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치에서 본 천왕봉

 

오늘 산행코스는 백두대간 중 제3소구간인 『성삼재⇒소고리봉⇒만복대⇒정령치⇒고리봉⇒고기리』로 총 16Km의 산행이다. 이 구간은 지리산 서북능선에 해당하나 대간은 고리봉에서 돌연 능선을 버리고 고기리로 내려선다.

 

지리산 서북능선은 지리산에서도 바람이 거세고, 눈이 많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능선 왼쪽은 거의 절벽이라 할 정도로 가팔라, 매서운 북서풍이 실어나른 눈이 능선에 쌓여, 만복대 주변이나 정령치로 내려오는 곳에는, 눈이 허리나 가슴 높이까지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이 능선에서 굽어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우리가 산행한 2월 24일은 날씨가 맑아, 한껏 조망을 즐길 수 있었다.

가고파 산우회 전세 버스는 861번 지방도로를 달려 11시30분 경 매표소를 통과, 지리산 국립공원으로 들어선다. 이덕연 회장님이 오늘 산행에서 길을 잘못 들 가능성이 있는 곳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한 후 선두구룹이 알바를 하지않도록 특히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아울러 봉우리에 올라서면 반드시 앞으로 가야할 길을 조망해서 큰방향을 잡으라고 일러준 후, 흐린날이나 안개 낀 날에 대비하여 나침반을 꼭 지참하라고 주의를 준다. 길이 질으니 스패츠는 지금 착용하고, 아이젠은 상황을 보아 착용하자고 한다. 산행시간은 선두 5시간, 후미 6시간정도이나 눈길을 감안 7시간까지 주겠다 한다. 속도가 느린 내게는 더 없이 반가운 소리다.

12시 좀 못 미쳐 버스는 성삼재에 도착하고 회원들은 서둘러 하차한다. 회장님 설명 중에 알바란 말을 3차례나 반복됐는데, 의미는 대강 짐작하지만 처음 듣는 말이라 버스에서 내리자,


 
"회장님, 알바가 뭐죠?"  

 

회장님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더니,


 
"길을 잘못 든다는 말이죠. 아르바이트를 줄여서 알바라고 해요."

지리산 서북능선 입구 - 성삼재에서 861번 도로를 100m 후퇴, 왼쪽에 문이 나 있다

웃기는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 지난번 수정봉 갈 때, 버스가 함양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오니 차안 여기저기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린다. 배낭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각반처럼 신발과 바지 아랫도리를 감싼다. 색깔도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가지가지다. '아하 ! 눈이 많이 쌓였다니까 신발에 눈이 들어가지 않도록 방비를 하는 구나, 저런 장비도 있었네...' 나는 어쩐다?

 

2001년 4월 20일 발간된 개정판 실전 백두대간 종주산행(조선일보사 간행)에서는 제3소구산의 소요시간을 아래와 같이 표기하고 있다. 『성삼재-(40분)-소고리봉-(1시간30분)-만복대-(50분)-정령치-(40분)-고리봉-(1시간15분)-고기리』 총 4시간 55분이다. 여기에 중식 및 휴식시간을 감안하여 6시간쯤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또 이 코스에는 길 주의 표시가 4곳이 돼있다. 하지만 이 코스는 능선이 뚜렷하여 고리봉에서 고기리로 빠지는 왼쪽 통로, 그리고 고기리 다 내려와 무덤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난 길만 조심하면 알바를 할 걱정은 없을 듯 싶다

12시 6분 지리산 서북능선길 입구에 들어 섰다. 능선에 올라 서니 바람이 차다. 양지바른 곳은 길이 질척거리고, 음지는 눈이 얼어 미끄럽다. 40여분 을 걸어 소고리봉에 오른다. 소고리봉에 보는 전망이 일품이다. 앞으로는 만복대에 이르는 능선이 굽이굽이 펼쳐있고, 뒤로는 지나온 성삼재가 보인다. 동쪽으로 지리산 반야봉이 가까이 있고, 남서쪽으로 구례구가 멀리 펼쳐져 있다.

소고리봉(1248m)에서본 만복대 가는 길

 

소고리봉에서 본 반야봉

갈 길만 서둘다 보면 소고리봉을 지나치기 쉽다. 주등산로를 걷다 왼쪽의 소고리봉을 알아보고 왼쪽으로 난 길을 올라야 소고리봉 정상이다. 소고리봉을 놓치면 앞 사진에서 보는 장관 을 즐길 수 없다. 소고리봉에서 주위를 살피고 사진을 찍느라 제일 후미로 쳐진다. 후미를 보는 회장님마저 앞서 출발한다. 전망이 하도 좋아 잠시 더 머믈다 미끄러운 비탈길을 따라 묘봉치로 향한다. 묘봉치까지는 거의 줄곳 미끄러운 내리막 길이다. 40분 정도 걸어서 묘봉치에 이른다.

묘봉치(1108m)에서 본 만복대 가는 길 - 오른쪽 밋밋한 곳이 만복대다.

묘봉치는 성삼재와 만복대의 딱 중간 지점이다. 왼쪽으로는 산동면 위안리로 빠지는 등산로가 나있고 산동면이 가깝게 내려다 보인다. 만복대 가는 길은 억새밭 길이다.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을 즐기는 회원들이 보인다. 배운대로 걸어온 길을 뒤 돌아 소고리봉을 찾아 본다.

묘봉치에서 본 소고리봉 - 가운데 삼각형으로 뾰족한 봉우리가 소고리봉이고, 거기서부터 C자형으로 굽은 능선이 흰 눈길로 이어져 묘봉치로 떨어진다. 이 사진을 보면 나도 학습능력은 뛰어났나 보다.

회장님은 묘봉치부터는 힘이 들 거라고 귀띔해 준다. 회원 한 분이 고리봉 오름도 가팔라 힘들 꺼라 하자. 거기는 가팔라도 구간이 짧아 여기보다는 힘이 덜 들 거란다. 가고파 산우회서 준 지도를 보니 묘봉치에서 만복대까지는 도상으로 약 3Km, 고도차이는 330m쯤 된다. 간단히 계산을 해 본다. 고도차가 300m가 넘으니 실제 걸어야 하는 거리는 4Km정도가 될 듯 싶다. 나중에 만복대에 올라 시간을 보니 이 구간을 오르는데 약 1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됐다. 1,400m가 넘는 고도는 역시 만만치가 않다.

 

꾸준히 이어지는 오르막 억새 길에는 눈도 없고, 서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오름세를 타는데도 더운줄 모르겠다. 힘이 좋은  분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산행 코스이겠다. 눈 앞의 능선 꼭대기에 올라서니, 길은 오른쪽으로 굽지고, 저 멀리 만복대 정상이 보인다. 오르막은 여전한데 능선길가에 만복대 1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우뚝 서 있다. 뒤로 바위를 배경으로 억새와 바람과 어울린 이정표의 모습이 빼어나다. 이제 만복대 정상이 눈 앞에 있고 선두구룹이 정상에 뫃여 있는 것이 보인다.

만복대 1Km를 알리는 이정표


 

이정표 위치에서 본 만복대 - 선두구룹은 정상에 뫃여있다

만복대 정상에 올라서니 오른쪽으로 반야봉, 왼쪽 저 멀리 천왕봉, 중봉이 보이고 지리산 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만복대는 바람이 거세다. 만복대 정상은 암반인 모양이다. 그 암반위에 돌탑을 세워 만복대 키를 키웠다. 정상의 이정표 위치 역시 절묘하다. 능선길의 이정표와 정상의 이정표를 세운분은 미적 감각이 뛰어난 분이란 생각이 든다.

만복대(1433.4m) 정상의 돌탑

거센 바람을 피해, 동쪽 사면에서 회원 두분이 점심을 들고 있고, 한발 앞서 도착한 회장님과 회원 한분이 막 도시락을 풀고 있다. 사진 찍는 것도 뒤로 미루고, 회장님과 어한주라도 나눠 마시려고 서둘러 밧줄을 타고 넘어, 회장님 옆으로 서서, 어한주(禦寒酒)를 나눠 마시고 빵도 한 조각 얻어 먹는다. 식사를 먼저 마친 두분은 앞서 출발을 하고, 이미 차안에서 점심을 해결한 나도 실례를 무릅쓰고 먼저 일어선다. 다시 만복대 정상에서니, 바람이 거세고, 차서 금방 손이 시리다. 서둘러 사진을 몇 커트 찍고, 정상을 뒤로한다.

만복대에서 본 정령치, 고리봉 가는 길,


 
만복대 오르는 길은 남향에 갈대가 우거져 눈이 보이지 않았으나, 정령치로 향하는 내리막길은 북향이라 눈이 녹지를 않고, 며칠 전에 내린 비로 얼어 있다. 눈 위에 난 발자국 중에는 거의 허벅지 높이까지 빠져 있는 것도 보이고, 능선 사면에는 가슴 높이까지 싸인 눈이 얼어 있다.

뒤 돌아 본 만복대 - 왼쪽 제일 높은 곳이 만복대다.

정령치에 가까워지자 내리막이 급해지며, 눈은 완전히 결빙이 되어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희미하다. 혹시 알바를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내려오니 산불 감시소로 오르는 길과 정령치로 내려서는 갈림길에 이른다.

문 닫힌 정령치 휴게소 - 하늘의 비행운만 한가롭다.

갈림길에서 내려서니 바로 정령치 휴게소다. 비수기라 인적이 드믈어 휴게소 문은 잠겨 있다. 역시 전망이 좋다. 정령치에서 보온병의 커피를 한잔 마시고, 담배도 한 대 피우며 휴식을 취한다. 회장님과 후미 팀이 도착하자 다시 앞서 출발한다. 고리봉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하고, 곳곳에 바위들이 돌출해 있다. 경사가 심한 돌길에는 줄이 매어져있다. 35분쯤 걸어 고리봉에 오른다.

고리봉(1304.5m) 근경 -정령치에 이르는 미끄러운 길을 신경 써서 내려오다 보니 고리봉을 원경으로 잡을 기회를 놓쳤다.

고리봉에서는 3면이 훤히 트였다. 동쪽으로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주능선이 눈에 들어오고, 지리산 서북능선은 동북쪽으로 휘어져 멀리 바래봉이 보인다.서북쪽으로는 우리가 지난번 산행했던 수정봉, 그리고 다음 산행지인 고남산이 내려다 보인다. 급경사 내리막 눈길에 대비하여 아이젠을 착용하고 고기리로 향한다.

고리봉에서 본 지리산 능선과 천왕봉 - 뒤로 푸르게 보이는 능선의 가운데높은 봉이 천왕봉, 그 왼쪽이 중봉이다.

 

고리봉에서 본 바래봉 - 고리봉에서 지리산 서북능선은 동북쪽으로 바래봉으로 이어진다. 벗겨진 봉우리가 바래봉이다.

 

고리봉에서 본 수정봉, 고남산

급경사 내리막길은 눈이 쌓여 아이젠을 신어도 미끄럽다. 2Km정도 내려오니 울창한 소나무 숲이 나타난다. 하늘로 쭉쭉 뻗은 잘 생긴 소나무들이 빽빽하다. 이 소나무 숲은 남원 봉화산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점점 고도가 낮아지며, 왼쪽으로 최근에 조성한 듯 싶은 가묘 3기, 그 아래 눈 덮인 2기의 묘가 있는 공터쪽으로, 가고파 산우회 전단지가 방향을 알린다. 고기리 삼거리에 도착하니 5시 30분이다.

하산길의 이정표 - 가묘 3기, 눈 덮힌 묘 2기가 누워 있다

버스는 6시에 고기리를 출발한다. 오늘 산행시간은 약 5시간 30분. 많이 피곤하다. 자기 체력의 80%정도를 소모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데, 그 이상의 체력을 소모한 것 같다. 특히 만복대에 오르는 1시간 10분이 힘들었다. 조금 더 천천히, 중간에 서서 쉬면서, 포카리스웨트를 더 마시는 게 옳은 주법이 었던 듯 싶다.

9시 40분 버스는 동서울 톨 케이트를 통과한다. 잘 하면 대장금 절반은 볼 수 있겠다. 강동 역에서 지하철로 바꾸어 타고 집에 도착하니 10시 35분, 대장금을 보고 샤워를 하니 피로가 한결 풀린다.

 

 

(2004년 2월 27일)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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