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18일(토)
오늘 토요당일 백두대간 산행지는 제26소구간이다. 이화령(548)을 들머리로 조령산(1026)에 오르고 신선암(937), 923봉을 거쳐 조령 제3관문까지 마루금을 탄 후, 조령 휴양림을 거쳐 고사리 마을로 하산한다. 도상거리 마루금 약 8Km, 날머리 약 3Km, 총 약 11km다. 산악회의 산행 기준시간은 5시간 30분이다.

 

선답자들의 산행기, 그리고 다른 자료들을 참조하여 점심시간 30분, 땀 씻고 옷 갈아입는 시간 15분을 가산하여 내 목표 시간은 6시간 30분으로 설정해 본다.

 

넓은 의미의 조령산은 일반적으로 이화령에서 조령 제3관문까지의 구간을 말한다고 한다. 조령산까지는 육산이나, 조령산을 지나 신선봉, 923봉을 거쳐 757봉에 오르는 안부까지는 기암 준봉과 칼날 능선길이 이어져 설악산의 공룡능선에 비유될 정도로 변화가 많다고 한다. 757봉부터는 다시 부드러운 육산이 이어진다. 많은 등산객들이 조령산을 찾는 것은 이러한 아기자기한 암릉과 암릉 곳곳에서 굽어보는 아름다운 조망을 즐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난 번 백화산도 우중 산행으로 그 좋다는 전망을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남은 터라 주초부터 주말 날씨에 신경이 쓰인다. 예보에 의하면 이번 토요일도 비가 오거나 .구름이 많을 것이라고 한다. 산행 전날인 금요일의 예보로는 토요일은 전국적으로 비가 오지만, 중부 지방부터 서서히 개이기 시작하여 오후에는 비가 그칠 것이라고 한다.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양재동 구민회관 앞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는 하늘은 잔뜩 흐려있지만 어제부터 내리던 비는 멎었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 대원들이 버스에 오른다. 오늘은 조령산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지난주보다는 많은 대원들이 참여한다. 여자대원들도 여러 명 보인다.

 

버스는 충주 휴계소에서 아침 식사를 위해 30분간 정차한다. 너른 주차장이 절반 넘어 텅 비어 있다. 비는 오지 않으나 남쪽 먼 산들이 구름으로 가려져 있다. 아침을 집에서 간단히 먹고 나와, 커피를 마시며 대원들과 이야기꽃을 피운다.

 

<비가 예보된 토요일 -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이 한적하다>

 

버스는 다시 고속도로를 달린다. 차창으로 빗물이 부딪혀 흘러내린다. 또 우중 산행을 해야 하나보다. 9시 35분 경 이화령에 도착, 버스에서 내리니 여전히 비가 내린다. 심한 비는 아니지만 그대로 맞으며 산행하기는 무리일 듯 싶어, 배낭에서 판쵸를 꺼내 입는다.

 

경상북도를 알리는 커다란 돌비석과 등산 안내도를 보며 9시 40분경 왼쪽으로 난 등산로를 오른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등산로는 마루금을 버리고 7-8부 능선쯤에서 산허리를 감돌아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이어진다. 몇 차례 너덜지대를 지난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지만 판쵸를 뒤집어 쓴 몸에서는 땀이 배기 시작한다. 몸이 더워지니 내리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곳곳에서 대원들이 멈춰 서서 비옷을 벗는다.

 

<산행 시작>

 

10시 8분 경 첫 번째 헬기 장에 이른다. 목표했던 소요시간 30분보다는 조금 빠른 진행이다. 뒤로 보이는 759봉이 구름 속에 희미하다. 비도 차츰 멎는 기미라 판쵸를 벗어 배낭에 묶고 마루 금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걷는다. 1Km 정도 이어지는 이 마루금 등산로에서 보는 전망이 좋다고 하지만 지금은 비구름에 가려 가시거리는 제로다.

 

등산로는 다시 마루금을 버리고 사면 허리길로 이어져 이정표가 새워진 곳에 이른다. 이정표는 제1관문의 하산 길 방향과 조령산 방향를 가르킨다. 가까이에 조령샘이 있다. 조령샘 주변은 비교적 깨끗이 정비돼 있고 배수관을 통해 흘러나오는 샘물은 시원하고 물맛이 좋다.


<조령샘 앞 이정표>

 


<조령샘>


조령샘을 뒤로하고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한 가파른 사면을 올라, 10시 45분 경 헬기 장에 이른다. 조령 남봉이라고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남쪽으로 속리산 연봉, 희양산, 백화산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주흘산 등이 보여 조령산 정상에서보다도 전망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지금은 구름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조령산으로 향한다. 10시 55분 경 조령산 정상(1.026m)에 오른다. 역시 예정보다 조금 빠른 진행이다. 정상에는 앞서 오른 대원들이 정상주를 개봉하고 있다. 중국을 여행하고 온 여자대원이 대원들을 위해 사온 죽엽청주다. 달콤하고 독한 죽엽청주를 한잔씩 나눠 마신다. 섬세한 여자대원은 안주로 데친 낙지와 초고추장까지 준비해 왔다.

 

조령산 정상에는 정상석과 지현옥 씨를 추모하는 하얀 이정표가 서 있다. 지현옥 씨는 에베레스트산에 오른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등반가다. 1999년 4월 안나프르나봉에 오른 후, 하산 시 추락, 사망했다고 한다. 서원대학교 산악반 후배들이 세운 하얀 추모 이정표 앞에서 마음이 숙연해 진다.


<조령산 정상석>



<추모 이정표>

 

정상에서 약 10여분을 지체하고 대원들은 왼쪽 경사로로 내려선다. 급경사 길이 비에 젖어 미끄럽다. 조심조심 급경사 길을 내려서다 전면을 보니 신선암이 구름 속에 가려 신비롭게 떠있다. 맑는 날에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모습이다. 급경사 길을 내려 안부에 도착하니 이정표가 서 있다. 등산로는 잠시 947봉을 오르고, 다시 급경사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곳곳에 로프가 매어져 있어 안전 산행을 돕는다. 947봉을 내려오면서 정면으로 구름 사이로 잠깐 얼굴을 비치는 889봉을 본다. 아름답다.


<구름이 엷게 드리운 신선암>

 


<889봉>

 

11시 42분 경 안부에 이른다. 조심해서 걸어서일까? 조령산에서부터 약 40분이 경과했다. 안부에는 신풍 2.9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889봉을 우회한 후, 본격적으로 신선봉으로 오르는 암벽과 마주한다. 긴 슬랩 구간에는 로프가 걸려있다. 여기서 잠시 정체한다.


<신풍 2.9Km를 알리는 이정표>

 

마침 구름이 잠시 벗어지며 왼쪽으로 절골이 그림처럼 누워 있는 아름다운 광경을 굽어본다. 암벽을 지나면 암릉이 계속되고 다시 암벽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신선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바위 앞에 이른다. 가슴 높이 정도에 왼쪽 바위가 경사를 이루고 삐죽 나와 있다. 이 바위로 올라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오른쪽 암벽을 딛으며 몸을 솟구쳐 왼쪽 바위사면으로 붙어야 하나 비에 젖어 오른쪽 바위가 몹시 미끄럽다.


<구름사이로 보이는 절골 방향>

 


<신선봉 오르는 길>

 

다행이 대원 한 사람이 왼쪽 바위 위에서 줄을 내려준다. 이 줄을 잡고, 오른쪽 암벽을 박차며 왼쪽 바위 위로 오른다. 신선암으로 오르는 길이 암벽과 암릉의 연속이나 위험한 곳에는 로프가 매어 있어 조심하면 크게 어렵지 않으나, 이 곳은 서로 도와 안전하게 올라야 할 곳이다.

 

너른 바위를 지나 12시 16분 경 신선암 정상에 도착한다. 내 목표시간 보다는 약 10분 정도 빠른 진행이다. 정상에 모여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사방으로 보이는 것은 역시 구름바다뿐이다.

 

신선암을 내려선다. 급경사 길이다. 직벽을 로프에 매달려 내려오고, 로프를 잡고 암벽을 트레버스하여 횡단하기도 한다. 하강 길에 다시 비가 내린다, 거추장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판쵸를 입는다. 조심조심 내려서 안부에 도착한다. 비가 굵어지고 마음이 급해 이정표도 카메라에 담지 못하고 서둘러 932봉으로 오른다. 다시 암봉길이 이어지고, 빗속에서 923봉은 모르고 지나친다. 1시가 넘으니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다고 느끼니 걷는 게 더 힘들어 진다. 배낭을 내려 미숫가루 탄 물을 마시고 다시 출발한다. 너른 전망바위도 그대로 지나친다.

 

빗발이 조금 가늘어진다. 바로 앞 암릉길 위에서 앞팀이 도시락을 풀고 있다. 합류하여 함께 점심을 한다. 다시 빗줄기가 굵어진다. 피할 나무 그늘도 마땅치 않아 비를 맞으며 점심을 먹는다. 바람이 없어 지난 주 점심때처럼 춥지는 않다. 대원들은 빗물에 물 말아먹는다고 농담을 하며 빗속에서도 즐겁게 점심을 든다.

 

식사 후 왼쪽으로 내려서다 오른 쪽으로 휘어져 다시 암릉 위로 이어지는 대간 길을 빠르게 진행한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양쪽이 절벽인 암릉 길이 이어진다. 날씨가 좋다면 양쪽으로 굽어보는 전망이 기가 막힐 듯 싶다. 이윽고 암릉 길이 끝나고, 길은 비로 미끄러운 언덕길로 이어진다. 757봉을 지나자 능선 길에는 그 동안 내린 비로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생겼다. 이미 젖은 발, 개의치 않고 첨벙 첨벙 물웅덩이를 건넌다. 비는 많이 가늘어졌다.

 

821.5봉 못 미쳐 전망대에 선다. 동쪽 구름사이로 봉우리들이 줄지어 서 있다. 위치로 보아 부봉과 그에 잇따른 봉우리들인 듯 싶다. 대간 산행을 하면서 가장 답답한 것은 주위에 보이는 산들을 정확히 식별하지 못하는 점이다. 독도법을 제대로 익히면 나침반을 이용, 관심 있는 산의 위치를 식별할 수 있다고 한다.


<부봉과 2, 3, 4 ...봉>

 

독도법에 관한 책을 찾으러 구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의 도서도 검색해보고, 교보문고, 영풍문고의 홈페이지도 뒤져봤으나 독도법만을 전문으로 다룬 책은 찾지를 못 한다. 교보문고를 가보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 일부러 찾아 가 보았지만 원하는 책은 찾지를 못하고 엉뚱한 책들 만 한 보따리 사 들고 온다.

 

다시 가파른 길을 오른다. 바닥에 삼각점이 박혀 있다. 821.5봉이다. 이제 비는 완전히 멎었다. 조령 제3관문 1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난다. 내리막길을 달려 약 20분 후인 3시14분 조령 제3관문에 도착한다. 조령약수 터에서 유서 깊은 약수를 마시며 쉰다.


<조령약수>

 


<조령 약수 해설>

 

여자들은 많이 참았던지 서둘러 화장실을 찾아 나선다. 조령 제3관문은 관리가 잘 되어 보기가 좋다. 성문 앞쪽으로는 좌우로 너른 잔디밭이 푸르고, 해 묵은 나무들이 아름답게 서있다. 커다란 러시아개가 어슬렁거리며 주위를 배회한다. 10여 분간 사진을 찍으며 쉰 후 3시 24분 고사리 마을로 향한다.

 

고사리 마을로 향하는 길이 잘 정비돼 있다. 비는 완전히 멎고 이제는 햇님이 얼굴을 보여준다. 비 온 후 주위 경관이 무척 아름답다. 오른쪽으로 날카로운 암봉들이 도로를 따라 달린다. 왼쪽으로는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는 들녘을 넘어 저 멀리 웅장한 산세가 구불구불 햇빛을 받고 누워 있다. 길 가 오른 쪽으로 조령을 넘었던 과거 객 선비들을 상징하는 조그만 선비 상이 서있고, 군데군데 맑은 계곡 물이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선비상>

버스가 정차하고 있는 주차장에는 3시 50분경 도착한다. 산악회 기준 시간보다는 40분 늦게, 내목표 시간에 비슷하게 산행을 마친 셈이다. 주차장 건너편 건물 화장실에서 땀을 닦고, 옷을 갈아 입은 후 식당에서 맥주 한잔으로 갈증을 풀고 저녁식사를 한다. 저녁을 먹고 주위를 둘러 본다. 고사리 마을이 아름답다.

 

5시 경 버스는 서울로 향한다.

 

 

(2004. 9. 19.)

Posted by Urimah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