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9. 4.(토)
오늘의 토요당일 백두대간 종주 산행코스는 제 24구간으로 『은티마을-은티재(520)-구왕봉(877)-지름티재(650)-희양산갈림길(980)-성터(870)-시루봉갈림길(900)-이만봉-사다리재(820)-분지리』. 산악회 자료로는 들머리 2Km, 날 머리 3Km를 제외한 마루금 도상거리가 약 9Km, 총14km의 산행시간은 약 6시간으로 보고있다.
산악회에서는 희양산은 백두대간 마루 금에서 오른쪽으로 벗어나 있지만 반드시 다녀와야 할 명산이라고, 입산을 통제하는 스님들을 설득하러, 회장이 직접 출동하고, 홈통바위를 오르기 위해 보조자일도 준비한다.
속리산 구간이 끝나고 청화산, 조항산, 대야산, 장성봉, 악휘봉, 희양산으로 연결되는 구간은 아름다운 산세, 시원한 조망, 그리고 아기자기한 암봉 길로 대간 종주를 마치신 분들도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빼어난 구간이다. 오늘은 그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희양산을 오른다. 여전히 산악회의 산행기준 시간은 6시간이다. 조선일보사 간 실전 백두대간 종주의 구간자료와 선행자들의 산행기를 참조하여 점심시간 30분, 하산 후 땀 씻는 시간 15분을 포함해 8시간을 목표로 산행 계획을 짜 본다.
버스는 충주휴게소에서 30분을 머물고, 8시45분 은티마을로 향한다. 장연을 지나 34번 국도를 타고 청수 휴게소를 거쳐, 배상을 지나 우측 시멘트 길로 접어들면서 창 밖의 풍경이 바뀐다.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는 논에는 허수아비가 줄지어 서있다. 일주일 전까지 만해도 녹색으로 출렁이던 논이 벌써 이렇게 변한 것이다. 이제는 완연한 가을이다.
9시 35분 경 버스는 은티마을에 도착한다. 지형 상으로 마을에 음기가 너무 강해 이를 억제하기 위해 세운 남근석을 다시 카메라에 담고, 산행표지 리본을 벽면 가득히 장식한 산골 구판장 건물도 사진으로 남긴다.
<은티마을의 남근석 - 거대한남근석들과는 달리 고추규모다.>
9시 40분 경 산행을 시작한다. 은티재까지의 목표시간은 50분이다. 다리를 건너 대원들이 일렬로 사과밭을 지난다. 지난번 이 구간을 지나지 못했던 대원들이 과수원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논을 지난다. 산골이 되어 조생벼를 심었는지, 이삭을 무겁게 단 벼들이 누렇게 변해가고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의 아름다운 농촌 풍경을 뒤로하고 산길로 접어든다. 그늘이 져 시원한 산길을 빠르게 걷는다. 완만한 오름세라 크게 힘든 느낌은 없지만 빠르게 걷다보니 벌써 땀이 흠뻑 밴다. 10시 15분 경 은티재에 도착한다. 30분도 안 걸렸다. 빠른 진행이다.
<은티마을 산골짜기의 논 - 벌써 이삭이 무겁고 황금빛으로 변하고 있다>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을 따라 주치봉으로 향한다. 오르막 길이 이어지지만 경사가 그리 심하지는 않다. 주치봉은 평범한 봉우리이다. 왼쪽으로 능선 길이 보이지만, 대간 길은 동쪽을 향해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자칫 왼쪽 능선 길로 들어서면 다시 은티마을로 내려가게 된다. 이정표가 필요한 곳이다. 안부에 내려서니 오른쪽에 오래되어 녹슨 안내판이 땅에 떨어져 버팀대에 기대고 서 있다. 문경군수와 봉암사 지주가 연명으로 출입을 통제하는 안내문이다. 산림법은 여기서부터 벌써 일반인 출입을 규제한다.
<출입통제 안내문 - 누군가가 일부러 그랬나? 땅에 떨어져 있다>
10시 36분 경 무덤을 지난다. 일반 등산객 3명이 길을 찾고 있다. 조금 더 진행하니 길가 왼쪽으로 바위가 솟아 있다. 전망대인 모양이다. 일행과 떨어져 길을 버리고 바위에 올라선다. 은티마을이 내려다보이고, 구왕봉이 정면에 있다.
11시 경 마당바위에 도착한다. 앞섰던 대원들이 조망을 즐기며 쉬고 있다. 나무 사이로 구왕봉 정상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다. 마당바위를 지나서 11시 20분 경 구왕봉 정상에 선다. 정상은 참나무가 우거져 조망은 별로다. 구왕봉 정상에 오르기 전 암봉에 서서 북쪽의 은티마을, 북동쪽으로 조령산을 넣고 사진을 찍는다.
<마당바위에서 본 구왕봉 정상>
<왼쪽에 은티마을, 오른쪽 멀리 조령산이 보인다>
구왕봉 정상을 넘어 10여분 진행하니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서는 희양산의 웅장한 암봉이 정면을 가로막고, 오른쪽으로 봉암사가, 그 너머로 송골로 보이는 마을이 누워있다. 카메라로 당겨 보니 봉암사는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다.
<전망대에서 본 희양산>
<희양산 남측 암벽, 멀리 뇌정산과 그 아래 마을>
지름티재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 암릉 길이다. 겨울에 눈이 덮이면 상당히 위험하겠다. 12시경 지름티재에 도착하니 산악회 회장이 기다리고 있다. 지름티재에서 대간 길을 막고 스님 3분이 지키고 막무가내로 통과를 거부한다고 한다. 할 수 없으니 후미를 기다려 함께 은티마을 쪽으로 내려가다 삼거리에서 성벽으로 올라, 그 곳에서 희양산으로 오르자고 한다.
<출입 통제 바리케트, 그 뒤로 스님들이 보인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수도원인 봉암사는 생태계보호와 스님들의 정진을 위해 지름티재를 막고, 등산객들이 희양산 정상에 올라가는 것을 통제하고 있다. 생태계를 보호하고, 스님들 정진을 위한 것이라지만 통제하고 금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자 해서 인간에 끼친 해악은 수 없이 많다. 이 경우는 해악까지는 아니겠지만, 문경시 기은읍과 괴산군 연풍면을 연결하는 최단 거리인 지름티재를 봉쇄하는 걸 보면, 혹시 인간 위에 군림하려는 종교의 횡포가 아닌가해서 기분이 씁쓰름하다. 규제하는 까닭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통제하고 금지하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도하고 선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종교의 참모습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본다.
후미가 도착하고 내리막길을 걸어 맑은 냇물이 흐르는 곳에서 성터로 오르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물통에 냇물을 받아 채우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멀리 마한시대 때부터 전장 터였고, 특히 후백제와 신라의 격전장이었다는 사면은 끝없는 오르막이다. 한낮인데도 어둠침침한 길은 바위 사이로 길이 끊겨, 길 찾기도 용이하지 않다. 전장에서 슬어진 원혼들이 배회하는 것 같아 으스스한 느낌마저 든다. 나도 많이 지쳤지만 대원들 대부분이 힘들어한다.
1시 15분 경 성 위에 오른다. 성벽에서 대원들이 점심식사를 한다. 여기에는 막는 스님들이 없어, 많은 대원들이 배낭을 놔 둔 채, 희양산으로 떠났다. 산악회 회장이 희양산을 다녀오라고 권해도 지친 대원들은 그냥 이만봉 쪽으로 가겠다고, 식사를 계속한다. 식사를 마친 대원 중에는 이만봉쪽으로 출발하는 사람도 있다.
5시에 새벽밥을 먹었더니 배가 고프다. 도시락을 꺼내 1/3 정도만 먹어, 시장기를 달랜 후, 배낭을 다시 꾸려 길가에 놓는다. 물통 하나를 달랑 허리에 차고 혼자서 희양산으로 향한다. 한참을 오르니 안 오겠다고 하던 대원들이 따라 온다. 홈통 바위를 통해 올라오는 직벽을 오른쪽으로 통과한다. 역시 나무로 바리게트를 쳐 놨다. 암릉으로 올라 서니 전망이 그만이다. 저 아래 봉암사가 커다랗게 보인다. 남서쪽으로 속리산 연봉이, 그리고 대야산 등 그 동안 지나온 대간 길이 굽이굽이 펼쳐있다. 오른쪽으로 저 아래 구왕봉이 그림처럼 누워 있다. 앞 선 대원들이 정상에서 되돌아오며 지나친다.
<희양산 정상에서의 남쪽 조망 - 속리산, 둔덕산, 대야샨이 보인다>
<희양산에서 본 구왕봉>
2시 10분 경 정상에 도달한다. 정상에는 표지석 도 없다. 우리가 갈 길인 북동쪽 방향으로 능선이 가까이 흐르고, 동쪽으로 웅장한 산세가 흐르지만 무슨 산인지는 모르겠다 아쉽지만 서둘러 하산한다. 2시 25분 경 다시 성터로 돌아와 점심식사 중인 대원들과 합류하여 나머지 점심을 먹는다.
<희양산 정상에서 본 봉암사>
<희양산 정상의 암능과 소나무>
산악회 회장이 무전으로 선두를 찾는다. 은티재에서 악휘봉 쪽으로 방향을 잘 못 잡아 알바를 했던 선두팀이 길을 되돌아 이제 회양산 갈림길에 도착했단다. 스님들이 자리를 뜰 낌새가 보여, 숨어 있다가 자리를 비키면 홈통바위를 경유, 회양산에 오르겠다는 연락이다. 선두가 후미가 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2시 45분 경 점심을 마친 일행은 시루봉 갈림길을 향해 출발한다. 지름티재에서 성벽까지의 대간길을 못 밟고, 은티재로 내려가다 삼거리에서 성터로 오르느라 많이 지쳤지만, 성터에서 점심을 마치고 출발하는 시간은 공교롭게도 목표시간과 일치한다.
시루봉 갈림길로 향하는 대간 길은 오르막 내리막이 연속되는 암릉 길이다. 암릉 길을 걸으면서 보는 좌우의 풍광이 아름답다. 시루봉 갈림길에는 3시22분에 도착한다. 넓은 공지에는 야영을 한 흔적도 보이고, 홀로 대간길을 가는 사람인지 나무 아래 젊은이 한 사람이 큰 대자로 누워 깊은 잠에 빠져있다.
시루봉 10분이라는 표지를 보고 주력이 좋은 대원 두 사람이 시간도 충분하니 시루봉을 다녀오자고 한다. 시간은 있지만 성벽을 오르느라 지쳐, 남은 길을 천천히 걷는 게 좋을 것 같아 사양하고, 혼자서 이만봉쪽으로 뻗은 대간 길을 걷는다. 나무에 비닐로 씌운 방향표지가 붙어 있다. 길은 완만한 숲길이다. 단풍나무가 많은지 붉은 낙엽이 발에 밟힌다.
길은 능선으로 이어지며 다시 암릉길이 계속된다. 곳곳에 고사목도 보인다. 왼쪽으로 시야가 확 트이고 전망이 좋다. 앞에서 쉬고 있던 대원들이 죽여주는 전망이니 빨리 오란다. 북서쪽으로 굽이굽이 연봉들이 겹쳐 흐르는데, 그 중 한 곳이 아무리 보아도 월악산 같다고 한다. 그렇다. 방향도 그렇고, 산의 생김새도 월악산 같이 보인다.
<이만봉 오르다 북서쪽으로 본조망 - 멀리 보이는 것이 월악산인가?>
곧 이어 4시 30분 경 이만봉에 오른다. 대원 두 사람이 쉬고 있다. 시루봉 갈림길에서 이만봉까지 50분을 목표로 했는데, 경관을 보면서 너무 널널하게 걸은 모양이다. 십 여분이 늦었다. 정상에는 정상석이 서있다. 사진을 찍고, 내리막길에 대비하여 배낭에서 무릅 보호대를 꺼내 착용하는데 시루봉을 들렀던 두 사람이 도착하여 사진만 찍더니 서둘러 비탈길을 내려선다.
<이만봉 정상석>
신발 끈을 다시 조이고 서둘러 뒤따른다. 가파른 내리막 암릉길이 이어진다. 전방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곰틀봉이 눈앞에 있다. 계속 암릉길을 내려온다. 대간길은 안부를 거쳐 곰틀봉으로 오른다. 곰틀봉을 오르다 뒤돌아 이만봉을 본다. 곰틀봉을 지나니 전망대가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저 아래 마을이 보인다. 방향으로는 봉암사가 있는 성골 쪽 인 것 같다. 암릉길을 달려 5시 10분 경 사다리재에 이른다. 사다리재에서 앞팀이 쉬고 있다.
<곰틀봉>
<뒤돌아 본 이만봉>
분지리로 내려오는 길이 만만치 않다. 약 3km. 급경사의 너덜지대가 이어진다. 서둘다가는 발목 다치기가 십상이다. 앞섰던 사람들도 어기적댄다. 이런 너덜지대가 20여분이나 계속된다. 이어서 잔돌이 깔린 내리막길, 잔돌에 미끄러지면 엉덩방아를 찧어야 한다. 흙 길이 나타나지만 경사는 여전하다. 마을로 가까워지면서 길은 평탄해 진다. 하지만 오른쪽 냇가로 연한 좁은 길은 풀이 무성하여, 오른발이 냇가로 미끄러 질까봐 신경이 쓰인다.
5시 50분 경 바로 눈앞에 마을이 보이고, 축사 옆 냇가에서 대원 둘이 땀을 씻고 있다. 합류하여 배낭을 벗어 놓고 땀을 씻어낸다. 옷을 갈아입고 일어서는데, 알바를 해서 후미로 쳐졌던 선두팀 두 사람이 내려온다. 선두팀답게 과연 빠르기는 빠르다. 목물을 하면서 살 것 같다고 한다. 고생이 많았던 모양이다.
오늘 산행은 스스로 정한 목표시간보다 약 20여분 정도가 더 걸렸다. 시루봉 갈림길에서 이만봉 오르는 길에 주위경관에 눈을 빼앗겨 널널하게 걷다가 10분 정도 더 지체했고, 이만봉에서 사다리재까지 30분을 목표로 했으나 이 목표가 다소 무리였던 것 같다. 부지런히 걸었는데도 40여분이 걸려 여기서 또 10분 정도 차이가 났다.
6시 10분 경 저녁준비를 해 놓은 농가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저녁 식사를 한다. 저녁을 마치고, 마을 구경을 하면서 쉰다.
버스는 7시 서울로 향한다.
(2004.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