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중에 본 야생화
2006년 8월 15일(화).
"화요 脈"의 가이드로 계방지맥의 두 번째 구간인 『가리치(3.0K)-990m봉(1.9K)-속사리재(2.1K)-908m봉(2.2K)-1010m봉(3.3K)-백적산(2.3K)-모릿재』를 산행한다. 도상거리는 약 14.8Km이고, 화요 맥의 김 대장은 더운 날씨를 고려하여 7시간에서 7시간 30분 정도의 산행시간을 예상한다.
오후에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무더운 날씨다. 상의가 땀에 흠뻑 젖어버리더니, 산행을 계속함에 따라, 바지마저 젖어 들어와, 걸음걸이를 더욱 더 무겁게 한다. 오늘 참여 인원은 모두 31명, 고정멤버 10여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금요산악회 회원들이 우정산행으로 참여한 것이다. 이들은 마루금을 타지 않고, 아목정리에서 백적산(白積山)에 오른 후, 모릿재로 하산한다.
광복절 휴일이라 도로가 정체되어, 산행시작이 늦었고, 오지의 잡초와 넝쿨들 때문에 산행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걸려, 최후미는 야간산행을 하게 되고,어둠 속에서 날머리의 길 찾기에 애를 먹어, 9시 30분경에야 겨우 하산을 하게 된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1:46) 산행시작-(11:58) 능선도착-(12:06) 1,153m봉-(12:30) 1,108.2m봉-(13:00~13:20) 990m봉, 중식-(13:36) 923m봉-(14:01) 속사리재-(14:29) 840m봉-(14:58) 908m봉-(15:52) 첫 번째 1,010m봉-(16:46) 두 번째 1,010m봉-(17:16) 950m봉-(17:34) 헬기장-(16:04) 전망바위-(18:18) 삼형제 바위-(18:45) 너덜지대-(19:04) 백적산 정상-(21:30) 하산』점심시간 20분 포함, 총 9시간 44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광복절 휴일을 맞아, 홍 부장님이 관여하는, 금요산악회 회원들이 대거 참여하여, 모처럼 버스 안이 그득하다. 팔당대교를 지나, 6번 국도로 진입하자, 휴일 나들이 차량으로 도로가 붐벼,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안개 낀 강가의 모습이 아름답다.
6번국도 오른쪽의 강변 풍광
다대 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한 버스는 56번 국도를 타고, 서석을 지나, 율전에서 31번 국도로 갈아 탄 후, 우두령을 넘어, 11시 44분, 가리치에 도착한다. 하차한 종주대원들은 오랫동안 참았던 용무도 보면서, 산행준비를 마친 후, 11시 46분, 오른쪽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있는 산 사면을 타고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가리치 도착. 정면에 오대산이 보인다.
급경사 오르막을 타고 오른다. 11시 58분 능선에 서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올라, 12시 6분 경, 1,153m봉에 오른다. 이 봉우리를 선답자들은 1149m으로 표기하고 있다. 고래대장은 새로운 지도가 나올 때마다, 산 높이가 늘었다 줄었다 한다며 웃고, 김성태 씨는 국토지리원에서 새 지도 를 만들 때, 대부분 영세업자들에게 하청을 주기 때문에, 지도의 정확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1,153m봉
이제 등산로는 남쪽으로 이어진다. 키 작은 산죽 밭 사이로 평탄하던 길이 완만한 오름세로 바뀌면서, 길가에 야생화들이 아름답다. 12시 30분, 잡초가 무성한 1,108.1m에 이른다. 깨어진 삼각점이 있다고 들었으나, 잡초 속에 어디 숨어있는 지 발견하지 못하고 비탈길을 내려선다.
길가의 동자 꽃 군락.
12시 36분, 능선 분기봉에 올라, 참나무 가지에 산악회 산행리본이 걸려있는 왼쪽 능선으로 내려선다. 울창한 낙엽송 숲, 산죽 밭 사이로 이어지는 등산로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다. 정면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봉우리가 뚜렷하고, 무성한 잡목들을 헤치고, 대원들이 990m봉으로 오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1시에 990m봉 정상에 오른다.
선 분기봉
한쪽은 낙엽송, 한쪽은 참나무 숲 사이로 이어지는 등산로
990m봉을 줄지어 오르는 대원들
정상에서 죽천(竹泉) 부부가 점심채비를 하고 있고, 정상을 넘어선 완만한 내리막길에 한 무리의 대원들이 모여 앉아 도시락을 풀고 있다. 합류하여 함께 식사를 한다. 류 회장과 박성태 씨는 점심생각이 없는 지, 계속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중식을 즐기는 대원들
약 20분 동안 점심을 즐긴 대원들은 서둘러 산행을 계속한다. 일행이 먼저 출발하고, 나는 신발 끈을 조이며, 산행채비를 하는데, 죽천부부가 지나친다. 점심을 먹은 후라, 혼자 떨어져, 천천히 내리막길 내려선다. 안부에 이를수록 잡초가 무성하고, 키 큰 야생화들이 잡초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등산로는 오르막으로 이어지며, 아름다운 적송 숲을 통과하더니, 1시 36분, 삼각점이 있는 923m봉에 이른다.<도원 25, 1990 복구> 정상에서 죽천대원이 봉우리 높이를 재고 있다.
안부로 내려서면서 본 키 큰 야생화 1
적송 숲을 통과하고,
923m봉의 삼각점
비탈길을 내려선다, 이번에는 국화꽃 모양의 보랏빛 야생화를 보고, 작은 고개를 넘어 서니, 나뭇가지 사이로 속사리재가 내려다보인다. 잡초가 무성한 무덤을 지나고, 산불 감시소를 통과한다. 도로를 건너는 죽천 부부를 보고, 건너편 가야할 벌목 지대를 카메라에 담은 후, 2시 경, 속사리재로 내려선다. 가리치를 출발하여, 약 5Km의 거리를 약 2시간에 걸은 셈이다. 김 대장 예상처럼, 오늘의 산행은 7시간이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부로 내려서면서 본 키 큰 야생화 2
가야할 건너편 능선
속사리재를 건넌다.
차량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는 6번 국도를 건너, 낙엽송이 무성한 오른쪽 숲으로 이어는 포장도로로 들어선다. 길가의 코스모스가 아름답다. 왼쪽 절개지 나무 펜스 쪽에 산악회 리본이 붙어 있다. 리본을 따라 절개지를 힘들게 올라, 숲으로 들어선다.
오른쪽으로 새로 지은 팬션을 보면서 등산로를 따라 걷다가, 방향이 이상하다는 느낌에 나침반을 보니, 우리는 동남쪽으로 걸어야하는데, 등산로는 북으로 이어진다. 2~3 미터 되돌아 나오니, 팬숀 쪽 내리막에 산악회 리본이 보인다.
낙엽송 숲으로 이어지는 도로
도로 왼쪽 절개지로 오르라는 지시를 하는 산행리본
개가 컹컹 짖어대는 팬션 뒤를 지나 무성한 낙엽송 숲으로 들어선다. 입구에서 보았던 도로가 팬션 앞을 지나 숲으로 이어진다. 울창한 낙엽송 숲에는 군데군데 앉아 쉴 수 있는 시설이 돼있다. 다시 개 짖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죽천부부가 팬션 뒤뜰로 내려서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직진하여, 알바를 하다가, 되돌아오는 모양이다. 죽천 부부와 숲속에 앉아 물을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팬션을 지나 울창한 낙엽송 숲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낙엽송 숲을 따라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오르막 초입에 산악회 산행리본이 걸려있다. 경사가 가팔라지며, 등산로는 능선을 버리고, 왼쪽 사면으로 우회한다. 암릉도 아닌 것 같은데, 아마도 잡목이 무성해 능선을 통과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오른쪽 봉우리를 우회한 등산로는, 봉우리에서 동쪽으로 내려서는 등산로와 자연스럽게 만난다. 무심코 2~3미터 걷다가, 방향이 이상하다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남쪽으로 흐르는 또 다른 능선이 보이는 게 아닌가? 되돌아서는데, 저 아래에서, "야호" 소리가 들리며, 이사장이 능선을 따라 올라 오는 모습이 보인다.
뒤 따라 오던 죽천 부부와 함께 우회길 끝 지점으로 되돌아오니, 오른쪽으로 1미터 쯤 들어간 곳에 산악회 산행리본이 보인다. 리본이 가르치는 방향을 따라 희미한 길을 걸어, 오른쪽 능선에 올라, 바로 뒤쪽의 890m봉을 본다. 890m봉에서 동쪽과 남쪽으로 능선이 분기되는데, 그 봉우리를 왼쪽으로 우회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쪽 능선으로 내려서게 된 것이다. 이런 곳이라면, 알바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하겠다.
뒤돌아 본 890m봉
이윽고 이 사장도 도착하여 함께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걷는다. 이 사장은 심산대원과 고등학교 동창으로, 몇 차례 함께 산행을 한 적이 있다. 화요 맥의 참여 인원이 적어, 이번에 특별히 권유를 받고, 참석을 한 것이다. 함께 점심을 먹고, 일행들과 함께 출발했는데, 혼자 뒤로 쳐지고, 알바까지 하고 나니, 맥이 풀리는 모양이다.
내리막 능선길에서 뒤돌아 걸어온 능선을 바라본다. 산불 감시초소가 작게 보이고, 멀리 북서쪽으로 계방산의 우람한 산세가 흐르는데. 발아래로 속사리재가 누워있다. 등산로는 싸리 꽃이 아름다운 안부로 내려선다. 잡목과 잡초에 묻혀, 등산로는 보이지 않고, 넝쿨이 발목과 허리를 휘어감아 갈 길을 방해한다.
걸어온 길-가운데 산불초소, 멀리 계방산
싸리꽃이 아름다운 안부
잡목과 잡초가 등산로를 덮고, 넝쿨이 발목에 감긴다.
원시림 같은 오르막을 오른다. 앞에 송림이 무성한 산봉우리가 보인다. 908m봉이라고 짐작한다. 아름다운 적송 지대를 지나, 2시 58분 참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908m봉을 넘고, 안부를 통과하여, 낙엽송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완만한 오름길을 오른다. 빗방울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한다.
앞에 보이는 908m봉
아름다운 적송
울창한 낙엽송 숲
3시 21분, 안부로 내려선 후, 산의 한 면을 완전히 벌목한, 가파른 사면을 타고 오른다. 봉우리 위에는 벌목하고 어지럽게 버려진 나뭇가지들이 갈 길을 방해한다. 거친 지맥 길을 걸은 경험이 없는 이 사장 발걸음이 점점 늦어진다. 뒤따르던 죽천부부가 지나치나 싶더니, 벌써 저만치 앞서나간다.
벌목지대를 오르는 대원
굵지 않은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는 속에서, 벌목 지대가 지루하게 오르내리며 이어진다. 왼쪽으로 임도가 보이고, 나무들을 모두 베어낸 서쪽으로는, 6번 도로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벌목지대가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오른쪽 숲으로 이어진다. 3시 40분 경, 벌목지대 끝에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숲으로 들어선다. 빗방울이 굵어져, 배낭커버를 씌우려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내 배낭 속에는 언제 빼 놨는지 배낭 커버가 보이질 않는다. 이윽고 제일 뒤에 쳐져 있던, 고래대장과 송아 대원이 숲속으로 들어선다.
벌목된 산 사면을 통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6번국도
벌목지대 오르막을 오르는 대원, 오른쪽에 숲이 벌목지대 끝나는 지점.
지나온 벌목지대
고래대장 알행을 남겨 놓고, 우리들이 먼저 출발을 한다. 길가에 U자 형의 묘한 나무를 카메라에 담고, 3시 52분 첫 번째 1,010m봉을 넘어. 왼쪽으로 내려서서, 이번에는 울창한 참나무 숲을 지난다.
U자형으로 묘하게 자란 나무
참나무 숲길
날등길이 나타나고, 때때로 등산로는 암릉을 우회하기도 한다. 길이 희미한 곳도 있지만,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만 놓치지 않는다면, 알바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4시 46분, 잡초 속에 아무 표시도 없는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 오른다. 두 번째 1,010m봉이다.
아무표시도 없는 삼각점
안부로 내려서니, 잡초 사이에 하얀 꽃, 노란 꽃들이 아름답다. 썩은 나뭇가지들이 뒤엉켜 있는 거친 길을 통과하고, 마치 고인돌처럼 생긴 바위를 지난다. 육산에 이런 바위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다시 낙엽송 숲을 지난다. 비가 멎은 후의 안개가 서린 낙엽송 숲이 싱그럽다. 등산로는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작은 암릉이 보이더니, 5시 16분, 950m봉에 오른다.
안부의 잡초와 야생화
고인돌 같은 바위
안개서린 낙엽송 숲
아름다운 전나무 숲을 지나 등산로는 급경사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흡사 정글처럼 잡초들이 심하게 뒤엉킨 안부에 내려서서, 5시 34분, 오른쪽으로 보이는 헬기장으로 들어선다. 입구에 피어 있는 노란 꽃이 예쁘다. 커다란 헬기장에는 허리를 넘는 잡초가 무성하여 방향을 짐작하기가 어렵다. 무조건 헬기장을 가로 질러, 남쪽능선 방향으로 진행한다. 다시 작은 봉우리에 올라 오른쪽으로 급경사 내리막을 달린다. 안부에는 여전히 야생화가 곱다. 고래대장 일행이 앞질러 지나친다. 이제 이 사장과 내가 최후미로 남는다.
아름다운 전나무 숲
헬기장
입구의 야생화
안부의 야생화 1
안부의 야생화 2
오르막이 시작되고 날등길이 이어진다. 등산로는 한 차례 암릉을 우회하더니, 다시 날등길이 계속된다. 정면으로 안개 속으로 백적산이 보인다. 6시 4분 전망바위에 선다. 정면으로 푸른 봉우리가 막아서고, 그 뒤로안개에 가린 봉우리들이 우쭐우쭐 솟아있다. 그 중 가장 높은 것이 백적산(1,141m)일 것이다. 오른쪽으로 왕능 같이 단아한 모양을 한 봉우리가 솟아있다. 지도를 보니 905m의 무명봉이다. 내 혼자 속으로 백적산 왕능봉이라고 명명한다.
전망바위에서 본 안개에 싸인 백적산
서쪽의 905m봉
전망바위 상부.
전망을 즐긴 것도 잠시, 6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갈 길은 멀다. 헬기장에서부터 갈 길이 걱정됐으나, 막상 6시가 넘고 보니, 해 떨어지기 전에 모릿재 도착이 어려워 보인다. 잠시 서쪽의 작은 길봉골이나 큰 길봉골 쪽으로 탈출을 생각하고 지도를 보니, 6번 도로까지 내려서려면 거리상으로는 더 멀어 보여 포기한다.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서, 안부를 지나, 날등길을 걷는다. 6시 18분, 바위 세 개가 나란히 서있는 삼형제 바위를 지나고, 6시 26분 갈림길에 선다. 잠시 이 사장을 기다려, 함께 왼쪽으로 들어서며, 서둘지 말고, 천천히 걸어, 체력을 잃지 않도록 하자고 서로 당부한다.
삼형제 바위
작은 봉우리를 지나 안부를 거쳐, 완만한 오르막길을 걷는다. 등산로 좌우로 멧돼지들이 어지럽게 땅을 파 헤쳐 놓았다. 능선에 올라, 등산로는 오른 쪽으로 이어지고, 6시 45분 경, 너덜지대에 이른다. 제대로 된 너덜지대다. 이미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너덜지대의 상층부는 안개에 가려 보이지가 않는다. 그로테스크한 광경이다.
너덜지대
6시 55분 경, 너덜지대 꼭대기에 올라, 김 대장에게 전화를 한다. 다행히 바로 통화가 된다. 상황을 이야기하고, 8시가 넘어야 하산을 할 것 같은데, 랜턴이 없어 걱정이란 점을 알리고, 하산이 너무 늦어져,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면 곤란하니, 우리들 걱정은 하지 말고, 먼저 출발하라고 부탁한다. 김 대장은 선두는 지금 약 50분 정도 앞서서, 마지막 봉우리에 있으니, 랜턴을 정상 왼쪽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하산하겠다고 대답한다. 생각보다 선두도 시간이 꽤 많이 걸린 모양이다.
이윽고 이 사장이 너덜지대 꼭대기에 올라선다. 혹시 랜턴 가져왔냐고 물었더니, 가져왔다는 대답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이제 비박은 겨우 면할 것 같아 안심이 된다. 7시 4분 백적산 정상에 올라, 삼각점, 정상석을 카메라에 담고, 7시 6분, 어둑한 길을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
너덜지대 꼭대기에 도착하는 대원
백적산 정상
급경사 내리막이 이어지고, 어둠 속에서 길이 잘 보이지 않게 되자, 헤드랜턴을 머리에 쓴 이 사장이 앞장을 서고, 7시 16분 경, 안부에 내려선다. 사방은 점점 어두워지고, 헤드랜턴 하나로 발밑만 비추고 등산로를 따라 진행한다. 갈림길이나, 등산로가 희미한 곳에서는 나침반과 산행리본에 의해 방향을 정한다.
8시가 가까워지면서 봉우리를 지날 때마다 나뭇가지에 걸린 랜턴을 찾아보지만, 어둠 속에서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친다. 김 대장이 전화로 어디까지 왔느냐고 묻는다. 어느 지점인지는 모르지만, 2시 방향에 불빛이 가까게 보인다고 대답한다.
등산로만 따라서 하산을 계속한다. 등산로가 오르막이나 내리막을 지날 때는 별 문제가 없으나, 산 사면을 타고 지날 때는 사면의 경사를 알 수 없어, 무척 조심스럽다. 느린 걸음이지만 쉬지 않고 꾸준히 내려선다. 불빛이 더욱 가깝다. 갑자기 등산로가 희미해지더니, 사라져 버린다. 길을 잃은 모양이다. 난처하다. 불빛을 따라 길 없는 내리막길을 무작정 내려서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어둠 속에서 주위의 상황을 살필 수도 없으니, 선뜻 실행할 용기가 나질 않는다.
9시가 가까운 시간, 더 이상 헤맬 수도 없어, 김 대장에게 다시 전화를 한다. 내려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우리들이 도착하지 않자, 김 대장이 마중을 나오는 모양이다.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고, 서로 의논을 한 후, 몇 십 미터 전에 지나친, 화요 맥의 산행리본이 걸린 위치까지 후퇴하기로 한다. 절반 쯤 되돌아 올랐을까? 위쪽에서 김 대장이 모습을 보인다. 김 대장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니, 갈림길에 이른다. 우리가 내려선 오른쪽 길 외에, 왼쪽(남쪽)으로도 길이 갈리는데, 멀리 보이는 불빛에 끌려 진행을 하다 보니, 왼쪽 길을 못 보고, 오른쪽 길로 내려선 것이다.
9시 30분 경, 버스에 도착한다. 기다리던 대원들이 어둠 속에서 무사히 하산했다고 모두들 반긴다. 오랜 시간 지루하게 기다리고, 자정이 넘어야 겨우 서울에 도착할 터인데도, 무사귀환을 반겨준다. 공자님 말씀이 어진 사람들은 산을 좋아한다고 하더니, 소소한 것에 구애 받지 않고, 별 탈 없이 무사히 하산한 것만을 기뻐하는 대원들의 모습에서 공자님의 예지를 보는 느낌이다.
헬기장 부근에서 길을 잃고, 혼자서 탈출하여, 장평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 선배를 픽업한 후, 버스는 일로 서울을 향해 달린다. 기다리기에 지쳤던 정 선배는 귀로의 버스에서 이제는 은퇴를 해야겠다고 선언한다. 그렇지 않아도 참여자가 적은 지맥 길이고, 그 동안 함께 산행을 하면서 들은 정(情)도 있는데, 정 선배님이 은퇴를 하면 무척 섭섭하다. 아마도 정 선배를 기다리며, 애 태우고, 김 대장을 무섭게 나무라던 송 선배님을 보았다면, 정 선배께서는 감히 은퇴를 선언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 화요일 ! 소소한 것들을 모두 다 털어버리고 , 웃는 낮으로 버스에 오르는 정 선배님을, 모든 대원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2006.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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