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박으로 백두대간 제51소구간을 산행한다. 산행코스는 『한계령(1004)-서북주 능선-대청봉(1708)-죽음의 능선-희운각-무너미재(1030)-공룡능선-마등령(1326』을 거쳐 비선대로 하산, 설악동까지 이동한다. 도상거리 약 14Km+약 8Km, 산악회가 제시한 소요시간은 약 12시간이다.
2004년 10월 1일(금).
어제 가을비가 뿌리고 난 후 오늘밤부터 기온이 급강하하고 바람이 심할 것이라는 예보에 겨울 용 내복도 준비하고 방풍용 자켓도 마련하여 첫추위에 대비한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서초구민회관 앞에는 대원들이 모여 버스를 기다린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아마도 단풍철의 설악산 등반이 많은 산악인들을 부르는 모양이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하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승차한다.
산악회 인솔자가 오늘의 구성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다. 마등령을 지나 미시령까지 주파할 주력이 좋은 승객이 한 분, 희운각에서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하는 팀 7명, 오색에서 천왕봉으로 오를 분들 그리고 대간 팀, 모두 47명이 승차했다고 한다. 설악을 찾는 혼성부대가 편성된 것이다. 버스에는 앉을 자리가 부족하다.
버스는 팔당대교를 건너 시원하게 뚫린 6번 국도를 달린다. 12시 15분 경 홍천에 도착, 크린턴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라고 30분간 정차한다. 자정이 넘은 휴게소는 을씨년스럽다. 한참 잘 시간에 식사를 하는 것도 무엇해, 쌍화차 한잔을 시켜 마시며 주위를 둘러본다.
50년도 후반에도 설악산을 갈 때면 이 길을 거쳤다. 동대문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새벽에 버스를 타면, 점심때쯤 홍천에 도착한다. 당시 홍천에는 닭곰탕이 유명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변하기도 많이 변했다. 반나절 넘게 달려야 올 수 있던 곳이 지금은 한 시간도 못 돼 도착한다. 이제 60이 훌쩍 넘은 늙은이가 기지촌에나 어울릴 이름의 스산한 휴게소에서 자정이 지난 시간에 까까머리 고등학생 때를 회상하며 쌍화차를 마신다.
다시 버스가 출발하고 산악회 인솔자는 등반관련 자료를 배포하며, 오늘 산행에 대해 설명한다. 오늘 야간산행 구간에 바윗길이 많아, 이슬이나, 서리가 내렸을 경우 바위가 미끄러우니 특히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설악동에는 4시까지 하산해야, 서울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서울에 언제 도착할 지 가름하기가 어렵다고 강조한다.
버스는 2시 25분 한계령에 도착한다. 대원들이 서둘러 흩어진다. 헤드랜턴을 머리에 쓰고, 스틱을 조절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불이 밝게 켜진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는데 산악회 인솔자가 빨리 출발하라고 서두른다. 다른 대원들은 모두 벌써 출발했다고 한다. 인솔자를 따라 화장실 옆의 계단을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2시 30분 경이다.
무박 산행은 두 번째다. 첫번은 1무, 1박, 3일 간의 일정으로, 지리산을 종주 할 때 경험했으나, 이 때의 일박 장소가 벽소령 대피소라, 버스는 새벽 4시경, 성삼재에 도착하고도, 주위가 훤해질 때를 기다려 5시경에 산행을 시작했었으니 깜깜한 밤에 산행은 처음인 셈이다.
전망이 좋다는 한계령의 정자도 지나는 줄 모르고 지나친다. 1307봉까지 1Km의 급경사 암릉길이 시작된다. 뒤로 쳐졌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오늘은 긴 여정, 힘을 아껴야 한다. 처음 사용하는 헤드랜턴이 자꾸 흘러내려 내린다. 앞서 출발한 대원 몇 사람과 합류하여 함께 걷는다. 보이는 것이 없으니 랜턴이 비춰주는 땅만 보고 걷는다. 무슨 재미로 무박산행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뒤따르던 후미대장은 자기들은 무박산행을 밥 먹 듯하고, 조용해서 좋다고 한다.
1307봉인 모양이다. 허리에 찬 시계를 볼 여유도 없다. 젊은이들 한 떼가 길을 막고 왁자지껄 떠를며, 쉬고있다. 가파른 내림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길이 평탄해 진다. 첨벙, 어제 비로 생긴 물웅덩이에 발이 빠진다. "안경을 쓰셨군요. 안경알에 습기가 서려 잘 안 보일 터인데, 조심 하십시요." 뒤따르던 후미 대장이 위로한다.
두어 번 오르막을 거쳐 갈림길에 이른다. 4시 56분. 출발해서 1시간 26분이 경과했다.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일행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서북주능선을 오른다. 남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능선으로 양쪽의 전망이 일품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사방이 온통 어둠뿐이다. 나무 가지 사이로 추석이 얼마 지나지 않은 달이 허공에 걸려 희미한 빛을 비춘다. 다행히 바람은 잠잠하다.앞서 달려나가고 싶지만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지도 몰라 자신이 없다.
어둠 속에서 첫번째 이정표를 사진에 담는다. 한계령 4.1Km, 중청대피소 3.6Km, 이때 시간이 5시 26분이다. 두번째 이정표를 6시에 통과한다. 한계령 5.1Km, 중청대피소 2.6Km. 어둠 속에서1Km를 진행하는데 1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6시가 넘으니 주위가 훤해진다. 길은 외길, 혼자 앞으로 달려나간다.
6시 30분 경 끝청에 도착한다. 사위가 밝아지고, 설악이 아침을 맞는다. 끝청에서 젊은 대원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끝청에서 보는 아침 풍광이 아름답다. 서쪽으로 귀때기 청봉이 운해 속에서 햇빛을 받고 서 있고. 북쪽으로 외설악의 웅자가 운무 속에 잠겨있다. 남쪽으로 오색이 굽어보인다. 전문 사진가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삼발이를 설치해놓고 아침을 맞는 설악을 카메라에 담는다.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사진을 찍으며 10여분 간 머문다.
중청 대피소로 진행하는 길에, 해는 좀 더 오르고, 햇빛을 받아 붉게 물든 암봉들이 구름 속에 떠있는 황홀한 광경에 취한다. 7시 13분 중청대피소에 도착한다. 중청대피소는 만원이다.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 식사하는 사람, 소청 쪽으로 이동하는 사람들, 마치 장터 같다. 젊은 대원과 함께 미숫가루를 마시고 잠시 쉰 후 7시 25분 경 대청으로 향한다.
<중청오르다 본 귀떼기 청봉>
<중청 오르다 본 외설악>
<오색과 점봉산 방향>
<설악 단풍과 운해>
7시 40분 경 대청에 도착한다. 대청도 만원이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린다. 주위 사진을 찍고, 정상주를 한 모금씩 마신다. 신발끈을 고쳐 매고 7시 50분 경 서둘러 하산을 시작한다.
<대청에서 본 화채봉 능선>
죽음의 능선 길은 가파르다. 하지만 주위 풍광은 더 없이 아름답다. 오른쪽으로 계속 화채능선이 흐르고, 정면으로 천불동 계곡, 공룡능선이 펼쳐진다. 뒤돌아보면 중청과 대청의 깍아지른 사면이 보인다. 9시20분 경 희운각 대피소에 이른다. 중위 팀이 아침을 마치고 공룡으로 향한다.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하는 팀은 식사 후 햇빛을 쪼이며 느긋하게 쉬고 있다.
<위에서 내려 본 천불동 - 멀리 울산암>
<멀리 본 공룡능선>
<천불동 계곡의 암봉들>
<약재로 쓰인다는 열매 -마가목>
아침식사를 마치고, 물을 보충한 후 출발하려니 후미대장이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묻는다. 공룡능선으로 갈 것이라고 했더니 무리일 듯 싶으니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한다. 여러 산악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공룡능선에 정체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 심한 경우는 9시간이상 걸릴지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결정은 본인이 하란다.
지금 시간이 9시 50분 경, 산악회에서 본 무너미 고개에서 공룡능선을 거쳐, 설악동에 도착하는 시간을 약 7시간 30분으로 보고 있음으로, 제 시간에 도착한다해도 4시가 넘는다. 더욱이 내 주력을 감안하면 7시간 30분 안에 설악동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후미대장의 권유를 따르는 게 올바른 선택이라 하겠다.
하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공룡능선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작년 10월말 친구와 둘이 오색에서 출발, 해질 무렵의 대청을 보고, 중청 대피소에서 일박 후, 다음 날 대청을 들러 공룡능선으로 향하다 친구의 등산화에 이상이 생겨 신선봉 못 미쳐에서 후퇴,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했던 아쉬운 경험이 있다. 이 때 이용했던 고속버스 편이 편리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어 포기하려니 미련이 남는다. 아무리 늦게 걸어도 10시경에 출발하면 해지기 전에 비선대 까지 내려올 수는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대기하는 산악회 버스다. 마등령에서는 휴대폰이 가능하다고 하니, 마등령에 이르러 상황을 보아 버스로 전화를 하기로 하고, 공룡능선을 택한다. 젊은 대원이 동반하겠다고 한다. 9시 55분 둘이 공룡능선으로 향한다. 평지라 서둘러 걸으니 식사 후 바로 빨리 걸으면 체한다고 젊은 대원이 말린다.
10시 38분 신선봉 이정표 앞에 선다. 여기까지 동행하면서 나를 지켜보던 젊은 대원이 혼자 보내도 별 위험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주력이 좋은 젊은 대원은 애초부터 고속버스를 탈 생각이 없었던 듯 싶다. 젊은 대원은 속력을 내어 내 닫고, 나는 뒤로 쳐져 느긋하게 공룡능선을 걷는다.
<신선봉에서 본 공룡능선 1 >
<신선봉에서 본 공룡능선 2 >
<1275봉>
11시 53분 샘터 이정표에 이른다. 희연각 2.8Km, 마등령 2.3Km, 앞으로 보이는 1275봉 등, 아직은 무르익지 않은 단풍 속에, 눈앞에 펼쳐지는 공룡능선의 장대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내 발길을 더욱 더 더디게 한다. 사진 찍는 횟수도 많아진다. 12시 30분 1275봉 아래 이정표 앞에 선다. 희연각 3Km, 마등령 2.1Km, 200m를 전진하는데 30분 이상이 걸린다. 이 부근에서 차를 판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우려했던 정체현상도 없다.
<이하 : 공룡능선의 기암들>
1시 26분, 마등령까지 1.4km가 남았다고 알리는 이정표를 지난다. 나한봉을 향한다. 2시가 조금 지나 전망대에 선다. 지나온 공룡능선이 장쾌하고, 그 뒤로 대청, 소청이 웅장하다. 천불동 계곡을 감싸고 있는 암봉들이 깍아지른 절벽이다. 소청쪽에서 흘러내리는 용아장성이 발아래 있다. 고속버스로 귀가할 터이니 기다리지 말라고 버스 기사에게 전화를 한다. 통화를 하고 나니 마음은 한결 더 느긋해 진다. 젊은 대원이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지만 그의 주력이라면 비선대 도착 전에 앞서 간 팀을 따라 잡을 수 있겠다고 걱정을 털어 낸다..
<나한봉>
<공룡에서 본 대청>
<공룡에서 본 용아장성>
<이정표>
나한봉을 뒤로하고 마등령과 마주선다. 마등령 오른쪽으로 날카로운 암봉 들이 흐르다 올돌한 봉우리 하나를 만들고, 그 오른 쪽 너머로 속초시와 동해를 펼쳐 놓아, 작지만 그 용립한 모양이 강하게 눈을 끈다. 세존봉이다.
<마등령>
<이하 : 공룡능선의 단풍과 기암>
<마등령 독수리>
6시 30분. 해 떨어지기 전에 비선대에 도착, 맥주로 갈증을 풀고 쉰다. 7시경 어둠 속을 랜턴 불빛을 앞세우고 호젓한 길을 혼자 걸어 설악동으로 향한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하다. 1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속초 시내버스를 타고, 속초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하차한다.
8시 30분 출발하는 고속버스에 오르니 무박산행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11시 45분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내처 잠 속에 빠진다. 집에 도착하니 12시 2분전이다.
(2004.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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