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이 지났는데도 더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서울 낮 기온이 36도를 넘어 10년만의 기록이란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더위로 힘들어한다. 다행이 주말에는 비가 내려 더위를 식혀 주고, 그 이후는 더위도 한풀 꺾인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 주 토요 백두대간 종주는 제 21 소구간인 『밤티재⇒늘재⇒청화산⇒갓바위재⇒조항산⇒고모치』까지 산행하고 삼송리로 하산한다. 산악회에서 준 자료로는 구간거리가 도상으로 10.2Km, 하산거리 5.5Km, 총 15.7Km에 소요시간 약 6시간이란다.

 

우중 산행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양재 역에서 내려 출구로 나오니 하늘은 깜깜하고, 세차게 소나기가 쏟아진다. 배낭에서 방수 자켓을 꺼내 입고 버스 도착 장소로 향한다. 대간 종주회원들이 하나 둘 모인다. 지난번 낮을 익혔던 사람들과 인사를 한다. 대간꾼들은 비 오는 것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차 창 밖으로 비속에 보이는  벼가 파랗다. 사람들은 무더위에 시달리지만 강한 햇빛과 무더위가 농사에는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경제도 어려운데 풍년이 들어 민심이 안정을 찾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가벼운 잠에 빠졌었나보다 차가 속도를 늦추고 회전하는 느낌에 눈을 뜨니 차는 안성 인터체인지로 들어선다. 이어서 38번 국도를 달려 일죽에서 중부고속도로로 진입, 음성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라고 20분간 정차한다. 이 지역은 흐렸을 뿐 비는 오지 않는다. 버스는 증평, 괴산을 거쳐 아랫늘재로 진입한다. 이 마을은 사방이 겹겹이 산으로 둘러져 있다. 남서쪽으로는 속리산 연봉들이, 북동쪽으로는 청화산을 비롯한 백두대간 줄기가 흐른다. 동쪽으로는 구화산, 시루봉들이 가까이, 멀리 버티고 있다.

 

밤티재(500m)에 도착한 것은 10시 22분 경이다. 버스가 늘재 위에서 기다릴 터이니 배낭은 차에 두고 가도 좋다고 알려준다. 밤티재는 도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언덕마루가 뻘겋게 파헤쳐져 있다. 이곳 날씨는 맑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은 날씨다. 10시 25분 경 물통을 한 개 허리띠에 차고 북쪽 절개지를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밤티재 절개지를 오른다>

 

능선에 오르니 소나무 숲 사이로 등산로가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이어진다. 40분쯤 지나 전망대에 올라선다. 정면으로 속리산 줄기가 길게 누워있다. 웅장하고 멋이 있다. 692.3봉을 넘어서니,저 멀리청화산이 보인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달려 11시 45분 경 늘재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배낭을 꺼내 챙긴다.

<692.3봉을 지나서 본 청화산>

 

 

<늘재 분수령 표지판>

 

늘재(380m)는 49번 국도가 관통하고 있다. 길가에는 낙동강과 한강이 분수 되는 분수령이란 팻말이 세워져 있다. 동쪽 대간 길 어구에는 수령이 350년이나 된다는 엄나무가 큰 줄기는 하늘을 향하고, 다른 한 가지는 도로 쪽으로 비스듬히 뻗고 서 있다. 배낭을 메고 대간 길로 오른다. 아마 서낭당을 옮기는 모양이다. 도로 쪽으로 나 있던 서낭당을 대간 길 안쪽으로 옮기는지 이미 "백두대간 서낭당 유래비"가 대간 길가로 제 자리를 잡고 세워져 있다.

<늘재의 엄나무 - 수령이 350년이나 된다고 한다.>

 

 

<늘재의 서낭당 유래비>

 

30여분쯤 오르니, 속리산 줄기가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대간 길에 나라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정국기원단(靖國祈願壇)이 세워져 있다. 백두대간 중원지이고 삼수(三水)가 갈라지는 곳이라 한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늘재 마을이 그림같이 누워있다.

<정국기원단>

 

땀에 흠씬 젖어 간간이 물을 마시며 지루한 오르막길을 계속 오른다. 중간 중간 길가에 암봉이 있어, 암봉에 올라서서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눈 아래 펼쳐진 전망을 즐긴다. 청화산 못 미쳐 시원한 전망대 위에서 다시 속리산 긴 능선을 바라 본 후 헬기장을 지나 1시 35분 경 청화산 정상에 이른다.

<전망대에서 본 늘재마을과 뒤로 속리산 연봉>

 

청화산 정상(984m)에는 문경시에서 세운 이정표가 서 있다. 늘재 3.5Km, 1시간 20분 소요, 조항산 8.3Km, 3시간 30분 소요. 동쪽 절벽에 면한 나지막한 암릉 사이에 "백두대간 청화산 970m" 라고 음각된 돌 표지가 세워져 있다. 특이하게 음각된 곳을 청색으로 메웠다. 청화산을 색으로 표현한 모양이다.

<청하산 정상의 이정표>

 

같이 왔던 후미 팀이 점심 먹을 장소를 찾으러 먼저 출발하고, 나는 사진을 찍으며 주위를 둘러 본 후 서둘러 앞사람들을 따라 나선다. 앞에서 두런두런 사람 소리가 들린다. 후미 팀과 그 앞 팀이 길가 풀밭에서 점심을 들고 있다.

 

점심을 마치고 모두 출발 준비를 하는데, 하늘이 컴컴해 오기 시작하고, 바람이 휘몰아친다. 한 소나기 퍼부을 모양이다. 대간 산행 팀 이사란 분이 비에 대비하여 배낭커버도 미리 씨워두라고 귀뜸 한다. 빈혈증세가 있다고 뒤쳐졌던 분들이 도착하여 이분들과 후미대장만 남고, 나머지 일행은 서둘러 출발한다.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왼쪽 벼랑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더욱 거세져, 나뭇가지들이 윙윙거리고, 풀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람에 휘둘린다. 이윽고 비가 쏟아져 내린다. 비가 오면서 내리막길은 미끄럽고, 안경에 수증기가 끼어 어둔 숲 속에서 시계가 엉망이다. 바위를 딛자, 비에 젖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다. 배낭이 바쳐주지 않았으면 머리까지 바위에 부딪칠 정도로 속수무책으로 미끄러져 버린 것이다. 뒤떨어져 조심조심 걷는다. 이 구간에서 시간을 많이 소비한다.

 

비는 머지않아 그쳤지만 비구름은 가시지를 않고 낮게 드리워져 있다. 인적이 없는 어둑한 숲길을 혼자 걷자니,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공연히 으스스한 생각이 든다. 나 홀로 대간종주를 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숲길을 헤쳐나간다. 어두컴컴한 대간 길로 칡넝쿨이 길게 늘어져 있다. 흡사 정글을 뚫고 지나는 기분이다. 이윽고 암릉 지대에 이른다. 한쪽이 절벽인 좁은 암릉 길이 구름 속에 떠있다. 비에 젖은 바위가 미끄럽다. 자칫 발이 미끄러져 몸의 균형을 잃으면 구름 속으로 떨어질 판이다. 희끄무리하게 큰 바위가 앞을 막는다. 바위 옆으로 우회하는 길은 경사가 급하고 몹시 미끄럽다. 돌 뿌리와 나무 뿌리가 뒤엉킨 비탈길을 조심조심 내려 큰 바위를 우회하여 다시 암릉 길로 올라선다. .

 

암릉 길이 끝나고 등산로는 오름세로 바뀐다. 바람이 한차례 불고 나면, 구름이 벗겨져 지나온 산자락이 흘낏 보이다 다시 구름사이로 사라진다. 왼쪽 저 아래에 커다란 호수가 구름사이로 흘낏 흘낏 보인다. 의상저수지인 모양이다. 4시 20분 경 갯바위재(720m)에 도착한다. 갯바위재에는 누군가가 비닐 판으로 이정표를 만들어 나무에 밖아 놨다. 청화산 80분, 조항산 50분.

<비구름 사이로 보이는 산자락과 의상저수지>

 

 

<갓바위재 이정표>

 

서둘러 조항산을 향해 비탈길을 오른다. 뒤에서 정말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컨디션이 좋지 않아 뒤 쳐졌던 두 분과 후미 대장이 따라온다. 비구름은 다소 엷어진 느낌이지만 숲 속은 여전히 어둡다. 다시 암릉이 나타난다. 지금은 바위가 미끄러워 위험하지만 날씨만 좋다면 아기자기한 암릉 길에서 스릴을 만끽할 수 있겠다.

<비에 젖은 암릉 길>

 

 

<비에 젖은 암릉 길>

 

5시 15분 경 조항산 정상(951.2m)에 오른다. 사진을 찍느라 한 발 늦게 정상에 오르니 두 분은 먼저 하산하고, 후미대장이 기다리고 있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한 숨 돌린 후 서둘러 하산한다. 하산하면서 후미대장은 내 배낭 끈을 조여 배낭이 등에 밀착하게 교정을 해 주고, 가슴 띠도 채우라고 일러준다. 후미대장은 뒤따라오면서 하산 시의 걷는 자세도 가르쳐준다. 몸의 중심을 앞으로 두고, 뛰지 말고 균형을 잡으며 내려가는 것이 요령이란다. 내 자세는 몸의 중심이 뒤에 있고, 뛰는 경향이 있으니 교정하란다. 뛰어 내려오면 다음 오르막을 오르기가 힘들다고 한다. 이번에는 후미대장이 앞장을 서서 내리막길 걸으며 시범을 보여준다. 5시55분 경 고모치(680m)에 도착한다.

<조항산 정상 표지석>

 

<고모치 이정표>

 

앞서 간 대원들을 따라 서둘러 하산한다. 채석장 못 미쳐, 계곡에서4-5명의 대원들이 몸을 씻고 있다. 함께 몸을 씻고, 이들이 앞서 떠난 후 한 숨 돌리고 서둘러 따라 나선다. 채석장이 나타난다. 거대한 산 하나가 전부 돌이다. 비가 와서인지 작업은 쉬고 있고 길가에 트럭과 중장비들이 세워져있다. 신작로를 따라 멀리 산 위로 노을이 아름답다. 너무 뒤쳐진 것은 아니가 하는 걱정이 없지는 않지만 땀을 씻어낸 후의 개운한 몸으로 오랜만에 호젓한 신작로 길을 혼자서 걸으니 기분이 그만이다. 앞선 사람들을 따라 발걸음에 속도를 가한다. 다시 등줄기에 땀이 배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노을이 아름다운 하산길>

 

저 아래 버스가 후미 등을 켠 채 서 있다. 아마도 먼저 도착한 분들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서 기다리는 모양이다. 버스에 다가서니. 등반대장이 버스 앞에서 기다렸다 수고했다며 버스로 안내한다. 버스에 올라 미안하다는 인사말을 하며 내 자리를 찾아간다. 기다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차갑게 와 닫는다. 버스는 이내 출발하고, 자리에 앉아 시계를 보니 7시 39분이다. 9시간 이상이 걸린 긴 산행이다.

 

버스가 출발한 후 총무에게 물어 보니 선두 팀을 제외하고 많은 분들이 6시가 넘어 하산해 식사도 못하고 기다렸단다. 선두 팀은 이미 4시 이전에 하산했다고 한다. 오래 기다린 분들이 불평을 할 만도 한 시간차이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본다. 대간 산행을 20회 이상한 분들이라 나보다 걷는 속도가 무척 빠른 모양이다. 앞으로 계속 오늘처럼 뒤쳐져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게 한다면 내 스스로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좋다고 남들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곳을 그만두고 나서도 대간 산행을 계속하려면, 체력을 더 기르고 산행 요령을 깨우친 후 다시 시도하던가, 아니면 나 홀로 대간 길에 나서는 것이 옳은 선택일 것같다.

 

조선일보사에서 발간 된 실전 백두대간 종주에서는 밤티재에서 고모령까지 6시간 25분이 소요된다고 적혀 있다. (갓바위재에서 조항산까지 소요시간 15분은 잘못 프린트 된 것으로 보고, 이 구간 소요시간은 이정표에 표시된 소요시간 50분으로 대치하여 계산한 수치다)산악회에서는 후미기준 약 5시간을 보았으니, 꽤 시간차가 나는 셈이다. 이 산악회는 아주 강 팀인 모양이다. 같은 기준으로 보기 위해 점심시간 30분 정도를 제하면 오늘 실제로 걸린 시간은 약 7시간 정도이다. 역시 내 속도에는 문제가 있다. 다음 주 다시 한번 더 참여해 보고 내 걸음이 늦어 폐가 된다고 판단이 되면, 방법을 바꾸어야겠다. 백두대간 종주라는 것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겠는가?

 


(2004. 8. 16.)



Posted by Urimah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