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 속의천왕봉


금년 1월 8일(화). "화요맥"의 안내로 시작한 낙남정맥 종주가 그 첫 구간을 마치고는 손님이 없어 중단된다. 그 이후 줄곧 낙남정맥을 안내하는 산악회를 주의 깊게 찾아보았지만 헛일이다. K산악회에서는 두 차례나 회원모집을 시도해 보지만, 역시 성원이 안 되는지 발표했던 산행계획을 잇달아 취소한다.


할 수 없어 심산(深山)과 둘이서, 2박 3일 일정으로 끊어, 낙남정맥 종주를 시도해 보기로 하고, 11월 11일 출정을 한다. 첫 번째 2박 3일 산행일정은 아래와 같다.


- 11월 11일(화) : 청학동-묵계치, 약 5,2Km, 묵계리에서 숙박

- 11월 12일(수) : 묵계치-돌고지고개, 약 14.1Km, 횡천면 안양골에서 숙박

- 11월 13일(목) : 돌고지고개-원전고개(2번국도), 약 12.8Km


청학동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하동에서 접근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인데 서울에서 하동 가는 버스의 배차시간이적당하지가 않고, 운행시간도 5시간이 나 걸린다. 할 수 없이 하동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진주를 들렀다 하동으로 향하게 된다. 하동과 청학동 간은 하루 5회 버스가 운행하지만, 우리들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11시, 13시 두 번뿐이다. 진주에서 청학동 가는 버스도 하루 두 번, 07:10, 15:50에 있지만 이 역시 우리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결국 최선의 방법은 6시발 진주행 버스를 타고, 9시 40분 경 진주에 도착한 후, 10발 하동 행 버스에 올라, 하동에서 11시발 청학동행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이 되지 않는 타이트한 스케줄이다.


요즈음은 면에서도 홈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어 숙박할 곳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가 않다. 당초 계획은 첫날 고운동치에서 산행을 마치고, 묵계리에서 숙박하는 것이 좋을 듯싶어, 하동군 청암면의 홈 페이지를 검색하고, 총무담당자에게 전화를 한다. 취지를 설명하고, 묵계초등학교 부근에 민박할 곳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니, 공무원 입장에서 특정업체를 소개하기가 거북하다며, 동네 이장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어, 이장으로 부터 '알프스 산장'을 소개 받는다. 둘째 날 돌고지고개 부근의 민박업소도 같은 요령으로 청암면 사무소에 전화를 하여 '연화산장'을 소개 받아 예약을 한다.


2008년 11월 11일(화).

서울 남부버스터미널에서 6시에 출발하는 진주행 버스를 타려고, 5시 33분, 강남구청역을 첫 통과하는 지하철에 오른다. 5시 40분, 고속버스터널에 도착하고, 3분 후, 3호선 승차장으로 이동하여 수서행 열차를 기다린다. 당초의 생각은 늦어도 5시 50분이면 열차를 탈수 있고 5분 후면 남부터미널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50분이 넘어도 열차가 도착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택시로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표를 사고 기다리고 있을 심산에게 전화를 하여 상황을 알린다. 5시 56분, 열차가 도착하고, 6시 3분,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지만, 3분이 늦어 첫차를 놓치고, 6시 30분 발, 진주행 버스에 오른다. 3분 때문에 금쪽같은 30분을 날려버린 것이다. 왠지 출발부터 불안하다.

산청을 지나며 본 창밖 풍경


버스는 10시 5분, 예정보다 빠른 시간에 진주에 도착한다. 하지만 10시발 하동 행 버스는 이미 출발한 후라, 기다렸다 10시 30분 차를 타고, 11시 30분 경, 하동에 도착한다. 이제 청학동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택시로 이동하거나 아니면 1시간 반을 기다렸다, 1시발 버스를 타는 것이다. 대기하고 있는 택시 기사에게 청학동까지 요금을 묻는다. 메타요금을 받는데 30,000원 정도 나올 것이라는 대답이다. 버스요금은 1인당 4,200원이다.

청학동행 버스 시간표


큰 차이는 없지만, 점심시간이 가까운 때라, 하동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1시버스를 이용하기로 한다. 버스터미널 부근 시장 안에 있는 정육점을 겸한 식당을 찾아들어 돼지고기 주물럭을 주문한다. 맛이 좋아 양껏 포식을 했는데도 2사람의 식대가 14,000원이다. 서울보다 많이 싼 느낌이다.

하동


청학동 행 버스는 모처럼 하동으로 나들이 나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이용하는 모양이다. 버스에 오르기도 힘들어 하는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노인들이 좌석의 절반을 메우고 있다. 하동에서 청학동까지는 30Km가 넘는 거리다. 중간에 마을을 지날 때마다 노인들이 한 두 분 씩 내려, 청학동에 가까워지자, 버스 안에는 우리 둘만 달랑 남는다.


저 앞에 초등학생 한 무리가 모여 있다가, 버스가 오는 것을 보더니 우르르 달려온다. 청학동에 사는 학생들이 하교 시 이용하는 버스인 모양이다. 버스 안이 금방 왁자지껄 시끄럽다. 아이들의 옷차림이나 표정에서 전혀 시골 티를 찾을 수가 없다. 이윽고 2시 경, 버스는 청학동에 도착하고, 아이들은 기사양반에게 100원짜리 동전 한 개씩을 내밀고 차에서내린다. 우리는 귀여운 꼬마들과 작별을 하고 등산로 입구로 향한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4;05) 삼신봉 안내돌 표지/산행시작-(14:50) 샘터-(15:04) 삼신봉 갈림길-(15:28~15:35) 외삼신봉 정상-(15:42) 암벽-(15:44) 암봉, 왼쪽 우회-(15;52) 전망바위-(15:55) 능선안부-(16:11) 산죽 밭-(16;15) 삼거리, 좌-(16:24) 능선안부-(16:37) 암봉, 우 내림-(16:44~16:57) 산죽터널-(17:05) 묵계치-(17:32) 삼신봉 터널입구』들머리 59분, 마루금 2시간 1분, 날머리 27분, 총 3시간 27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돌표지, 이정표, 등산 안내도 등이 있는 등산로 입구를 지나, 텅 빈 매표소를 통과한 후, 돌 많은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오른다. 5시 정도에 오늘산행을 마친다면 고운동재까지는 무리일 터라, 묵계치에서 하산하기로 계획을 변경하니, 서두를 이유가 하나 없다. 왼쪽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청아하고, 산죽을 스치고 불어오는 바람결이 상큼하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한 가을 날씨다. 지난 1월, 캄캄할 때 내려왔던 곳이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낮이 익은 길이다.

등산로 입구

이정표

매표소 통과


삼신봉을 다녀오는 인근 주민들인지, 가벼운 차림의 등산객들이 마주 내려온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지나치면서도, 머리가 허연 늙은이 둘이 하산할 시간에 산에 오르는 것이 이상한지, 다시 뒤를 돌아보다, 눈길이 마주치자 황급히 외면을 한다. 2시 50분, 청학동 1.7Km를 알리는 이정표와 샘터가 있는 공터를 지나고, 3시 5분, 이정표가 있는 삼신봉 갈림길에 이른다. 도상거리 2Km, 고도차 약 400m의 들머리를 59분 만에 오른 것이다.

샘터

삼신봉 갈림길 이정표


왼쪽의 삼신봉 오르는 길은 뻥 뚫려 있는데, 오른쪽 외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나뭇가지들로 엄중하게 차단해 놓았다. 들어가지 말라는 소리겠지만, 다행이 50만원 범칙금을 물리겠다는 팻말은 보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차단물을 넘어 산죽밭 사이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외삼신봉으로 향한다. 삼거리와 외삼신봉 간의 고도차는 200m가 채 안 되는 구간이라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뒤돌아 본 차단물


3시 28분, 정상석이 있는 외삼신봉 정상(1,288.4m)에 오른다. 암봉이라 사방이 트여 조망이 그만이다. 게다가 운 좋게 날씨마저 쾌청하니, 발아래로 웅장하게 펼쳐지는 멋진 파노라마에 한껏 매료된다.

외삼신봉 정상

 지리산 주능선과 천왕봉, 왼쪽 영신봉

지나온 능선

가야할 능선

묵계리 방향의 조망

멀리 백운산 방향의 조망

70도 방향의 하늘금


외삼신봉을 내려서서 가는 로프가 바위 틈새에 끼어 있는 암벽을 내려선다. 발 딛을 곳, 손잡을 곳이 확실하여 크게 위험하지는 않다. 3시 44분, 커다란 암봉이 앞을 막아서고, 등산로는 이를 왼쪽으로 우회하는 곳에 이른다. 외삼신봉에서 묵계치 까지는 도상거리 약 2.5Km에, 고도차는 약 470m에 이르는 긴 내리막이지만, 마루금은 이처럼 5~6개의 암봉을 좌우로 우회하거나 넘으면서 고도를 서서히 낮춘다.

암벽

암봉을 좌로 우회하고


3시 52분, 전망바위에 서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3분 후 산죽이 무성한 능선안부를 지나, 왼쪽 사면 길을 걸으며 지나온 봉우리를 카메라에 담고, 산죽 터널을 통과한다. 4시 15분, 삼거리에 이르러, 왼쪽으로 떨어지는 우회로를 한 동안 따라 내리다 다시 주능선으로 진입하여 왼쪽 나뭇가지사이로 가야할 능선을 내려다본다.

산죽터널


다시 급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능선 안부를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다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 뒤돌아 지리산 주능선을 돌아보고 누군가가 잘 정비해 놓은 산죽 길을 지나 암봉으로 오르면서 제법 준엄해 보이는 지나온 능선을 돌아본다. 4시 37분, 암봉에 올라 오른쪽 급 내리막길을 내려서고, 이어 앞을 막는 커다란 바위를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주능선에 올라선 후, 바위 옆으로 석양빛에 물든 아름다운 천황봉을 돌아본다.

뒤돌아본 지리산 주능선

정비된 산죽길

지나온 봉우리

암봉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고


산죽밭길이 이어진다. 길을 가로 막고 쓰러진 고사목을 낮은 포목으로 통과하고, 키를 넘는 악명 높은 산죽터널을 지난다. 산죽터널 속에서 길을 막는 나무 등걸을 만나면 이를 타고 넘거나, 아래로 기어서 통과한다. 5시 5분, 억새와 잡목이 무성한 헬기장에 내려선다. 고도 815m인 묵계치다.

길을 막는 고사목을 낮은 포복으로 통과하고

산죽터널

터널속의 나무 등걸

묵계치


오늘 산행은 이곳에서 마감하고, 오른쪽 내리막길을 따라내려, 산죽 밭을 지나고 아름다운 낙엽송 숲을 통과한다. 점차 고도가 낮아지며 완만한 숲길이 아름답게 이어진다. 5시 21분, 숲을 빠져나오니, 별장 같은 집이 있고, 안마당에 찦차가 보인다. 도로를 따라 내려서서, 5시 32분, 삼신봉 터널입구에 이른다.

낙엽송 숲

숲을 벗어나 별장에 이르고

삼신봉 터널입구


민박집에 전화를 하니, 5분 정도 지나, 타이탄 트럭이 도착하고, 이어 청학동으로 통하는 1014번 지방도로변에 있는 '알프스 산장'에 도착한다. 목욕탕이 딸린 너른 방에 이미 따듯하게 난방을 해 놓았다. 샤워를 하고, 식당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6,000원짜리 산채정식으로 식사를 한다. 음식이 정갈하고 맛도 괜찮다. 숙박비는 40,000원이다. 식사를 해 먹을 수 있는 팬션은 50,000원이라고 한다. 주인부부도 친절하다. 이런 산골에서 이 정도의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2008. 11. 15.)




at 01/11/2011 02:01 am comment

잘 보고 감사히 담아갑니다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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