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조 :

1) 방태산(芳台山, 1444m)-적가리골, 지당골

2) 아침가리 트래킹

3) 겨울 방태산

 

2. 방태산

<내린천의 봄>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과 상남면에 걸쳐 있는 오지(奧地)의 산- 방태산(芳台山). 남쪽으로 내린천이 흐르고, 개인약수가 있는 곳, 북으로 적가리골, 지당골이 신비롭고, 방대천이 흐르는 곳, 삼둔(살둔, 월둔, 달둔)과 4가리(연가리, 아침가리, 결가리. 적가리)의 땅.

 

구룡령에서 조침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서쪽 골짜기에 해당하는, 월둔에서 명지거리, 조경분교, 아침가리를 거쳐, 방동약수까지의 약 20Km 구간은, 5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멋진 오지 트레킹 코스로 유명한 곳,

 

그래서 방태산은 꼭 찾아 가보고 싶은 산이다.

 

방태산을 여러 차례 산행한 함상철 대원이 또 다시 방태산을 찾아보고 싶어한다. 야생화와 산나물이 지천인 봄철의 방태산에 오르고, 삼봉산장에서 일박한 후, 다음 날에는 오지 트레킹을 하는, 환상적인 계획을 그리고 있다. 3차 대원들에게도 이 산행 계획을 고지(告知)했으나, 일박이 부담이 되는지, 참여자가 없어, 함상철 대원과 둘이 출발한다.

 

2005년 4월 30일(토),

새벽 6시 10분. 잠실 주공아파트 5단지 정문에서 LPG 가스 차를 몰고 온 함대원을 만난다. 오지라 찦차가 바람직하지만 여의치 못해, 연료비가 적게드는 가스 차를 이용하기로 한다. 6번 국도를 달려, 홍천에 도착, 해장국으로 유명한 통나무집을 찾아, 아침식사를 한다. 30-40년 전통을 자랑하는 집이라 해서, 물어 물어, 찾아왔으나, 해장국 맛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9시가 넘어 식사를 마치고 다시 44번 국도로 진입한다.

<44번 국도>

 

홍천에서 방태산으로 가는 최단 코스는, 44번 국도를 약 20Km 달려, 철정에 이르고, 여기서 451번 지방도로 바꾸어 탄 후, 다시 31번 도로를 따라 오르는 길이다. 당초 계획대로 방동리를 거쳐 적가리골, 지당골을 지나, 방태산으로 오르려면 이 31번 도로를 따라 북상하다, 현리에서 방동쪽으로 접어들어 한다.

 

하지만 강풍 속에서 양양의 큰 산불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16 곳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하여, 온 국민이 모두 산불을 걱정하던 것이 바로 이틀 전의 일이라, 함 대원은 방동리 매표소에 틀림없이 산불 감시요원이 배치 됐을 것으로 판단하고, 계획을 변경하여, 남쪽의 살둔 산장에서 출발, 숫돌봉, 침석봉, 개인산 및 구룡덕봉을 거쳐 방태산에 오르는 역코스를 취하기로 한다. 이 선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산행시간이 1시간 정도 더 걸리고, 방동리 쪽에서 숙소로 예약한 삼봉 산장까지 오는 차편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라 하겠다.

 

<방태산 주변 개념도-펌>

 

상남에서 31번 국도를 버리고, 446번 지방도로를 따라 방태산 남쪽으로 접근한다. 맑은 내린천이 도로와 함께 흐른다. 도로변에는 아름답게 조경을 한 팬션들이 화사하게 핀 꽃들에 둘러 싸여 그림 같다. 강 건너편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룬 밭 가운데 농가 한 채가 달랑 서 있는 모양이 오지에 근접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내린천>

<내린천 변의 외딴 농가>

버스가 들어오는 마지막 지점, 남전동에 도착한다. 다리를 건너 산허리를 타고 개인동쪽으로 이어진 도로가 말끔하게 포장돼있다. 함 대원이 보고는 깜짝 놀란다. 2년 전에는 승용차 통행이 불가능했던 곳이라 한다. 길이 이렇게 좋아졌다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이 길을 따라 차로 개인산장까지 오르면, 그곳에서 방태산 주능선까지는 고작 2시간 거리다. 이렇게 시간을 벌면, 방태산 산행의 백미라고 하는, 서쪽의 깃대봉에서 동쪽의 구룡덕봉까지 방태산 마루금을 종주하고, 구룡덕봉에서 대개인동 계곡을 타고 내려, 개인산장으로 회귀하는 이상적인 코스 선택이 가능하다. 북쪽의 적가리골과 지당골을 생략하는 아쉬움이 있으나, 어차피 한 번 와서 방태산을 다 본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니겠는가?

 

다리를 건너 새로 뚫린 아스팔트길을 기분 좋게 오른다. 이리구불, 저리구불 도로는 고도를 높인다. 갑자기 아스팔트 길이 끊어지고, 도로 확장공사 현장이 나타난다. 길도 넓어지고, 노면도 다듬어져, 승용차 통행에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찦차, 승용차, 봉고차들이 조심조심 통과하고 있다.

 

10시 경, 개인산장 주차장에 도착한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주차장에는 산림청 표시가 선명한 봉고트럭이 기다리고 있이 않은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산림청 직원이 다가와 이름을 묻고, 화기(火器) 소기여부를 확인하더니, 별 말없이 차를 몰고 휑하니 떠나 버린다. 겨우 가슴을 쓸어 내리고, 차에서 배낭을 내려, 산행준비를 한 후, 10시 5분 경 개인샘을 향해 산장을 지나친다. 산장에서 할머님 한 분이 나오더니, 입산 기록부에 서명을 하라면서, 어디서 왔느냐, 어디까지 가느냐 라고 꼬치꼬치 캐묻는다.

 

약수골을 따라 오른다. 가물어서인지 약수골에는 물은 맑고 깨끗하나, 수량(水量)은 빈약한 느낌이다. 비교적 넓은 너덜길이 개울을 따라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이어진다, 아직은 햇볕을 가려줄 나뭇잎도 없어, 등뒤로 내려 쪼이는 햇볕이 따갑다. 덥다고 느끼니 물소리가 한결 더 시원하다.

<약수샘 오르는 너덜길>

<약수골>

점차 경사가 심해지고 개울이 좁아지며, 주위의 풍광이 원시림을 연상시킨다. 약수산장을 출발하여 약 40분 정도 걸어 개인약수터에 도착한다. 약수터에서 흘러나온 물이 주위의 바위를 붉게 물들여, 약수의 성분을 짐작케 한다. 샘터 주위의 바위들에는 자그마한 돌탑들이 정성스럽게 쌓여있다. 돌 하나하나에 담긴 애절한 소망이 전해오는 듯 싶다.

 

샘터에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 10여명이 인솔 교사인 듯싶은 분과 함께 쉬고 있고. 장년의 남자 분이 시뻘겋게 고여있는 샘물을 퍼 버리며, 주위를 정돈하고 있다. 샘물을 한 바가지 퍼서 물맛을 본다. 마치 강한 소다수를 마시는 기분이다. 다량의 철분이 함유된 모양이다. 샘물을 물병에 담으려하니 함 대원이 물병 버린다고 말린다.

<개인약수 1.>

 

 

 

<개인약수 2.>

10시 45분 경, 샘터 왼쪽으로, 물이 마른 개울을 따라 오른다. 여전히 등뒤로 햇볕은 따갑다. 땀이 줄줄 흐른다. 마치 한여름의 더위 같다. 이윽고 개울도 끊어지고 등산로는 가파른 흙 사면으로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방태산 주능선이 가깝게 보인다. 가뭄으로 등산로는 바싹 말라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등산로 주변에는 노란색, 붉은 색의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날이 가물어 산은 메말라 보여도, 야생화는 지천>

11시 50분 경, 능선 위의 삼 갈래 길에 선다. 왼쪽으로 산행리본이 걸려 있고, 그 방향으로 높은 봉우리가 삐죽 솟아 있는 것이 보인다. 그 봉우리를 배달은석이라고 짐작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왼쪽 급경사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이윽고 안부를 지나 심한 오르막을 허위허위 오른다. 봉우리 위에 선다. 좁은 공터에는 아무표시도 없다.

<알바를 했던 능선 3거리에 회귀>


<배달은석으로 착각한 1,221m>

봉우리에 올라서, 전면을 보니, 이상하다. 깃대봉이 있어야 할 자리에 낮은 봉우리들이 내려다보일 뿐이다. 아무리 보아도 길을 잘못 들은 느낌이다. 하지만 함 대원은 이미 앞장을 서서, 저 앞의 낮은 봉우리를 향하고 있다. 안부에 내려서니 길은 오른 쪽 골짜기로 휘어지며, 산행리본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길을 따라 10여 미터쯤 내려서도 길은 계속 골짜기로 향한다. 잘 못된 길이란 것을 확신하고, 다시 안부로 올라와 직진하는 길을 찾아 작은 봉우리에 오른다.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 전면을 보니, 능선은 아래로 흐르기만 한다. 아무래도 알바를 하는 것 같다고 함 대원에게 이야기를 한다. 함 대원은 조금 더 가 보자고, 서둘러 앞장 서 달린다. 한참을 달려 내려가던 함 대원이 되돌아온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뒤를 돌아보란다. 뒤를 돌아다보니, 아뿔싸, 10시 방향으로 보이는 암봉은 배달은석이 틀림없고, 그 좌우로 힘차게 방태산 주능선이 푸르게 이어져 있지 않은가?.

 

맥이 빠져 온 길을 되 집어 오른다. 우리가 알바를 헸던 길을 계속가면, 남전동으로 하산하게 된다. 나중에 지도를 보고, 처음 배달은석이라고 착각했던, 중간에 우뚝 솟은 봉우리는 1,221m봉이라고 확인한다. 김동근 대장님의 희양산 대 알바사건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해프닝이라 하겠다.

 

11시 50분 경 능선에 올라, 무심코 산행리본이 매달려있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하더라도, 1,221m봉에 올라, 이상하게 느껴졌을 때, 나침반이라도 한번 꺼내 봤으면 금방 잘 못된 것을 알았을 것이다.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서쪽인데, 온 길은 남쪽이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대간을 하면서 앞사람만 보고 서둘러, 쉽게 산행하던 버릇이 몸에 배인 모양이다.

 

야생화가 흐드러진 길을 되돌아, 1시 24분, 능선 삼거리로 회귀한다. 무려 1시간 30분 가량을 헤맨 것이다. 더위에 지치고, 알바로 맥이 빠져, 무거워 진 몸을 끌고, 주능선으로 향한다. 1시 30분 경 비교적 너른 공터에 이른다. 놀랍게도 이 너른 공터가 야생화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다.

 

방태산 주능선에 오른 후 식사를 할 셈이었으나, 이처럼 화려한 꽃밭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햇볕을 가려주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점심 도시락을 푼다. 동화 속에 나오는 한 장면 같기도 하고, 마치 아름다운 그림 속에 내가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백세주로 반주를 하고, 함 대원이 가져온 매실주로 피로를 달랜다. 서두를 것도 없다. 점심을 먹고, 방태산 주능선을 걷다가, 빠른 곳을 선택하여, 해지기 전에 하산하기만 하면 된다. 기다리는 버스를 의식할 필요도 없다. 느긋하게 먹고 마신다.

<화원에서의 중식>

2시 25분 경 아름다운 천상의 화원과 작별을 한다. 10분도 채 못 걸어 주능선에 이른다. 주능선에는 바람이 센 모양이다. 키 작은 관목들이 눈에 뜨인다. 관목 아래에 배낭을 내려놓고, 왼쪽 배달은석으로 향한다. 암릉 길이 나타나고, 왼쪽으로 튀어나온 전망대에 선다. 옛날에 배가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배를 달아매어 놓았다는 배달은석(1,416m)이 전면에 가깝다, 뒤쪽(동쪽)으로는 방태봉이 삼각형 모양으로 떠있고. 그 방태봉으로 이어지는 푸른 능선이 힘차다. 발 아래로는 우리가 올라온 약수골이 보이고, 그 뒤로 개인산, 침석봉, 숫돌봉이 줄줄이 흐른다. 우리가 알바를 했던 1,221m봉이 바로 눈 아래 있다. 허겁지겁 되돌아 올랐던 능선이 코앞에서 약을 올린다.

<배달은석 가는길>

 

<배달은석과 깃대봉>

<약수골>

 

<가운데 1,221m봉과 알바한 능선>


 
2시 50분 경, 배를 매어 달았다는 큰 바위가 내려다보이는 암봉 위에 선다. 그 큰 바위를 지나 깃대봉으로 오르는 능선이 거대한 구렁이처럼 구불구불 이어진다. 보라 ! 북쪽으로 바로 눈 아래에 골안골, 대골, 지당골들이 펼쳐진 거대한 분지가 누워있다. 그 분지 건너편에, 병풍처럼 둘러친 봉우리들에서 흘러내리는 무수한 계곡들이 마치 커튼을 쳐 놓은 듯 물결치고, 바로 발아래 사면은 달 표면의 분화구처럼 울퉁불퉁 험상궂다. 참으로 장관이다.

<배를 매었다는 큰 바위와 깃대봉 가는 길>

 

<골안골>


이 장관을 보려고, 이곳에 선 것이 아닌가? 함 대원과 교대로 기념사진을 찍고, 발길을 되돌린다. 오늘은 이 정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깃대봉(1,436m)은 다음을 위하여 남겨두자. 3시 10분 경 배낭을 다시 메고, 방태산으로 향한다. 방태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이 아름답다. 야생화와 산나물들이 흐드러진 초원이 있는가하면, 칼바위 암릉길이 이어지기도 한다. 2개의 봉우리를 지나며 북쪽의 보기 어려운 장관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적가리골 1.>

 

<적가리골 2.>

<칼날 능선길>

<방태산>

4시 24분 경 방태산(1,444m)정상에 선다. 비교적 너른 공지에 주억봉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고, 그 왼쪽에 특이한 모양의 철 구조물이 돌 위에 놓여있으나, 그 의미를 모르겠다. 사방이 확 뚫렸다. 동쪽으로 구룡덕봉이 부드럽게 누워있고, 그 곳에서 시작된 능선이 개인산 등에서 솟았다가 남서쪽으로 떨어져 살둔 산장 쪽으로 이어진다. 동쪽으로는 백두대간을 하면서 지났던, 갈전곡봉, 약수산등이 멀지 않으련만 가벼운 가스에 가려 식별이 어렵다.

<방태산 정상 표지>

 

<방태산에서 본 구룡덕봉>


 

 

<구룡덕봉에서 개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기념사진을 찍고, 정상주 한잔씩을 나누어 마신 후, 4시 30분 경 구룡덕봉으로 향한다. 구룡덕봉까지는 약 2.4Km이니, 한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고, 구룡덕봉에서 대개인동 계곡길을 타고 내려가면 약수산장까지는 2시간 거리임으로 해 떨어지기 전에 산장 도착이 가능하겠다.

 

4시 50분, 구룡덕봉까지, 1,4Km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고, 5시 16분 구룡덕봉 정상(1,388m)에 도착한다. 뒤돌아 방태산을 카메라에 담고, 개인산을 찍은 후 서둘러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를 따라 걷다 보니 아무래도 방향이 이상하다. 계곡으로 내려서려면 남서쪽으로 향해야하는데, 임도는 남동쪽으로 이어진다.

<안내도>

<뒤돌아 본 방태산>

 

<구룡덕봉 정상의 시설불>

다시 구룡덕봉 쪽으로 되돌아와 시멘트 가건물 앞에서 채취한 산나물을 트럭에 싣고 있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다. 역시 남서쪽 방향을 가르치면서, 철조망 문이 열린 곳을 통해 계곡으로 내려서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철조망 문을 통해, 골짜기로 향한다. 길이 보이지 않아, 키 작은 잡목들을 헤치고 내려선다. 길 없는 길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함 대원은 임도 쪽에 아직도 미련을 두는 것 같다. 온 길을 되돌아와 산나물꾼들에게 다시 길을 확인한다. 그들은 임도를 따라가도 되지만 너무 돌아 시간이 많이 걸리니, 바로 계곡으로 내려서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다. 철조망 문 옆의 수로를 따라 앞의 능선에 오르면 길이 있을 것이라고 자세히 알려준다.

 

수로를 따르다 능선에 오르니, 과연 골짜기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이 때가 5시 40분 경이다. 뻔한 곳에서 길 찾아 우왕좌왕하느라 금쪽 같은 20여분이 훌쩍 날아가 버렸다. 골짜기로 이어진 길은 등산로가 아니라, 약초꾼이나, 산나물 채취꾼들이 다니는 길인 모양이다. 길이 끊겼다 이어졌다 한다.

 

저 아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계곡이 가까워 지나보다. 이윽고 계곡에 이른다. 계곡을 따라 등산로가 뚜렷하고, 간간이 산행리본도 보인다. 물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계곡의 수량이 많아진다. 얼추 계곡의 절반은 내려왔다 싶은 곳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시원한 계곡 물을 마시고, 세수도 하며 잠시 쉰다.

<대개인동 계곡>

계곡이 점점 넓어진다. 7시 20분쯤 되니, 주위가 어둑해진다. 함 대원은 이제 거의 다 내려왔으니 알탕을 하고 가자고 한다. 방태산 진득이는 지독해서 옷을 뚫고 살 속으로 파고든다고 한다. 그러니 몸을 씻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으니 더위가 한결 가시고, 맨발로 물에 들어서니 오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발이 시리다. 수건에 물을 적셔 옷을 입는 채 땀을 닦아내는 정도로 끝낸다.

 

8시가 가까워지니 계곡은 깜깜하다.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계곡을 조심조심 내려온다. 계곡만 따라 내려오면 길 잃을 염려도 없다. 어두운 계곡 길에 신경이 쓰여, 걷는 속도는 많이 떨어지지만 걱정은 되지 않는다. 9시가 가까워지자, 저 아래에, 약수산장 불빛이 보인다.

 

약수산장에 도착하여 맥주부터 청해 마시고, 백숙을 주문한다. 함 대원은 삼봉산장에 전화하여 저녁을 먹느라고, 도착이 늦어지겠다고 연락을 한다. 맥주 한 캔씩을 더 마시고, 백숙이 나오자 남은 매실주를 마신다. 땀을 흠뻑 흘린 후의 맥주 맛과 닭고기 맛이 시쳇말로 쥑여준다.

 

10시 15분 경 숙소로 향한다. 천천히 가도 11시경이면 숙소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겠다. 아침에 지나왔던 공사중인 도로를 반대로 진행한다. 함 대원이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험한 길에서 제법 속도를 낸다. 갑자기 "꽝" 하고, 차 아랫부분이 돌에 심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런 후, 차는 얼마 가지를 못하고 시동이 꺼지며 멈춘다. 계기 판에는 엔진 오일 부족이라는 표시가 명멸한다. 돌에 부딪치는 충격에 오일 탱크가 깨지면서, 엔진오일이 새는 모양이다.

 

시동을 걸으니 다행히 시동이 걸리고 차가 움직인다. 하지만 엔진 소리가 이상하다. 발동기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또 시동이 꺼지고, 차가 멈춘다. 다시 시동을 걸면, 차가 움직인다. 다행히 포장도로로 들어선다. 엔진오일이 부족하면 엔진을 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서, 시동을 끈 채, 기어를 중립에 놓고, 비탈길을 내려선다.

 

이윽고 남전동에 내려선다. 우선 차부터 수리를 해야 하겠기에 숙소로 향하지 않고, 반대 방향인 상남으로 향한다. 다행이 내리막길이 많아, 시동을 끄고 움직인다. 합수목 다리를 건너자 차는 더 이상 움직이려 들지를 않는다, 시동을 걸어봐도 헛일이다.

 

가까이에 합수목 모텔 간판이 보인다. 차를 밀고 모텔로 들어선다. 5-6명이 충분히 잘 수 있는 큰방을 30,000원에 빌린다. 방이 따듯하고, 이부자리도 깨끗하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맥주를 청해 마신 후 12시 경, 잠자리에 든다.

 

요란한 새소리에 잠이 깬다. 5시가 채 못된 시간이지만 창 밖은 벌써 훤하게 밝다. 세수를 하고, 산책을 나서려는데, 함 대원도 잠이 깨는 모양이다. 함 대원은 보험회사 긴급출동 서비스에 전화를 하기로 하고, 홀로 밖으로 나선다.

 

계곡물이 내린천에 합쳐지는 곳이라 해서 합수(合水)목이다. 모텔은 바로 이 합수목 가에 세워져있다. 모텔 마당을 가로지르니, 내린천으로 내려서게 되고, 개울가에는 제법 너른 모래사장이 펼쳐있다. 아직 어둠이 말끔히 가시지 않은 새벽녘의 내린천이 상큼하게 아름답다.

<합수되어 흐르는 내린천>


 

<합수목>

도로를 따라 상남 쪽으로 천천히 걷는다. 길가에 예쁜 팬션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팬션쪽에서 개들이 컹컹 짖어댄다. 함 대원이 전화를 마치고 나와 함께 걷는다. 긴급출동 서비스와 연락이 되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랙커 차를 보낼 수 있도록 수배하겠으니, 곧 연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아침 6시경인데도, 길가의 모텔 중에는, 아침식사를 하는 집이 있다. 식사할 곳을 확인하고, 좀 더 걷다가 7시쯤 식사를 하기로 한다. 함 대원의 전화벨이 울린다. 상남에 있는 카 센터인데, 10분 후에 랙커 차를 가지고 모텔로 오겠다는 전화다. 산책을 포기하고, 서둘러 모텔로 돌아와 배낭을 싸서, 둘러메고 나오니, 벌써 랙커 차가 모텔 마당으로 들어선다.

 

50대 초반의 카센터 사장은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더니, 엔진을 교체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오늘,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라 어디고 일하는 곳이 없을 터이니, 엔진을 교체하려면, 며칠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 이야기다. 엔진을 교체하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터이고, 시간도 며칠씩 걸린다니 걱정이 태산이다.

 

상황이 이러니 아침가리의 트레킹이 문제가 아니다. 아침가리를 한자로 표현하면 조경(朝耕)이다. 하도 척박한 곳의 좁은 땅이라 아침 한 때의 밭갈이로 족하다 해서 마을 이름이 아침가리이고, 한자로 조경동이라고 한다고 한다. 이러한 조경동의 트레킹이지만 어쩔 수 없이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겠다.

 

시원시원한 카 센터 사장의 권유에 따라, 인제의 정비소로 차를 견인해 가기로 한다. 카 센터 사장이 정비소 책임자에게 전화를 한다. 3일 정도면 엔진 교체가 가능하겠다는 이야기이고, 수리비는 다행히 보험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랜터 카를 타고, 내린천을 따라 약 100리 길을 달린다. 31번 국도다. 아침의 내린천 변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차를 몰면서 이어지는 카 센터 사장의 이야기도 재미가 있다. 서울 사람들이 몰려들어 땅을 사려는 통에 이 산 속의 땅값이 평당 30만에서 50만원까지 호가한다는 등 땅에 얽힌 이야기를 비롯하여, 내린천이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북으로 흐르는 강이라, 6.25때는 방향을 착각한 인민군들이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 등 끝이 없다.

 

인제 정비소에 도착하여 차를 넘겨주고, 5월 5일 찾으러 오기로 한다. 함 대원과는 차만 찾으러 인제까지 오는 것은 싱거우니, 지난 번 눈 때문에 반만 걸었던 백두대간 진부령 코스를 완주하고, 인제에 들러, 차를 찾아가기로 한다. 산이 좋아 주책없이 이렇게 산을 찾다 보면, 대한민국에, 늙은 산꾼 하나가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닌가? 심히 걱정이 된다.

 

인제에서 늦은 아침을 먹은 후, 시외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여, 집에 도착하니, 1시 30분 경이다. 대낮에 집에 들어서자, 집사람은 의아한 얼굴이고, 발자국 소리로 알아듣고 현관에서 기다리던 짱아는 데굴데굴 굴면서 반긴다.

 

 

 

(2005. 5. 2.)

1 [드니로 / 2005-05-03,22:45:36]

우림 선배님의 일박산행이 시작되셨네요.

비록 우여곡절 끝에 아침가리 트래킹은 다음으로 미루셨지만,

재밌는 경험하셨네요... 다음 아침가리는 꼭 함께 가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번 어린이날 지난 졸업산행의 못다이룬 진부령코스를 거쳐 인제를 들리신다니 여건이 허락하면 함께 하고픈데, 몸이 허락지 않네요.

참! 저는 드디어 야영 산행을 위한 준비를 하나하나 마련하고 있습니다. 1인용 텐트하고 침낭, 매트는 일단 마련하였습니다. 백두대간의 낮과 밤을 몸으로 느끼는 산행에 벌써 설레네요.

조심히 다녀오시구요, 가까운 시일내에 우림선배님과 야영산행의 계획을 세우고 싶네요. [삭제]

 

2 [우정 / 2005-05-04,09:54:25]

토,일요일에 대한 부담으로 참여인원이 적었군요.

엔진에 중상을 입었지만 그래서 진부령구간을 완주할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시게 됬으니,참으로 지혜로운 산꾼들의 생각입니다. [삭제]

 

3 [잭울프 / 2005-05-04,21:41:18]

우림님의 글과 함께 야생화핀 방태산 잘 다녀왔습니다~.

아침가리는 기회가 되면 저도 함께하고싶군요.

오지는 역시 Jeep를 이용해야겠군요. 고생많으셨습니다.

참 저도 비박산행준비는 일단 끝냈구요 ,

다음 정맥때 시도해볼까 합니다. [삭제]

 

4 [오솔길 / 2005-05-05,17:58:48]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림님 행복하게 쉬고 계시는 얼레지 들판을 보니 언젠가 광덕산에서 얼레지와 얼굴을 맞추고 이야기 하던 생각이 납니다.

'아침가리' 트래킹..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삭제]

 

5 [우림 / 2005-05-07,14:26:33]

드니로 님 !

야영 장비 이미 마련하셨다구요?

잘 됐네요. 다음 번 만날 때 정보 좀 주십시오.

장비 구입 시 참고하게요.


우정 님 !

산악회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 것인지 알겠더군요.

선두 대장 있겠다, 후미 있겠다,

태워다주고, 태워오고.....


하지만 여행이나, 등산이란 것이 일상에서 벗어나자고 하다보니,

고생은 되고, 별별 예기치 못하는 상황이 벌어져도,

그것 또한 재미더군요.


잭 울프 님 !

아침가리 트레킹 계획 구체화 해보세요.

물론 찦차를 가져가는 것이 좋지만,

요즈음은 팬션들 경쟁이 심해서, 숙박을 하면 이들이 현지 교통편을 제공하더군요.

서울서 인제까지 시외버스로, 인제에서 현리나 남전동까지 다시 버스로 들어가면

그 곳에서 팬션이나, 산장에서 픽업한다더군요.


갈 사람들 많을 겁니다.


오솔길 님 !

꽃 이름이 얼레지였군요.

야생화에 대하여 무지한 사람도 감탄하겠던데,

오솔길 님처럼 야생화에 조예가 깊은 분은

말 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맛 보실겁니다.


땅이 메말라, 야생화들도 딱해 보였었는데,

마침 풍족하게 내린 단비로 지금은 더욱 더 싱싱한 모습이겠네요.


아침가리 트레킹 갑시다. [삭제]

 

6 [드니로 / 2005-05-13,10:17:39]

벌써 정맥은 내일로 다가왔는데,

아직까지 몸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번 정맥길에선 우림선배님과 잭울프님이랑 같이 야영 산행이야길 하고팠는데...

지난 겨울 러셀의 영향인가요...ㅎㅎㅎ

재밌는 산행 하시구요,...아침가리나 야영산행 계획이 서시면 알려주세요...

근데 어디다 알리죠...이제 우리 3차대 소간방도 찾기 쉽지않네요...쩝

암튼 알려주세요...즐거운 산행되시구요...

아~ 제 이메일은요...yunwhanpapa@gmail.com 입니다...


우정선배님, 오솔길님, 잭...우림 선배님...

그냥 한번 불러 봤습니다...ㅎㅎㅎ [삭제]

 

7 [우림 / 2005-05-15,15:17:15]

드니로님 !

왜? 컨디션이 나쁘다구요?

이 좋는 계절에, 순하고 부드러운 정맥길이 부담될 정도라면 큰일이군요.

병원에는 가 봤는지요?


이제 메일 주소 알았으니 메일로도 연락합시다.

빨리 몸 만들어 즐거운 야영도 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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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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