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전화 벨 소리에 잠이 깬다. 시계를 보니 5시 30분이다. 전화기를 들자, 가이드 양반이,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모닝콜입니다." 라고 한다.


6시 30분에 모닝콜을 한다더니,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이 양반, 웃으며, 아짐씨들 화장할 시간 충분히 드리려고 일찍 전화 했다는 대답이다. 공자님도 주무실 때 잠을 방해하면 화를 내셨다는데, 어제 쥬빌리쇼를 보고 들어와, 새벽에야 겨우 잠자리에 든 걸 뻔히 알면서도 단잠을 깨우더니, 새벽부터 농담을 하잔다.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이드 입장에서는 열심히 하느라고 그런 걸 것이라고 좋게 생각해 버리고 만다.


2006년 5월 1일. 미국여행 나흘째 되는 날이다. 다음 관광지인 요세미티로 가기 위해, 오늘은 하루 종일 버스로 이동하여, 라스베가스에서 약 400마일 떨어진 프레스노(Fresno)에서 일박 할 예정임으로, 부족한 잠은 버스에서 잘 수 있겠다.


7시 30분, 일행은 버스에 올라 아침식사를 하러, 한국식당으로 이동한다. 아침에 보는 라스베가스는 인적도 없고, 조용하다. 어제 밤 불야성을 이루었던 모습과는 딴판으로 초라하기까지 하다. 라스베가는 과연 밤의 도시다.

아침에 보는 라스베가스


아침식사를 마친 일행은 I-15번 도로를 타고 내려, 다시 모하비 사막을 달린다. 이제는 낮이 익은 사막 풍경이다. 옆자리의 집사람은 깊은 잠에 빠져 든 모양이다. 끄덕 끄덕 조는 사이에 버스는 두 시간 여를 달려, 칼리코(Calico)의 유령의 도시(Goast Tawn)에 도착한다.


총을 빼어든 보안관 차림의 사나이가 버스에 올라 우리들을 환영한다. 그의 뒤를 따라 버스에서 내래선다. 낡은 판자촌 뒤로, 붉게 보이는 황량한 산 능선 위에, 하얀 색으로 커다랗게 써 놓은 CALICO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칼리코 은광촌

산 중턱에서 내려다 본 유령의 도시


칼리코는 바스토우(Barstow)에서 서쪽으로 약 8마일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1881년 이곳에서 은광(銀鑛)이 발견되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창 때에는 약 5,000명이 거주하는 제법 큰 타운을 이룬다. 하지만 이후 은값이 폭락하자, 은광은 폐광이 되고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 버려, 그 후 약 40년 동안, 이 도시는 유령의 도시로 버려진다.


1951년 월터 나트(Walter Knott)라는 사람이 이 유령의 도시를 옛 모습으로 복원하여 카운티에 기증한 이후, 옛 서부시대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민속촌으로 변신하여 관광객들을 끌어 모은다. 특히 주말에는 주변 황야에서의 캠프파이어와 거리의 유흥 등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모인다고 한다.

칼리코 복원 기념비 - 아래에 월터 나트 씨의 사인이 보인다.

칼리코 유령의 도시 안내판

목공소 - 기념품을 팔고,

식당 - 식사를 할 수 있다.

역마차역

유치장과 형 집행장

메기광산, 오데스 철도 가는 길

폐쇄된 은광

학교 - 뒤로 보이는 산이 녹색을 띄고 있다. 은이 있다는 이야기란다.


유령의 도시를 둘러 본 일행은 바스토우에 도착하여, 다시 송 씨네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식당 앞에는 조은 관광에서 온 또 다른 버스가 정차해 있다. 2박 3일 일정으로 요세미티와 샌프란시스코를 광광할 사람들을 태우고 LA에서 아침에 출발한 버스다. 이들 관광객들은 우리 버스로 옮겨 타고, 우리 일행 중, 2박 3일 일정으로 그랜드캐넌과 라스베가스 관광을 마친 사람들은 이 버스를 타고 LA로 돌아간다. 이제 바스토우는 농산물의 집산지외에, 한인 관광객들의 집산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셈이다.


바스토우에서 새 식구들을 태운 버스는 이번에는 58번 주도로를 타고, 거대한 캘리포니아주의 중앙을 가르며 북상한다. 캘리포니아주는 넓이가 404,815km²로 알래스카, 텍사스에 이어서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주이고, 인구는 약 3,400만 명으로,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라고 한다.


석유를 비롯한 풍부한 지하자원, 오렌지, 아몬드, 포도, 쌀 등의 농산물과 헐리웃의 영화산업. 실리콘 벨리의 첨단산업 등으로, 캘리포니아주의 GDP는 단위국가들과 비교하더라도 프랑스를 능가하여 세계 제 5위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달러 약세에 힙 입어 GDP 규모가 세계에서10위를 점한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는 우리도 당당히 대국(大國)에 속한다. 부자동네의 안마당을 가로 질러 달리다 보니, 경쟁이 심한 국제사회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우리나라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직도 모하비 사막을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먼 산에는 풍력 발전기들이 마치 바늘처럼 솟아 있고, 너른 사막에는 수많은 비행기들이 하얗게 늘어서 있다. 점점 헐벗은 산들이 가까워지고, 이들 산 능선을 타고 끝없이 이어지는 풍력 발전기들이 장관을 이룬다. 캘리포니아는 사막지대의 뜨거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고, 그 빈자리에 바다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1년 내내 바람이 그치질 않는다고 한다. 이 바람을 이용해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지나는 중고 비행기 매매장


캘리포니아의 테하차피(Tehachapi)를 중심으로 하는 대규모 풍력 단지에서 약 2만여 대의 풍력발전기를 가동하여, 연간 38억k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1대당 $3만~$5만 정도면 개인이 이 풍력발전기를 자가용 발전기로 사용할 수가 있다 점이다.

풍력 발전소


버스는 베이커스필드(Bakersfield)에 접근하여, 휴게소에 정차한다. 베이커스필드는 농기계 생산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도로변 여기저기에 트랙터 등 다양한 농기계들을 진열한 곳들이 보인다. 베이커스필드를 지나면서 도로가 달라진다. 이번에는 99번 주도로를 타고 달린다.


차창 밖의 풍경이 바뀐다. 광활한 초지가 펼쳐지고, 나지막한 구릉들이 이어진다. 군데군데 커다란 나무 주변에는 방목하는 소 떼들이 모여 있다. 이곳에서 자라는 목초들을 건조시킨 마초는 캘리포니아의 5대 농산물 중에 하나라고 한다.

너른 방목장

이어서 오렌지, 포도, 아몬드 농장들이 스쳐 지나간다. 한 농가에서 약30만~60만 그루를 재배한다고 한다. 가히 장관이다. 넓은 평야를 가진 캘리포니아는 1년 내내 기후의 변화가 없고,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눈 녹은 물을 끌어다가 관개수로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어 흉년이나 가뭄이 없이 이처럼 풍부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 지도

캘리포니아는 1542년 스페인의 후안 카브리요가 발견하고, 1769년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샌디에이고에 최초의 포교원을 세운 후, 그 후계자들이 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세운 21개의 포교원은 농업과 목축업의 중심지로 발전한다. 하지만 1800년대 초, 스페인 내란으로 스페인 함대가 철수하자, 이 땅에는 멕시코인 들이 들어와 살면서 멕시코 땅이 된다.

아몬드 농장 - 달리는 버스에서 찍어 상태가 나쁘다.

한편 인디언들과 싸우며, 사막을 건너고, 로키산맥을 넘어, 이곳에 정착했던 미국인 정착민들은 이곳의 통치권을 장악하고, 1846년 캘리포니아 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한다. 미국의 제 11대 포크 대통령은 이들을 지지하여 멕시코에 선전포고를 한다.


1848년, 전쟁에서 패한 멕시코는 지금의 뉴멕시코 주, 유타 주, 네바다 주, 애리조나 주, 캘리포니아 주, 텍사스 주, 서부 콜로라도 주의 거의 모든 영토를 미국에 양도한다. 미국은 대가로 멕시코에 1,500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하고 또 멕시코 정부가 미국 시민에게 진 빚을 대신 갚아주기로 한다. 그 후 1851년 캘리포니아는 31번째로 합중국에 가입한다.


여기까지는 갤리포니아를 미국이 차지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정사(正史)이지만, 현지 가이드는 숨은 이야기라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준다. 전쟁에 이겨, 무력으로 멕시코 땅을 강탈했다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 미국은 1,500만 달러에 이 땅을 사 들이는 매매 형식을 취하지만, 실제로는 멕시코 정부에게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매매계약의 대금 지급조건에 멕시코 정부가 캘리포니아 지역에 멕시코 인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철수 시킨다는 단서가 있기 때문이란다.


돈 한 푼 못 받고 땅을 판 멕시코 정부는 기회 있을 때 마다, 세계 여론에 호소하면서, 캘리포니아 반환을 요구한다. 이에 미국은 젊잖게 새로운 제안을 한다.


"좋소, 돌려주겠소.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 많은 투자를 한 것이 사실이요.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가 이 땅에 건설한 고속도로 건설비는 받아야 하겠소, 그럼, 돌려주리다."


고속도로를 건설해 본 경험이 없는 멕시코 정부는 좋아라고, 이 제안에 응한 후,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캘리포니아에 건설된 고속도로의 투자비용을 산출해본다. 그 결과 놀랍게도 멕시코 전체를 두 번 팔아야 조달할 수 있는 규모의 자금이 투자됐다는 대답을 듣는다.


멕시코 정부는 땅도 빼앗기고, 교활한 미국인들에게 속아, 이처럼 두 번씩이나 바보가 된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멕시코 인들은 캘리포니아를 미국의 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도 미국의 국경을 넘다가 잡힌 멕시코인 들은 "우리 땅에 갈려고 한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한다고 한다.


오랜 시간 버스여행을 하다 보니, 가이드는 승객들의 무료함을 덜어주기 위해, 위의 야담과 같은 이야기 외에도, 많은 웃기는 이야기를 해 주지만, 지금은 다 잊어버리고,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유일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한 가지를 소개한다.


삼복더위에 아끼는 후배 한 사람이 찾아온다. 마침 점심시간도 되어 경상도 선배가 후배에게 묻는다. "니, 개 묵나?", 같은 말을, 전라도 선배는, "자네, 보신탕은 하능가? 라고 하는데, 충청도 선배는 뭐라 할까요? 아시는 분은 답을 댓글에 남기시기 바랍니다. 힌트하나 드리죠. "개의 혀"를 뭐라고 하지요?

프레스노의 꽃나무 가로수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동안, 버스는 프레스노(Flesno)에 도착한다. 가이드는 이곳은 멕시코 노동 이민이 많은 곳이라 위험한 곳이라고 주의를 준다. 중국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일행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홀리데이 인 호텔에 여장(旅裝)을 푼다. 요세미티로 향하는 내일은 4시 기상, 5시 식사, 5시 30분 출발이란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2006. 6. 11.)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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