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초 정선이 그린 사직단()

 

얼마 전 젊은 여성 유튜버의 소개로 서울에 서순라길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서순라길은 조선시대 도성 안팎의 치안을 담당하던 순라꾼들이 순찰을 돌았던 종묘 서쪽 골목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은 일본강점기 이후 조선왕조 때 임금님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종묘 돌담 옆에 판잣집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섰던 곳이었다.

 

종묘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1995, 서울시는 서순라길 조성에 나섰다. 종묘 왼쪽 돌담길을 따라 창덕궁과 창경궁을 향해 북쪽으로 이어지는 약 800m의 거리에 조성된 이 길은 지난해 정비 공사를 마무리했다. 시는 차량들이 점령했던 차도를 확 줄여 일차선 일방통행로 만들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차량통행을 금지했다, 아울러 인도를 3m로 넓히고, 돌로 포장하여 종묘 돌담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산책길로 바꾸었다.

 

서순라길은 주변 한옥과 길을 정비한 후, 전통문화와 귀금속 특화 거리로 단장되었다. 한옥 카페와 찻집, 레스토랑, 주얼리 공방과 가게가 속속 들어서면서, 이런 사실들이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이상 관련자료 발췌)

 

서순라길(펌)

 

 서순라길 풍경

 

 

나는 서울에서 낳고,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생활을 해온 서울사람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종묘참배를 하지 못하고 지나왔었는데, 서순라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심한 자괴감에 빠진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연극이나 영화를 보다 보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신하들이 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옵소서.”라고 읍소하는 대사를 자주 접하게 된다. 여기서. 종묘는 조선왕조 왕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고, 사직은 땅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보니, 종묘사직은 바로 국가, 즉 조선을 상징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다.

 

20211021()

오늘은 열일 제쳐놓고, 가까이에 있어서 꼭 가보아야 하는 곳이지만, 언제든지 가볼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사직단과 종묘를 둘러보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우선 사직단부터 먼저 찾기로 하고 9시 정각 사직단 대문 앞에 도착한다.

 

 사직단 대문

 

 사직단 대문 현판

 

 사직단 대문 안내

 

보물 제177호인 사직단 대문과 안내도 등을 둘러 둘러보고, 옆에 있는 관리소를 찾아, 사직단 북문으로 들어가, 안을 둘러보고 싶다고 했더니, 관리인은 체온을 재고, 이름과 전화번호를 기록한다. 그리고 사직단 팜프렛을 건네주며, 따라오라고 친절하게 앞장을 선다.

 

 사직단 해설

 

사직단 안내도

 

사직단은 두 차례 큰 수난을 겪었다. 첫 번째는 임진오란 때 도성을 점령한 왜군들은 사직단을 통째로 불살라버렸고, 그 후 오랜 시간을 거쳐 복원된 사직단도 한일합방 후, 일제는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하고자, 사직단을 훼손하여, 성지를 공원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훼손된 사직단은 1980년대에 담장과 부속건물 일부가 복원됐으나 아직도 많은 부분이 복원을 기다리고 있다(위 안내도에 표시된 복원예정 대상 참고)

 

 

이윽고 북신문에 이르자 관리인은 문을 열어 주면서, 돌길은 밟지 말고 잔디 위로 이동하면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한다.

 

 북신문

 

사단(社壇)과 직단(稷壇)은 두 개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각 담장에는 사방에 유문(壝門)과 신문(神門)을 두었는데, 바깥 담장의 북신문은 신이 드나드는 문이라 하여 특별히 삼문(三門)으로 되어 있다. 근래에 복원 한 것이라고 한다.

 

 북신문 쪽에서 본 사직단

 

향축로, 판위, 북유문과 유담(壝垣) 그리고 서신문으로 이어지는 어로가 보인다. 삼도(三道)로 구성된 향축로는 신의 통로이기 때문에 임금도 밟을 수 없고, 오직 제관만 밟을 수 있다. 현재의 배치에는 판위가 향축로를 막고 있어서, 향후 판위를 오른쪽으로 옮길 것이라고 한다,

 

 남신문 쪽에서 본 사단()과 직단()

 

정사각형의 사단(社壇)과 직단(稷壇)이 동서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3단의 장대석으로 구획하고, 사방에 제단을 설치하였으며, 내부는 다섯 가지 색깔의 흙으로 채웠다

 

 남신문과 신실(神室)

 

태사지신(太社之神), 후토씨지신(后土氏之神), 태직지신(太稷之神) 후직씨지신(后稷氏之神)4신 위패를 모신 곳이다, 1988년에 복원했다고 한다.

 

018 서신문과 어로(御路)

 

왕은 서신문으로 들와 어로를 통해 판위에 선다고 한다.

 

이상 두 개의 담장과 신문, 유문, 그리고 사단과 직단, 신실 등의 기록은 사직단 팜프렛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15분 동안 사직단 4개 신문 안을 둘러보고 나니, 시간이 많이 남는다. 하여 단군성전과 황학정을 둘러보려고, 관리인에게 고맙다는 인사 겸 황학정 가는 길을 물으려고 다시 관리 사무소로 내려선다.

 

 관리사무소로 내려서고

 

관리인은 웃으면서 사직단을 나가서, 오른쪽 돌담길을 따라 오르는 방법과 사직단 안에서 탐방로를 따라 오르다, 직진하여 계단을 오르고, 이어 만나는 길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는 방법 2가지를 알려준다.

 

황학정 가는 길

 

관리인과 헤어져 사직단 탐방로를 따라 오른다. 다시 북신문을 지나고 조금 더 올라, 사직단 탐방로가 왼쪽으로 굽어 지는 갈림길에 공사장 차단막이 보아고, 직진방향으로는 계단길이 이어진다.

 

 공사장 차단막

 

공사장 안내를 보니 서신문 뒤쪽 진사청 권역의 건물들을 복원하는 공사인데, 금년 1222일까지 진행한다고 한다. 직진하여 돌계단을 올라, 만나는 도로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다, 나지막한 펜스 너머로 보이는 공사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황학정 가는 길

 

펜스 너머로 본 공사현장

 

이어 만나는 인왕산 갈림길 안내를 따라 진행하여. 황학정 입구에 이르고, 10시에 문을 여는 국궁 전시관을 지나, 황학정에 도착하여 주위를 둘러본다.

 등산로 안내 / 인왕산 가는 길

 

 황학정 입구

 

 국궁전시관

 

국궁전시관은 국궁의 역사, 우리 활의 우수성과 특수성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된 곳이다. 5개의 전시관과 체험관, 기증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공간과 체험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체험관은 우리 전통 활 제작 기법을 체험해볼 수 있는 활 만들기, 활쏘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 등을 운영하여 국궁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황학정

 

황학정(黃鶴亭)은 원래 광무 3(1899)에 활쏘기를 장려하는 고종의 칙령에 의해 경희궁 회상전(會祥殿) 북쪽 담장 가까이 세웠던 궁술 연습장이다.  일반 백성들에게 개방되었는데, 고종 자신도 황학정을 자주 방문하여 활쏘기를 즐겼다고 한다,

 

1922년 일제가 경희궁을 헐면서 경희궁내 건물들을 일반에게 불하 할 때, 이를 받아 사직단 북쪽 등과정(登科亭) 옛터인 현 위치에 이축하였다. 1974115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다.

 

황학정을 둘러보고 큰 길로 나와 단군성전으로 향한다.

 

 단군성전 입구

 

 안내문

 

 단군성전

 

 단군 초상

 

이제 10시가 가까운 시각이다. 종묘로 향한다.

 

돌아 본 사직단 돌담길

 

 

(2021.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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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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