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을 지나면서 본 내장산 줄기와 반달


2008년 10월 11일(토).

무주공산의 안내로 호남정맥 천왕산 구간을 산행한다. 오늘 코스는 『묘치(230m)-385.6m봉-주라치(340m)-천왕산(424.2m)-구봉산(349m)-서밧재(149.4m)』로 도상거리 약 7.5Km의 짧은 구간이다. 고도차도 별로 없는 비교적 평탄한 코스지만 마루금에는 가시잡목이 무성하고,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막아, 엎드려 기기도 하고, 장애물을 타고 넘으며 힘들게 진행한다.


주화산에서 망덕산을 거쳐 외망에 이르는 호남정맥 산줄기는 도상거리로 약 432Km, 천리 길이 넘는 긴 산줄기다. 주화산에서 서밧재까지의 도상거리가 약 218Km, 그러니 오늘 구간 산행으로 비로소 긴 산줄기의 절반을 넘어서게 된다.


맑은 가을 날씨다. 개구쟁이가 빗자루에 하얀 물감을 듬뿍 묻혀, 거대한 파란 캔버스에 비질을 해 놓은 것 같은 하늘이다. 잡목 숲 사이로 투명한 가을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소슬한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서늘하게 식혀준다. 묘가 있는 자리가 명당자리다. 묘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주기(酒旗)가 나부끼고, 여인숙(女人宿)에서는 손님을 부른다. 이 주막에서 한잔, 저 여인숙에서 한잔 걸치다보니, 하산 전에 벌써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다.


안톤 쉬낙(Anton Schnack)은 우리들의 이런 즐거움을 몰랐던 모양이다.


"정원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하게 내리고, 그리운 이의 인적(人跡)은 끊어져 거의 일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우리를 슬프게 한다.(김진섭 옮김)

독일의 음울한 가을 만 보았던 안톤 쉬낙을 우리의 찬란한 가을산하에 초대하여 호남정맥을 함께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면 그는 틀림없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이라는 또 다른 수필로 우리들에게 답례를 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단풍구경으로 빠져버린 모양이다. 20여명 남짓한 대원들을 태운 버스는 탄천 휴게소에서 잠시 멈추었을 뿐 쉬지 않고 남으로 남으로 먼 길을 달려내려, 11시 2분, 묘치고개, 산행들머리에 도착한다.

묘치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1;02) 묘치 도착/산행시작-(11:13) 봉, 약 300-(11:15) 갈림길, 우-(11:19) 안부-(11:21) 묘 1기-(11:22) 가족묘-(11:38) T자, 우-(11:41) 385.8m봉-(11:49) 임도-(11:55) 묘역 내림-(11:57) 주라치-(12;08) T자, 우-(12:15) 319m봉-(12:17) 안부-(12:27) 갈림길, 좌-(12:40) 돌 오름길-(12:43) 천왕산 정상-(12:45~13:09) 중식-(13:10) 갈림길, 우 내림-(13;25) 장택고씨 묘-(13:26) 안부사거리, 직진-(13:27) 갈림길, 좌-(13:29) 능선 왼쪽 우회-(13:30~13:32) 전주이씨 묘-(13:35~13:56) 묘역/휴식-(13:57) 안부 사거리, 직진-(14:04) 봉, 약 305-(14:06) 갈림길, 좌-(14:09) 시멘트도로-(14:13) 기지국 정문, 오른쪽 산길-(14:17) 임도-(14;18) 두 번째 통신탑-(14:19) 밤나무 단지-(14:24) 갈림길, 좌-(14:27) 능선분기, 우-(14:35) 쌍묘-(14:37) 묘 3기-(14:38) 갈림길, 좌-(14:44) 묘 2기-(14:45) 갈림길, 직진 -(14:48) 오른쪽 산길-(14:53) 수원백씨 합장묘-(14:55) 산불지역-(14:58) 해주최씨 묘-(15:02) 서밧재』중식 및 휴식 47분포함, 총 4시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차에서 내린 대원들은 바로 임도를 따라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무덤을 지나고 희미하게 이어지던 등산로가 키를 넘는 잡목 숲 앞에서 사라져버린다. 가시넝쿨이 무성한 악명 높은 정맥 길 잡목 숲이다. 계절이 변한지도 한참 됐는데도 이곳의 잡목은 한여름인양 시퍼렇게 기가 살아있다. 그래도 정면 돌파가 가능한 정도라 다행이다.

산행시작


한동안 잡목 숲에서 헤매다 겨우 등산로를 찾아들자, 이번에는 쓰러진 나무가 길을 막는다. 넘기에는 너무 높고, 우회하려니 주의 잡목에 기가 질린다. 할 수 없이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조아려 앞 사람의 엉덩이에 경배를 하며 지나가고 이어서 나타나는 장애물을 왼쪽으로 우회한다.

쓰러진 나무 등걸 아래를 지나고

장애물을 우회한다.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고,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11시 19분, 표지기들이 요란한 안부에 내려선 후 너른 묘역을 지나며 모처럼 푸른 하늘을 우러른다. 여전히 거친 잡목 숲이 이어진다. 잇단 장애물을 넘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봉분이 땅에 닿을 정도로 황폐한 묘가 있는 T자 능선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11시 41분, 길가에 삼각점이 보인다. 385.8m봉이다.

안부

잇단 장애물들

385.8m봉 삼각점


삼각점을 카메라에 담고, 이장한 흔적이 뚜렷한 움푹 파인 묘를 지나, 울창한 잡목 숲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내려선다. 11분 49분, 임도를 건너고 6분 후, 너른 묘역을 내려서며 가야할 능선을 바라보고, 110도 방향으로 모후산(919m)의 수려한 모습을 본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조망다운 조망이다.

너른 묘역을 내려서고

110도 방향으로 모후산을 본다.


11시 57분, 주라재에 내려선다. 나뭇가지에 '주릿재'라는 표지판이 걸려있다. 아마도 현지인들은 주릿재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어떤 이름이라 해도 그 의미를 알 수가 없다. 강력한 인터넷 검색창을 두드려 보아도 찾을 길이 없다. 아마도 지방방언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서밧재도 현지인들은 '섯밧재'라고 부른다고 한다. 역시 의미를 알 수 없다.

주릿재 표지판


지방산악회의 산악인들을 중심으로, 지방의 고유한 방언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지명의 유래나 의미를, 생존해 계신 지방의 어르신네들에게 물어 그 내용을 널리 알리면 어떨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그리고 우리국토를 사랑하는 따듯한 마음으로 특이한 지명의 의미 찾기 캠페인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진다. 12시 8분, T자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암릉길을 걷고, 7분 후, 319m봉을 지나. 안부에 내려섰다 다시 돌 많은 오르막길을 오른다. 12시 27분, 능선분기점에서 표지기들의 안내로 왼쪽 내리막길로 진행한다. 능선이 넓어지며, 평탄한 길에서 표지기들이 반긴다.

표지기들


바위지대를 지나고, 작은 너덜 같은 돌 많은 길을 올라, 참나무 숲을 통과한다. 투명한 가을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히는 소리, 우수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소리...이런 가을 속을 걸어, 12시 43분, 천왕봉에 오른다. 좁은 정상(424.2m)에 삼각점이 있고 나뭇가지에 정상표지판이 걸려있다.

참나무 숲

정상표지판


 

삼각점


천왕봉을 내려서자 바로 등산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상을 펼친 대원들을 만나 이들과 합류하여 점심식사를 한다. 정상주 잔이 돌고, 풍성한 먹을거리가 나누어진다. 24분 동안 느긋하게 식사를 한 후, 1시 9분, 산행을 속개한다. 1분 후, 능선분기점에 이르러, 오른쪽 급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주능선 같아 보이는 직진능선을 따르면 영동으로 빠진다. 알바하기 쉬운 곳이다.

능선분기점에 놓인 산악회 표지판


나뭇가지를 잡고, 가파른 암릉을 내려서니, 미끄러운 급경사 흙길이 이어진다. 조심조심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산골짜기의 황금빛 층계논과 멀리 무등산이 보인다. 1시 25분 장택고씨 묘를 지나고, 1분 후, 안부사거리에 내려서서 직진한다. 약 6분 동안에, 150m 정도의 고도를 까먹으며 내려선 것이다.

무등산


1시 27분, 갈림길을 만나 왼쪽으로 진행한다. 부드러운 산책길이 능선을 왼쪽으로 우회한다. 1시 30분, 전주이씨 묘에 이른다. 너른 묘역에 여인숙이 문을 열었다. 호객소리에 끌려들어, 달고 시원한 배를 얻어먹고 따듯한 관심에 고마움을 느끼며, 길을 떠난다. 묘역에서 뒤 돌아본 천왕산 위의 하늘이 에메랄드 색깔보다 곱다.

묘역의 여인숙

뒤돌아 본 천왕산


3분 쯤 걸었을까? 이번에는 전주이씨 묘역에 주기(酒旗)가 나부낀다. 이술, 저술, 술의 종류도 다양하다. 술맛을 보다보니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다. 여인숙을 차렸던 대원들도 합류하고, 수술 후 의사의 경고도 무시 채 뛰쳐나온 부부대원이 도착하고, 발목 인대가 늘어나 한동안 고생하다 겨우 걸을 만해지자 더 참지 못하고 참여한 고모가 모습을 보이니, 선두 몇 사람을 제외한 모든 대원들이 한자리에 다 모인 셈이다. 삼일장 장마당처럼 분위기가 흥청거린다.

전주 이씨 묘

묘역 풍경


1시 56분, 묘역을 떠난다. 1분 후, 사거리안부에서 직진하고, 2시 4분, 고도 305m 정도의 봉우리를 넘는다. 2시 6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진행하고, 3분 후, 시멘트도로에 올라, 이를 따라 걷는다. 시야가 트여, 정면에 통신탑, 뒤로 천왕산, 160도 방향으로 구봉산의 9개 봉우리 중 2개의 봉우리, 그리고 100도 방향으로 앞서 보았던 모후산이 멀리 보인다.

시멘트도로

9봉 중 2개봉

천왕산

모후산


2시 13분, 기지국 정문 직전에서,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오른쪽 숲길로 들어선다. 2시 17분, 임도에 내려서고, 1분 후, 두 번째 통신탑을 지나, 밤나무단지를 통과한다. 12시 24분, 갈림길에서 임도를 버리고 왼쪽 산길로 들어서니, 시야가 트이며. 천왕산 아래 마을이 그림 같고, 지나온 능선이 뚜렷하다.

두 번째 통신탑

 

밤나무 단지

갈림길, 좌

천왕산과 그 아래 마을

지나온 능선


표지기들이 요란한 능선길을 오른다. 2시 27분, 구봉산 정상(349m) 직전, 고도 약 340m 지점에서 능선이 분기한다. 직진 능선 길은 나뭇가지로 막아 놓았고, 오른쪽 내리막 능선에 표지기들이 보인다. 오른쪽 비탈길로 내려선다. 2시 35분, 쌍묘에 이르러 왼쪽으로 진행하고, 2분 후, 묘 3기를 지나, 갈림길에 이르러 왼쪽 산판길로 들어선다.

갈림길, 우


2시 44분, 다시 헐벗은 묘 2기를 지나고, 갈림길을 만나, 직진한 후, 3분 뒤에 산판 길을 버리고 오른쪽 산길로 들어서서, 2시 53분, 통성대부 수원백씨 합장묘에 이른다. 시야가 확 트인 묘역에 서서, 남서쪽으로 가야할 천운산 줄기를 바라보고, 남쪽 조망을 카메라에 담는다.

통정대부 수원 백씨 합장묘 묘석

묘역에서 본 천운산

남쪽 조망


아름다운 숲길을 지나, 산불이 났던 곳 같아 보이는 헐벗은 지역으로 나온다. 차 소리가 가깝고, 저 아래로 서밧재가 내려다보인다. 2시 58분, 해주최씨 묘를 지나 묘역으로 이어지는 넓은 길을 따라 내린다. 반짝이는 저수지, 황금빛 논, 그리고 푸른 하늘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길 양쪽으로 억새가 하늘거린다. 3시 2분, 회장님이 막걸리 병을 들고 기다리는 버스에 도착한다.

산불지역

가을풍경

서밧재

서밧재로 내려서는 길


오늘은 고향이 이 근방인 부부대원이 뒤풀이 자리를 마련한다. 대원들이 모두 하산하고, 하산주로 목을 축인 후, 3시 30분 경, 버스는 화순읍으로 향한다. 뒤풀이 장소는 다슬기 전문집이다. 맥주잔, 소주잔이 돌고, 다슬기 수제비, 다슬기 탕 등 모처럼 별식을 즐긴다.


귀로, 야구중계가 끝나고, 축구가 시작되기 전, 강호동이 나오는 진기 쇼가 진행된다. 7시가 넘어, 축구중계가 시작됐을 터인데도, 채널을 돌리라고 소리를 지르는 남자대원이 하나도 없다. 결국 쇼가 끝난 후, 후반전에 들어서야 축구중계를 본다. 다른 산악회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남자는 여자하기에 달렸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08. 10, 13.)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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