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속의 체르고 리


주 능선을 향해

 

2012년 4월 7일(토)

고도가 3,830m나 되는 강진마을이지만 화장실에 가느라고 몇 차례 잠을 깬 것 이외에는 두통 등 고소증세 없이 비교적 편안한 밤을 지낸다. 새벽 4시 50분경에 일어나, 밖을 보니 온통 눈 천지다. 잔설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온 눈이다. 날씨는 맑지만 이런 눈을 딛고 체르고 리에 오를 수 있을 지 걱정이다.

하산하다 뒤돌아 본 체르고 리

 

강진 곰파에서 체르고 리까지는 도상거리 약 5Km에, 고도차이가 1,200m 정도나 되고, 긴 너덜지대를 지나야 하는 등 지형도 험난한 편이다. 따라서 고소적응을 하지 못한 사람은 등정이 불가능하고, 고소적응을 했더라도 10시간 정도 걸을 수 있는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트레커들에게는 좋은 도전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지금처럼 눈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과연 가능할 것인가

너덜지대

 

조리사 조지가 끓여 준 죽으로 식사를 하고, 5시 30분, 롯지를 나선다. 점심은 한국에서 가져간 컵라면과 엊저녁에 준비한 티벳탄 브레드, 그리고 과일이다. 이런 짐들을 두 개의 배낭에 나누어, 가이드 파상과 조리사 조지가 지고, 우리들은 홀몸이다. 포터 라사는 롯지에 남아 쉰다. 중무장을 하고, 아침 식사를 하고 난 후라, 새벽이지만 생각보다는 춥지가 않고, 바람도 없다.

여명 속 눈길을 떠난다.

 

날씨는 맑아, 북쪽의 랑탕 리룽(Langtang Lirung, 7,227)과 킹슝(Kinshung, 6781)그리고 간첸포와 랑탕계곡, 남쪽의 판겐돞쿠 연봉들이 창백한 모습을 보인다. 방목하는 당나귀와 야크들을 만난다. 내린 눈을 그대로 맞고, 엉거주춤, 우두커니 산록에 서 있거나, 눈이 덜 쌓인 길에 엎드려있다. 몹시 추운 모습이 딱하다. 뒤를 돌아본다. 강진마을이 눈 속에 잠들어 있다.

랑탕 리룽과 킹슝

간첸포와 랑탕계곡 남쪽의 연봉등

눈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당나귀들

눈 속에서 밤을 지낸 야크들

뒤돌아 본 강진마을

 

해가 뜨는 모양이다. 랑탕 리룽이 붉게 물들었다. 롯지를 떠난 지 30분 쯤 지난 시각인 6시 경, 가야할 체르고 리 가 온몸을 드러낸다. 눈이 하얗게 덮여있다. 체르고 리 진입로 쪽으로 접근하며, 뒤돌아 멀리 보이는 강진 리를 바라보고, 붉은 빛을 띠기 사작하는 랑탕계곡 건너 연봉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일출을 맞는 랑탕 리룽

 

체르고 리

뒤돌아 본 강진 리(좌)

랑탕계곡과 건너편 연봉들

 

이윽고 작은 개울을 건너, 체르고 리 진입로로 들어서서, 눈 덮인 가파른 오르막을 지그재그로 오른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왼쪽으로 랑탕 리룽의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난다. 롯지를 출발해서 1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인 6시35 경,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 왼쪽의 거대한 리룽빙하를 굽어본다. 오늘 눈 덮인 체르고 리에 도전한 팀은 우리 밖에 없는 것 같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눈 덮인 체르고 리를 포기하고 많은 팀이 랑시사 카르카로 향했다고 한다.

랑탕 리룽 1

 

랑탕 리룽 2

 

랑탕 리룽 3

 

 

첫 번째 봉우리로 접근하고

거대한 리룽빙하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뚜렷한데, 가이드 파상은 능선을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백두대간을 하면서 능선타기에 익숙한 내 눈에는 이상해 보이자만, 왼쪽으로 크게 커브를 트는 능선을 따르기보다, 빠른 길을 택해, 우회하여 정면능선으로 직진 할 모양이다. 왼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킹슝이 날카롭고, 그 아래로 거대한 빙하의 흔적이 보인다.

능선을 오른쪽으로 우회하고


날카로운 킹슝

거대한 빙하 흔적

 

눈 덮인 너덜지대를 지난다. 잘못하여 커다란 바위 틈새로 발이 빠지면 발목을 다칠 위험이 크다. 스틱으로 바위 하나하나를 확인하며 진행하려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체력소모도 심하다. 8시가 넘자 해가 높이 떠올라, 랑탕 리웅이 완연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그 옆으로 거대한 눈사태가 발생한 흔적이 보인다. 눈에 반사된 햇살이 사방으로 흩어져 눈이 부시다. 안경을 쓰는 나는 색안경이 불편하여, 고글을 착용한다. 다시 너덜지대를 지난다.

너덜지대를 지나고

거대한 눈사태 흔적

눈밭에 반사되는 햇살이 엄청 강하다.

 

해가 중천에 떠오른다. 더워서 다운재킷을 가벼운 윈드재킷으로 바꿔 입고, 다시 너덜지대를 조심조심 지난다. 오른쪽으로 체르고 리 정상이 가깝고, 왼쪽 능선에 오르자, 랑탕 리룽 옆으로 랑탕Ⅱ가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다. 장관이다.

다시 너덜지대를 지나고

당겨 찍은 체르고 리 정상

랑탕Ⅱ

 

10시 경, 가파른 너덜지대를 힘겹게 오른다. 능선에 오르자 너덜 뒤로 이름을 알 수 없는 뾰족한 봉우리가 보인다. 갑자기 바람이 불고 구름이 몰려온다. 안부에 내려서니 비로소 왼쪽으로 체르고 리 정상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가깝다. 너덜지대가 끝없이 이어진다. 지치기도하고 허기가 져, 바위 틈새에 자리를 잡고 앉아, 티베탄 브레드와 꿀로 허기를 달랜다.

가파른 너덜지대를 힘겹게 오르고

커다란 너덜 위에서 가야할 방향을 살피는 가이드

주능선이 가깝다.

 

바람이 거세지고, 다시 구름이 몰려온다. 가이드 파상에게 정상까지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리겠느냐고 묻는다. 2시간은 더 가야할 것이라는 대답이다. 강진마을에서 체르고 리 정상까지는 보통 5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빠르게 걸으면 4시간, 천천히 걸어도 6시간이면 정상인데, 6시간이 지난 현 시점에서 2시간이 더 걸린다니 고민이 생긴다.

당겨 찍은 체르고 리 정상

 

고소증상은 없지만 눈 속과 너덜지대를 걷다보니 지치기도 많이 지쳤다. 가이드 파상의 의견을 묻는다. 파상은 갈 수는 있겠지만, 날씨가 변하는 것을 보면, 정상에 올라도 조망을 즐길 수 있을지 모르는데, 무리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대답이다. 이곳까지 오르면서 서쪽과 남쪽 조망은 충분히 즐겼고, 또 나머지 일정이 일주일 넘게 남았음으로 아쉽지만, 12시 30분 경,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지점에서 본 랑탕계곡

눈사태 지역

강진 리 북벽

 

1시간 30분 쯤 하산한 시점에서 뒤돌아 체르고 리를 바라본다. 정상이 구름에 가린 체르고 리가 우뚝 서 있다. 이제 저 아래 계곡이 멀지 않다. 이윽고 계곡으로 내려서서, 2시 20분 경, 마을에 도착한다.

멀리 강진마을이 보인다.

랑탕계곡과 남쪽 연봉들

계곡에 내려서고

 

식사를 주문하면 시간이 걸린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느긋하게 앉아 락시를 마신다. 비록 정상 직전에서 포기를 한 아쉬움은 있지만, 히말라야에서 4,000m대의 눈 덮인 산을 올랐다는 것은 오랫동안 기억될 소중한 경험이 되겠다. 2009년 10월, 5,545m의 칼라파타르에 올랐을 때는 눈 한 번 밟아보지 못했던 것에 비해 볼 때, 더욱 더 그러하다.

 

 

(2012. 6. 9.)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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