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본 백운산 정상
“대간 종주는 길고 힘든 자기와의 싸움이다”
요즈음은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형태로 대간 종주를 시도하고 있지만 그래도 완주는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나라사랑」, 「국토보전」의 중요성이 피부로 느껴진다는 표현이다.
“나라를 사랑하자.”
우리는 이런 취지의 교육을 유치원, 아니 그 이전부터 받아 왔다. 문제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념적으로 배운 지식은 실천으로 옮겨지기가 쉽지 않다.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몸으로 직접 체험한 느낌은 바로 산 지식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행위, 국토를 소중히 하는 행위로 직결될 수 있을 것이다.
한비야 여사에게는 장난 끼도 있어 보인다. 해남 땅끝에서 민통선까지의 보도여행을 800-49-10-225-150과 같이 숫자로 요약하고 있다. 약 800Km의 거리를 49일간, 10Kg의 배낭을 메고, 225미리 등산화를 신고 걸었다. 총 비용이 약 150만원 이였다는 내용이다.
백두대간 종주는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한비야 여사처럼 국토를 종단하는 도보여행은 가능할 듯 싶었다. 시작해서 단번에 마치는 것은 무리일지 몰라도 일주일 걷고, 일주일 쉰 후에 다시 일주일 걷는 식이면 어려울 것도 없으리라. 집사람에게 넌지시 의논을 해봤다.
“잘 해 보시구려. 누가 말리나? 집에는 달랑 두 늙은이와 강아지 한 마리뿐인데, 할망구 혼자 두고 격주로 집을 비울 정도로 간덩이가 크지 못하니 체념하는 도리밖에 없겠다. 요즈음은 불경기라 그런지 주택가에 좀도둑들이 유난히 극성이다. 지난 1월말에도 친구들과 남도여행을 하느라 집을 비운 사이, 낮손님이 찾아 와 집사람이 혼이 나간 적이 있다. 아이들이 공부 마치고 돌아 올 때까지는 도보여행의 꿈은 접어 둘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언제고 반드시 할거다.
이런 상황에서 당일치기 백두대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은 행운이다. 4월 13일은 다섯 번째 산행일이다. 오늘의 구간은 『송리마을⇒광대치⇒월경산⇒중재⇒백운산⇒영취산⇒무령고개』다. 제8소구간이라고 알려진 구간에 송리마을에서 중재까지의 거리를 더 걸어야 한다. 총 거리가 약 20Km, 8시간이상 소요될 구간이다. 게다가 중재와 백운산 정상의 고도 차가 500m 정도에 이르니 당일 산행으로서는 힘든 코스라 하겠다. 산우회에서도 산행시간을 줄여보려고 궁리 끝에 택한 방안이 역방향 산행이다. 무령고개에서 출발하여 송리마을로 하산하기로 한 것이다.
오늘 산행에 참여한 인원은 산우회 회장 및 등반대장을 포함하여 총 36인이다. 40대, 50대가 주류를 이루고 여자 분들도 8명이나 된다. 60대도 섞여있지만 주중이라서 그런지 젊은이들은 없다. 아쉽다. 여름방학,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젊은 학생들이 대간 종주를 즐길 수 있게 구간을 재정비하고 필요한 곳에 야영장도 만든다. 길을 잃지 않도록 표지판을 정비하고 위험지역에는 안전시설을 보완하면 어떨까? 백 마디 설교보다 스스로 대간 종주에 참여해 보고, 「나라사랑」, 「국토보존」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도록 대간 코스를 정비하여 산 교육장으로 활용해 보면 어떨까?
버스는 장수 인터체인지를 벗어나 지방도로로 접어든다. 도로 양쪽으로 어린 벚나무들이 꽃을 활짝 피우고 도열해 서 있다. 논개 생가가 왼쪽으로 보인다. 무령고개를 향해 버스는 힘들게 굽이굽이 산길을 타고 오른다. 11시 30분경 버스는 무령고개 주차장에 도착하고 회원들이 서둘러 하차한다.
무무령고개의 쉼터 - 싸리로 지붕을 엮어 이채롭다.
3월부터 5월말까지는 산불방지를 위해 입산을 통제한다고 한다. 산우회 회장이 관리소에서 입산허가를 받느라 애를 먹는다. 영취산으로 바로 오르는 산행로를 피해 조금 더 올라가 백운산 능선의 안부로 연결되는 등산로를 택하기로 하고 겨우 허가를 받는다. 이 등산로 길 건너편은 금남호남 정맥의 장안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초입이지만 이 곳도 역시 입산금지 팻말이 걸려 있다. 11시 40분 회원들은 능선 안부를 향해 산죽과 싸리나무를 헤치며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
대간능선의 안부를 향해 비탈길을 오른다.- 온통 싸리와 산죽이다.
북쪽에서 본 백운산 능선 - 맨 뒤로 백운산이 보인다.
정상에는 중위 구룹에 속하는 회원들이 거의 점심을 마치고 하산 채비를 하고 있다. 우선 회원들의 사진을 찍어 주고. 북쪽으로 보이는 영취산, 그 뒤로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덕유산 줄기를 사진기에 담는다. 아쉽게도 지리산 능선은 보이질 않는다. 점심은 버스에서 해결했음으로 과일과 음료수를 나눠 마시는데, 회장님이 후미 일행과 함께 도착한다. 회장님은 우선 담배부터 찾는다. 입산허가를 받을 때 담배와 라이터를 영치당해 담배가 무척 고팠던 모양이다. 라이터만 빼앗으면 되었지 왜 담배까지 두고 가라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댄다. 하산 채비를 마친 중위 그룹이 서둘러 출발한다. 이번 산행이 17번째 대간 종주라는 회장님으로부터 주변의 산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지리산 능선은 보이지 않지만 지난번에 지나온 복성이재, 그리고 앞으로 가게 될 빼재의 위치를 알려준다. 후미 일행이 점심을 마치기를 기다리지도 못하고 1시 40분경에 먼저 일어선다. 정상에서 너무 오래 지체한 느낌이다.
눈앞의 헬리포트를 가로질러, 비탈길을 내려서니 왼쪽으로 무덤이 하나 누워있고 오른쪽에는 함양군에서 세운 이정표가 서 있다. 1,270m가 넘는 이 높은 곳에 묘를 쓰다니, 무언가 깊은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이정표는 오른쪽 방향으로 백두대간(중재), 왼쪽으로는 하산길(4.2.Km), 그리고 정면으로 백운산 정상(0.1Km)을 가르치고 있다. 웬일인지 중재까지의 거리는 표기돼 있지 않다.
하산 길은 무척 가파르다. 가파른 길에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오가다 보니 너덜지대는 아닌데도 흙이 그대로 노출되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풀풀 인다. 한참을 내려오니 암봉이 앞을 막아서고, 등산로는 암봉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우회로를 돌아 내려오면서 뒤를 돌아본다. 왼쪽으로 백운산 능선이 올려 보인다. 참나무인지 싸리나무인지 알 수는 없으나 잎이 없는 나무들이 능선을 따라 마치 열병식을 하듯 늘어서 있다. 무척 인상적인 모습이다. 뿌리를 땅에 박고, 하늘을 향해 용립한 나무들의 자세는 바로 우리들 인간들의 자세를 닮아 더욱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카메라를 꺼내 이 모습을 담는다.
경사가 점차 완만해 지면서 진달래군락이 나타난다. 대부분 아직 꽃망울이 터지지 않았지만 군데군데 일찍 깨인 놈들은 진분홍 꽃잎을 활짝 피우고 제 모양새를 뽐낸다. 황량하던 주위가 일시에 달라 보인다. 진달래에 이끌려 걸음이 늦어졌는지 중위 구릅과 함께 먼저 하산했던 여자회원 두 분이 저 앞에 보인다. 진달래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며 세 사람이 산책하듯 유유하게 걷는다. 오른쪽 길섶에 또 무덤이 하나 누워 있다. 오랫동안 돌본 사람이 없었는지 봉분이 많이 가라앉았다. 그 앞으로 하얀 야생화 한 무더기가 아름답게 피어 있다. “무슨 꽃이지?
드문 드문 피어 있는 진달래가 황량한 분위기를 바꿔 놓는다.
적당한 자리를 골라 낙엽 위에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신다. 과일도 먹으면서 후미가 올 때까지 늑장을 피운다. 20여분을 기다려도 후미가 나타나지 않자 의리 없단 소리를 들어도 더 기다릴 수가 없어 다시 출발한다. 이윽고 중재에 도착한다. 3시 10분경이다. 중재에서 사진을 찍으며 또 꾸물거리는데, 회장님이 혼자서 비탈길을 내려온다. 후미로 쳐졌던 2사람을 중고개재에서 탈출시키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30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한사람이 몸살 끼가 있어 도저히 산행을 계속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앞으로는 후미 팀을 기다리며 한 곳에서 오래 쉬지 마라.”
평지와 내리막에서는 제 속도를 낼 수 있어 광대치에 이르기 전에 앞선 여자회원들을 따라 잡는다. 광대치에서부터는 다시 오르막이 계속되고 또 뒤쳐지기 시작한다. 모든 운동이 다 그렇지만 운동에서 호흡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산에서 오름세를 탈 때는 발로 걷는 것이 아니라 호흡으로 걷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월경산을 오르면서 힘을 소진했는지 944m봉의 가파른 길을 오르려니 호흡도 가쁘고 다리 힘도 많이 빠진 것 같다. 잠시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계속 전진하여 944m봉에 오른다. 순간 황금색 갈대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는 햇살 속에 갈대밭이 아름답다.
거의 평지와 같은 길을 속도를 내어 걷는다. 무명봉 정상 부근에서 다시 사진 몇 장을 찍고, 서둘러 내 달려 송리마을로 내려가는 안부에서 겨우 일행을 따라 잡는다.
회장님이 안부에서 이미 하산한 등반대장의 전화를 받는다. 하산한 회원들은 소주를 구해 하산주를 즐길 터이니 후미팀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산해도 좋다는 연락이다. 회장님도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안부 갈대밭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숨 돌린다. 서편 하늘에는 지는 해가 운무에 가려 마치 달처럼 떠 있다. 회장님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걸 본다고 감탄한다.
천천히 내려와도 좋다고 하지만, 후미팀은 구르듯 송리마을로 달려 내려간다. 버스에 도착하니 7시 30분이다. 장장 7시간 50분간의 산행이였다. 버스는 7시 40분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멀리서 참여한 회원들이 있어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서울에 도착하여야 한다고 인삼마을 휴계소에서 10분간만 정차키로 한다. 이 시간에 볼일도 보고, 배고픈 사람들은 먹거리를 사 들고 와 버스 안에서 저녁식사를 해 달라고 등반대장이 협조를 구한다. 웅성웅성 불평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등산대장은 강하게 밀어 부친다. 10시 56분 버스는 동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한다. 후미팀이 늑장을 부려 귀가 시간에 불편을 끼쳐 무척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다짐한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50분이다. 새벽 5시 30분에 기상, 새벽밥을 먹고, 집사람이 싸준 도시락을 챙겨, 집을 나선 시간이 6시 30분이였으니, 17시간 20분만에 귀가한 셈이다. 만보계를 보니 37,124보로 기록돼 있다. 긴 하루였다.
(2004. 4. 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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