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11일(토).
오늘 토요당일 대간 산행은 백두대간 제25 소구간을 역코스로 취한다. 이화령(546m)을 들머리로 하여 조봉(680m), 황학산(910m)을 거쳐, 백화산(1.83.5m)에 오르고, 평천지(900m)를 지나 사다리재(820m)에서 분지리로 하산한다. 마루금 도상거리 약 9Km, 하산 거리 약 3Km, 총 약12Km다. 비교적 짧은 거리다. 산악회 기준시간은 역시 6시간이다.

 

산악회는 구간의 길고 짧음, 고도 차의 대소에 관계없이 지난 6구간의 기준시간을 똑 같이 6시간이라고 안내한다. 특별한 설명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아마도 선두와 후미간의 산행시간 차이에서 생기는 문제에 산악회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선언이 아니가 싶다.

 

양재동 구민회관 앞에 우산을 받쳐든 대원들이 모여든다.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고 지역에 따라서는 집중 호우가 예상된 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산행은 강행된다. 버스가 출발하고 버스 안에는 평소의 2/3가 채 못 되는 대원들이 여유 있는 좌석에 띠엄띠엄 편하게 앉아 있다.

 

지난 3월 발대식 때에는 참여인원이 100여명 가까웠다하나 6개월이 지나자 1/3정도로 줄었고, 이들 잔류 대원들의 연령은 30대에서 60대로 두 세대에 걸쳐 있으나 숫적으로는 50대가 주축이 된다. 여자 대원은 전체의 10%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선두도 대원들이 맡아 길을 유도하고, 후미도 대원들 스스로가 챙긴다. 산악회 요원들이 함께 산행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원들이 자치적으로 행하는 역할이 훨씬 크다.

 

30십대, 40대가 팀 전체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하며 분위기를 이끈다. 귀찮은 총무 일을 헌신적으로 행하는 젊은이 있는가 하면, 팀원들에게 정확한 산행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GPS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는 젊은이도 있다. 뒤로 쳐져 빛 안 나는 후미 역을 담당하는 것도 이들 몫이다. 젊은이들이 참으로 대견하다.

 

선두경쟁을 벌리는 것은 50대다. 하지만 선두와 후미간의 조정역할을 담당하는 것도 역시 50대다. 야생화나 나무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여 팀에 기여하고, 좋은 산행 사진들을 남기는 일도 이들이 주축이 되어 한다.

 

회장과 비교적 산행 경험이 많은 60대 한 분이 팀 전체를 이끌며. 대원들 간의 마찰이나, 돌출행위를 견제한다. 아쉬운 것은 산행 전문가들이 아니기 때문에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기능이 미흡한 점이다. 산행 중 선두와 후미, 알바를 한 대원들이 발생했을 때, 또는 환자가 발생했을 때 상호 교신하는 수단이 없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핸드폰은 불통이고,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무전기도 필요할 때는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백두대간 산행이 일반화되어 위험요소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비교적 많은 인원이 2년여에 걸쳐 계속 산행을 해야 함으로 안전문제와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대간 종주를 원하는 일반인들이 모여,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산악회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활용하는 이러한 형태가 앞으로는 보다 일반화 될 가능성이 크다. 스스로를 조직화하지 못하고 산악회에 의존했던 모임이 도중 하차하는 예는 수없이 많다.

 

버스는 빗속을 달린다. 내륙중부고속도로 충주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라고 30분 정차한 후, 버스는 빗속을 내쳐 달려, 8시 50분 경 충주 톨게이트를 빠져 나온다. 빗발이 가늘어지고 비구름이 산허리를 타고 산봉우리 쪽으로 서서히 이동한다. 날이 개이려나? 이 정도 날씨면 좋겠다고 희망을 걸어 본다. 버스는 3번 국도로 진입하여 연풍면으로 들어선다. 차창 밖의 빗줄기가 다시 굵어진다. 대원들은 서둘러 우중 산행을 위해 완전 무장을 한다. 버스는 9시 35분 경 이화령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람이 거세다.

 

커다랗게 세워진 경상북도 관광안내도 앞에서 대원들 일부가 모여 단체사진을 찍고, 서둘러 산행을 시작한다. 선두 팀은 단체 사진도 생략한 채 앞선 모양이다. 사진에 모습이 없다. 왼쪽으로는 조령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가 보이고, 백화산으로 오르는 길은 도로 오른편 시멘트 계단으로 이어진다.

 

<비내리는 이화령>

 

시멘트 계단이 끝나고 등산로는 비교적 경사가 급한 사면으로 이어진다. 좁은 진흙길은 비에 젖어 미끄럽다. 비바람 때문인지 대원들의 마음이 바쁜 모양이다. 뒷사람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바짝 붙어 일렬로 오른다. 뒷사람에게 길을 양보할 적당한 곳을 찾기도 어려운 좁은 사면이라 한참을 그대로 오른다. 빨치산들은 산 속을 행군할 때는 일렬 종대로 빠르게 행군한다고 한다. 앞사람과의 거리는 4보 간격이 철칙이라 한다. 위험을 막고, 선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졸면서 걷더라도 이 원칙을 지킨다고 한다. 비켜설 수 있는 지점을 확보하고, 길을 양보한 후 후미로 처진다.

 

이윽고 능선 길에 오른다. 오늘 산행 코스는 백화산까지는 남동쪽으로 진행하고, 백화산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하다. 사다리재에서 북쪽 골짜기를 내려 분지리에 이른다. 갈림길이 많다고는 하지만 이 방향을 머리 속에 넣어두면 알바를 할 위험은 크지 않다. 능선에 오르니 바람이 더욱 거세다. 681봉을 지나는 지도 모르고 지난 후 헬기장을 통과한다. 시계가 막힌 상태라 한눈도 팔지 않고, 비바람 속을 내 닫는다. 조봉을 지난 모양이다. 다시 헬기장이 나타난다.

 

완만한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되다 보니 777봉도 모르고 지나친다. 억새가 비바람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비명을 지른다. 비로소 777봉을 지났음을 안다. 참나무 숲 속으로 들어선다. 바람이 잠잠해지고 비에 젖어 더욱 푸른 참나무 숲 속에서 황토 빛 등산로와 나무에 걸린 색색의 산행리본들이 선명하다. 이제 다소 여유를 찾았나 보다, 발등으로 스며든 빗물로 질척대는 신발에 신경이 쓰인다. 발이 젖으니 기분이 언잖다.

 

 

<862봉으로 오르는 길의 참나무 숲>

 

숲길을 벗어나 다시 능선 길에 이른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다. 능선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이 거센 바람에 시달려 토해내는 신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간간이 암릉길이 이어지고 전망대가 나타난다. 백화산에서 보는 전망보다, 아니 희양산에서 보는 전망보다 좋다는 865봉의 전망대에 서지만 거센 바람에 흩어지는 구름사이로 동북쪽과 동쪽 방향이 빼 꼼이 보일 뿐이다. 그래도 이 비바람 속에서 얼마나 큰 행운인가? 서둘러 후미를 보는 젊은 대원과 사진을 몇 장 찍는다.

 

<862봉 전망대에서 본 동쪽 전망>

 

11시 10분 흰두뫼 갈림길 이정표를 지난다. 산행 시작 후 1시간 30분이 경과된 시간이다. 정신 없이 걸은 모양이다. 특히 능선길 비바람 속에서는 지은 죄도 없는데도 슬그머니 겁이나 더욱더 걸음이 빨라진 모양이다. 길은 다시 완만한 숲길을 지나고 드믄드믄 억새가 보인다.  

 

<흰두뫼 갈림길 이정표>

 

빗발이 가늘어지며 나무 가지 사이로 북쪽 하늘이 밝아진다. 동쪽으로는 저 아래 산봉오리 위로 구름이 걷힌다. 비탈길에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60년대 황순원의 소설 "나무들 비탈에서다."를 떠올리며 속으로 피식 웃는다. 앞에 큰산이 가로막는다. 황학산인 모양이다. 등산로는 황학산 허리를 지나 한 차례 내려서더니 오름 길로 이어진다. 오름 길에 올라 뒤돌아 나무들로 가려진 황학산을 사진기에 담는다.  

 

<황학산 오르는 길 - 나무가지 사이로 본 비 멎은 하늘>

 


<나무들 비탈에 서다>

 

언덕 위에는 앞선 팀에서 처진 대원 한 분이 쉬고 있다. 앞 팀은 이제 막 출발했다고 한다. 올해 환갑을 맞는 이 대원은 이번이 세 번째 대간 산행길 이라고 한다. 지난 두 차례는 열심히 걸어 중위그룹에 합류했었지만 본래 문제가 있던 무릎에 부담이 되는 것 같아 뒤로 쳐졌다고 한다. 비스켓 몇 쪽을 나누어 먹고 앞 팀을 뒤좇는다.

 

<옥녀봉 갈림길의 이정표>

 

비탈길을 내려서니 여기저기 갈림길이 보인다. 이윽고 암벽지대에 이른다. 악천후 때는 주의해야하는 코스라는 말을 듣고 긴장했지만 크게 위험 길은 아니다. 가파른 암벽 길에는 로프도 걸려있다. 암벽지대를 지나자 옥녀봉 갈림길 이정표가 서있다. 직진하는 오르막을 오르니 백화산 정상이다. 12시 15분 경이다. 산악회 기준시간 보다 약 30분 정도 빠르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정상석이 서있다. 비구름에 가려 전망은 제로다.

 

<백화산 정상의 정상석>

 

정상 바로 아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사람소리가 들린다. 막 점심식사를 마치고 추워서 서둘러 하산하는 앞 팀들의 소리다. 이들을 보내고 우리도 점심 도시락을 푼다. 바람을 피 할 수 있는 곳이라지만 나무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차다. 어한주를 한 목음씩 나누어 마시지만 춥기는 마찬가지다. 가늘어진 빗속에서 바람에 떨며 서서 점심을 먹는다. 시간이 갈수록 추위는 심해진다. 서둘러 점심을 마치고 배낭을 챙겨 12시 35분 1012봉으로 향한다.

 

비탈길을 걸어 내려오니 몸이 다시 따듯해진다. 이제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분지리에 도착할 수 있겠다. 식사를 하고 5시에 버스가 출발한다고 했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무릎에 신경을 쓰는 대원을 따라 천천히 비탈길을 내려온다. 이 대원은 나무와 풀에 대한 조예가 깊다. 길가의 생강나무 잎을 따주며 냄새를 맡아보란다. 생강냄새가 난다. 봄이오면 들에는 제일 먼저 산수유가 피고, 산에서는 생강나무 꽃이 가장 먼저 핀다고 한다. 꽃 모양은 산수유와 비슷하고 역시 노란색이라고 한다. 상수리나무, 도토리나무, 참나무가 어떻게 다른 지도 모르는 내게는 신기하기만 하다.

 

1012봉인지 거대한 암봉이 앞을 가로막고 길은 우회하여 급경사 내리막으로 떨어진다. 내리막을 거쳐 바위틈새로 다시 능선에 오르니 남쪽에서 부는 바람은 여전히 거세고 가늘어진 빗발이 오락가락한다. 1시23분 평전치 이정표를 지난다. 당초 백화산에서 여기까지의 시간을 35분을 목표로 했음으로 약 13분 정도 늦은 진행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평전치 이정표>

 

바람에 시달리며 능선 길을 오르내린다. 커다란 배낭을 지고 젊은이 한 사람이 혼자서 마주 걸어온다. 젊은 사람이 단독 산행을 하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고 반갑다. 1시 48분 뢰정산 갈림길의 둔탁한 이정표를 지난다. 뇌정산 산 흐름의 영향인가?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남쪽에서 불던 바람이 북쪽 바람으로 바뀌고 이제는 능선길도 오른 쪽이 가파르다. 구름 사이사이로 가끔씩 분지리 마을이 보인다.

 

<뢰정산 갈림길 이정표>

 

 

<구름에 반쯤 가린 이만봉>

 

사다리재가 가까워진다. 정면 나뭇가지 사이로 구름에 반 넘어 가린 이만봉이 보인다. 그 앞의 곰틀봉이 바로 눈앞에 있다. 다시 구름에 가릴세라 서둘러 카메라에 담고, 사다리재로 내려선다. 이 때의 시간이 2시 30분이다. 백화산에서 사다리재 까지의 산악회 기준시간이 2시간이지만 천천히 걷는다고 걸었는데도 뇌정산 갈림길을 지난 후 거센 바람 탓인지 걸음이 빨라진 모양이다. 1시간 55분이 걸렸다.

 

사다리재에서 한 숨돌리며 후미를 맡은 대원이 선두 팀과 무선 교신을 시도해 보지만 역시 불통이다. 분지리로 내려선다. 미끄러운 너덜 길을 조심조심 내려온다. 정글과 같은 숲길을 통과할 때는 멈춰 서서 나무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 비가 멎으며 북쪽하늘이 훤해온다. 구름에 가린 먼 산을 배경으로 엷은 안개에 속에 단풍나무 한 그루가 그림처럼 아름답게 서있다. 잔돌 길을 지나 숲길로 이어진다. 두 번째 걸어서일까? 지난번에는 지겹게 느껴졌던 길이 정겹게 다가온다. 비가 그친 낙엽송 숲길이 아름답다. 지난번에는 40여 분 만에 하산했으나 늑장을 부려 한 시간쯤 지난 후 마을 어귀에 이르니 대원 한 사람이 마주 올라온다. 올 때가 지났는데 무전기도 불통이고 걱정이 돼서 올라오는 길이라 한다. 

 

<분지리로 하강하면서 본 북쪽 전망>

 


<운무에 살짝 가린 단풍나무>

 

모두들 버스에서 기다린다고 한다. 당초에는 마을의 농가에 식사를 부탁할 예정이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못해, 연풍면에 있는 식당에 저녁을 예약해 놓고 기다리는 중이란다. 땀도 닦지 못하고, 질퍽거리는 신발, 엉망이 된 바지 아랫도리를 한 채, 식당에서 옷을 갈아입기로 하고 버스에 오른다.

 

정육점을 낀 식당에서 고기에 술에 밥으로 포식한 대원들이 다시 버스에 올라 5시 10분 경 서울로 향한다. 3번 국도로 들어서니 비는 폭우로 변해 사납게 차창을 두드린다.

 

 

(2004. 9. 12.)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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