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속의 검마산 줄기
2007년 12월 1일(토).
뫼솔 산악회의 안내로 낙동정맥 다섯 번째 구간을 산행한다. 코스는 『에미랑재(560m)-칠보산(974.2m)-새신고개-깃재-884.7m봉-612.1m봉-길동재-한티재(430m)』로 도상거리는 약 18.5m이다. 당일산행으로는 부담이 되는 거리인데다 겨울철 일몰시간이 빨라 산악회는 서울에서의 출발 시간을 30분 앞당긴다.
애미랑재가 울진군과 영양군의 경계지점이니, 도로를 건너, 남쪽으로 들어서면 영양군이다. 오늘 구간의 지형도를 보면 주황색의 31번, 38번국도와 녹색의 317번 지방도로가 눈에 뜨일 뿐 도로로 둘러싸인 안쪽에는 다른 표시는 없고, 등고선과 계곡(川)만 보인다. 한 마디로 오지중의 오지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정맥의 마루금을 따라 등산로가 뚜렷하고, 요소요소에 표지기들이 요란하게 걸려있는 것을 보면 대간꾼들의 열정이 어느 정도인가를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귀경길에 버스가 박달재 휴게소에 잠시 머물 때, 버스에서 내려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다리가 절름거려진다. 전에 없던 일이다. 오늘산행에 무리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산행에서 다리나 몸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거리'가 아니고 '속도' 다. 운동 에너지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이런 무리가 반복된다면 무릎이 상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조심해야겠다.
버스는 10시 41분 경, 애미랑재에 도착한다. 애미랑재- 한자어도 아닌 것 같고, 외래어나 순수 한글이름도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다.
구름이 많이 낀 날씨에 바람이 강하다. 거의 빈자리가 없는 만원 버스 속에서 배낭을 앞좌석 등받이에 걸어놓으니, 운신하기조차 어려운 좁은 공간이 무척 답답하다. 이런 공간에서 장시간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버스가 산행지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린 대원들은 앞 다투어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0:41) 애미랑재-(10:43) 산행시작-(10;50) T자, 좌-(10:59) 봉, 좌-(11:10) 안부 삼거리, 직진-(11:23) 능선분기, 좌-(11:32) 바위봉 우회-(11:38) T자, 우-(11:43) 칠보산 정상-(11;58) 안부-(12:04) 새재고개-(12:11) 철쭉능선-(12:20) 봉-(12:25) 무덤 1기-(12:29) 분기봉, 좌-(12:43) 봉-(12:50~13:07) 10지 춘양목/ 중식-(13;09) 안부-(13:12) 봉, 오른쪽 우회-(13;19) 봉, 왼쪽 우회-(13:22) 봉-(13:25) 깃재-(13:28) 봉, 좌-(13:50) 봉-(14:11) 884.7m봉-(14:27) 봉, 우-(14:35) 봉, 우회-(14:44) 봉, 우-(14:50) T자, 우-(15:20) 봉, 좌-(15:32) 능선, 오른쪽 우회-(15:55) 벌목봉, 우-(16:10) 612.1m봉-(16:21) 길등재-(16;24) 갈림길, 우-(16:27) 묘 1기-(16:43) 봉, 좌-(16:56) 묘 1기-(16:59) 안부 사거리-(17;07) 한티재』중식 17분 포함, 총 6시간 23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고개 마루턱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가파른 절개지를 오를 수 있도록 통나무 계단이 만들어져 있고, 표지기들이 바람에 흩날린다. 버스에서 내린 대원들은 선두대장의 뒤를 따라 통나무 계단을 오르며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급한 용무를 마치고, 주위의 사진을 찍은 후, 최후미로 쳐져 10시 43분, 이들의 뒤를 따른다.
산행시작
통나무 계단이 끝나고, 등산로는 왼쪽으로 굽어지며 급경사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만나는 급경사 오르막은 항상 힘겹다. 앞사람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지만 개의치 않고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오른다. 10시 50분, T자 능선에서 왼쪽으로 진행하고, 9분 후, 고도 약 730m 정도의 봉우리에 올라, 왼쪽 내리막길을 달려 내린다. 대원들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바람소리를 벗 삼아 혼자서 스산한 산길을 걷는다.
텅 빈 뚜렷한 등산로에서 표지기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반갑게도 비탈길에서 왼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칠보산이 깨끗한 모습을 보이고, 그 옆 160도 방향으로 먼 산줄기들이 아득하다. 아마도 검마산 줄기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어 작은 봉우리 두 어 개를 넘고. 11시 10분, 안부 삼거리에 내려서서, 직진한다.
칠보산
160도 방향으로 본 산줄기
오르막이 이어지고, 능선이 좁아지면서 급 오르막이 시작된다. 11시 23분, 능선 분기봉에서 왼쪽으로 진행한다. 잎이 다 떨어진 황량한 숲, 꾸준히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좁은 능선, 강한 바람... 이처럼 스산한 겨울 산을 꾸벅꾸벅 오른다. 뒤에서 인기척이 난다.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인기척이라니...,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본다. 후미대장이다. 반갑다. 이후 앞서거니, 뒤서거니, 후미대장과 함께 오르막길을 오른다.
황량한 겨울 산, 가파른 철쭉능선을 오르는 후미대장
바위봉을 우회하고, 11시 38분, 고도 약 920m 정도의 T자 능선에 올라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이어 마지막 급경사를 지나, 11시 43분, 두 개의 삼각점이 있는 칠보산 정상(974.2m)에 오른다. 대원 몇 사람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나뭇가지들에 가려 조망은 별로다. 삼각점을 카메라에 담고 바로 직진하여 정상을 내려선다. 산행을 시작하여 도상거리 2.3Km, 고도차 약 300m 정도의 길고 가파른 오르막 구간을 1시간 만에 올라왔다. 내 페이스를 지킨 진행이지만 결코 느린 속도는 아니다
표지기들이 요란한 T자 능선
칠보산 정상
급경사 비탈길을 달려 내린다.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고도 내리막이 계속 이어지더니, 12시 4분, 너른 안부에 내려선다. 고도 약 720m의 새신고개다. 왼쪽의 신암리와 오른쪽의 새신을 연결하는 고개라고 하지만 요즈음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지 좌우로 길이 보이지 않는다.
새신고개
직진하여 비탈길을 오른다. 철쭉이 빽빽한 능선을 지나고, 쭉쭉 뻗은 아름다운 금강소나무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이어 작은 봉우리 두 어 개 넘고, 쇄락한 무덤을 지나, 12시 29분, 너른 능선 분기봉에 오른다. 개념도에 헬기장으로 표시된 봉우리 같은데, 주위에 나무들이 무성하고, 좌우로 표지기들이 요란하다. 마루금은 왼쪽이다.
아름다운 금강 소나무
너른 능선 분기봉
급경사 내리막을 지나, 동쪽을 향해 좁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진행하여,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는다. 왼쪽으로 지난 구간에 걸었던 정맥 마루금이 가깝게 보이지만 아쉽게도 나뭇가지에 가려 깨끗한 사진을 얻지 못한다.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120도 방향으로 아름다운 산세가 펼쳐진다. 12시 50분, 개념도에 표시된 10지 춘양목에 이른다. 대원 몇 사람이 사진을 찍고 있다.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120도 방향으로 본 산세
십지 춘양목
사진 찍기를 마친 대원들이 이곳에서 점심상을 펼친다. 버스에서 점심식사를 한 나는 술을 한 잔 마시고, 간식을 즐긴다. 황 대장님과 비로소 인사를 나누고 커피도 한잔 얻어 마신다. 황 대장님은 춘양목이 지방에 따라 금강소나무 또는 황장목이라고도 불리지만 같은 나무라고 알려준다. 1시 7분, 식사를 마친 대원들과 함께 산행을 속개한다.
점심식사
1시 9분, 안부에 내려서고, 황량한 산길을 따라 능선을 좌우로 우회한다. 다시 아름다운 춘양목 군락지를 지나고, 봉우리 하나를 넘어선 후, 1시 25분, 왼쪽 신암리로 이어지는 산길이 뚜렷한 깃재에 내려선다.
깃재
황량한 참나무 숲 사이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오르고, 이어 여러 차례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넘는다, 죽은 나무가 쓰러져 산길을 막고, 봉우리가 전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헐벗은 능선을 지나. 2시 11분, 삼각점이 있는 844.7m봉에 오른다. 역시 나뭇가지에 가려 조망은 별로다.
죽은 나무가 길을 막고
오르막길이 훤히 보이는 헐벗은 능선
844.7m봉의 삼각점
칠보산에서 844.7m봉까지의 도상거리는 약 6.5Km다. 칠보산에서 새신고개로 한 차례 크게 떨어졌다 다시 오르지만, 마루금은 대체로 800m대의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는 평탄한 지형이다. 칠보산에서 이곳까지의 소요시간은 2시간 28분이다, 간식시간 17분을 제외하고, 시간당 산행거리를 산정해보면 약 2.9Km에 이른다.
844.7m봉을 내려서며, 오른쪽으로 일월산의 깨끗한 모습을 본다, 급 내리막을 지나 능선이 평탄해지며, 낙엽이 발목까지 빠진다. 이후 여러 차례 능선 분기봉을 만나지만, 계속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844.7m봉에 오르기까지 지났던 고마고만한 봉우리들이 보인다.
일월산
지나온 능선-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의 연속이다.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점차 넓어진다. 등산로 주변에 대원들이 모여 있고, 백 대장님이 커다란 소나무에 기생하고 있는 '노루 엉덩이'라는 묘한 이름의 버섯을 가리키며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딴은 노루 엉덩이처럼 생겼다. 사향노루의 앞부분이 최음(催淫)효과가 크다는 소리는 들어 보았지만, 이런 버섯은 처음 본다. 귀한 약재라고 한다.
노루 엉덩이
넓은 내리막 능선을 달려 내린다. 3시 20분, 고도 약 820m정도의 봉우리에 올라, 왼쪽으로 진행한다. 오른쪽으로 줄곧 일월산 능선이 따라 온다. 등산로는 여러 차례 능선을 오른쪽으로 우회하며 고도를 낮춘다. 오른쪽으로 산 하나가 깨끗한 모습을 보인다. 지형도를 보고 738m 무명봉이라고 짐작한다.
능선 분기, 좌
320도 방향의 무명봉
3시 55분, 벌목을 한 봉우리에 오르니, 선두대장이 땅바닥에 돌로 눌러놓은 종이 표지판이 오른쪽을 가리키고, 그 위에 통과한 시간이 적혀있다. '2시 50분', 지금 시각이 3시 55분이니, 선두와 1시간 5분,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이다. 요소요소에 종이 표지판을 깔아 놓고, 표지기를 달아 놓은 솜씨를 보고, 무척 노련한 선두대장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처럼 시간 차이까지 강조하며 후미를 독려하다니.... 벌목지대를 지난다. 등산로 표지판이 보이고, 방화로 같은 넓은 길을 따라 능선을 오르는 대원들의 뒷모습이 한가롭다.
선두대장의 종이 표지판
등산로 표지
벌목지대를 지나는 대원들
4시 10분, 삼각점이 있는 612.1m봉을 지난다.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일월산 남쪽 줄기가 보이고, 봉우리를 내려서면서 가까이 아스팔트 도로를 내려다본다. 4시 21분, 아스팔트도로가 지나가는 길동재에 이른다.
길동재를 지나는 대원들
길동재
도로를 건너 갈림길을 만나 오른쪽으로 진행하고. 4시 43분, 봉우리에 올라, 왼쪽으로 내려선다. 시야가 트이며, 왼쪽으로 발리마을과 검마산이 보이고, 320도 방향으로 황혼속의 일월산이 아름답다. 4시 59분, 어둑한 안부 사거리를 지나, 5시 7분, 88번 국도가 지나는 한티재에 내려선다.
발리마을과 검마산 방향
320도 방향의 일월산
한티재
884.7m봉에서 한티재까지의 도상거리는 약 9.7Km이고, 고도 차이는 약 540m 정도다. 이 구간을 2시간 56분에 내려왔으니, 시간당 3.3Km를 달린 셈이다. 결국 일몰 시간에 쫓겨, 무릎에 많은 부담을 주는 내리막에서 무리를 한 것이, 박달재 휴게소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릴 때, 다리를 절름거리게 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버스는 5시 30분 경,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007.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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