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철봉에서 본 귀때기청봉


백두대간을 하느라 지난해 가을, 새벽에 황철봉을 넘은 적이 있다. 이 때 아침 햇살 속에 누워있는 귀때기청봉을 바라보고, 그 우람한 능선미(稜線美)에 반해,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귀때기청봉(1,577.8m)은 설악산 서북능선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왜 이름도 괴상한 귀때기청봉인가? 바람이 하도 심해 귀때기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고 해서 귀때기청봉이라 했다고도 하고, 또는 대청봉과 키 재기를 하다가 따귀를 맞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어느 것이 정설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재미있는 이름이다.


한계령에서 시작하여 서북능선을 타고 서북쪽으로 진행하여 귀때기청봉을 지나, 대승령에서 장수대로 하산할 경우, 도상거리는 약 13.1Km에 불과하지만, 너덜길을 지나고, 암벽을 오르내려야 하는 등 둥로가 험해, 산행시간은 8시간이 족히 걸린다. 따라서 과거에는 당일 산행코스로는 엄두를 내지 못하였으나, 최근 도로사정이 좋아지면서, 당일산행을 시도하는 산악회들이 늘어간다.


2006년 7월 8일(토).

산정산악회에서 당일산행으로 귀때기청봉을 오른다고 한다. 한여름이라 산행이 힘들고, 장마철이니 언제 비가 올지도 모르며, 설혹 비가 오지 않더라도, 맑은 날씨를 기대할 수가 없어, 아름다운 조망은 바라지 못할 터이지만,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만사를 제쳐 놓고 예약을 한다.


오랜만에 산정의 정 대빵님도 반갑게 만난다. 경유지를 다 거치자, 버스는 만원이 된다. 낮 익은 얼굴들이 많다. 산정산악회 백두대간, 1차대, 2차대 선배님들이 보이고, 우리 3차대에서도 화봉대원, 소천대원이 참석한다. 대간을 하면서 멀리 보기만 했던 귀때기청봉을 간다니까, 모두들참여한 모양이다.


크린턴 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한 버스가 다시 출발하자, 대빵님이 오늘 산행요령을 알려준다. 산행 시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이기 때문에, 서둘지 말고, 천천히 즐기며 산행을 하라고 평소에는 강조 해 왔으나, 오늘만큼은 산행시간을 철저히 관리해 달라고 부탁한다. 11시 경에 산행을 시작한다고 보고, 7시까지는 하산을 해야,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버스가 서울에 도착할 수 있으니, 2시까지 귀때기청봉에 도착한 사람들은 완주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귀때기청봉에서 온 길을 되돌아, 한계령으로 하산 조치하겠다는 이야기이다. 대빵님 자신이 후미에서 따라 오며, 산행시간을 관리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험한 길에서 발목을 다친 부상자가 생기고, 후반에 들어, 체력이 떨어진, 일반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늦어져, 대빵님이 후미그룹 10여명을 인솔하고, 버스에 도착한 시간은 예정보다 1시간 가까이 늦은 8시 경이다. 후미그룹의 식사도 생략한 채, 버스는 바로 서울로 출발하지만, 양평을 지나면서 교통체증이 심해져서, 12시가 다 돼서야, 겨우 양재역에 도착하고, 이때는 이미 지하철은 끊긴 뒤이다. 미투리산악회에서도 같은 코스를 산행했지만, 일반 등산객들이 많은 그 곳에서는 진행이 더욱 늦어져, 날은 어두워지는데도 등반대장이 초조하게 후미들을 기다리고 있다.


흐린 날씨지만, 다행이 비는 오지 않고, 안개도 심하지 않아, 서북능선에서 남쪽으로 뻗은 여러 지능선 위의 암봉들을 가까운 곳에서 마음껏 즐긴다. 기암, 괴석들이 깊은 골짜기로 흐르는 모양이 가히 장관이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용아장성, 공룡능선, 왼쪽 멀리. 가리봉, 주걱봉 등은 거리가 있어, 뚜렷한 모습을 즐길 수 없었으나, 옅은 안개에 가려진 모습을 보는 것도, 접하기가 쉽지 않은 풍광이라 하겠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0:55) 한계령 도착-(11:00) 산행시작-(11:13) 이정표<한계령 0.5K> -(11:36) 능선분기, 오른쪽-(11:42) 전망바위-(12:03) 샘터-(12:12) 능선분기, 오른쪽-(12:16~12:18) 서북능 갈림길-(12:33) 첫 너덜-(13:31~13:47) 귀때기봉, 중식-(14:46) 1,455m봉-(16:08) 1408m봉-(18:04) 대승령-(19:13) 대승폭포-(19:50) 장수대』, 중식시간 16분포함, 8시간 50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소천대원의 다리 부상으로 약 50분 정도, 지연됐다고 보면, 실제 소요 산행시간은 8시간 정도로 보아, 큰 차이가 없겠다. 사진의 시간은 실제시간 보다 약 1시간이늦은 시간이다.


◇ ◇ ◇


44번국도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머지않아 확장공사가 끝나면, 이미 개통된 미시령 터널과 함께 서울에서 설악산으로의 접근은 훨씬 빠르고 용이하게 될 것이다. 인제를 지나 원통에 이르면, 언제나 2시 방향으로 멀리 설악산 서북능선이 보이고, 마음은 이미 설악에 들어선 듯,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우정대원 사진- 지난달 무심여행중 원통에서 찍은사진, 맨 위가 귀때기


버스는 10시 55분, 한계령(고도 920m)에 도착한다. 지난해 6월 초, 같은 시간에 서울을 출발하여, 같은 코스를 밟아 왔을 때와 비교하면, 약 50분이 빨라진 셈이다. 대원들은 화장실을 들르는 등 산행준비를 마치고, 11시 정각, 화장실 옆 계단을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한계령에서 서북능 갈림길까지는 약 2.3Km, 고도차는 약 300m 정도다. 이 곳은 대간을 하면서, 야간과 주간에 각각 한 번씩 오른 곳이라 낮이 익은 곳이다. 매표소를 통과하여, 철 계단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44번 도로가 내려다보이고, 망대암산으로 오르는 만물상이 아름답다, 그 뒤로 점봉산이 안개에 가려 희미하게 모습을 보인다. 한계령으로부터 1Km임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고, 1,307m봉을 넘어서서, 전망바위에 서면, 북서쪽으로 가야할 귀때기청봉이 보인다. 주위에 용립한 설악의 기암들이 아름답다.

만물상과 희미한 점봉산

이정표<한계령 1K, 중청대피소 6.7K>

운무 속의 귀때기청봉

전망바위에서 본 설악의 기암


가파른 내리막이 계속된다. 내리막을 달려 내리면서 왼쪽으로 보는 풍광이 아름답다. 샘터가 있는 안부를 지나, 등산로는 왼쪽으로 굽어지며, 쇠로 만든 가드레일이 설치 돼 있는 암반으로 이어진다. 이윽고 능선 삼거리에 올라,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굽어지더니, 12시 16분, 안내판이 서 있는, 서북능 갈림길에 이른다. 한계령을 출발해서 1시간 16분이 걸렸다. 비교적 빠른 진행이다.

내리막에서 본 왼쪽 조망

샘터

암반을 오르다 본 왼쪽 조망

능선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본 기암

서북능 갈림길 안내판


서북능 갈림길에서 보는 북쪽방향 조망이 뛰어나다. 가까이 귀때기청봉에서 내설악 쪽으로 흐르는 암봉들이 웅장하고, 그 오른쪽으로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이 안개 속에서도 뚜렷하다. 화봉대원과 소천대원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왼쪽 길을 따라 귀때기청봉으로 향한다.

귀때기청봉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지능선의 기암들

서북능 갈림길에서 본 공룡능선과 용아장성


귀때기 청봉으로 가는 길이 평탄하게 이어지고, 길가에 보이는 기암들의 모습이 독특하다. 등산로는 돌이 박힌 완만한 오름길로 이어지고, 길가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하얀 꽃을 달고 무리지어 피어있다. 이윽고 첫 번째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너덜지대에는 방향을 잃지 않도록 로프가 이어져 있고, 귀때기청봉이 가까이 보인다.

길가의 기암

 

공터에서 정면으로 본 기암

너덜지대

가까이 보이는 귀때기청봉


너덜길을 오르며 오른쪽으로 구름에 가려 희미한 대청봉 방향을 보고, 그 왼쪽으로 보이는 공룡능선과 그 앞의 용아장성을 카메라에 담는다. 잠시 너덜길이 끊기고, 다시 돌이 박힌 등산로가 이어지며, 길가의 야생화가 아름답다. 다시 대청봉 쪽을 본다. 고사목들 뒤로 이제는 중봉, 대청봉이 뚜렷이 보인다. 1시 03분, <119 구조대, 설악 22-21>팻말을 통과한다. 서북능 갈림길에서 약 1,5Km 진행한 지점이다.

공룡능선과 용아장성, 왼쪽의 암봉들은 귀때기청봉에서 분기된 지능

이름 모를 야생화가 무리지어 피어있는 등산로

고사목 너머로 뚜렷이 보이는 중청, 대청

파노라마

귀때기청봉으로 향하는 대원들

뒤돌아 본 걸어온 길

고사목도 지나고,


고개 하나를 넘어서니 귀때기청봉 정상부분이 홀연히 눈앞에 다가선다. 그리고 그 왼쪽으로 가야할 능선이 펼쳐지고, 44번국도 쪽으로 떨어지는 암봉들이 장관을 이룬다. 1시 31분, 귀때기청봉 정상에 선다. 양철판으로 만든 정상표지판(1,580M)이 초라하다. 정상에서 화봉대원과 소천대원이 식사를 하고 있다. 합류하여 도시락을 푼다.

귀때기청봉 정상부분

44번국도 쪽으로 떨어지는 암봉들

 

귀때기청봉 정상


식사를 마친 일행은 1시 47분경, 군데군데 너덜길이 이어지는 완만한 비탈길을 내려선다. 1,500m를 넘는 산이라 고산의 풍모가 완연하다. 너덜지역이 아닌 산록의 초원에는 야생화가 아름답게 피어있다. 정면으로 험하게 바위가 무너져 내린 1,440m봉이 보이고, 우리가 가야하는 능선은 왼쪽으로 굽어져, 1,455m봉으로 이어진다.

하산길

산록의 야생화

가야할 능선

1,440m봉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암봉을 두어 개 넘고, <119 구조대, 설악 12-17> 팻말을 지나, 2시 46분, 암봉 위에 선다. 정상에는 아무 표지가 없지만, 귀때기청봉에서 약 1,6Km 떨어진 곳이라 보고, 1,455m봉이라 짐작한다. 뒤돌아 본 귀때기청봉이 웅장하고, 왼쪽 골짜기로 흐르는 암봉들이 화려한데, 정면으로는 가야할 1,408m봉으로 뻗은 능선이 유장하다.

<119 구조대, 설악 12-17>팻말

뒤돌아 본 귀때기청봉

왼쪽 골짜기의 암봉들

가야할 1,408m봉


1,455m봉에서 화봉대원이 먼저 달려 나가고, 항상 선두를 질주하던, 소천대원은 발목인대를 다친 후,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자꾸 뒤로 쳐진다. 1,455m봉을 내려서서, 안부를 거쳐, 3시 7분, <119 구조대, 설악 12-16> 팻말을 지나고, 칼날 능선을 걷는다. 왼쪽으로 보이는 암벽들이 장관이다.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되고, 왼쪽으로 멀리 안개 속에 가리봉과 주걱봉이 모습을 보인다. 다시 너덜지대가 나타나고, 안부를 거쳐, 정면에 로프가 걸린 암벽이 막아선다. 암벽은 손잡을 곳, 발 딛을 곳이 확실하여, 로프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다. 암봉에 올라 앉아 주위를 조망한다. 암벽 아래로 소천대원이 모습을 보인다.

1,455m봉을 내려서고,

칼날능선에서 본 왼쪽 암벽

다시 너덜지대

3시 40분 경, 암벽을 내려서서 안부에 이른다, 등산로는 왼쪽으로 굽어지며, 다시 거대한 암벽이 앞을 막는다. 이제 산행을 시작한지 5시간이 가까워진다. 험한 암벽 앞에서, 한 숨 돌리기로하고, 배낭을 벗어놓고, 쉬면서 소천 대원을 기다린다. 이윽고 소천대원이 도착한다. 식염(食鹽)도 꺼내 먹고, 간식을 들며, 다시 10여 분간을 느긋하게 쉰 후. 60도~70도 정도는 돼 보이는 암벽을, 로프를 잡고 올라, 4시 8분 경, 1,408m봉에 이른다. 걸어온 능선이 한 눈에 보인다. 장대한 흐름이다. 뒤따라올라 온 소천대원은 눈앞의 가야할 능선을 바라보고, 암릉이 어디까지나 계속되는 거냐고 걱정이 많다.

가까이 본 1,408m봉

지나온 능선

가야할 길


1,408m봉을 내려서서, 또 하나의 암벽을 넘어서자, 등산로는 앞에 보이는 암릉들을 피해 오른쪽 우회로로 이어진다. 지겨운 암릉길이 끝났다고, 소천대원이 앞장서서 달린다. 반 넘어 속이 텅 빈 주목을 지나니, 등산로는 평탄한 흙길로 이어지고, 오랜만에 나뭇가지에 달린 산행리본을 본다. 오늘 코스는 길이 뚜렷하여 알바를 할 가능성은 적지만, 어찌된 것이, 이 구간에는 이정표도, 정상표지도 하나 없다. 국립공원의 관리를 이렇게 소홀히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마지막 암벽

속이 반 넘어 빈 주목


길가에 소천대원이 앉아 있다.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인대를 다친 발목이 다시 접질린 것 같다고 한다. 큰일이다. 이 산 중에서 걷지를 못한다면, 적당한 탈출로도 없는데, 큰일이다. 다행히 파스를 붙이고, 압박 붕대를 감으니, 걸을 만하다는 반응이다. 소천대원이 앞장을 서서 스틱을 짚으며, 조심스럽게 걷고, 나는 2~3 미터 뒤쳐져 천천히 뒤를 따른다. 부드러운 육산 길이 이어져서 다행이다.


젊은 일반 대원들이 계속 추월을 한다. 대원 한 사람을 붙잡고, 먼저 내려가게 되면, 정 대장님에게 발목 다친 사람이 있어서 하산이 조금 늦어진다고 전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5시 47분 로프가 걸린 직벽을 내려서고, 6시 4분 대승령(고도 1,210m)에 도착한다. 아픈 다리를 끌고, 견디어 온 소천대원의 의지가 대단하다.

 

직벽을 내려서고

대승령 도착


대승령에서 장수대까지의 도상거리는 약 2.7Km에, 고도 차이는 약 700m 정도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발목이 아픈 소천대원은 내리막길이 더 힘들 터인데도, 쉬지 않고 꾸준히 내려선다. 이윽고 반가운 물소리가 들린다. 배낭을 벗어 놓고, 세수를 하며 쉬고 있는데, 대빵님이 후미를 인솔하고, 모습을 나타낸다.

대승폭포

저무는 한계령

장수대 도착


7시 10분 경, 장수 폭포에 도착하고, 산사태가 난 가파른 길을 달려 내린다. 7시 50분 경, 버스에 도착하여, 갈아입을 옷을 챙겨들고, 개울로 내려가서, 땀을 씻은 후버스로 되돌아오니, 8시가 조금 넘었다. 이미 사방이 컴컴하다. 잠시 후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006.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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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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