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길

 

2012년 4월 4일(수)
어제는 하루 종일 차를 탔더니, 걷는 것보다 더 피곤하다. 8시도 안되어 잠자리에 들어,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곯아떨어진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맑고 기분이 상쾌하다.

 

오늘은 샤브르베시(1460m)에서 라마호텔(2420m)까지 이동한다. 랑탕계곡으로 들어서서, 뱀부(Bamboo,1970), 렘체(Remche,2440)를 거쳐 라마호텔로 접근하는 것이 정규트렉이지만, 우리들은 조망을 즐기기 위해, 왼쪽 능선으로 올라, 캉짐(Khangjim,2300), 셀파가온(Sherpagaon,2600), 렘체를 거쳐 라마호텔로 들어간다.

안내도

정면 봉우리로 오르는 능선 길과 계곡 길(우)

 

 

아침식사를 하고, 7시 45분, 숙소를 출발한다. 능선길이 계곡길보다 힘도 많이 들고, 거리도 멀어, 일찍 출발한 것이다. 도로를 따라 오른다. 고목에 핀 붉은 꽃이 시선을 끈다. 현수교를 통해 강을 건너고, 개념도가 걸려있는 갈림길에서 왼쪽 사면을 오른다.

고목에 핀 꽃

강을 건너고,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길을 유장하게 천천히 걷는다. 많은 염소들을 혼자서 몰고 내려오는 여인과 좁은 길에서 엇갈려, “나마스떼‘ 인사를 하고 지나친다. 이른 아침인데 어디로 이동을 하는지 무척 부지런하다. 외딴집을 지난다. 커다란 검둥이가 컹컹 짖어댄다. 네팔의 개들은 짖지를 않는데, 이 녀석은 외딴집의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자 염소몰이꾼

외딴집

 

길이 가팔라 힘이 들면,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샤브르베시가 저 아래로 멀어 보인다. 중국이 무상원조로 건설해준 저 아래 보이는 도로는 티베트까지 이른다고 한다. 영토욕심이 많은 중국의 속내가 들여다보이는 것 같다. 깊은 계곡, 건너편 깎아지른 절벽의 허리를 잘라 만든 길, 그리고 굽이굽이 산 아래로 이어지는 도로가 절경이다.

저 아래 멀리 보이는 샤브르베시

깊은 계곡

절벽 허리를 가로지르는 도로와 구절양장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오르며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부다 상을 모신 돌을 쌓아 만든 소박한 석굴도 지나고, 천년 세월이 느껴지는 고목을 만나기도 한다. 샤브르베시를 출발하고, 3시간이 가까워지는 10시 40분, 캉짐에 도착하여 레몬 티를 마시며 한동안 휴식을 취한다. 제법 큰 마을이다.

돌을 쌓아 만든 석굴

고목

캉짐마을

 

 

밭갈이

 

12시 15분, 셀파가온의 수퍼 뷰 게스트하우스 돌 표지 안내판을 지나며 랑탕계곡 건너편의 고사인쿤드 트렉을 바라본다. 오후로 접어들며 운무가 끼기 시작하여 깨끗한 그림을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길이 산 사면으로 이어지며 평탄해진다. 왼쪽 누런 풀이 덮인 깎아지른 산 사면에는 나무들이 듬성듬성 보이고, 오른쪽 저 아래 랑탕계곡은 까마득히 먼데, 우리가 가는 사면 길에는 랄리구라스가 곱다.

수퍼뷰 게스트하우스 안내석

랑탕계곡 건너편 고사인쿤드 트랙을 바라본다.

수목한계선이 가까운 고지

랄리구라스

 

셀파가온은 아직이다. 캉짐에서 셀파가온 사이에는 찻집도 없다, 벌써 2시가 넘어 허기가 진다. 일행은 길가에 앉아 까마득한 계곡을 내려다보며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다. 셀파가온이 가까워온다. 운무가 잠시 벗겨지는 사이 운 좋게 고사인쿤드 트렉의 만년설을 이고 있는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까마득한 랑탕계곡

간식

건너편 고사인쿤드 트렉의 만년설

 

2시 18분, 셀파가온에 도착하여, 수퍼 뷰 게스트하우스로 들어서서 점심을 주문한다. 사우지는 외출 중이고 사우니와 아들 녀석이 점심준비를 한다. ‘락시’를 주문하지만 없어서, ‘창’을 청해 마시며 허기를 달랜다. 날씨가 흐려지며 춥다. 염치불고하고 따듯한 부엌으로 들어간다. 후덕하게 생긴 사우니가 웃으며 반긴다.

셀파가온 수퍼 뷰 게스트하우스

후덕하게 생긴 사우니가 우리들 점심을 준비한다.

 

신세를 지는 것 같아, 배낭에서 커피 믹스와 튜브 고추장을 꺼내 주고, 식사준비가 되자, 모두 부엌바닥에 퍼질러 앉아 맛있게 점심식사를 한다. 아들 녀석은 카트만두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봄방학이라 집에 와 있다고 한다. 근방에는 학교가 없으니, 공부를 하려면 카드만두로 유학을 갈 수 밖에 없겠다. 그래도 이집은 롯지를 운영하고 있어서, 그 뒷바라지가 가능한 모양이다.

부엌 마룻바닥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약 한 시간에 걸친 느긋한 식사를 마치고, 사우니와 아들 녀석과 작별을 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구름이 시커멓게 몰려오더니, 기어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서둘러 배낭커버를 씌우고, 방수재킷으로 무장을 한 후, 빗속을 걷는다. 트레커 한명이 비를 맞으며 마주 온다. 오늘 처음 만나는 유일한 트레커다. 가이드도 포터도 없이 혼자다. 프랑스인으로 랑탕을 출발해 이곳까지 왔다며, 다음 숙박지까지는 얼마나 걸리겠냐고 묻는다. 셀파가온까지는 30분, 캉짐까지는 3시간 30분 정도라고 알려주고 헤어진다.

빗속을 걷는다. 비에 젖은 풀색이 더욱 누렇게 보인다.

 

4시 23분, 림체를 지나고, 이어 랑탕 강을 끼고 올라, 5시 경에, 라마호텔에 도착하여, 프렌들리 게스트 하우스에 투숙한다. 젖은 옷을 갈아 입고, 다이닝 룸으로 들어서며서 따듯한 락시를 주문한다.

빗속의 림체를 지나고

랑탕 강

 라마호텔 프렌들리 게스트 하우스에 투숙한다.

 

락시를 마시며, 앞에 앉아 있는 젊은 영국인 부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가이드, 포터 없이 둘이 다닌다고 한다. 샤브르베시에서 계곡을 따라 라마호텔까지 왔다며, 능선을 타고 온 우리들을 몹시 부러워한다. 락시 맛이 어떠냐고 남자가 묻는다.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니, 자기도 락시를 주문한다. 졸지에 술친구가 생겨 반갑다.

 

 

(2012. 5. 25.)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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