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가리 골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에 "삼둔 사가리"라 하여 일곱 군데의 피난처가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삼둔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의 살둔, 월둔, 달둔이고, 사가리는 인제군 기린면의 아침가리, 명지가리, 연가리, 곁가리로 예로부터 알려져 내려오는 오지 중의 오지다. '둔'은 '평평한 땅'. '가리'는 '밭을 가는 일'을 뜻한다.


이러한 피난처들이 홍천군 내면과 인제군 기린면에 집중된 이유는 그곳의 지형에서 찾을 수가 있다. 방태산(1,435.6m), 구룡덕봉(1,388.4m), 응복산(1,155.6m), 가칠봉(1,240.4m) 등 1,000m가 넘는 고봉으로 둘러싸인 험준한 곳이라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데도, 골짜기로 들어서면 평평한 땅이 있고, 사철 마르지 않고 흐르는 물이 있어, 세상을 등지고 살아야할 사연을 가진 이들이 정착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아침가리'란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의 해만 비치고, 금세 어두워지는 첩첩산중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인데, 아침가리 골은 사가리 가운데서도 가장 깊은 골짜기이다. 약 15Km 정도의 아침가리 골을 흘러내린 물줄기는 진동리 갈터에 이르고, 이곳에서 점봉산에서 흘러온 진동계곡과 합류되어 흐르다, 기린면(현리)에서 내린천과 만나 소양강이 된다. (이상 "펌")

개념도


2009년 6월 16일(화)

28인승 산악클럽의 안내로 아침가리 트래킹에 나선다. 버스가 마지막 경유지인 복정역을 지나자, 28인승 우등버스에는 평일인데도 빈자리가 서너 군데 보일뿐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참여하고 있다. 그만큼 아침가리 트래킹이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버스가 팔당대교를 지나 6번 국도를 달린다. 흐린 날씨에 아침안개로 검단산이 흐릿하고, 남한강변 주변의 풍광이 그림같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부근의 경치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양평을 지나며 창밖이 단조로워지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속으로 빠져든다.

 창밖의 북한강


아침식사를 하라고, 버스는 9시 8분, 화양강 휴게소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니 빗방울이 떨어지고, 날씨도 싸늘하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없었기에 비옷도 챙기지 않았는데 난처하다. 계곡물을 건너며 트래킹을 해야 하는데 비마저 내린다면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 꼴을 면하기 어렵겠고. 만약 비의 량이 많아지면 위험한 계곡 트래킹은 포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휴게소 뒤의 화양강 주변풍경도 을씨년스럽게만 느껴진다.

휴게소에서 본 화양강


휴게소에서 약 20분 동안 정차했던 버스는 다시 출발하여 현리에서 418분 도로로 접어든다. 다행히 비는 멎고, 비구름이 산을 타고 오른다. 하지만 버스가 방동교를 지나 방동약수로 향하는데 다시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진다. 10시 30분 경 버스는 방동약수 입구에 도착하여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방태천과 비구름이 걸린 주변산

방동약수 입구에서 소나기가 지나기를 기다리고


빗발이 가늘어 진다. 10시 45분, 방동약수로 오르며 트래킹을 시작한다. 오늘 트래킹 코스는 『방동약수-(임도트래킹)-방동교-(계곡트래킹)-진동리 갈터』로 임도 약 4Km, 계곡 약 8Km, 합계 12Km 정도다.

트래킹 시작


10시 48분, 방동약수에 이르지만 웬일인지 물이 없어 물맛도 못보고 지나친다. 이어 계단 길을 오르고, 사면(斜面)을 돌아 시멘트도로로 내려선다. 도로를 따라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른다. 왼쪽 계곡으로 좁은 경작지, 아침가리가 내려다보이고, 먼 산에 비구름이 걸려있다. 점차 고도가 높아지며 계곡이 멀어지고, 울창한 산림사이로 시멘트 길이 가파르게 오른다.

방동약수

방통약수 안내판

시멘트도로

왼쪽 계곡과 먼 산

아침가리

 

뒤돌아 본 지나온 길

울창한 숲 사이로


고개마루턱이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시멘트도로가 끝나고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11시 28분, 산불감시초소, 돌탑 등이 있는 너른 공터에 오른다. 여기서 오늘 참가자들이 일단 모두 모인다. 계곡 트래킹을 위한 사전 준비다. 계곡 트래킹에서는 계곡길이 끊어지면 물길을 걸어야하고, 수도 없이 계곡을 건너야한다. 물이 허리까지 차는 곳도 있고, 물살이 빠른 곳이 많다. 게다가 물속의 돌에는 물이끼가 끼어 미끄럽다. 따라서 혼자서 행동하는 것은 위험하다. 트래킹 도중 대원들을 수시로 모아, 대원들이 흩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고개마루 공터


11시 30분 경, 대원들이 다 모이자,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보이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고개를 내려선다. 물속을 걸어야하는 계곡 트래킹에 대비하여 등산화는 버스에 벗어 두고, 오래된 샌들을 싣고 나왔더니 문제가 생긴다. 너무 오랫동안 신지 않고 방치해 두었더니 고무가 많이 삭은 모양이다. 오른쪽 뒤축 끈이 끊어져 슬리퍼가 돼 버린다.

내리막길


도로가 넓어지고 골이 깊어진다. 30분쯤 내려서니 다시 시멘트도로가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계곡의 물소리가 요란한데, 길가에 화사하게 핀 야생화가 눈길을 끈다. 12시 14분, 조경동교를 건너 다리 아래로 내려선다. 다리 아래에서 모두 모여 함께 식사를 하라는 산악회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야생화 1 (대원 사진)

야생화 2

조경동교


다리 아래 물가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점심식사를 한다.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주위를 둘러본다, 이곳은 아침가리 골의 중간쯤 되는 지점이다. 아침가리의 한자어인 조경동(朝耕洞)에는 한 때 많은 사람들이 산적도 있다지만, 지금은 농가 2채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중 한 채가 다리 근처에 있다. 집을 지키던 크고 작은 개들이 갑자기 나타난 많은 사람들을 보고 요란하게 짖어댄다.

점심식사를 한 물가

다리 아래에서 식사하는 대원들

아침가리 밭

여러 마리의 개들이 엄중히 지키고 있는 농가


12시 48분, 식사를 마친 대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개울을 건넌다. 등산화를 신고 온 대원들은 물에 들어서기를 주저하고, 어떤 대원은 등산화를 벋어들고 물을 건넌다. 앞으로 허리까지 빠지는 계곡을 수도 없이 건너야 하는 것을 아직은 모르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계곡을 건너고 (대원 사진)


이곳에서 진동리 갈터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3Km, 하지만 계곡 길의 실제거리는 8Km에 이른다고 한다. 간간히 왼쪽, 오른쪽 지계곡에서 물이 흘러들어오거나,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도 한다. 일단 계곡으로 들어서면 탈출로도 없다. 죽으나 사나 진동리까지 내려가야 한다. 만약에 폭우라도 내려 계곡물이 갑자기 불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잔잔한 계곡

왼쪽 지계곡

계곡으로 떨어지는 폭포수

넓어진 계곡 물살이 빨라진다.


계류를 따라 계곡길이 희미하게 이어진다. 돌길을 걷기도하고, 너덜 길을 걷는다. 낙엽이 쌓인 산책길이 있는가하면, 거친 잡목 숲을 지나기도 한다. 이런 길마저 없으면 물길을 걸어야한다. 계곡 트래킹의 묘미는 계곡을 건너는데 있다. 허리까지 잠기는 계곡을 건넌다. 물살이 빠르고, 물아래 돌이 미끄럽다. 자칫 돌에 미끄러지면 급한 물살에 휩쓸릴 위험이 크다. 그러니 이런 계곡을 건너려면 두 개의 스틱은 필수이고, 단독 행동은 금물이다. 약 3시간 동안, 이런 계곡을 수도 없이 건너야한다.

깊은 계곡, 왼쪽 돌길이 계곡길이다.

바닥까지 보이는 맑은 물

물길을 걷고 (대원 사진)

계곡을 건넌다.


낡은 샌들이 물속에서 1시간쯤 지나니 힘없이 해체되어 오히려 거치적대기만 한다. 벗어 버리고 양말 두 켤레를 껴 신고 걷는다. 장비정비를 제대로 못하여, 늙은이가 신발도 없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걸으려니 체면이 영 말이 아니다. 계곡이 하류로 내려오면서 작은 폭포, 급류, 깊은 소, 그리고 많은 바위들이 모습을 보이며 더욱 험해진다.

작은 폭포와 소

동심 1

 동심 2 (대원 사진)

급류와 푸른 소 (대원 사진)

바위계곡

계곡을 건너다 미끄덩 발이 미끄러지고 (대원 사진)


계곡 주위의 봉우리들이 더욱 높아지고 그 위로 하늘이 자그맣게 보인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잔잔한 계곡을 건너 산길로 들어서서, 한동안 숲속의 오솔길을 걷다, 다시 넓은 계곡으로 나온다. 깊지 않은 계류가 유유히 흐른다. 3시 53분, 마지막 계곡물을 건넌다.

더욱 높아 보이는 주위의 봉우리

잔잔한 계곡 건너 산길

숲속 오솔길

마지막 물 건너기


3시 55분, 버스에 올라 젖은 옷을 갈아입고, 계곡으로 다시 나와 세수를 한 후, 토종닭 백숙이 익는 동안 주위를 둘러본다. 진동계곡 마을안내판, 진동 산채집, 경노당, 농촌 체험학교 등이 눈에 뜨이는 조용한 마을이다. 이윽고 음식이 다 되어 백숙을 안주로 술잔을 나누고, 닭죽으로 포식을 한다.

진동계곡마을

진동산채집

산채집 간판


뒤풀이가 끝나고 대원들이 모두 차에 오르자, 버스는 5시 20분,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009. 6. 18.)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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