다. 이번에는 사진을 찍는다. 길 뚫린 게 다행이란 듯, 따라오던 대원들이 앞서 나간다. 두타산 2.2Km, 벌써 어둠 속에서 매서운 바람소리를 들으며 땅만 보고4.2Km를 온 셈이다.


<통골재 이정표>

 

다시 어둠 속을 걷는다. 뒤따르는 대원의 한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별이 총총하구나..." 땅만 보며 바람에 쫓기듯 걷다가 이 소리에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커다란 별들이 영롱하고. 귀퉁이에 하현달이 외롭게 걸려있다. 아름답다.

한 밤중에 커다란 무덤 옆을 지난다. 산꼭대기의 무덤치고는 관리가 잘 돼있다. 조금 더 오르니 바로 두타산이다. 6시 10분 경이다. 산악회가 후미기준으로 제시한 2시간 30분보다 약 5분 빠르게 도착했다. 정상에는 먼저 오른 대원들로 가득하다.

 

두타산 정상은 너른 공지다. 안내판, 이정표, 정상석들이 골고루 정비돼 있다. 여명 속에서 사방이 조금씩 희미하게 보이고, 다소 누그러졌지만 바람은 여전하다. 이곳저곳 사진을 찍다보니 손이 시리다. 어둠 속에 보이는 것은 없지만 정상에서 3-4분간을 머물고, 서둘러 박달령으로 향한다.


<두타산 정상석>

 

 

<두타산 정상의 백두대간 등산로 안내>

 

6시 30분 경, 여명 속에서 뒤돌아 나뭇가지 사이로 두타산을 찍는다. "사진이 나오려나?" 6시 50분 경, 이상하게도 반대쪽의 청옥산, 고적대 위 하늘이 먼저 붉게 물든다. 7시경 박달령에 내려선다. 이정표가 서 있다. 『청옥산 3Km, 50분, 두타산 1.5Km, 1시간 10분』 사진을 몇 장 찍고, 서둘러 청옥산으로 향한다. 7시 5분 경, 뒤를 돌아보니 두타산 정상능선이 불타고 있다. 앉아서 일출을 지켜야 하는 건데, 그 놈의 목적산행이 뭔지 허우적대며 오르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해는 벌써 두타산 위로 반 넘어 올라와 있다. 앉아 기다리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쉽다.


<여명 속의 청옥산, 고적대>

 

 

<박달령 정상>

 

<불타는 두타산 능선>

 

 

 

<두타산 일출>

 

7시 52분 경 청옥산 못 미쳐, 샘이 있는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 앞에 도착한다. 물은 충분하지만, 샘도 구경하고, 물맛도 보려고, 배낭을 내려놓은 후, 샘으로 내려간다. 대원 한 사람이 혼자서 물을 받고 있다. 물이 시원치 않다고 한다. 고여있는 물도 흙탕이라 마실 수 있는지 모르겠단다. 물맛보기를 단념하고 다시 이정표 있는 곳으로 되돌아온다.

 

8시경 청옥산에 오른다. 정상은 너른 헬리포트다. 웬일인지 한글로 표기된 정상석이 넘어져 땅에 누워있다. 샘으로 내려간 사이에 후미 팀이 도착한 모양이다. 모여 앉아 간식을 들고 있다. 대원 한 분이 빵을 한 개 내준다. 시장하던 판이라 그 맛이 꿀맛이다. 귀한 커피까지 얻어 마신다. 청옥산은 정상 주위가 나무들로 둘러 싸여 전망은 별로다.

 

땅 위에 넘어져 있는 한글 정상석 조금 뒤쪽에 또 하나, 한자로 표기된 정상석이 의연히 서있다. 그 앞에 젊으니 둘이 라면을 끊여, 아침식사를 한다. 정상석을 기념으로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방해가 되는 위치다. 의식적으로 그 자리를 택한 건지, 아니면 무신경인지 알 수가 없다.


<청옥산 정상>

 

청옥산 정상에서 10여분간 휴식을 취한 후 고적대를 향한다. 내리막 길 등산로는 비교적 잘 정비가 돼있다. 정면으로 고적대(高積臺)의 삼각 봉이 나뭇가지사이로 날카롭고, 오른쪽으로 고적봉에서 북동쪽으로 흐르는 주능선과 무릉계곡 쪽으로 달리는 가지능선이 웅장하다. 가히 명산에 들어선 느낌이 완연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본 고적대>

 


<무릉계곡으로 흐르는 장엄한 산줄기>

 

8시 35분 경 연칠성령에 이른다. 너른 공지에 이정표, 산림청에서 세운 안내판, 그리고 작은 돌탑이 한 개 서 있다. 연칠성령(連七星嶺) - 흔하지 않은 이름이다. 산림청 연칠성령 안내판을 옮긴다. 『예로부터 삼척시 하장면과 동해시 삼화동을 오가는 곳으로 산세가 험준하여 난출령(難出嶺)으로 불렸다. 이 난출령 정상을 망경대(望京臺)하고 하는데 인조 원년 명재상 택당 이식(澤堂 李植)이 정봉산 단교암에 은퇴하였을 때 이 곳에 올라 서울을 사모하여 망경한 곳이라 전해진다.』, 난출령에 대한 설명은 하고 있지만, 난출령이 왜 연칠성령으로 불리우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연칠성령의 이정표 - 방향 팔이 모두 회손됐다.>

 

고적대 암릉을 오른다. 경사가 있는 암릉길이지만 발 놓을 자리가 확실하고, 완만한 슬랩구간에도 자일이 걸려 있어 어렵지는 않다. 점차 고도가 높아지며 발아래 펼쳐지는 풍광이 가히 일품이다. 9시 20분 경 고적대 정상, 바로 아래, 좁은 전망대에 대원들이 모여있는 곳에 이른다. 마치 절벽 사면에 둥지를 튼 독수리 집같이 묘하게 생긴 자리다. 주의해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가 쉬운 곳이다.


<고적대 오르다 본 암봉>

 

벌써 술들이 거나한 모양이다. 더덕 주는 바닥이 났고, 새로 공급된 위스키와 오십세 주도 금방 바닥을 들어낸다. 눈앞에 청옥산과 그 뒤로 두타산이 역광 속에 나란히 누워있다. 아래로는 무릉계곡으로 흐르는 산줄기들이 웅장하다. 북서쪽으로 이름 모르는 산줄기들이 아득하게 펼쳐있다. 웅장한 산세의 기를 받아서인지, 대원들 모두가 당당하고 명랑하다. 10여분 가까이 지체하다 9시 32분 경 고적봉 정상에 선다.


<고적대 오르다 본, 두타와 청옥>

 

 

<북동 방향의 조망>

 

고적대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지난번 마폐봉 산행시 신선봉에서 본 조망도 일품 이였었지만, 그때의 조망은 원경(遠景)이 중심이 됐던 것에 비해, 고적봉 위에서 보는 조망은 원경과 근경(近景)이 조화를 이루어 그 아름답기가 신선봉 조망을 능가한다. 아름다운 조망에 끌려 다시 10여분간을 정상에 머문다.

 

<고적대 정상석>

 


<북서 방향 조망>

 

 

<고적대 정상에서 본 산, 산, 산,,,>

 


<고적대에서 본 무릉계곡>

 

<고적대 맞은편 사면의 암벽 - 대간 길은 그 사면을 왼쪽으로 오른다.>

 

고적봉에서의 하산길은 급경사길이다. 하지만 하산하면서 굽어보는 전망이 또한 일품이다. 저 아래 안부를 지나 북동쪽으로 뻗은 능선길까지가 넓은 분지처럼 광활하다. 이 부근이 철쭉 군락지인 모양이다. 듬성듬성 푸른 소나무들이 솟아 있지만, 안부에 이르는 사면이 온통 키 작은 철쭉으로 뒤 덮여 있다. 제철에 철쭉이 만개하면 가히 장관을 이루겠다. 꼭 다시 한번 오고 싶은 곳이다.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대원 한 분과 함께 아름다운 경치를 이야기하며 비탈길을 내려온다. 비탈길에 스틱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발전하여 올바른 스틱 사용법을 서로 이야기한다. 거의 안부에 다다를 무렵, 낙엽에 덮인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개구락지 꼴이 된다. 지그재그로 내딛어 경사를 죽여주던 스틱 두개가 모두 허공에 있을 때 나무뿌리에 걸린 모양이다. 얼굴이 가볍게 땅에 부딪칠 정도로 속수무책으로 개구락지가 된 것이다.

 

툭툭 털고 일어나니, 뒤따르던 대원이 괜찮냐고 묻는다. 괜찮다고 대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가슴이 철렁했다. 조금만 더 세게 얼굴을 땅에 박았다면, 안경도 박살이 났을 거고, 그러면 눈도 안전치 못했을 것이 뻔하다. 그뿐인가 얼굴은 피투성이가 됐을 것이고, 여기서 여러 사람들에게 폐 끼칠 일을 낼 뻔했다. 내 얼굴이 어떠냐고 거꾸로 그 대원에게 물으니 괜찮다고 한다.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산에서 위험은 큰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곳에도 항상 있다. 정신이 번쩍 난다.


<철쭉 군락 사이로 보이는 대간길>

 

갈미봉 오름길에 새로 온 대원이 길가에 앉아 쉬고 있다. 웬일이냐 고 물으니 좀 쉬겠단다. 무심코 지나친다. 한참을 걸어도 뒤따르는 기색이 없다. 오름길에는 나보다 월등히 빠르게 걷던 분이라 따라올 시간이 됐는데도 소식이 없다. 청옥산을 지나면서 다리에 쥐가 난다고 하더니, 다리에 이상이 있는 건가? 마침 후미대장이 쉬고 있다. 신입 대원 이야기를 해주고, 필요하면 쓰라고 멘소레담을 배낭에서 꺼내, 건네준 후 혼자 갈미봉으로 오른다.

10시 44분 갈미봉에 도착한다. 고적대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음에도 쉬지 않고 걸어서일까. 산악회에서 제시한 7시간에 늦지는 않았다. 시간 안에 도착하니, 기분이 괜찮다. 갈미봉 정상에서 대원 두 사람이 기다리다, 점심을 먹자고 한다.


<갈미봉 정상 표지>

 

세 사람이 준비한 도시락을 푼다. 두 분은 똑같은 보온 도시락에 밥을 담고, 김치, 멸치조림, 오징어 젓갈, 게다가 전 부침까지 반찬들이 화려하다. 내 것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주먹밥에, 미소 시로, 오늘은 마침 깍두기가 잘 익었다고 집사람이 병에 조금 담아 준 것이 있어, 그나마 체면이 선다. 소주 한잔을 오드볼 식으로 마신 후 점심을 즐긴다.

 

점심이 거의 끝나갈 무렵, 후미대장이 신입회원과 함께 합류한다. 멘소레담을 바르고 맛사지를 해, 뭉친 근육을 풀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서둘러 식사를 한다. 천천히 식사를 하라면서 모두 두 사람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함께 쉰다.

두 사람 식사가 끝나고, 나는 이기령으로의 내림길을 내 달린다. 달리면서 남은 구간과 소요시간을 계산해 본다. 늦어도 5시까지는 백봉령에 도착할 수 있겠다. 하지만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많이 걷다보면 나라고 다리에 쥐가 나지 말란 법이 없다. 무리하지 않고 걸으며 5시전에 백봉령 도착하는 것이 목표다. 우선은 이기령까지 한 시간 정도에 내려가야 한다.

 

뒤에서 대원 두 사람이 따라 온다. 다리에 쥐가 났던 신입회원은 이기령에서 탈출하기로 했단다. 두 분이 앞지른다. 서둘러 뒤를 따른다. 12시 28분 이기령에 도착한다.

 

<이기령 이정표>

 

쉴 틈도 없이 970.3봉 비탈길을 오른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아름드리 커다란 소나무, 아직은 어린 소나무, 모두 미끈하게 잘도 생겼다. 남원 지역의 고남산. 백운산 일대의 송림 숲 이후, 오랜만에 소나무 사이를 걷는다. 시간대도 산림욕하기 딱 좋은 때다. 피치스톤이 가장 왕성하게 뿜어 나올 시간이다. 하지만 마음은 한가롭지 못하다. 5시전에 백봉령에 도착해야 한다. 12시 58분 헬기장인 970.3봉에 도착한다. 목표로 했던 30분은 넘지 않았다. 정상에는 아무 표시도 없다. 산행리본만 나뭇가지에 무수히 걸려있다.

 

상월산을 향한다. 목표시간은 25분. 내리막을 지나더니 등산로가 가팔라진다.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오른다. 1시20분 경 커다란 고사목에 상월산 나무표지가 걸려있는 정상에 도착한다. 역시 시간 내에 도착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아름답다. 작은 또 한 그루의 고사목과 앞으로 가야할 능선을 카메라에 담고 원방재를 향해 달린다.


<상월산 표지목이 고사목에 걸렸다.>

 

 

<상월산에서 본 앞으로 걸어야할 능선>

 

 

 

<상월산의 또 다른 고사목>

 

원방재로의 내림 길은 경사가 급하고 잡목이 무성하다. 왼쪽은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지고 멀리 무릉계곡이 내려다보인다. 원방재에는 40분 이내에 도착해야 한다. 1시 49분 원방재에 도착한다. 30분이 채 못 걸렸다. 내리막이라 진행이 빠르다. 댓재를 출발한 후 점심시간 약 45분간을 포함, 약 10시간을 걸은 셈이다. 원방재에는 산림청에서 새로 세운 듯, 멋진 안내판이 서 있다.

 

원방재에서 대원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이기령에서 탈출한 신입회원이 임도를 따라 걷는 모습이 보인다. 산악회 인솔자가 1,022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가르치며 빨리 출발하라고 독촉한다. 5시까지는 백봉령에 도착하겠다고, 인솔자를 먼저 보내고, 원방재 벤치에 앉아, 얼마 남지 않은 미숫가루 물을 마시며 쉰다. 1시 55분 경 서둘러 1,022봉으로 향한다.


<원방재 안내판>

 

1,022 봉까지는 2Km가 조금 넘는 거리지만 지난해 이 구간을 무박으로 산행했던 사람은 산행기에서 1,022봉을 오르면서 초죽음이 되었다고 한다. 완만한 오름길이 지루하게 계속된다. 경사가 급한 곳은 등산로가 이리구불, 저리구불 한없이 구불거리며 경사를 완화시킨다. 우회가 어려운 경사길에는 새롭게 나무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계단을 오르면서 등뒤의 배낭이 처음으로 무겁게 느껴진다. 지치는 모양이다. 3시경 1,022봉 너른 헬기장에 도착한다. 이정표는 아직도 백봉령까지 5Km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1,022봉 정상>

 

1,022봉에는 한 무리의 대원들이 쉬고 있다. 소주를 한 잔 얻어 마시고, 한참을 쉰 후 모두 함께 마지막 고지 987.2 봉을 향한다. 3시 40분 경 987.2봉에 도착한다. 삼각점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 두리번거리며 삼각점을 찾으니, 산악회 인솔자가 삼각점을 누군가가 뽑아버렸다고 알려준다. 할 수 없이 나뭇가지에 걸린 리본들을 카메라에 담아 시간 기록을 대신한다. 인솔자는 이제 한 시간이면 백봉령에 도착할 수 있다고 기운을 돋우어 준다.

 

누가 뒤로 바짝 붙어 따라오면 부담을 갖게된다. 그게 싫다, 그래서 다시 맨 뒤로 쳐져 마지막 피치를 낸다. 백봉령이 1,3Km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난다. 가벼운 업 다운이 계속되며 지루한 길이 이어진다. 저 아래로 42번 국도가 내려다보이고, 차량들이 왕래하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백봉령은 나타나지 않는다. 석병산으로 다시 오르는 길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이윽고 너른 전망대에 도착한다. 자병산의 훼손된 모습이 눈앞에 있다. 안내판이 망상 해수욕장 방향과 옥계 방향을 알려준다. 이제 다 온 것이다. 비탈길을 달려, 국도에 내려선다. 오른쪽에 버스가 보인다. 버스를 향해 뛴다. 4시 50경 버스에 오른다. 

<백봉령 전망대에서 본 석양 속의 동해>

 

버스에 오르니 인솔자가 반긴다. 5시까지 오겠다더니, 5시가 못되어 내려왔다고 추켜 준다. 버스가 5시 20분 출발 예정이니, 뒤쪽의 간이 식당에 가서 라면으로라도 요기를 하라고 권한다. 맥주도 파느냐고 물으나, 있다고 한다. 급히 간이 식당으로 향한다.

 

간이 식당에 있던 대원들이 예상보다 빨리 내려왔다고 반긴다. 맥주를 청해 마신다. 시원한 것이 살 것 같다. 대원 한 사람이 삶은 계란을 주고, 또 다른 대원은 육포를 건네 주면서 힘들었던 산행을 위로한다. 이런 맛에 힘든 산행을 하나보다. 따듯한 동지애를 느낄 수 있다.

 

5시 20분.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이기령에서 탈출했던 3사람은 도중에서 픽업한다. 소사 휴게소에서 간단히 저녁을 하라고 버스가 20분간 정차한다. 서둘러 우동 한 그릇을 먹고, 차에 오른다. 버스가 서울로 향하는 동안 내처 잠 속에 빠진다. 9시가 조금 지나 버스는 서울에 도착한다. 오늘은 다른 때와는 달리 뒤풀이를 하겠다는 소리가 없다. 힘들기는 모두 다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긴 하루였다.

 

 

(2004. 11.7.)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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