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현에서 본 파노라마
정맥이나 기맥종주를 안내하는 산악회에는 어려움이 많다. 처음 시작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대형 버스 한 대로는 좌석이 모자라, 추가로 25인승 밴을 동원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참여자 수가 줄어, 종주가 끝날 무렵이면, 늘 나오는 10여명의 대원만 남게 된다.
산행안내도 사업이니, 손익분기점 가까이 인원수가 줄었을 때, 일찌감치 그 종주안내를 포기하면 다행이만, 아직도 산행해야 할 구간이 대 여섯 구간 남아 있는데, 참여인원 수가 고작 10여명 정도라면, 산악회로서는 빼도 박도 못하는 난처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송암 산악회에서 토요일에 하던 한강기맥 종주가, 몇 구간을 남기지 않고, 인원수가 대폭줄자, 참여하는 회원들도 미안하고, 부담스럽다. 그리하여 뒤 따라오는 일요일 한강기맥 종주 팀과 합치기로 하고, 토요종주 팀은 잠시 산행을 중단한다.
2006년 12월 10일(일).
일요산행 팀이 구목령 구간에 이른다. 이 구간부터 토요산행 팀이 합세키로 한 곳이다. 7시 10분 전, 선능역에 도착해보니, 배낭을 멘 등산객들도 보이지 않고, 산악회 버스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어제 그제 강원도 지역에 폭설이 내렸다더니, 그로 인해 산행이 취소된 것도 모르고, 혼자 나온 건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된다.
어둠속에서 김 회장이 모습을 보이고, 오랜만에 만나, 반가이 인사를 나눈다. 이윽고 25인승 버스가 도착하여, 차례대로 경유지를 지나고, 대원들이 차에 오른다. 하지만 모두들 낮선 얼굴들뿐이다. 함께 산행을 했던 토요산행 팀의 대원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일요산행 팀과 함께 산행하여, 종주를 마치기로 한 것도 약속이니, 다음 구간부터는 옛 토요대원들도 보다 많이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생곡리 배나무골(6.5K)-구목령(4K)-1181m봉(4K)-장곡현(2,8K)-불발현(5.2K)-도장골』로 들머리 날머리 11.7Km, 마루금 10.8Km다, 배보다 배꼽이 큰 마(魔)의 구간이다. 날씨는 쾌청하고 맑다. 바람은 없지만, 날씨는 차갑고, 하산 무렵의 기온은 영하로 떨어진다.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9;42) 산행시작-(10:56) 차량통행 차단막 통과-(11:39~11:41) 구목령-(11;58~12:02) 헬기장-(12:09) "T자형"능선에서 오른쪽-(12:20) 1105m봉-(12:50) 바위지대-(13:10~13:25) 1190m봉, 식사-(14:03) 1181m봉-(14:31) 1098m봉-(15:20) 장곡현-(15:30) 임도 끝-(16;02~16:12) 영춘지맥 갈림길-(16:30) 헬기장-(16:42~16:45) 불발현-(17:42) 국유임도 안내판』들머리 1시간 57분, 중식 15분, 마루금 4시간 51분, 날머리 57분, 총 8시간이 걸린 산행이다. 눈길이라 힘이 많이 든 산행이다. 하산을 하고 나니, 다리가 무겁고, 스틱 웍이 많아, 두 어깨가 뻐근하다.
* * * * *
버스가 56번 국도를 버리고, 생곡리로 접어들자. 멀리 보이는 산들이 온통 하얗다. 차안에서 스패츠를 착용하는 등, 설중산행 준비를 마친 대원들은, 이윽고 버스가 배나무골에 도착하자, 바로 눈 덮인 임도를 따라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많지 않은 대원들이, 오랫동안 산행을 같이 해서인지, 가족 같은 분위기이고, 모두 산행경험이 많은 베테랑들 같아 보인다. 10센티 가까이 쌓인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눈을 헤치며 선두를 달리는 젊은 대원의 발걸음이 가볍고 빠르다. 그 뒤를 나머지 대원들이 바짝 따르고 있다. 처음 10여분 정도는 뒤지지 않으려고, 맨 뒤에서 열심히 따라가 보지만, 보통 때의 내 페이스 보다 많이 빠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속도를 줄인다. 10시 56분, 차량통행 차단기를 통과한다.
차단기 통과
지난 7월, 영춘지맥을 할 때는, 56국도에서 구목령까지 트럭을 빌어 타고 오른 적이 있다. 그 때 걸린 시간이 약 1시간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오늘은 눈 때문에 배나무골에서 부터 걸어 올라야하지만, 1시간 30분 정도면, 구목령에 도착하리라 보고,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앞선 대원들의 발자국을 뒤 따른다. 임도를 따라 오르며, 왼쪽으로 보이는 설경이 가히 환상이다.
마루금의 설경
임도가 가팔라지며, 눈길이 미끄럽다. 배낭을 벗어 아이젠을 꺼내 착용한다. 아무도 없는 눈 덮인 임도를 부지런히 걷는다. 날씨는 차갑지만, 몸에 열이 나면서, 안경에 수증기가 끼어 신경이 쓰인다. 한 시간 반을 넘게 걷자, 왼쪽으로 1142m봉으로 짐작되는 설봉이 가깝게 다가온다. 하지만 아직도 구목령까지는 먼 느낌이다. 눈길이라 힘이 들고, 속도가 떨어진다. 해 떨어지기 전에 구간완주가 가능할 지가 은근히 걱정된다.
가까워지는 마루금
구목령 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후미로 쳐진 내 위치를 확인하려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다고 짐작은 하지만, 오늘 처음 만난 분들이고, 또 고요한 산속에서 구조요청 이외에는 소리 지르는 것 터부시하는 나는, 잠자코 걸음만 빨리한다. 두어 번 이어지던 소리가 잠잠해진다. 11시 39분, 구목령에 도착한다. 일행들이 쉬면서 기다리고 있다.
구목령 도착.
일행 한 분이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느냐고 묻는다. 소리는 들었지만, 나를 부르는 소리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대답을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대답한다. 또 한분이 끝까지 갈 것이냐고 묻는다. 늙은이가 공연히 끼어들어 일행에게 걱정을 끼쳐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 시각이 11시 40분경이니, 해 떨어지기 전에 하산이 가능할 것 같다. 대원들은 왼쪽 능선을 타고 오르고, 물을 마시느라 잠시 지체한 나는 바로 이들의 뒤를 따른다.
구목령에서 마루금을 타는 대원들.
눈 덮인 산죽길이 이어지고, 능선에 오르니, 눈꽃이 환상이다. 자세히 보니, 나뭇가지에 소담스럽게 쌓인 눈이 아니라, 가는 바늘처럼 날카롭게 날이 선 상고대다. 11시 58분 헬기장에 오른다. 지난여름 구목령에서 이곳까지 15분이 소요됐던 것에 비해, 눈길에서도 크게 시간차는 나지 않는다. 비로소 다소 마음이 놓인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은 겉옷을 벗고, 아이젠을 착용하는 등 본격적인 산행준비를 하고 있다.
눈 덮인 산죽길
환상적인 상고대
앞선 대원들의 발자국을 따라 가파른 사면을 오른다. 12시 9분, "T자형" 능선에 올라, 오른쪽으로 향한다. 좁은 능선길이 이어지고, 소나무가지들이 무겁게 눈을 이고 축 쳐져있다. 12시 20분, 1105m봉을 지나고, 참나무들이 앙상한 능선길을 걷는다.
좁게 이어지는 마루금
12시 50분, 눈 쌓인 암릉지대를 지난다. 선두팀이 암릉길에서 안전한 곳을 찾는 라, 여기저기 발자국을 남겨 놓았다. 마지막 암봉을 지나는 길이 위험하다. 불룩 튀어나온 바위를 안고, 좁은 바위 턱을 디디며, 트래버스를 해야 하는 곳이다. 길이는 1미터가 조금 넘는 짧은 구간이지만, 불룩 튀어 나온 바위 위에 손잡을 곳이 없으면, 통과가 불가능한 곳이다. 손을 뻗어, 바위 위를 더듬어 보니, 손잡을 곳이 있다. 바위를 안고, 조심조심 게걸음을 쳐, 위험구간을 통과한다. 바위 위에 서면, 서쪽 조망이 좋다고 들었지만, 포기하고, 훨씬 앞섰을 일행들의 뒤를 따른다.
바위지대.
환상적인 눈꽃 능선을 지나, 1시 10분, 1190m봉에 오른다. 일행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삼각점을 찾아보지만, 눈에 묻혀 발견하지를 못한다.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대원들이 갈 길이 멀어, 해 떨어지기 전에 하산이 가능할지 여부를 걱정하고 있다. 지금 같은 속도라면, 4시 30분경이면, 불발현에 도착하고, 임도에서 한 시간이내 거리까지 버스가 올라 와 준다면, 일몰 전 하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해준다.
1190m봉에서의 식사
1시 12분경, 식사를 마친 일행들이 먼저 출발을 하고, 구목령 오르는 임도에서 선두에 섰던, 젊은 대원만 남아있다. 식사를 마치고 따라갈 터이니, 먼저 하산하라고 해도, 후미를 보겠다며 기다리고 있다. 1시 25분 경, 식사를 마치고,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젊은 대원이 뒤 따라온다. 앞서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산행 중 1미터 이내로 뒷사람이 바짝 따라 붙으면, 길을 내달라는 소리다. 그렇지 않을 때는 적어도 2미터 이상 떨어져 걷는 것이 예의다. 나는 다른 사람이 뒤 따라오면, 왠지 불안해 걸음이 빨라진다. 그것이 싫어, 내 경우는 최후미로 떨어져 걷는 것이 가장 속 편하다.
1시 38분, 암릉지대를 오른쪽으로 우회하고, 아름다운 상고대 숲을 지나, 2시 3분, 표지기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는 1181봉을 지난다. 구목령에서 약 4Km를 진행한 셈이다. 2시 31분, 1098m봉을 넘어선다.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눈 덮인 흥정산(1278.5m) 능선이 우람하다. 나뭇가지 때문에 깨끗한 사진을 담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우람한 고목들이 줄을 잇고, 나뭇가지 사이로 흥정산에서 흘러내리는 능선과 그 뒤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그림 같다.
표지기들이 어지러운 1181m봉
장곡현이 가까운 능선에서 본 설경
왼쪽으로 눈 덮인 임도가 보이고, 3시 20분 장곡현 삼거리에 도착한다. 후미 대장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꾸준히 참을성 있게 뒤를 받혀주는 젊은 양반이 대견하다. 혼자 걷는 것도 좋지만, 후미대장이 뒤에 있으면 역시 든든하다.
장곡현 삼거리
사람 발자국이 없는 너른 임도를 따라 오른다. 앞선 일행들은 표지기들이 붙어 있는 오른쪽 능선을 타고 오른 모양이다. 하지만 임도 끝 지점에서 만나게 될 터이니, 뒤를 따르지 않고, 하얀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내며 계속 임도를 따라 걷는다.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웅장한 산세가 내다보인다. 후미대장이 문암산(1146m)이라고 알려준다. 3시 30분, 임도 끝 지점에 이르러, 왼쪽 가파른 비탈길로 내려선다.
임도를 오르다 본 문암산
임도 끝
3시 55분, 안부에 내려선다. 정면에 솜털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봉우리가 막아선다. 가파른 사면을 천천히 올라, 능선 위에서 왼쪽 발자국을 따른다. 4시 2분, 표지기들이 아름답게 걸린 봉우리를 지나고, 4시 10분, 산불 감시초소가 보이는 안부에 내려선다. 낮 익은 곳이다. 직진하면 영춘지맥 할 때 걸었던 길이고, 한강기맥은 오른쪽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표지기들이 달려있다. 후미대장이 무전기로 김 회장에게 현재 위치를 보고한다.
안부에서 본 올라야 할 봉우리,
표지기들이 아름답다.
산불감시초소
이제 오늘 산행도 종점이 가깝다. 불발현으로 향한다. 정면으로 시야가 트이며, 문암산이 가깝게 보이고, 멀리 내면과 불발현의 눈 덮인 도로가 내려다보인다. 4시 25분, 공터를 지나고, 5분 후 헬기장을 지나, 눈 덮인 산죽이 아름다운 능선을 내려선다. 불발현 삼거리가 눈앞에 다가 온다. 능선 끝에서 보는 내면 방향의 해질 무렵의 조망이 숨을 멈추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내려다 본 불발현 삼거리
능선 끝에서 본 내면 방향의 조망
4시 42분 불발현에 내려선다. 표지석과 국유임도 안내판 그리고 이정표를 카메라에 담는다. 기온이 많이 찬 모양이다. 카메라가 배터리 부족 사인을 보내오며,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다. 새 배터리로 바꾸어도 마찬가지다. 4시 45분, 후미대장과 함께 임도를 따라 하산한다. 눈앞에 멋진 고목이 외롭게 서있다. 카메라를 꺼내 찍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작동을 한다. 허리에 차 있는 동안, 따듯해 진 모양이다.
불발현 표지석
이정표
석양의 고목
점점 어두워지는 길을 따라 빠르게 걸으며, 후미대장과 이야기를 나눈다. 현재 주 2회 백두대간을 종주 중이고, 시간당 도상거리 약 4Km를 걷는 엄청난 준족인데, 산행속도를 줄이려고,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고 한다. 그런 준족이 내 뒤를 따라왔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5시 40분이 지나자, 사방이 어두워지고, 눈길만 하얗다. 전방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김 회장이 모습을 보인다. 기다리다 지쳐서 마중을 나온 모양이다. 저 아래 버스의 붉은 미등이 보인다. 5시 42분, 국유임도 안내판 앞에 서있는 버스에 다가가니, 먼저 하산한 대원들이 박수로 맞아준다. 고맙다.
국유임도 안내판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많지 않는 대원들이지만, 일요종주 팀의 분위기는 사뭇 가족적이다. 여자대원 한분이 분위기를 한층 더 부드럽게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이방인이 끼어들었지만, 후미대장을 비롯하여, 모든 분들이 따듯하게 맞아 주셔서 고맙다.
다음 구간에서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토요종주 팀원들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거듭 기대한다.
(200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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