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25일(토).

쾌청한 가을 날씨다. 사흘 후면 추석이다. 하지만 대간 산행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대간 병에 걸렸더라도 고향을 찾아야 할 분들은 어쩔 수 없이 결간 할 수밖에 없겠다. 추석이 어떤 명절인가? 산이 좋아 토요일이면 산을 찾는 산꾼 들도, 오늘은 "고향 앞으로!" 일 것이다.  산악회에서는 토요당일 산행지를 주흘산으로 정하고, 주흘산 산행하실 분들을, 대간 팀과 합방시킨다. 그래서 버스는 만원이고, 대간 팀 젊은 요원 몇몇은 통로에 앉아 간다. 산악회 대장님이 양해를 구하기도 했지만 누구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넉넉한 마음들이다.

 

오늘 대간 코스는 대간 제27소구간이다. 주산은 마폐봉(927m)이고, 조령3관문에서 하늘째까지의 마루금이 대간 길이다. 하지만 대간 종주를 위한 총 54구간 중 절반을 소화하는 오늘, 산행 후 고사리 마을에서 자축 파티를 계획한 대간산행 팀과 주흘산 산행코스를 감안하여, 하늘재를 들머리로 하는 역코스를 취한다.

 

하늘재(520)-월항삼봉(856)-평천재(760)-959봉-동암문(740)-북암문(751)-마폐봉(927)-조령 제3관문(820)-고사리』, 총 거리 약 12Km, 소요시간은 약 5시간 30분이다. 산악회 대장님은 4시경까지는 고사리 마을로 하산해 달라고 당부한다.

 

어제 저녁부터 귀성이 시작됐다는 보도를 듣고, 귀성객으로 혼잡한 고속도로를 걱정했으나, 의외로 고속도로 통행차량은 평소와 다름이 없다. 버스는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려,  8시 15분 충주 휴게소에 도착, 30분간 아침식사를 위해 정차한다. 5시경에 아침을 먹고, 오후 1시가 넘으니 배가 고팠던 지난 번 산행의 경험을 감안해 휴게소에서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한다.

 

버스는 괴산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3번 국도로 갈아 탄 후 문경읍으로 향한다. 주흘산 들머리는 관음리에서 시작하는 모양이다. 버스가 관음리로 들어서자 차장 밖으로 보이는 시골 풍경이 아름답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과수원에는 붉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좁은 시멘트 길을 버스는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길을 따라 흐르는 시냇물이 아주 맑아 보인다. 몇 백년은 족히 됐을 듯 싶은 커다란 느티나무를 지나 버스가 정차하고, 주흘산을 오르는 분들이 줄지어 하차한다. 거의 절반이 넘는 숫자다.

 

좁은 길에서 버스가 회전을 하느라 애를 먹는다. 자칫 하면 오른쪽 개울로 빠질까 겁이 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젊은 대원들이 내려서 차의 후미와 개울 쪽을 봐 준다. 아슬아슬하게 버스가 회전하고, 차안에서는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비로소 마음을 놓고 등산객들이 향하고 있는 주흘산을 본다. 암봉들이 줄기줄기 이어진 거친 산이다. 이런 산을 뒷산으로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이 산의 기상을 닮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오랜 세월 이런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동안 조금씩 DNA가 영향을 받으며 후손들에게 전해졌음이 틀림없겠다. 산을 분수계로 이해하고, 인간의 삶에 미치는 지형의 영향을 고려하여,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이 땅의 산을 체계화한 선조 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한다.


<관음리 마을에서 본 주흘산>

 

 

 

버스는 마을을 되돌아 나와 하늘재로 향한다. 하늘재에 가까워지자 오른 쪽으로 웅장한 포암산이 보인다. 10시 5분 경 버스는 하늘재에 도착한다. "하늘재" 참으로 멋진 이름이다. 하늘재에는 2001년 1월 문경시장 이름으로 하늘재의 유래를 알리는 계립령유허비(鷄立嶺遺墟碑)가 서 있다. 내용은 계립령은 백두대간의 고갯마루로, 신라가 북진을 위해 아달라왕(阿達羅王) 3년(156년) 죽령과 조령사이에서 가장 낮은 곳에 만든 이 고갯길의 지리적 의미. 역사적 사실들이 적혀있다. 가능하면 앞으로 배낭 하나를 달랑 메고 경상도 관음리에서 충청도 미륵리 까지 걸어서 넘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계립령 유허비>

 

 

 

하늘재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대원들이 남쪽으로 난 등산로로 들어선다. 지도로 보면 월항삼봉까지는 계속 오름 길이니, 중간에 길을 비켜야하는 수고도 덜 겸 10시 10분 경 제일 후미로 쳐져 울창한 전나무 숲으로 향한다. 쾌청한 가을 날씨, 숲 속에 들어서니 전나무 잎 사이로 햇빛이 부셔져 내리고, 코끝의 공기가 싱그럽다. 하지만 이 좋은 숲길은 잠깐, 등산로는 철조망을 왼쪽으로 끼고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마사토가 깊게 패어진 곳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진다. 이 완만한 경사 길을 발걸음에 호흡도 맞춰 보고, 오름 길에서 2개의 스틱 사용법도 익히면서 유유히 오른다.

 

고사리에 도착하라는 4시까지면 약 6시간의 시간이 있다. 게다가 하늘재까지 버스로 왔으니 들머리 2Km도 벌었겠다, 오늘은 널널한 산행이 가능하다. 10분쯤 오르니 대간 주능선에 이르고 북동쪽 나무사이로 허연 암벽이 베(布))를 널어놓은 듯한 포암산이 눈앞에 웅장하다. 조금 더 오르자 대원 한 사람이 전화를 받느라 길옆으로 비켜선다. 10시 32분 내무부에서 세운 삼각점을 지난다. 아무 표시도 없지만 아마도 766m봉인 듯 싶다. 이어서 10시 45분 경 선바위에 이른다. 선바위 앞에서 대원 한 분이 배낭도 벗어 놓은 채, 후미를 기다리고 있다.


<포암산>

 

 

 


<선바위>

 

 

 

선바위 전체를 카메라에 담으려니 거리가 없다. 이리 지리 적당한 장소를 찾아보나 헛일이다. 단념하고 물을 마시며, 후미를 기다린다. 이윽고 후미가 도착하고, 대간 길에서는 벗어나 있으나 조망이 좋다는 중봉을 오르고 싶어 나는 서둘러 먼저 출발한다.


<전망대에서 당겨 본 주흘산>

 

 

 


<전망대에서 본 평천리>

 

 

 

선바위를 지나 등산로는 내리막을 거쳐 오름세로 이어지고 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에 서니 비로소 선바위 전체가 카메라에 담긴다. 멀리 평천리 마을이 보이고, 남쪽으로 주흘산이 웅장하게 솟아있다. 11시 4분 월항삼봉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백두대간 탄항산(炭項山)이라는 정상석이 서 있다. 탄항산을 지나 평천재로 이어진 길은 기분 좋은 산책로다. 호젓한 산길을 혼자 걷는 기분이 그만이다. 상수리나무 잎이 떨어져 낙엽으로 딩굴고, 내가 밟는 낙엽 소리가 산 속의 고요함을 깬다.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스쳐간다. 하지만 땀에 젖은 몸에 닿는 바람은 시원함과 차가움이 함께 느껴진다. 국군의 날 행사 연습인가? 이따금 제트기의 굉음이 산의 정적을 뒤흔든다. 10시 24분 평천재에 도착한다.


<탄항산 정상석>

평천재에서 959봉에 오르는 길은 가파른 오름세다. 꾸벅꾸벅 호흡에 맞춰 걸어 오른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오름세는 더욱 급해지고 로프가 길게 늘어져 있다. 아마 동절기 안전산행을 위해 설치한 듯 싶다. 11시 49분, 959봉 갈림길에 이른다. 정상에는 이정표가 서 있다. 부봉, 1.3Km, 40분, 제3관문 4.7Km, 3시간, 주흘산2.6Km, 1시간 30분.


<주흘산 갈림길 이정표>

 

 

 

부봉, 제3관문 방향으로 걷는다. 뚜렷한 등산로가 가벼운 오르내림을 반복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꾸준히 내려가는 느낌이다. 10여분을 걸어도 선두가 달아놓은 산악회 리본은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 빛 바랜 대간 리본이 눈에 뜨이나 여러 사람들이 지나긴 흔적은 뚜렷하지 않다. 길을 잘 못 들었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이정표를 보면 분명 외길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의심암귀(疑心暗鬼), 마음이 불안해 진다. 모르고 동화원이나 아니면 미륵리로 빠지는 샛길로 들어선 건 아닌가? 위험할 꺼야 없겠지만 알바를 하고 헤매다 여러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끔찍하다.

 

온 길을 되돌아 달린다. 옳은 길이면, 후미 팀과 만날 것이고, 길을 잘못 들었으면, 제 길 찾아 쫓아가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참을 걸으니 후미 팀이 보인다. 안심이 된다. 옳은 길이냐고 물으니 후미대장이 지도를 본다. 맞는 길이라고 한다. 되돌아 앞으로 나간다. 아직도 부봉을 다녀 올 욕심을 버리지 못한 거다.


<부봉>

 

 

 

부봉 쪽으로의 내림 길은 좌우로 풍광이 아름답다. 나무에 가려 시원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왼쪽으로는 주흘산의 흐름이 시야에 남고, 오른쪽으로는 저 멀리 이름 모르는 산들이 아득하다. 바로 눈앞에 부봉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12시 28분, 부봉 갈림길에 선다. 이상하다. 선두 팀들이 부봉을 오른 흔적이 없다. 부봉에 갔으면 배낭을 두고 갔을 터인데 갈림길에는 배낭이 보이지 않는다. 벌써 다녀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지금 부봉을 다녀오는 것은 무리다. 부봉을 눈  앞에 두고, 맥이 빠져 동암문 쪽으로 터덜터덜 내려온다. 저 아래 동암문에 앞선 대원들이 모여있다. 12시 39분 동암문에 도착한다.


<동암문 이정표>


중위 팀이 막 점심을 마치는 참이다. 부봉에는 다녀오지 않았단다. 대간 팀의 회장과 젊은 대원 몇 분이 남고 나머지 분들은 먼저 출발한다. 이윽고 후미가 도착하고 다시 점심상이 차려진다. 대원 한 분이 어름 팩에 냉장한 날치 알을 꺼내 샐러드 위에 뿌린다. 이어서 굽지 않은 마른 김, 콩 버터, 그리고 겨자를 탄 물을 차례로 꺼낸다. 여기에 더덕주가 한 병. 또 한 분은 동태 식혜라는 별식을 내 놓는다. 내 점심은 짠 무지와 익힌 명란젓을 버무린 밥을 메추리알 크기로 김에 싸 만든 주먹밥과 보온 통의 미소 시로가 전부인데, 백두대간 덕에 생전 처음 보는 별식을 즐긴다.

 

더덕 주를 마시고 날치 알 안주를 먹는다. 먼저 김에 콩 버터를 바른다. 그 위에 날치 알 샐러드를 듬뿍 놓고, 김을 말아, 겨자 물에 찍어 먹는다. 맛이 일품이다. 동태 식혜 또한 별미다. 점심을 마쳤다고 하지만 잔류한 중위 팀이 이런 성찬을 마다하겠나? 마침 환경보전 실태를 조사한다는 젊은이들이 큼직한 카메라에, 어린애 머리통 만한 마이크를 메고 미륵리 쪽에서 올라온다. 대원 한 사람이 술 한잔하고 가라고 권한다. 그 중 숫기 좋은 젊은이 하나가 자기가 대표로 한 잔만 받겠다고 나선다. 젊은이가 술을 마시자, 술을 권한 대원이 날치 알 안주를 입에 넣어준다. 맛있다고 치하하는 젊은이의 말이 지나가는 인사말이 아니란 것은 그의 표정으로 보아 알 수 있겠다.

 

1시 5분 점심을 마치고, 나는 대원 두 사람과 함께 먼저 출발하고. 발이 빠른 나머지 분들이 뒤처리를 하기로 한다. 북암분으로 향하는 길도 산책길이다. 곧바로 회장님을 비롯한 잔류 대원들이 쫓아온다. 대원 한 사람이 앞서 치고 나간다. 763봉 오름 길에서 회장님은 힘들어 하는 대원의 손을 잡고 "아자 ! 아자 !" 기운을 돋으며 함께 오른다. 일행을 뒤로 남기고 나도 앞선 대원을 따라 속도를 낸다. 756m봉 오름 길이 다소 가파르다. 2시경 북문에 도착한다. 이정표가 서 있다. 북문을 지나 30여분쯤 오르막을 오르니 다시 이정표가 보인다. 마패봉 0.1Km, 조령삼관문 1.1Km, 부봉 4Km, 조금 더 오르니 오른쪽으로 조그만 돌탑이 서있는 전망대가 보인다. 전망대에 서니 동북쪽 방향으로 월악산이 가깝다. 전망대에서 몇 걸음 더 오르면 바로 마페봉 정상이다. 2시 35분이다. 정상에서 앞서 떠난 대원이 쉬고 있다.


<마폐봉 정상석>

 

 

 


<마폐봉에서 본 신선봉>

 

 

 

마폐봉 정상에서 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북쪽으로 신선봉의 예쁜 모습이 눈앞에 다가 오고, 남동쪽으로는 부봉과 주흘산이 가까이 보인다. 남으로는 저 멀리 지난 번 우중에 올랐던 신선암이 뚜렷하고 그 뒤로 조령산, 멀리 속리산 연봉이 아득하다. 서쪽으로 이름 모를 산들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발 아래는 수옥정과 한삼지기, 그리고 3번 국도가 그림 같이 펼쳐 있다. 저수지 물이 햇빛을 반사하여 반짝인다. 다만 동쪽과 북쪽은 나무가 시야를 차단하는 것이 아쉽다. 아름다운 풍광에 넋이 나가는 느낌이다. 사진도 찍고, 간식을 먹으며 쉰다.


<마폐봉에서 본 조령산 흐름>

 

 

 

후미가 아래 전망대에 도착했나 보다. 시끌버끌 요란하다. 아마도 동쪽의 전망을 즐기는 모양이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올라오려는 기색이 없다.

 

"올라들 오세요. 여기 조망이 죽여주네요." 라고 알려준다.

 

마폐봉에 오른 후미 일행도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모두들 감탄한다. 과일과 음료수로 간식을 취한다. 바로 앞 신선봉 위에 중위 팀의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제3관문으로 바로 내려갈지, 대간 길은 벗어나지만 조망이 좋다는 신선봉을 들를지, 결정을 하지 못하다가, 신선봉 위에선 중위 팀을 보고는, 신선봉으로 향하기로 한다. 지도를 보면 고사리 마을에 도착하는 길은 어느 길을 택해도 직사각형의 두 변을 거쳐야 한다. 지금 시각이 2시 55분, 제3관문을 통해, 고사리 마을로 향한다면 4시경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겠다. 다른 두 변인 신선봉을 거쳐, 휴양림으로 하산한다해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된다.


<신선봉 오르다 본 부봉과 주흘산>

 

 

 


<신선봉 오르다 본 북쪽 조망 - 월악산 흐름이 보인다.>

 

 

 

3시에 일행은 서둘러 신선봉으로 향한다. 젊은 대원 한 사람이 고사리에 이미 토착해 있을 선두 팀에  연락을 하러 속도를 내어 씽 하니 앞서 나간다. 마폐봉에서 신선봉까지의 도상거리는 약 1.3Km, 40분 정도면 충분히 오르리라고 보았던 신선봉까지의 시간이 꽤 걸린다. 로프에 매 달려 올라가야 하는 길이 있는가 하면 줄을 잡고 내려 가야하는 곳도 있고, 줄을 잡고 조심스럽게 옆으로 돌아야 하는 곳도 있다. 위험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걸린다. 회장님이 후미대장과 함께 철저하게 후미를 본다. 밀어주기도 하고 끌어 주기도 한다. 그림이 좋은 장면에서는 사진도 찍어준다. 3시 53분 신선봉 정상에 도착한다.


<가까이 본 신선봉>

 

 

 

오 ! 하느님, 오늘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려고, 지난 두 주는 연속해서 비가 내린 모양이다. 사방이 막힌 곳이 없다. 남쪽과 서쪽은 이미 마패봉에서 본 조망이지만, 여기서는 북쪽과 동쪽도 확 트여, 북쪽으로 월악산 줄기가, 멀리 동북쪽으로는 소백산맥 줄기가 굽이굽이 흐른다. 가까이는 오늘 우리가 걸어온 산 능선이 발아래 울긋불긋 채색된 모습으로 누워있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풍광에 모두들 할말을 잃는다.


<신선봉에서 본 걸어온 길 - 위에서 보니 벌써 단풍이..>

 

 

 


<신선봉에서 굽어 본 한섬지기, 3번국도>

 

 

 

4시경 아쉽지만 서둘러 하산을 시작한다.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느라 조금 지체하고, 바른 길을 찾아 곧 휴양림 갈림길에 이른다. 이정표가 서 있다. 휴양림 40분. 긴 너덜지대를 조심조심 내려온다. 2/3쯤 내려선 지점에서 회장님이 후미를 기다리자고 한다. 냇가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세수를 하며 쉰다. 이윽고 후미가 도착하고, 다시 너덜 길을 내려선다. 앞에서 사람소리가 나더니 산악회 대장님 모습이 보인다. 기다리다 마중 나오는 길이라 한다. 일행과 함께 내려가는 산악회 대장님의 말씀이 들린다.

 

"백두대간은 팀웍이 하는 겁니다." 아마도 우리 회장님의 노고를 치하하는 말씀인 듯 싶다.


<하산 길에 뒤돌아 본 신선봉>

 

 

 

5시경 휴양림 매표소에 이른다. 꼬박 40여분이 걸린 기나긴 너덜 길이다. 회장님과 계곡에서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식당에  도착하여 맥주와 막걸리로 목을 추기고 식사를 한다. 주흘산 산행에 동참했던 전번 대간 팀의 회장이란 분이 우리 회장 옆에 앉더니, 야단 야단이다. 회장이 꼴찌를 하다니 무슨 꼴이냐? 회장 기다리느라고 이 많은 사람들이 가지도 못하고 얼마를 기다렸는지 아느냐?

 

하지만 우리 회장은 아무 대꾸도 없이 상대방에게 소주잔을 권한다. 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들이고 빙글거리며 묵묵히 식사를 한다. 나이 드신 고문 한 분이 싫은 소리를 한 마디하고 지나친다. 하지만 회장은 끄떡도 않는다. 분위기가 이러니 식사는 하는 등 마는 등 서둘러  마치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6시경 서울로 출발한다.

 

시간 계산과 판단 착오로 많은 분들을 오래 기다리게 한 것이 부끄럽고, 특히 무박 산행을 떠나야하는 산악회 대장님의 귀중한 시간을 축내어 면목이 없지만, 후미를 보느라 애쓰고, 늦은 하산에 대한 모든 비난을 묵묵히 혼자서 감수하는 회장님의 모습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해프닝이다. 회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뻥 뚫린 국도와 고속도로를 달려, 여주 휴게소에서 10분간 정차한 버스는 8시가 채 못되어 서울에 도착한다.

 

 

(2004. 9. 26.)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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