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용마산

기타산행기 2012. 12. 15. 15:29

 

 용마산에서 본 한양의 북 알프스, 불수사도북


설 전날에는 집안의 여자들이 모두 모여, 차례음식을 만드느라 바쁘다. 이런 날에 남자가 집에서 어정거리는 것은 눈치 없는 짓이다. 집에 있어야 도울 일도 없이, 공연히 일하는데 걸리적거리기만하고, 정신없이 바쁜 중에. 점심 차릴 걱정까지 하게 할 뿐이다. 그래서 설혹 할 일이 없어도, 일을 만들어서라도, 외출을 하는 것이 예의다.


청계산이나 북한산이 가깝게 있는 것이 이때처럼 고마울 때도 없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배낭도 필요 없이, 등산화만 챙겨 신고,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서둘러 집을 나선다. 청계산이고, 북한산이고 기분이 내키는 대로 올라, 목이 마르면, 막걸리를 사 마시면 되고, 배가 고프면 하산해서, 주변의 많은 음식점 중에서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으면 된다. 그리고 5시 쯤 귀가하여, 무거운 청소기를 한 번 돌려주고, 병풍과 상들을 꺼내주면, 집사람에게 구지 수고했다는 소리를 하지 않더라도, 고맙다는 마음이 전해진다.


올해는 德岩이 자신의 40년(?) 나와바리(繩張り-세력권)인 아차산과 용마산을 안내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아차산성으로 유명한 아차산이지만, 너무 가깝다 보니, 서울에 살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어떤 산인가? 어느 시인의 산행기 일부를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서울에 사는 것이 이토록 행복하다는 것을 산행 속에서 느낀 산이 아차산(287m), 용마산(348m), 망우산(281m)이다. 그건 필시 그 많은 산, 그 높은 산, 그 유명한 산들을 다 다녀 보고. 이제는 조용히 관조할 나이가 되어서 일까? 나는 산행 끝에서 엉엉 울어 버렸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도 괜스레 눈물이 고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지금까지 행복에 겨운 삶을 살아온 내가, 천 년 전 백제 개로왕과 고구려 온달장군의 부음이 아직도 머물고 있는 이곳엘 왔기 때문일까? 아무튼 나는 요즈음 서울의 자그마한 산들을 찾아서 그 속에 심취하고 있다."


아차산- 관조 할 나이쯤에 비로소 찾아야하는 산. 망우산은 들르지 않아, 눈물까지는 흘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 역시 오늘 산행에서 엄청난 감동을 받았음을 솔직히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약속을 취소하고, 일정을 바꾸어 가면서, 기꺼이 안내에 나선 조숙한(?) 德岩의 의도가 짐작이 된다.


오후에는 비가 내린다는, 잔뜩 흐린 설 전날 아침(2월 17일), 아차산역 1번 출구에, 10명의 대원들이 모두 모이자, 德岩은 앞장서서, 우선 '아차산 원조 할아버지, 30년 전통의 재래식 손두부집'으로 일행을 안내하여, 따끈따끈한 손두부를 맛보이고, 술안주로 순두부와 손두부를 구입한다.

30년 전통의 할아버지 손두부집


영화사(永華寺)는 아차산의 산행 들머리다. 영화사 입구에서 단체사진을 찍은 일행은, 바로 옆의 서울 동이 초등학교를 왼쪽에 끼고, 언덕길을 올라, 고개 마루턱, 아차산 둥산로 입구에 도착하여, 등산 안내판 앞에서 德岩의 설명을 듣는다.

영화사 입구에서 단체사진- 우정사진

아차산 등산로 입구의 이정표

등산로 안내판 앞에서 덕암의 설명을 듣는 대원들


공원처럼 잘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왼쪽에 보이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슬랩을 오른다. 주말을 맞아 아차산을 찾은 등산객들, 가볍게 산책 나온 인근 주민들로 등로가 붐빈다. 귀여운 시추 한 마리가 카키색 군용 배낭을 메고 졸랑졸랑 등산길에 나섰다. 천 년 전, 삼국시대의 격전지는 이제 서울시민, 구로시민들의 휴식처로 변했다.

아차산으로 오르는 완만한 바위길

배낭 멘 강아지도 보이고


해맞이 공원을 오르기 전, 암릉길이 끝나는 곳에 정자가 세워져 있다. 정자위에 서면, 지나온 암릉길이 굽어보이고, 남서쪽으로 남산, 청계산, 관악산, 동쪽으로 한강, 올림픽대교, 그 뒤로 예봉산, 검단산 등이 한눈에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단지들, 한 마디로 하남에서, 서울, 과천에 이르기 까지가 아차산 오르기 전의 이 조그마한 정자에서 모두가 내려다보인다.

아차산정

아차산정에서 내려다 본 대원들, 그리고 왼쪽의 올림픽대교

아차산정에서 본 해맞이 공원


정자에서 내려서서, 이정표를 지나, 훼손이 심한 능선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나무계단 길을 올라, 암봉인 해맞이 공원에 오른다. 고도가 높아, 앞서 정자에서 보았던 조망이 더욱 더 막힘없이 없다.

이정표

해맞이 공원에서 본 한강과 올림픽 대교

남산

청계산(좌), 관악산(우)

예봉산, 검단산

해맞이 공원에서 본 아차산

멀리 천마산


아차산으로 향한다. 북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북한산이 가깝다. 다시 이정표를 지나고, 아차산 정상은 고구려 유물 발굴 작업으로, 정상 40m지점에서 출입이 통제되어, 할 수 없이, 유물사진들을 전시한 등산로를 따라 너른 공터에 내려선다.

가까이 보이는 북한산.

이정표

아차산 정산 출입금지 안내판


공터를 동쪽으로 내려서서, 한강과 검단산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명당자리에서 이른 점심상을 펼친다. 마침 생일을 맞는 심천대원을 축하하기 위해, 여왕봉대원이 가져온 2년간 숙성된 스트로베리주와 치즈, 아차산역에서 장을 봐 온 막걸리와 소주, 30년 전통의 순두부와 손두부, 그리고 과메기, 설명이 필요 없는 德岩의 족발 등 술과 안주가 풍성하다.

아차산 파티 장에서 본 조망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즉석에서 만든 베리주와 소주 칵테일로 주흥을 돋운다. 섬섬옥수, 예원대원이 쌈으로 싸주는 과메기 맛이 일품이고, 양념간장을 한 순두부가 별미다. 흐리기는 하지만,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한 날씨에, 호수처럼 잔잔한 한강을 굽어보며 즐기는 아차산 파티.... 우정대원의 꽈리도 쉴 틈이 없다. 한 시간 반 가까이 시간이 흐르니, 술이 바닥이 난다. 할 수 없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선다, 다리가 휘청거린다. 나머지 산행을 계속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 된다.

아차산 파티-우정 사진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망우산 능선은 다음 산행 때 들르기로 하고, 용마산으로 향한다. 용마산 정상까지 850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난다. 왼쪽으로 떨어지는 긴고랑 골이 아득하다. 헬기장을 지나고, 삼각점이 있는 용마산 정상에 선다. 북쪽으로 불암산, 수락산, 북동방향으로 망우산, 북서방향으로 도봉산,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차산에서 보았던 남쪽과 동쪽의 조망을 함께 떠 올리며, 이곳이 삼국시대의 격전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확연히 이해한다.

용마산 정상-우정 사진

용마산에서 본 북한산과 도봉산

불암산과 수락산

망우산 가는 길


망연히 주위를 조망하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암릉을 타고 하산을 시작한다. 생각도 하지 못했던 아기자기한 암릉길이 이어진다. 왼쪽은 깎아지른 절벽, 그 위로 스릴 있는 바윗길이 이어진다. 도봉산이나 관악산의 암릉길과는 또 다른 재미를 주는 암름길이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망우산 사면도 바위투성이고, 왼쪽으로 보이는 골짜기도 암벽이다.

용두산에서 암릉길을 내려서며

 왼쪽 골짜기 암벽에 압도된다.


2시 20분 경, 면목동 용마주택 쪽으로 내려선 일행은, 지하철 7호선, 용마산역으로 이동하여, 설 연휴임에도, 다행히 문을 연 설렁탕집으로 들어선다. 오늘의 호스트, 德岩의 모습이 잠시 보이지 않는다 싶었는데, 어느 사이에 케익 점에 들렀는지, 생일 케익을 사들고 들어선다.

해피 버스데이 투 심천- 우정 사진


흥겨운 생일파티도 끝나고, 용마산역에 도착한 것이 4시 경,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아차산, 용마산- 좀 더 세월이 흐르고, 그래서 관조(觀照)의 멋을 알 때쯤에, 어느 조용한 평일을 택해, 집사람과 짱아와 함께 꼭 다시 와보고 싶은 산이다.

 


(2007. 2. 18.)





Posted by Urimah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