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 남부지방에 내린 눈
두륜봉에서 본 위봉과 완도의 오봉산
두륜산 3봉, 노승봉, 가련봉, 그리고 두륜봉
2010년 4월 15일(목).
5시 15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피곤한 몸에, 술도 한 잔 마셨으니 웬만하면 곯아떨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신경이 가는 모양이다. 찜질방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는 자는 둥 마는 둥 시간만 흐른다. 잠은 못 자더라도 누워서 쉬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회복되니 마음을 편히 갖자고 반복해서 세뇌를 해보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띵~하고 무겁다.
5시 45분 경 찜질방을 나와 터미널 지하식당엘 들러보지만 불이 꺼져있다. 할 수 없이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떡으로 식사를 하고 점심용으로 컵라면 하나를 준비한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1,200원), 6시 40분에 출발하는 군내버스를 기다렸다 승차한다. 승객은 단 2명, 오소재에서 출발하여 소석문으로 하산하겠다는 젊은 등산객과 나 뿐이다. 기사양반에게 오소재 쉼터에서 내려달라고 부탁을 하고 젊은 등산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버스가 멈추고 오소재 쉼터라고 알려준다. 두 사람이 서둘러 내리고 보니, 오소재 쉼터가 아니라, 오소재 약수터다. 젊은이와 헤어져 약수터 부근을 둘러본다.
오소재 약수터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07:00) 오소재 약수터-(07:04) 오소재-(07:05) 오소재 쉼터-(07:07) 산행시작-(07:15) 주능선 진입-(07:32) 첫 번째 너덜-(07:53) 큰 바위-(08:10) 둘째 번 너덜-(08:49~08:55) 통천문 아래 암봉에서 휴식-(08:57) 통천문-(09:08~09;09) 노승봉-(09:18) 안부-(09:31~09:32) 가련봉-(09:58) 너덜-(10:21) 119 표지판-(10:27) 만일재-(10:40) 두륜봉입구 삼거리-(10:46) 구름다리-(10:48) 진불암 갈림길-(10:50~10:55) 두륜봉-(11:00) 삼거리 회귀-(11:15) 암벽-(11:29) 직벽 통과-(11:32) 위봉 삼거리-(11;46) 산죽밭-(11:47) 헬기장 1-(11:48) 헬기장 2-(11:59) 팻말이 있는 삼거리, 직진-(11:18) 암릉지대-(12:34~13:32) 도솔봉, 중식 및 휴식-(13:47) 중계소 정문, 탈출-(14:55) 대흥사 입구』들머리 7분, 중식 및 휴식 약 1시간, 마루금 5시간 40분, 날머리 68분이 각각 소요된 산행이다
* * * * *
약수터 오른쪽에 등산로가 보이고 표지기가 걸려있다. 하지만 이 등산로는 오심재로 가는 길이다. 선답자의 이야기로는 마루금은 오소재 고개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서면 오소재 쉼터가 있고, 그 쉼터 뒤의 등산로로 들어서야 한다고 했다. 고개 마루턱을 향해 오른다. 마루턱에서 어제 찍지 못했던 주작산 등산 안내도를 카메라에 담고,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서니, 벚꽃이 활짝 핀 쉼터에 이르고, 오소재 쉼터라는 돌 표지가 보인다. 들머리에 도착한 것이다.
오소재 쉼터 돌표지
오소재 쉼터
쉼터 뒤로 산길이 보이고, 표지기들이 걸려있다. 7시 7분, 산길로 들어서며 산행을 시작한다. 맑은 날씨에 바람도 잠잠하다. 진달래가 만개한 아름다운 숲 사이로 등산로가 부드럽게 이어진다. 헌데 숲에 하얀 눈이 뿌려져 있다. 엊저녁에 내린 눈이다. ‘암릉이 많다는데 눈이 쌓였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면서도. 눈 속에 핀 진달래를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행운을 한껏 즐긴다.
4월 중순에 내린 눈
등산로가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지며 잇달아 묘를 지나고, 7시 15분, 희,준 님이 표지판을 걸어 놓은 능선에 진입하여 뚜렷한 등산로를 따라 걷는다. 푸른 산죽 밭에도 눈가루가 하얗다, 7시 32분, 등산로가 왼쪽으로 굽어지며 첫 번째 너덜지대로 이어지고, 시야가 트이며 오른쪽으로 고계봉(538m) 암릉이 보인다. 긴 오르막길을 천천히 걷다, 뒤돌아 어제 지나온 주작산 능선을 카메라에 담는다.
능선표지
오른쪽으로 보이는 고계봉 암릉
지나온 주작산 능선
7시 53분, 큰 바위에 이른다. 비박하기 좋은 곳이다. 왼쪽 건너편 능선에 보이는 맷돌 모양의 기암을 당겨 카메라에 담고, 10여분을 더 올라, 거대한 너덜지대로 들어선다. 너덜 위에도 눈가루가 뿌려져 있다. 표지기들이 걸린 방향으로 한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이동한다. 긴 너덜이다. 30여분 만에 겨우 너덜지대를 통과하고, 산죽과 잡목이 뒤섞인 오르막길을 오르니, 암릉이 이어진다.
큰 바위
너덜지대
8시 49분, 밧줄을 잡고, 암벽을 돌아올라, 그로테스크하게 보이는 통천문 아래 바위 위에 선다. 바람이 거세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남쪽으로 완도를 바라보고, 북쪽으로 고계봉을 가까이 본다. 8시 57, 통천문을 통과한 후에도 직벽에 가까운 암릉이 계속 이어진다, 밧줄과 체인, 그리고 쇠발받침의 도움을 받고, 9시 8분, 노승봉 정상(685m)에 오른다. 삼각점도, 정상석도, 표지판도 없는 텅 빈 너른 암반뿐이다.
가는 줄을 잡고 1차 트레버스, 굵은 줄을 잡고 암벽 오름
통천문 아래에서 굽어본 만수리와 완도.
가까이 본 고계봉
괴기(怪奇)하게 보이는 통천문
승가봉 오르는 길 1
승가봉 오르는 길 2
텅 빈 노승봉 정상
노승봉 정상에서의 바라보는 조망이 좋다. 남서쪽으로 대둔산과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남쪽으로 다도해가 시원한데, 두륜산 정상인 가련봉이 바로 지척이다. 역시 밧줄과 체인, 그리고 발 밭침의 도움을 받으며 암벽을 내려서서, 눈이 하얗게 덮인 안부에 이른다. 노승봉과 가련봉의 중간지점이다 이정표가 보인다. 가련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암릉에도 3중의 안전시설이 돼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대둔산과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가련봉
노승봉을 내려서고
이정표
가련봉 암릉길의 안전시설
9시 31분, 정상석이 있는 가련봉(703m)에 오른다. 역시 조망이 빼어나다. 북으로 노승봉과 고계봉이 가깝고, 남으로는 위봉과 완도의 오봉산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북동쪽으로 덕룡산, 주작산 능선이 아련하고, 남서쪽의 대둔산이 한발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안전시설에 의지해 가련봉 암벽을 내려선 후, 가련봉을 뒤돌아 보고, 이어 긴 나무계단, 눈 쌓인 너덜지대, 그리고 얼음이 깔린 암릉을 지나 만일재로 향한다.
가련봉 정상석
노승봉과 고계봉
덕룡, 주작 능선
뒤돌아 본 가련봉
긴 나무계단
너덜
119 위치 표지
만일재
10시 27분, 등산안내도와 이정표가 있는 만일재 헬기장에 내려선다. 가련봉에서 이곳까지의 도상거리는 0.5Km, 보통 30분 정도 걸리는 구간인데, 눈과 얼음 덕에 1시간 가까이 걸렸다. 만일재에서 지나온 가련봉을 돌아보고, 정면으로 보이는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하여, 10시 40분, 이정표가 있는 두륜봉 입구 삼거리에서 오른쪽 오르막길을 올라, 6분 후, 유명한 구름다리를 통과하고, 진불암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10시 50분, 정상에 오른다.
만일재 이정표
뒤돌아 본 가련봉
구름다리
진불암 갈림길 이정표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있다는 정상석이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조금 아래에 있는 전망바위에서 위봉과 대둔산을 가까이 보고 다시 구름다리를 지나, 나무계단을 내려선다. 11시 두륜봉 입구 삼거리로 되돌아와 대둔산으로 향하다,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 뒤돌아 두륜봉, 가련봉, 그리고 승가봉을 한눈에 바라본다.
대둔산, 탈출한 시멘트길이 보인다.
11시 15분, 밧줄 두 가닥이 걸린 암벽에 선다. 밧줄에 매달려 2단계 암벽을 내려선 후, 잠시 암릉길을 걷고, 또 다시 밧줄이 걸린 암벽을 내려선다. 11시 32분, 위봉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며, 왼쪽의 위봉을 가까이 보고, 산죽 밭, 진달래꽃 길을 걸으며, 곱게 꽃을 피운 동백나무의 환영을 받는다.
2단계 암벽
연이어 나타나는 직벽
갈림길에서 가까이 본 위봉
동백꽃의 환영을 받고
11시 46분, 산죽 밭으로 들어선다. 키를 넘는 산죽이지만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별로 시달림은 받지 않는다. 이어 1분 간격으로 잇달아 헬기장을 지나며 늦어진 시간을 만회하려고 속도를 내어 진행한다. 11시 59분, 팻말이 세워진 탈출로 갈림길을 지나고, 12시 2분, 산죽밭에서 벗어나, 가야할 능선을 바라본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걸으며, 뒤돌아 두어 차례 두륜산을 바라보고, 암릉길로 들어선다.
산죽밭
팻말이 있는 탈출로
가야할 길
뒤돌아 본 두륜산 1
뒤돌아 본 두륜산 2
12시 18분, 바위지대로 들어서고, 또 다시 너덜을 지나니, 저 앞에 정상석이 있는 대둔산 도솔봉과 그 왼쪽으로 거대한 중계시설이 보인다. 12시 34분, 태양열 판이 부착된 시설물과 정상석이 있는 도솔봉(672m)에 오른다. 맑은 날씨에 햇볕이 따뜻하다. 정상석 옆에 자리를 펴고,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은 후, 정상주를 즐긴다.
대둔산 도솔봉
거대한 중계시설
정상석
점심을 먹으며 가야할 길을 생각한다. 고래대장이 GPS로 측정한 오소재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는 약 5.5Km, 그리고 이곳에서 닭골재 까지 남은 거리가 약 6.7Km다. 산행을 시작해서 5시간 30분이 지났는데 절반도 못 왔다는 소리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록을 보면 이곳에서 닭골재까지도 5시간이 넘게 걸린다. 남은 구간도 험한 암릉, 암벽길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지런히 걸어도 닭골재에 내려서는 시각은 7시가 가깝겠고, 오늘 귀가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서울에서 해남까지 고속버스로 5시간이 걸리는데, <닭골재-해남-광주-서울> 순으로 차를 3번이나 바꿔 타고나면, 잘해야 내일 새벽에나 서울에 도착 하겠고, 길에서 겪는 고초도 말이 아니겠다.
체력문제도 문제다. 찜질방에서 이틀 동안 잠을 설친데다 어제 10시간, 오늘도 이미 5시간을 넘게 걸었으니 몸도 지칠 만큼 지쳤는데, 시간에 쫓기다가, 험한 암릉이나, 암벽에서 자칫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계속 망설인다. 탈출을 한다면 이곳뿐이다. 중계소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대흥사에 이르고, 그곳에서 버스로 해남에 도착하면, 5시 30분 서울행 막차를 충분히 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중계소 정문까지 진행한 후, 그곳에서 도로를 따라 탈출하기로 결정을 하고, 13시 32분, 왼쪽 중계소를 향한다. 표지기들의 안내로 바닥이 보이지 않는 빽빽한 잡목사이를 어렵사리 헤집고 지나간다. 이어 암릉지대가 나타나고, 바위가 길을 막아, 숏 다리가 단숨에 오르기가 부담스러워, 이리저리 발을 바꾸어 본 후에야 겨우 지나간다. 이런 길이라 일부 종주꾼들은 도솔봉에서 오른쪽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시멘트도로로 내려선 후, 도로를 따라 중계소 정문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그래서 도솔봉에는 좌우 양쪽에 모두 표지기들이 걸려있다. 능선을 따라 중계소로 향하면서 시야가 트여 왼쪽으로 보는 두륜산 줄기가 멋지다.
대둔산 도솔봉의 태양열판 시설물
연화봉 쪽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
중계소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본 두륜산
13시 47분, 중계소 정문 앞에 내려선다. 정문 오른쪽 철책에 표지기가 보인다. 계속 진행하려면 철책을 따라야 하지만, 이 시간에는 더 이상의 진행은 무리다. 아쉽지만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시멘트도로를 따라 탈출한다. 13시 56분, 데이콤 통신탑을 지난다.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내린 사람들은 이 부근에서 도로로 떨어지게 된다.
중계소 정문
도로변의 데이콤 통신탑
시멘트도로를 따라 내리며 오른쪽으로 두륜산 암봉들을 올려다보고, 14시 30분, 이정표가 있는 진불암 입구를, 13분 후에는 돌 표지가 있는 관음암 입구를 지나, 14시 55분에 대흥사로 들어선다. 1시간이 조금 넘게 시멘트도로를 따라 내린 것이다. 발바닥에서 불이 나는 느낌이다. 14시 57분, 절문을 들어서서, 약 20분 동안 절 경내를 둘러보고, 해남 행 군내버스를 탈 수 있는 집단시설지구로 향한다.
도로에서 본 두륜산 암봉
관음암 입구 돌 표지
두륜산 대흥사
부도, 대흥사 부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규모다.
서산대사 부도 안내판
경내 이정표, 그만큼 규모가 크다.
대흥사 연리지
대웅보전 현판
아스팔트길을 터덜터덜 걸어 내린다. 25분 정도 걸어 내리니 비로소 일주문이다. 무지하게 넓은 절이다. 다시 5분을 더 걸어, 버스 정류장에서 도착하여 버스를 기다린다. 채 5분도 못되어 버스가 도착하고, 약 15분 후 해남종합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요금 1,000원) 매표소에서 5시 30분 발 서울행 버스표를 사고, 화장실에 들러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대흥사 일주문
해물탕으로 유명하다는 인근 식당을 찾아 들어선다. 해물탕 1인분은 팔지를 않고, 쇠꼬리탕도 시간이 걸려, 내장탕을 주문한다. 5시 30분, 버스는 출발하고, TV에서는 천안함 후미 인양상황이 생방송되고 있다.
(2010. 4. 20,)
* 사진의 3월은 4월의 잘못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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