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의 눈꽃(펌)

 

올 겨울 무등산엔 벌써 눈꽃이 만발했다. 농민들에겐 억장이 무너지는 악몽이지만 산꾼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순백의 바탕 위에 그려놓은 설경은 정말 다른 무엇과 견줄 데가 없는 '무등(無等)' 그 자체였다. 부드러운 산사면의 광활한 억새밭이 설화로 변신했고 수정기둥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무등의 자랑 입석대와 서석대는 '아!'라는 외마디 감탄사만 신음소리처럼 새어나올 뿐이었다.

 

무등산(無等山·1187m). 높이를 헤아릴 수 없고 견줄 만한 상대가 없어 붙여진 이름이지만 산세는 위압적이지 않고 둥그스름하다. 광주시민들은 언제나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무등에 의지해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다. 신년 해맞이도, 눈꽃여행도 여기서 하고 하늘에 대한 제사도 여기서 모신다. 빛고을 예향의 대부분 예술품도 이곳에서 잉태된다. 무등의 품 안에선 미추(美醜)와 빈부에 관계없이 늘 평등하다.

무등에서 느낀 광주시민들의 애착은 넓고도 깊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그 사랑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천년만년 후손에게 있는 그대로 물려주기 위해 지난 89년 공원관리사무소를 설립, 인근 화순 담양에까지 걸쳐있는 무등산을 통합하여 정성스럽게 관리하고 있다. (이상 한국의 산천에서 발췌)

 

2009년 12월 12일(토)
요요회 회원들과 함께 무등산을 찾는다. 무등산은 호남정맥을 종주할 때인, 2008년 8월, 백남정재에서 출발하여 북산을 거쳐 장불재를 지나서 안양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타면서 지난 적이 있지만, 이때에는 빗방울이 흩날리는 흐린 날씨라, 입석대, 서석대를 들러보지 못하고 아쉽게도 후일을 기약한 적이 있는 곳이다. 요요회의 산행공지를 보고 반갑게 신청을 한 것이다.

 

코스는 『원효사/공원사무소-꼬막재-규봉암-장불재-입석대-서석재-중봉-동화사터-늪재-원효사/공원사무소』의 원점산행으로 도상거리는 약 14.7Km다. 점심시간을 포함하면 6시간 정도의 산행시간이 소요되니, 갈 길이 바쁜데, 뜻하지 않은 지하철 2호선의 열차고장으로 잠실 종합운동장에서의 출발시간이 20분 정도 늦어져, 7시 20분 경에야 비로소 버스가 떠난다. 오늘 참여인원은 28명이라고 한다.

산행지도

 

늦어진 시간의 커버는 기사양반의 몫이다. 대원들의 용무를 위해, 두 군데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를 하고, 광주 시내를 지나면서 심한 교통정체를 겪지만, 유머러스한 기사양반의 능숙한 솜씨로 11시 29분, 산행들머리인 공원사무소 앞에 도착한다. 서울을 출발할 때는 잔뜩 흐렸던 날씨가 광주에 도착하니 햇살이 밝게 비치는 맑은 날씨로 변한다. 출발부터 느낌이 좋은 산행이다.

 

버스에서 내려 본 들머리 주변경관이 깔끔하다. 우선 시선을 끄는 것이 이정표다. 현 위치와 고도가 표기돼 있고, 가는 곳의 방향과 거리가 기재되어 있다. 이정표가 갖추어야 할 모든 요건을 훌륭하게 갖춘 100점짜리 이정표다. 지난 6년 동안, 주 2회 꼴로 전국의 산을 헤집고 돌아다녀 봐도, 이런 100점짜리 이정표를 발견하기는 그리 쉽지가 않다. 합리적이고 빈틈없는 광주시민들의 무등산에 대한 사랑이 흠씬 배어있는 이정표다.

들머리 이정표

 

다른 하나는 잘 손질된 공원과 ‘무등산 공유화 운동’ 석비(石碑), 그리고 공원에 땅을 기증한 사람들의 이름을 색인 작은 석주(石柱)들이다, 이 모든 것들은 무등산에 대한 광주시민들 사랑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산행준비를 마친 대원들은 식당들이 즐비한 도로를 따라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서울의 청계산 주변의 식당가와 비슷한 풍경이다. 친구들과 반나절의 산행을 마치고 정담을 나누며 갈증과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따듯한 곳들이다.

잘 관리된 공원

무등산 공유화운동 석비

식당가 도로를 따라 오르고

 

도로를 3분 쯤 따라 오르면 산장입구다. 이정표가 갈 길을 알려준다. 산길로 접어들어 산장을 끼고, 산죽이 듬성듬성 보이는 돌길을 걸어 오른다. 오른쪽에 또 다른 형태의 이정표가 준비 없이 나선 길손에게 전체와 부분을 함께 알려준다. 실제로 낮선 땅을 여행해본 사람이 자기 체험을 살려 직접 만든 것 같은 친절한 이정표다.

산장입구 이정표

길손의 벗, 친절한 이정표

 

푸른 이끼가 낀 돌 많은 산길이 이어진다. 돌이 드믄 곳에는 자연석들을 촘촘이 깔아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등산로의 훼손을 막았다. 주말인 오늘도 이런 돌길을 보수하는 인부들이 눈에 뜨인다. 솔잎과 낙엽이 떨어진 돌길, 어제 내린 비에 젖어, 산 전체가 청순한 새악씨처럼 풋풋하고 상큼하다. 불현 듯 지난번 다녀온 에베레스트 하이웨이가 떠오른다. 두드 코시 강을 따라, 만년설을 이고 있는 에베레스트 영봉들이 줄레줄레 늘어선 쿰부빙하로 이어지던 흙먼지가 풀풀 이는 트레킹 코스, 그 곳이 고통과 환희의 길이라면 우리의 산하는 오밀조밀,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가득한 축복 받은 땅이라는 느낌이다.

비 온 뒤 풋풋하고 상큼한 등산로

 

호젓한 산길이 급하지 않고 완만한 오름세로 이어진다. 앞선 대원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감기가 걸렸다는 청산님, 그리고 후미를 보는 선비님이 뒤를 따를 뿐이다. 단조롭지 않고 변화가 많은 산길이다. 돌길이 끝나고 무성한 산죽 밭 사이로 이어지던 등산로가 울창한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서고. 12시 17분, 오성원을 지난다. 이정표가 공원관리사무소에서 1.9Km 떨어진 곳이라고 알려준다. 이제 꼬막재까지는 100m가 남았다. 한쪽은 편백나무, 한쪽은 키 작은 산죽이 깔리더니, 어느 사이 또 모양새가 바뀐다. 산죽의 키가 껑충 커지고 편백나무가 잡목으로 변하며 다시 돌길이 이어진다.

울창한 편백나무 숲

오성원 이정표

편백나무와 키 작은 산죽

잡목과 산죽 사이의 돌길

 

12시 22분, 중위그룹이 쉬고 있는 꼬막재에 이른다. 표지석, 그리고 꼬막재 이름의 유래를 알려주는 안내문이 보인다. 고도 710m, 들머리에서부터 340m의 높이를 죽인 셈이다. 한동안 평탄한 길이 계속된다. 원기를 회복했는지 청산님이 앞서 나간다. 산행을 마치고 나서 무등산의 기를 받아 감기가 말짱하게 나았다고 청산님이 무척 신기해하더라는 말이 귀로의 차속에서 전해진다. 12시 26분, 작은 샘을 지난다. 수질 검사표에는 적정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얕게 고인물이 찜찜하여 마시기를 단념하고 그냥 지나친다.

꼬막재 돌표지

꼬막재 안내판

 

12시 44분, 등산로는 신선대 억새평전으로 들어선다. 억새너머로 신선대가 있는 북산이 부드럽다. 이어 신선대 입구를 알리는 돌 표지와 이정표를 지난다. 호남정맥을 하면서 지났던 낮 익은 곳이다. 잘 정비된 등산로가 가볍게 오르내린다. 1시 7분, 규봉암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점에서 대원들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후미그룹도 가세하여 그 옆에 자리를 잡는다.

신선대 억새 평전, 뒤로 보이는 산이 신선대가 있는 북산이다.

안내판

표지석

이정표

중식

 

1시 37분, 식사를 마치고 산행을 속개하여 너덜지대로 들어선다. 시야가 트이며 왼쪽이로 담양군이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1시 58분, 이정표가 있는 영평마을 갈림길을 지나고, 2분 후, 규봉암 일주문에 이른다. 왼쪽에 글자가 음각된 우뚝 솟은 돌기둥이 눈길을 끈다. 경내로 들어선다. 우뚝우뚝 솟은 돌기둥아래에 관음전과 삼성각이 터를 잡고 있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매료된 대원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담양군

규봉암 일주문

음각한 글자가 보이는 석주

 

관음전

돌기둥 1

돌기둥 2

 

돌기둥 사이로 이어지는 암릉길을 걸어 내리다, 갈림길을 만나 오른쪽 길을 택해 너덜지대로 들어선다. 지공너덜이다. 안내판이 보인다. 너덜지대를 지나면서 시야가 트이며 인왕봉, 지왕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무등산 정상부의 부드러운 능선을 카메라에 담는다. 2시18분, 마애석불법당 앞 샘물터에서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이고 마애석불을 참배한 후 최후미로 처져, 서둘러 앞선 대원들의 뒤를 쫒는다.

지공너덜

지공너덜 안내문

 

너덜 길을 지나고 산죽 밭을 거쳐, 돌 많을 길을 걷는다. 정면으로 장불재의 송신탑들이 보인다. 2시 46분, 장불재 0.1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 장불재로 오르며 오른쪽의 서석재와 왼쪽의 안양산으로 이르는 미끈한 백마능선을 카메라에 담는다. 2시 54분, 표지석, 이정표, 그리고 입석대, 서석대 안내문이 있는 장불재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은 후 입석대로 향한다.

장불재의 송신탑

장불재로 오르다 본 입석대

미끈한 백마능선


장불재 표지석

이정표

입석대, 서석대 안내문(사진 크릭하면 커짐)

 

입석대 가는 길은 억새밭 사이로 이어지는 돌길이다. 훼손됐던 탐방로를 복원한 안내판, 무등산 주상절리대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3시 5분, 입석대 조망바위에 서서 아름다운 입석대를 가까이 보며, 자연의 조화에 경외감을 느낀다. 3시 7분,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전망대로 향하여, 입석대 표지석을 만나고, 입석대를 역광으로 잡아본다.

입석대 가는 길

훼손된 탐방지 복원 안내

주상절리대 안내

입석대

표지석

 

서석재로 이어지는 돌길을 오른다. 북으로 승천암을 지나 입석대로 오르는 대원들의 모습이 가물거리고. 남쪽으로는 호남정맥의 마루금인 백마능선의 미끈한 모습이 아름답다. 3시 16분, 안내판이 세워진 승천암을 지나니 이제 서석재가 지척이고, 그 오른쪽으로 군사시설이 있는 무등산 정상부가 가깝다. 2시 25분, 서석대에 오른다.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일품이다. 북서쪽으로 하산할 방향인 중봉과 SK 무등산 송신소의 송전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석대 가는 길

뒤돌아 본 입석대와 백마능선

승천암

승천암 안내판

서석대

정상부의 군사시설


 

철쭉 밭과 멀리 하산해야 할 능선

 

대원들과 어우러져 기념사진을 찍고, 서둘러 하산을 시작한다. 빽빽한 철죽 밭 사이로 잘 정비 된 등산로가 이어진다. 3시 32분, 안내판이 있는 서석대 전망대에서 서석대를 우러르고, 하산 길을 재촉한다. 우리가 내려가는 길이 무등산 옛길인 모양이다. 탄탄한 돌길이다. 3시 44분, 이정표와 통제소가 있는 곳을 지나, 군사도로가 지나가는 중봉 복원지 입구에 내려서서, 직진하여 중봉으로 향한다.

서석대 안내판

전망대에서 본 서석대

뒤돌아 본 군사시설이 있는 정상부

이정표와 통제소

중봉 복원지 입구의 등산로 안내

중봉 가는 길

 

중봉으로 오르다, 뒤돌아 서석대와 군사시설이 있는 정상부, 그리고 광활하게 펼쳐진 복원지를 굽어본다. 장관이다. 3시 59분, 중봉 정상에 올라, 20도 방향으로 원효계곡과 풍암제를 굽어보고, 가까이 보이는 송신탑을 향해 정상을 내려선다. 외길이다. 4시 13분, 이정표가 있는 동화사 터 상단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중봉을 오르다 뒤 돌아 본 서석대, 정상부 그리고 복원지

중봉 정상에서 본 20도 방향의 원효계곡과 풍암제

가까이 보이는 송신탑

동화사터 상단 갈림길, 이정표

 

이어 이정표가 있는 동화사 터, 동화사 터 하단을 지나, 군사도로에 내려서서, 왼쪽에 보이는 전망대로 향한다. 전망대에 ‘웅비하는 광주’를 소개하는 조망안내판이 설치돼 있어, 잠시 가스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광주시가지를 굽어보고, 다시 도로를 따라 내리다, 갈림길에서 왼쪽 산길로 들어선다.

동화사터 하단 이정표

전망대

웅비하는 광주

 

호젓한 산길을 빠르게 달려 내린다. 4시 54분, 해발고도 490m의 늦재에 내려서서 1.7Km 떨어진 공원관리사무소를 향해 오른쪽으로 포장도로를 달린다. 5시 8분, 원효사에 잠시 들러, 대웅전과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15호로 지정된 만수사 범종이 있는 범종각을 둘러보고, 5시 25분 경, 길가에 정차해 있는 버스에 도착한다.

늦재

원효사 대웅전

범종각

 

이윽고 대원들이 모두 하산하자 버스는 서둘러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뒤풀이는 슈퍼에 들러 구입한 술과 안주로 차안에서 약식으로 치러지고, 저녁식사는 휴게소에서 15분 만에 해결한다. 이처럼 먼 길을 바쁘게 오간 하루지만 오랜만에 만난 옛 동료들이 반갑고, 무등산을 사랑하는 광주시민들의 애향심에 큰 감명을 받고 고마움을 느낀다. 무등산! 아름답고 멋진 산이다.

 

 

(2009. 12. 13.)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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