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촌에서 본 안양산(853m)


2008년 8월 9일(토).

무주공산의 안내로 호남정맥 유둔재 구간을 산행한다. 코스는 『노가리재(320m/2Km)-까치봉갈림길(424m/3Km)-새목이재(370m/1.2Km)-어신이재(370m/1.5Km)-유둔재(270m/2.5Km)-백남정재(380m)』까지 마루금 약 10.2Km를 걷고, 1Km 정도 남쪽으로 떨어져 있는 무동리 수구촌으로 하산한다.


덥다. 7일이, 입추, 8일이 말복이다. 말복 날 서울의 최고기온이 35.4도라고 한다. 장마가 끝났는지, 연일 맑은 날씨에 불볕더위가 계속된다. 새벽에 일어나서 뒷바라지를 하던 집사람이 한 마디 한다,


"맥 산행에는 방학도 없나...?" 

 

나이를 먹으면 체력이 떨어지고, 적응력이 무뎌져, 이 더위 속에서 무리를 하다 더위라도 먹게 되어, 동행한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그러니 자제할 줄도 알라는 고마운 충고다. 하지만 말없이 배낭을 메고 대문을 나선다.


역시 더위 탓인 모양이다. 버스 안 여기저기에 빈자리가 눈에 뜨인다. 기름 값 내기도 빠듯할 듯싶다. 온통 녹색으로 뒤덮여, 보는 이의 마음까지 파랗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수구촌, 보호수로 지정된 커나란 느티나무 아래, 시원한 정자에서 동네잔치가 벌어진다. 시원한 콩 국수에 열무김치, 도가니탕에 소주와 막걸리, 동네 어르신들이 거나하게 취한다.


"회장님, 저 땀 흘리는 것 좀 봐. 무척 힘들겠네."


허리가 기역자로 꺾인 할머님은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회장님이 무척 안쓰러운 모양이다.


오늘 구간에는 이름이 붙은 산이 없다. 까치봉(424.3m)이 있으나 마루금에서 남쪽으로 조금 벗어나 있다. 가장 높은 곳이 493m봉이다. 마루금에 봉 하나 없어 아쉬웠던 모양이다. 누군가가 최고봉이라고 명명해 놓았다. 그러니 노가리재에서 유둔재까지는 엎 다운이 거의 없는 비교적 편한 길이다. 하지만 그 다음의 유둔재에서 무등산까지는 1,000m 가까운 고도차를 보이는 급 오르막이다. 오늘은 백남정재까지 그 심한 오르막의 맛보기만 하고 수구촌으로 탈출한다. 백남정재에 이르는 길이 생각보다 멀어, 도중에 만나는 안부에서 잘못 탈출할 가능성이 크다.


버스는 호남고속도로를 버리고 887번 지방도로를 타고 남으로 달린다. 맹리에서 시멘트도로로 들어서고, 이어 2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구불구불 고도를 높이더니, 10시 47분, 노가리재에 도착, 들머리에 바짝 붙는다.

노가리재로 오르며 버스에서 본 남면 풍광

버스에서 내려서니 바로 마루금이다.


오늘의 산행 기록은 아래와 같다.

『(10:47) 노가리재/산행시작-(10;53) 임도-(11:04) 첫봉-(11:08) 능선분기, 좌-(11:18) 안부사거리, 직진-(11:21) 갈림길, 좌-(11:30) 능선분기, 좌/이정표/한시-(11:34~11:35) 최고봉-(11:47) 까치봉 갈림길/이정표-(12:00) 능선 오른쪽 우회-(12:06) 480m봉, 좌-(12:12) 이정표-(12:28) 안부-(12:33) 봉, 좌-(12:46~13:06) 간식/휴식-(13:11) 새목이재-(13:29) 456.5m봉-(13:37) 어산이재/외팔이 이정표-(13:51) T자, 좌-(14:01) 우 꺾임/오른쪽 사면길-(14:05) 가족묘/이정표-(14:07) 임도-(14:10) 이정표-(14:13) 유둔재-(14:14) 오른쪽 산길-(14:19) 임도-(14:20) 갈림길, 우-(14:21) 봉, 좌-(14:28) 묘 2기-(14:39) 420m봉, 좌-(14;44) 갈림길, 우-(14:45) 갈림길, 우-(14:46) 안부 사거리-(15;07) 447.1m봉-(15:13) 봉, 좌-(15:19) 송전탑 안부-(15:20) 임도 삼거리, 우-(15:21~15:29) 잡목지대-(15:32) T자, 우-(15:35) 봉-(15:40) 안부-(15:44) 산죽밭-(15:53) T자, 좌-(15:54) 420m봉-(15:58) 백남정재-(16:12) 무둥촌-(16:17) 수구촌』 간식 20분, 마루금 4시간 51분, 날머리 19분, 총 5시간 30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소나기라도 내렸었는지 가파른 진흙길이 물기를 머금어 미끄럽다. 나무에 매달려 절개지를 오른다. 이윽고 임도에 들어서지만 바로 임도를 버리고 오른쪽 산길로 접어든다. 11시 4분, 고도 약 440m정도의 첫 번째 봉우리에 오른다. 비로소 오르막이 끝난 것이다. 4분 후, 능선 분기봉에서 왼쪽으로 내려선다. 등산로는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능선분기봉, 좌


아름다운 송림사이로 한동안 평탄한 산책길이 이어진다. 이윽고 50m정도의 고도차를 보이는 안부 사거리에 내려서서 직진하고,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자, 이정표가 있는 해남터 갈림길에 이른다. 뜻밖에 이곳 장성군 출신의 조선시대 유학자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한시가 눈에 뜨인다. 한여름에 이 길을 걸으며 느낀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한시의 함축미가 뛰어나다.

송림사리로 이어지는 산책로

 

이정표

산속에서 만난 시


갈림길에서 왼쪽 오르막을 오른다. 11시 34분, 돌탑과 정상표지판이 있는 최고봉에 이른다. 지도상에는 없는 이름이지만, 산 이름 붙은 곳이 하나도 없는 이 구간에서 이곳이 가장 높은 곳이라는 것을 강조한 작명이 아닌가 싶다. 잠시 가파른 내리막을 달려내려, 능선길과 우회로가 갈리는 곳에서 능선길을 따라 오른다.

최고봉 돌탑

최고봉 표지판


11시 47분, 이정표가 있는 까치봉 갈림길에 오른다. 이정표에는 삿갓봉 갈림길이라고 표기돼 있다. 이름이 붙은 유일한 봉우리인 까치봉(424.3m)은 마루금에서 남쪽으로 300여 미터 벗어나 있다. 조망이 좋다는 소리도 없고, 봉 따먹기 전문도 아닌 데, 이 더위에 까치봉을 왕복할 까닭이 없다. 왼쪽 마루금으로 바로 내려선다. 등산로는 이제 북동방향으로 이어진다.

삿갓봉 갈림길 이정표


12시 6분, 480m봉에 올라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좁은 날등길이 이어진다. 왼쪽은 거의 절벽 수준이다. 다시 이정표를 지나고, 한동안 평탄하게 이어지던 등산로가 내리막으로 변하더니, 능선이 넓어진다. 12시 33분, 봉우리 하나를 넘고, 왼쪽으로 내려서서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을 오른다. 길가에서 장군님과 식사를 하던 젊은 대원이 술 한 잔하고 가라고 부른다. 불감청(不敢請)이지만 고소원(固所願) 인데 어찌 마다하겠는가?

480m봉

울창한 숲 안부


합석하여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고, 헬레니즘 주(백세주와 보드카의 혼합주)를 한잔 씩 마신다. 이어 칙술, 그리고 이름 모를 과일주 잔이 돈다. 안주는 젊은 대원이 준비한 마른 멸치, 장군님이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도마도를 갈아 만든 주스, 그리고 젊은 대원이 제기한 남자의 사망론(四亡論)이다. 문고리를 잡고 일어설 힘만 있으면 삼망(三亡)은 면 할 수 있다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무등산이 보인다.

휴식하며 나뭇가지사이로 본 무등산


앞에서 식사를 마친 송 선배가 지나가고, 뒤따라 소슬 님을 선두로 무주공산의 삼총사가 요란하게 행진한다. 오늘은 달따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어 다복한 부부 팀들이 그 뒤를 따른다. 요컨대 본대(本隊)가 모습을 보인 것이다. 걸음이 느린 나는 서둘러 배낭을 메고 이들 뒤를 따른다. 1시 11분, 이정표가 있는 새목이재를 지난다.

새목이재


아름다운 숲길이 이어진다. 1시 30분, 삼각점<독산 409 1985 재설>이 있는 456.5m봉을 지나고, 7분 후 외팔이 이정표가 있는 어산이재를 통과한다. 이제 유둔재까지는 줄곧 내리막이지만, 두어 차례 가벼운 오르막을 거쳐야한다. 2시 1분,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확 꺾여, 능선을 우회하며 남쪽으로 이어진다. 이어 이정표가 있는 가족묘를 지나고, 임도로 내려서서, 2시 13분, 2차선 아스팔트도로가 지나가는 유둔재에 도착한다.

456.5m봉 삼각점

어산이재

시원한 임도

유둔재

유둔재 표지 현수막

유둔재의 교통 표지판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조금 이동하다, 표지기의 안내로 오른쪽의 뚜렷한 산길로 들어선다. 4분 후, 등산로는 잠시 임도로 내려섰다, 바로 오른쪽 가파른 능선으로 이어진다. 2시28분, 묘 2기를 지나며, 420m봉을 올려다보고, 10여분 정도 가파른 오르막길을 지나,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급하게 내려선다.

도로를 따라 걷다 오른쪽 숲으로

묘 2기와 420m봉

 

420m봉 정상


이어 갈림길을 만나 오른쪽으로 진행하고, 사거리 안부에 내려섰다, 직진하여 3시 7분, 삼각점<독산 445, 1985 복구>이 있는 447.1m봉에 오른다. 시야가 막혀 조망은 별로다. 447.1m봉을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봉우리 하나를 다시 넘고, 부드러운 산판길을 걷다, 오른쪽 숲으로 들어선다. 이어 등산로는 송전탑이 있는 안부에 내려서서 임도로 이어지고 삼거리에 이른다. 마루금은 오른쪽이다.

447.1m봉 삼각점

송전탑


거친 잡목지대가 이어진다. 키를 넘는 잡목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나아간다. 방향은 맞는 것 같은데 표지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불안하다. 등산로가 오르막으로 이어지며 비로소 왼쪽에 표지기들이 보인다. 반갑다. 8분 정도 길게 이어지던 잡목지대가 끝나고 등산로는 참나무 숲 오름길을 가파르게 오른다.

잡목지대에서 반가운 아군 발견


3시 32분, T자 능선에 올라 오른쪽으로 진행하고, 3분 후 고도 약 400m정도의 봉우리를 넘어, 하늘을 가린 철쭉능선을 내려서서, 3시 40분, 안부에 이른다. 왼쪽으로 희미한 내리막길이 보이지만, 직진하여 산죽 밭을 지난다. 송전탑을 지난 지 거의 30분이 지난 시각이다. 지나쳤던 안부가 백남정재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어 온 길을 되돌아서는데 씩씩한 삼총사가 모습을 보인다.

고도 400m 정도의 봉우리를 넘고

하늘 가린 철쭉능선을 지난다.


부회장님이 장군님께 전화를 한다. 봉우리 하나를 더 넘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야 백남정재라는 대답이다. 삼총사들이 앞장을 서서 오르막길을 오른다. 3시 53분, T자 능선에 올라, 왼쪽으로 진행하고, 1분 후, 420m봉에 오른다. 발 빠른 삼총사들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420m봉


가파른 내리막길을 달려 내린다. 3시 58분, 돌탑이 있는 안부 사거리, 백남정재에 이른다. 산악회 표지판이 왼쪽으로 내려서라고 지시한다. 어둑한 숲속으로 뚜렷한 산길이 이어지고, 간간이 표지기들이 보인다. 맥꾼들이 탈출로로 자주 이용하는 곳인가 보다. 4시 4분, 임도에 내려서고, 4시 12분, 무릉촌 버스 정류장에 이른다. 길가의 의병 전적비가 시선을 끈다.

백남정재

무등촌

의병 전적비


왼쪽 저 아래, 정자 옆에, 산악회 버스가 보인다. 시멘트도로를 따라 돌담이 둘러쳐진 오래된 마을, 수구촌으로 들어서서, 4시 17분, 정자 옆에 주차한 버스에 도착한다. 회장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배낭을 버스에 내려놓고, 시원한 콩국 한 대접을 벌컥벌컥 들여 마신다. 이어 커다란 배수관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에 땀을 닦고, 옷을 갈아입은 후, 뒤풀이 자리로 끼어든다.

수구촌 마을길


시원한 정자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대원들이 함께 어울려 뒤풀이를 즐긴다. 정자에 걸터앉아 한 없이 평화로운 마을풍경에 마음을 빼앗긴다. 파랗게 펼쳐진 논, 하얀 길, 옹기종기 모인 집들, 그 뒤로 우뚝한 무등산(1187m)과 안양산(853m)...녹색 캔버스에 자연과 농부가 솜씨를 발휘해 그린 멋진 그림이다. 가히 별천지다.

그린 파라다이스


이윽고 모든 대원들이 하산하여 식사를 마치자, 버스는 6시 3분,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008. 8. 11.)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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