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전망바위애서 본, 기맥 마루금, 고성산, 월랑산, 태청산, 그리고 장암산
송암산악회의 가이드로 지난여름에 시작했던 영산기맥 종주는 겨우 세 구간만을 따라하고, 힘에 부쳐 포기를 한 후, 잡목 가시넝쿨들의 기가 죽는 겨울철에 혼자서라도 다시 이어가기로 다짐한 바가 있다. 새재 분기봉에서 시작하여 유달산까지 이어가는 영산기맥의 총 도상거리 약 157Km 중 암치까지의 약 38Km를 제외하면 약 120Km가 남았다.
다행이 심산대장이 동행하겠다고 나선다. 함께 일정을 검토하고, 12월 25일 출발하여, 아래와 같이, 2박 3일 동안을 잇달아 산행하기로 의견을 모은다.
- 12월 25일 : 암치재-고산-고성산-깃재-월랑산-몰치재 (도상거리 약 10Km)
- 12월 26일 : 몰치재-태청산-장암산-봉성산-가재봉-밀재(도상거리 약 13.5Km)
- 12월 27일 : 밀재-불갑산-용천봉-지경고개(도상거리 약 12Km)
출발에 앞서 날씨가 심상치 않다. 서울의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지고 바람까지 불어 실제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를 밑도는 30년만의 한파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서해안과 호남지역에는 폭설까지 내린다는 예보다. 현지의 시간대 별 일기예보를 주시한다. 영광 대마면의 25일 예보는, 최저기온 영하 8도, 낮 최고기온 영하 4도, 풍속 초당 7m, 눈 1~4Cm, 26일은 최저기온 영하 7도, 최고기온 영하 2도, 풍속 초당 4m, 눈 1~4Cm이다. 기온보다 바람이 문제다. 바람이 자기를 기다려, 26일 출발하기로 일정을 조정한다.
25일 저녁 뉴스시간에 고창의 양어장 물고기들이 추위로 떼죽음을 당한 화면이 비친다. 25일 고창의 최저기온이 -10도, 유례없는 강추위로 물고기들마저 얼어 죽었다는 보도다. 하루를 더 늦추어 볼까하는 생각도 없지 않으나. 이미 26일 숙박을 위해 몰치재에서 0.8Km 떨어진 태화관광농원의 방가로를 예약해 놓은 터라 강행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2010년 12월 26일(일)
심산대장과 함께 센트럴에서 7시 고창 행 첫차를 탄다.(15,300원) 첫차인데도 일요일이라서인지 승객이 제법 많다. 표를 받는 사람이 출발 직전, 기사양반에게 20명이라고 보고를 한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자, 차창에 성애가 하얗게 서려, 아쉽게도 차창 밖의 풍광을 볼 수가 없다. 버스는 10시 10분 경, 고창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생각보다 춥지도 않고, 밤새 내린 눈도 그쳐, 지금은 맑은 날씨다.
송성을 지나 영광으로 가는 군내버스가 10시 40분에 있으니, 30분 정도 시간여유가 있다. 터미널부근의 식당에서 콩나물 해장국으로 식사를 한다. 음식은 역시 호남지방이다. 5,000원짜리 해장국에 따라 나오는 밑반찬이 식탁에 가득하다. 식사를 마치고 영광 행 군내버스에 오른다. 성송까지의 버스 요금이 1,360원, 10원단위까지 정확히 표기된 요금표가 신기하다. 버스는 23번 국도를 천천히 달려, 11시경, 893번 국지도가 갈라지는 낮 익은 삼거리에 우리들을 내려준다.
삼거리
지난 구간에 지났던 구황산
성송면 계당리에 있는 개인택시 2곳 중, 한 곳인 정양묵씨에게 전화를 걸자,(063-561-0677) 2~3분도 채 안 되어 택시가 모습을 보인다. 택시는 제설이 잘된 도로를 달린다. 오른쪽으로 눈 덮인 고산이 보인다. 택시는 11시 10분, 산행 들머리인 암치고개에 도착한다.(요금 8,000원)
암치고개
스패츠는 식당에서 미리 착용을 한 터라, 차에서 내리자 바로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눈 덮인 임도를 따라 걷는다. 바람도 없어 포근하게 느껴지는 날씨다. 제법 많이 내린 하얀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내면서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2분 후 임도 갈림길에 이르러 오른쪽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하지만 오르막이 그치는 곳에는 너른 묘역이 펼쳐지고, 커다란 봉분에 하얗게 쌓인 눈이 아름답다. 할 수 없이 갈림길로 되돌아 와, 이번에는 왼쪽 임도로 들어서서 잠시 진행해 보지만 결과는 동일하게 또 다른 묘에서 길이 끊긴다.
오늘의 산행코스(암치재-깃재 : 도상거리 약 6Km)
이정표
잘못 들어선 묘 길
암치고개 들머리에서 묘 길로 잘못 들어선 것이 틀림없다. 갈림길로 되돌아와 주위의 지형을 둘러본다. 첫 번째 만난 묘 오른쪽으로 능선이 보인다. 다시 첫 번째 묘에 올라, 오른쪽 능선을 향해 길 없는 잡목 숲을 헤집고 돌진한다. 11시 38분 능선에 오르자, 넓은 공터가 펼쳐지고, 공터 뒤로 또 다른 임도가 보인다. 비로소 고산으로 통하는 임도를 만난 것이다. 이정표가 있는 들머리에서 묘 길 오른쪽에 있는 또 다른 임도를 보지 못하고 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항상 들머리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들머리는 통상 표지기로 확인하는 것이 보통인데, 오늘은 이를 소홀히 한 덕에 초장부터 20분 이상을 헤맨다.
공터에서 본 고산
고산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임도를 따라 오른다. 나뭇가지에 걸린 표지기가 눈에 뜨인다. 이윽고 임도가 끝나고 눈 덮인 등산로가 잡목 숲으로 이어지며 점차 가팔라진다. 겨울이라 잡목은 크게 방해가 되지 않지만 눈 덮인 가파른 오름길이 미끄러워 아이젠을 꺼내 착용한다. 한결 걷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 아이젠에 눈과 낙엽이 들러붙어 걸음을 방해한다. 내 것은 체인 아이젠, 심산대장의 것은 네발 아이젠이지만 눈과 낙엽이 달라붙기는 마찬가지다. 심산대장이 못 걷겠다고 툴툴 거린다.
눈 덮인 임도, 탄탄대로다.
잡목 숲으로 등산로가 이어지고
가파른 오르막에 표지기들이 보인다.
12시 32분, 주능선에 오르자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490m봉이 가깝다. 490m봉을 넘고, 잡목이 무성한 안부를 지나 오르막길에서 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왼쪽으로 가야할 고성산, 월랑산, 태청산, 장암산 등 기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온다. 12시 42분, 고산 정상에 오른다. 구황산과 삼북제가 한눈에 들어오고, 북으로는 하얗게 눈이 덮인 고창 너른 벌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들머리에서 20여분 헤맨 것을 감안하더라도 눈길이라 도상거리 1.4Km를 오르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490m봉
안부의 잡목
고성산, 월랑산, 태청산, 장암산
구황산과 삼북제 그리고 893번 국지도
고창 너른 벌
고산 정상석
정상에서 후퇴하여왼쪽으로 내려서며 이번에는 동쪽의 산간마을, 서쪽으로 가야할 길, 그리고 남쪽의 삼계면 방향의 조망을 카메라에 담는다. 12시 50분, 해맞이 기원제단을 지나고, 10분 후, 이정표와 고산산성 안내판이 있는 깃대봉 갈림길에서 왼쪽 상금고인돌 방향으로 가파르게 내려선다.
동쪽의 산간마을
가야할 길
삼계면 방향의 조망
해맞이 기원제단
이정표
1시 6분, 묘 2기를 지나고 이어 임도를 따라 내려, 1시 23분, 이정표가 있는 가릿재 삼거리에 이르고, 표지기를 따라 왼쪽 임도로 들어선다. 하지만 임도는 계곡을 건너, 왼쪽으로 굽어 오르더니, 묘 앞에서 길이 끊어진다. 무심코 임도를 따라 내리다 마루금을 벗어난 것이다. 다시 가릿재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산세를 살핀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능선이 마루금에 틀림이 없다.
편한 임도를 따라 내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마루금을 벗어 났다.
가릿재 삼거리 이정표
왼쪽 묘 길 쪽으로 걸린 표지기
합장묘 앞에서 길은 끊어지고
여기서는 임도를 거슬러 되올라가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찾던가, 아니면 왼쪽에 보이는 능선으로 바로 치고 오르는 두 가지 방법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여야하는데, 두 사람의 의견이 갈린다. 심산대장은 전자를, 나는 후자를 택하자고 서로 우긴다. 합장묘 건너편 숲으로 사람들이 지난 흔적이 있었던 것 같다고 심산대장을 설득하여 다시 합장묘에 이르러, 건너편 숲으로 들어서니 표지기가 보인다. 물론 이 표지기도 앞의 삼거리에 있던 표지기들과 마찬가지로 마루금에서 벗어난 엉터리이지만, 이곳에서 우리들처럼 헤맨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600" alt="" hspace="5" src="../images/hl2XgfGg0g44gQzEmV4T3Q.jpg" width="800" vspace="5" border="0">
합장묘 건너편 빽빽한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서니 표지기가 보인다.
2시 5분, 능선에 올라 비로소 마루금으로 들어선다. 오늘 두 번째로 마루금을 벗어나면서 또 다시 20분~30분 정도를 까먹은 것이다. 2시 12분, T자 능선에서 왼쪽으로 진행하고, 5분 후안부로 내려선다. 여전히 아이젠에 눈덩이와 낙엽뭉치가 달라붙어 두 걸음 걷고 발을 구르고, 세 걸음 걷고는 나무 등걸을 발로 차, 눈덩이와 낙엽을 털어낸다. 2시 19분, 갈림길을 만나, 경사가 급한 직진길 대신 왼쪽 우회로로 들어선다.
다시 마루금으로 들어서고,
갈림길에서 왼쪽 우회로로
뚜렷이 이어지던 사면 우회로가 작은 너덜을 지나며 눈 속에 묻혀 사라져버린다. 오른쪽의 능선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가늠하며 길을 찾아 진행하지만 한번 사라진 길은 종적이 없다. 할 수 없이 잡목을 헤치며 가파른 사면을 치고 올라 능선으로 향한다. 코가 땅에 닿는 경사를 오르며 잡목과 20여분 사투를 벌인 후, 겨우 능선으로 들어서서, 키를 넘는 산죽 밭을 헤쳐 오른다. 산죽에 쌓였던 눈이 폭포수처럼 재킷 위로 쏟아져 내린다.
키를 넘는 산죽 밭을 지나고
3시 15분 경, 작은 바위를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올라 선 후, 선채로 어한 주를 마시고,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빵과 함께 간단히 식사를 한다. 이어 3시 33분 다시 산행을 속개하는데, 사방이 어둑해 지며, 눈발이 날리고, 북서풍이 강하게 불기 시작한다. 오후에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맞는 모양이다. 바람이 불면 공연히 마음이 바빠진다. 3시 40분, 쇠파이프가 쓰러져 있는 능선에 오르자 시야가 트이며 건너편의 구름에 가린 산봉우리가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보인다. 등산로는 왼쪽으로 굽어져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잡목 너머로 고성산이 우뚝하다.
눈발 속에 산행은 속개되고
구름이 낮게 드리운 건너편 산봉우리
고개를 내민 고성산
3시 47분, 육군보병학교장이 세운 경고판을 지나고, 가볍게 오르내리는 주능선을 따라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바람은 여전하지만 눈발은 소강상태다. 시야가 트이며 오른쪽으로 영광군이, 왼쪽으로는 장성군이 내려다보인다. 암릉길이 이어진다. 좁은 암릉사이로 3m정도 솟은 직벽을 힘겹게 기어오르자, 이제 고성산은 코앞이고, 그 뒤로 태청산도 모습을 보인다.
경고판
가볍게 오르내리는 능선길
영광군
장성군
정상이 가깝다.
4시 14분, 등산안내도, 삼각점, 그리고 쓰러진 깃대봉 정상목이 있는 고성산 정상(546m)에 오른다. 고성산은 영산기맥에서, 방장산, 입암산, 문수산, 태청산에 이어 다섯 번째로 높은 산으로, 영광군과 장성군사이에 우뚝 솟아 조망이 시원하다. 서쪽으로 깃재 너머 추모공원과 월랑산이 보이고, 남서쪽으로 태청산으로 이어지는 기맥 마루금이 아련하다. 바람이 거세어 오래 있지 못하고 서둘러 하산을 시작한다.
등산안내도, 정상목
추모공원과 월랑산
삼계면 방향의 조망
태청산과 기맥 마루금
이미 4시가 넘은 시각이다. 오늘 산행은 깃재에서 마감할 수밖에 없겠다. 돌 많은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다. 오늘밤 숙박을 예약한 태화관광농원에 전화를 걸어, 눈이 많아 산행이 늦어져, 농원까지 갈 수가 없게 됐으니, 깃재에 차를 보내 픽업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농원에서는 차도 사람도 없어 픽업이 곤란하다는 대답이다. 예약한 방가로에 난방을 했으면 그 연료비를 부담하겠다고 하니, 그럴 필요는 없고,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많이 찾아 달라는 고마운 대답이다.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하며 전화를 끊는다. 이어 114에 부탁하여 삼계면의 개인택시기사와 통화를 하고, 30분 후에 깃재에서 대기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하산하다 뒤돌아 본 지나온 길
뚜렷한 등산로가 가파르게 이어진다. 경사가 급한 곳에는 로프가 걸려있다. 다시 눈발이 날리며 금방 사방이 어둑해 진다. 마음이 급해져서 뛰듯이 달려 내린다. 하지만 마음뿐이다. 눈덩이가 달라붙은 아이젠이 자꾸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5시 15분, 갈림길에 이른다. 직진하면 앞을 막는 봉우리로 이어지는 마루금이고, 왼쪽은 임도다. 두말없이 등산 안내도가 있는 임도로 내려서서 눈 덮인 길을 꼬불꼬불 달려 내린다. 5시 29분, 깃재에 도착한다. 도로 건너편에 택시가 대기하고 있다.
임도
깃재
기사양반에게 삼계면에 있는 모텔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한다. 험한 날씨, 어둑한 시각에, 눈밭을 헤치고 나타난 두 늙은이를 보고, 중년의 기사양반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이 험한 날씨에 어느 산을 다녀오시느냐고 묻는다. 고창의 암치재에서 11시10분에 출발하여, 고산, 고성산을 넘어 이곳에 도착했다고 하니, 무척 놀라는 눈치다. 기사 양반은 모텔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 나은 곳으로 모시겠다며 우리들을 레인보우모텔로 데려다 준다.(요금 10,000원)
요금을 건네고 (10,000원), 명함 한 장을 받는다. 삼계면 개인택시 나병춘씨(011-601-0547) 차도 새 차고, 무척 친절한 기사다. 숙박비 30,000원에 온돌방을 얻고, 식사할 곳을 묻자, 아가씨가 이 근방의 식당들은 모두 문을 닫아서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다며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일단 방으로 들어가 있으란다. 알아보고 연락을 해주겠단다.
아가씨가 ‘시골생활’이라는 음식점을 소개해 준다. 모텔에서 길 건너 약 300m 떨어진 곳에 있는 식당이다. 춘천 닭갈비 전문집이라고 한다. 동태 탕을 주문하고 (2인분 14,000원) 맥주 두 병을 나눠 마시니 배가 부르고 한결 피로가 가시는 느낌이다. 내일 아침식사가 문제다. 모텔로 돌아와 나병춘씨에게 전화를 걸어, 아침식사 할 곳을 묻는다. 모텔에서 15분 정도 걸어 나와 상무 아파트 입구까지 오면 아침식사 할 곳이 있다고 알려준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8시 뉴스를 본다. 이제까지 강설량이 고창 10Cm, 영광 15Cm인데 밤새 눈이 계속내리겠다는 예보다. 내일은 기온은 많이 올라 낮에는 영상이 되겠다고 한다. 오늘 산행이 힘이 들었던지 하산 후 별로 말이 없던 심산대장이 밤새 눈이 내린다는 예보에 표정이 어두워진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 눈 내린 상태를 보고, 적설량이 많아 산행이 곤란하면, 택시로 장성이나, 문장시외버스터미널로 나가, 광주를 거쳐 서울로 올라가면 되고, 산행이 가능할 정도면 깃재에서 사동고개까지 산행을 하면 될 터이니 지금부터 미리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다.
따뜻한 방에 자리를 펴고, 한 시간 가까이 스트레칭과 간단한 요가로 몸을 충분히 푼 후, 9시 30분경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든다.
(2010.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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