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현에서 본 지나온 긴 마루금
2006년 12월 24일(일).
송암 산악회에서 안내하는 한강기맥 14번째 구간을 산행한다. 원래는 불발현에서 출발하고 운두령에서 마감하는 코스지만, 불발현까지의 접근거리가 길고, 겨울철의 빨라진 일몰시간을 감안하여, 오늘은 역코스를 택한다.『운두령(1089m/2Km)-1271.8m봉(1.8Km)-1382m봉(1.9Km)-보래령(930m/2.2Km)-회령봉갈림길(1.7Km)-자운치(1092m/2.1Km)-1,198.5m봉(1.4Km)-흥정산갈림봉(1.2Km)-불발현(1013m/5.2Km)-도장골 임도』로 마루금 도상거리 약 14.3Km, 날머리 약 5.2Km, 합계 약 19.5Km에 달하는 긴 구간이다.
어제 한북정맥의 마지막 구간을 산행 하느라, 약 7시간 정도 눈길을 걸었으니. 오늘은 쉬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결간을 하게 되면, 오지(奧地)인 이 구간의 땜방이 쉽지가 않아, 무리를 해서 참여한다. 하지만 내 입장만 생각하다가, 발 빠른 다른 대원들에게 짐이 될까 걱정이다.
크리스마스 연휴에다, 장거리 오지산행 때문인지, 오늘 산행에 참여한 대원수는 모두 10명뿐이다.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종주를 마감하려고 노력하는 김 회장의 책임감이 대단하다. 깊이 감사드린다.
봄날처럼 따듯하고 청명한 날씨다. 25인승 밴은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 속사 인터체인지에서 31번 국도로 갈아타고 북상하여, 9시 58분, 운두령에 도착한다. 운두령은 등산객들이 타고 온 대형버스, 봉고차, 승용차들로 붐비고, 계방산을 향하는 등산객들이 줄을 이어 계단길을 오르고 있다.
운두령 도착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9:58) 운두령 도착-(10:02) 산행시작-(10:18)- 능선분기봉-(10:56) 1271.8m봉-(11:20) 1360m봉-(11:41) 1382m봉(H)-(12:23) 보래령-(13;07~13:30) 보래봉/중식-(14:06) 회령봉 갈림길-(14:25) 자운치-(15:11) 1085m봉-(15:34) 1110m봉-(16:04) 1198.5m봉-(16:46) 흥정산 갈림봉-(17:07) 불발현-(18:11) 도장골 임도』, 중식 23분, 마루금 6시간 42분, 날머리 1시간 4분, 총 8시간 9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일행은 아이젠을 착용하는 등 산행준비를 마치고, 10시경, 서쪽 등산로로 들어서며, 산행을 시작한다. 김 회장이 후미를 본다. 든든하다. 등산로에 쌓인 눈은 앞선 팀들이 이미 러셀을 해 놓은 상태다. 오르막길이 점차 급해지더니, 10시 10분,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에 오른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세가 우람한데, 멀리 임도가 보이는 곳이 불발현이라고, 김 회장이 귀띔해 준다.
다져진 눈을 밟으며 산행시작
산불감시초소에서 본 불발현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10시 18분, 첫 번째 능선 분기봉에서 발자국은 오른쪽으로만 나 있다. 울창한 참나무들 사이로 눈을 밟고 지나간 궤적이 아름답다. 앞서 간 대원들을 따라 부지런히 걷는다. 김 회장이 뒤에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 온다. 10시 28분, 1215m 정도의 봉우리를 지나면서, 남서 방향으로 1271.8m봉을 바라본다.
1215m 정도의 봉우리를 넘는다. 오른쪽으로 1272m봉이 보인다.
안부를 지나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봉우리가 가까워지면서, 위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쉬고 있는 일행들을 드디어 따라 잡는다고 생각하고 더욱 부지런히 걸어, 10시 56분, 1271.8m봉에 오른다. 하지만 정상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일행이 아니다. 어찌됐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오른쪽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 서쪽을 향해 달린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분들은 부천에서 눈꽃 산행을 위해 보래봉을 찾아 온 일반등산객들이다.
1271.8m봉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일반등산객
11시 20분, 또 한 무리의 일반등산객들이 쉬고 있는 1360m봉을 지나 안부로 내려서며,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눈 덮인 자운리 마을들을 굽어본다. 등산로가 오르막을 가파르게 오르더니, 11시 41분, 너른 헬기장인 1382m봉에 이른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이다.
헬기장을 내려선다. 등산로는 오른 쪽으로 굽어진다. 산이 크다 보니, 마루금도 넓다. 마치 평전(平田)같은 느낌이다. 11시 53분 벌목지대를 지나고, 12시 4분, 능선 분기봉에서 발자국들은 왼쪽으로 이어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래봉이 보인다.
평전같은 느낌의 넓은 마루금
벌목지대
보래봉
1261m봉에서 등산로는 다시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두터운 눈을 헤집고 산죽의 푸른 잎들이 비쭉비쭉 얼굴을 내밀고 있다. 12시 23분, 보래령(930m)에 내려선다. 오늘 산행 중 가장 낮은 곳이다. 이곳까지 도상거리 약 5.7Km의 거리를 2시간 20분에 걸은 셈이다. 부지런히 걷는다고 걸었지만, 눈길이라 속도가 나질 않는다.
보래령
보래령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오늘 산행 중 가장 힘이 드는 구간이라 서둘지 않고 천천히 오른다. 12시 32분, 전위봉에서 왼쪽으로 향하고, 1시 7분, 고도 1324m인 보래봉에 오른다. 이정표는 바로 보이지만, 눈에 깊게 덮인 삼각점은 찾을 길이 없다. 주변의 나무들 때문에 조망도 별로다. 비교적 넓은 정상에서 우리 일행 몇 분이 일반등산객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나도 눈 위에 앉아, 식사를 한다.
보래봉 이정표
버너를 피워 놓고,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 일반등산객들은 등반 대장으로 보이는 분의 잇따른 농담에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부천에서 눈꽃 산행을 온 분들의 선두그룹인 모양이다. 이들은 용수골로 하산을 할 예정이라 무척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이윽고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이 앞서 출발을 하고, 서둘러 식사를 마친 나도, 1시 30분경. 이들의 뒤를 따른다.
1시 30분 경 보래봉을 내려선다.
거목(巨木)들이 눈에 띄는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아마도 보래봉 이후의 눈길은 우리 팀이 만들며 나가는 모양이다. 외줄기 발자국이 어지럽지가 않다. 1시 44분, 안부를 지나고, 오르막길을 오르며 뒤돌아 보래봉을 카메라에 담는다. 1시 51분, 1300m 정도의 봉우리를 넘으니,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하얗게 눈 덮인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2시 6분, 회령봉 갈림길에 이른다. 우리 일행들이 쉬고 있다.
1300m 정도의 봉우리를 넘고,
1270m, 회령봉 갈림길
내리막길을 달려 내린다. 누군가가 참나무 몸통을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오려 놓았다. 꿀을 채취하기 위해, 벌집을 오려낸 자국이라고, 김 회장이 알려준다. 알량한 지능을 갖은 인간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못된 짓은 도맡아 하는 느낌이다. 잠시 머무는 사이에 발 빠른 대원들은 모두 시야에서 사라지고, 다시 후미로 쳐진다.
벌집을 도려낸 자국
2시 30분, 1150m봉을 지나고, 산죽이 무성한 내리막길을 달려 내린다. 왼쪽으로 멀리 흥정산이 보인다. 2시 45분, 자운치에 내려선다. 김 회장이 기다리고 있다. 자운치는 도장골 안부라고도 한다.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자운 2리 지석동에 이른다.
자운치
자운치에서 직진하여 오르막길을 오른다. 산행을 시작하고, 5시간이 가까워지자, 어제 산행여파도 있어서인지,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능선 분기봉에서, 발자국을 따라 왼쪽으로 돌고, 3시 11분, 1085m봉에 오르니, 앞에 또 봉우리가 보인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11시 34분 1110m봉을 넘고, 4시 14분, 1198.5m봉을 넘어선다. 지는 해가 앞 봉우리에 걸려있다. 발걸음을 서둔다.
1085m봉
4시 35분, 괴복이 서 있는 봉우리를 넘어선다. 자운치를 지나, 이곳까지 대 여섯 개의 봉우리를 지난 것 같다. 이제 불발현이 가까운 모양이다. 오른쪽으로 멀리 문암산이 보인다. 4시 46분, 흥정산 갈림길에 이른다. 김 회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웃으며, 이제 다 왔다고 위로한다.
괴목이 서 있는 마지막 봉
잎은 다 떨어지고, 줄기만 남은 산죽밭을 달려 내린다. 5시 7분, 땅거미가 짙어지기 시작하는 불발현에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멀리 계방산이 보인다. 김 회장과 서둘러 임도를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지나온 긴 능선이 어둑해진 하늘 아래 길게 누워있다.
불발현에서 본 계방산
뒤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눈 밝은 김 회장이 멀리 반대쪽 임도에서 불발현으로 올라오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누군가? 우리 일행 중에 불발현에서 잘못하여 오른쪽 임도로 내려섰던 대원이 다시 불발현으로 오르는 것인가? 아니면 무전기를 찾으러 회령봉 갈림길로 되돌아섰던 선두대장이 자운치에서 지석동으로 탈출을 하지 않고, 임도를 따라 불발현으로 오고 있는 것인가? 김 회장은, 잠시 기다려 확인할 터이니, 나 먼저 내려가라고 한다.
어두워진 임도를 속도를 내서 달린다. 눈길이라 어두워도 랜턴을 꺼낼 필요가 없겠다. 뒤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김 회장이 어느 틈에 따라오며, 불발현으로 오르는 사람은 선두대장이라고 알려준다. 고도가 낮아지자, 먼저 하산하여 기다리는 대원들을 의식한 김 회장이 앞서 달려 나간다. 저 아래 정차해 있는 밴의 불빛이 보인다. 하지만 차들이 많이 지나다닌 아래쪽 임도는 무척 미끄럽다. 걷는 속도를 줄이고 조심조심 내려선다.
6시 11분, 국유임도 안내판 앞에 정차한 밴에 도착한다. 다행이 먼저 도착한 대원들은 차 안에서 하산주 파티를 즐기고 있다. 수고했다고 따라주는 막걸리 두어 컵을 단숨에 마신다. 무척 시원하다. 이윽고 손전등을 켜든 선두대장이 도착하고, 버스는 6시 25분 경,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후미를 봐 주신 김 회장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06.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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