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형제봉에서 본 칠갑산 정상, 부드럽다.
대학동기들과 점심식사를 하다가 이번 일요일에는 충남 청양의 칠갑산을 간다고 하니, 충청도 출신의 친구가, “칠갑산에 뭐 볼게 있다고 그 곳엘 가니? 라고 묻는다. 지금은 도로가 잘 뚫려 그렇지 않지만, 30년~40년 전만해도, 청양하면 충청도에서도 산골 중에 산골인데, 그 곳에 우뚝 솟은 산이니 범상할리가 없겠고, 산림청에서 선정한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의 하나이니 가 봐야하지 않겠냐고 대답한다. 안 가본 사람이 가 본사람 보다 더 아는 체를 한다.
칠갑산은 노래로 유명하다. 칠갑산을 작사, 작곡한 조운파 씨는 청양(靑陽) 가까운 부여(夫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객지에서 살았다고 한다. 어느 비오는 날 완행버스를 타고 이곳을 지나다가 그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가난 속에 살던 아낙네들의 기억을 노래로 만든 것이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 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소리
어린가슴속을 태웠소.”
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한국의 산하’는 칠갑산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충남 청양군 정산면에 위치한 칠갑산은 예부터 진달래와 철쭉으로 이름이나 있는 산이다. 정상을 중심으로 아흔 아홉 계곡을 비롯한 까치내, 냉천계곡, 천장호, 천년고찰인 장곡사 등 비경지대가 우산살처럼 펼쳐져 있어 볼거리도 많다.
지도상에서 보면 산 북동쪽에 한 여름에도 서늘한 마치리의 냉천계곡, 북서로 강감찬계곡, 서쪽 장곡사 쪽으로 장곡천, 99계곡, 동쪽 천장리 쪽으로 천장계곡, 남쪽 절골 쪽으로 백운계곡은 온통 수림이다.“
산람청의 100대 명산으로의 선정 사유를 들어보자.
"백운동 계곡 등 경관이 아름다우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73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계곡은 깊고 급하며 지천과 계곡을 싸고돌아 7곳에 명당이 생겼다는 데서 산 이름이 유래. 신라 문성왕 때 보조(普照) 승려가 창건한 장곡사(長谷寺)에 있는 철조비로지나불좌상부석조대좌(보물 제174호) 등이 유명하다.“
2010년 4월 25일(일)
군자마운틴클럽의 안내로 칠갑산을 간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우리나라 100대 명산도 거의 답사를 끝내고 이제 10여 곳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하여 답사하지 못한 100대 명산을 안내한다는 곳이 있으면 어디 건 따라나선다. 군자마운틴클럽도 처음이다. 일찌감치 예약을 했더니 처음인데도 16번 좌석을 배정해 준다. 45인승 버스가 만석이다.
아침식사를 제공한다기에, 다른 곳에서처럼 시루떡이나 김밥을 주는 줄 알고, 점심 준비도 없이 나왔는데, 버스가 안성휴게소에 도착하자, 무국과 밥을 차려준다. 5시 30분에 집에서 새벽밥을 먹고 나왔지만, 산행 중에는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먹어두는 것이 상책이라, 식욕이 없음에도 주는 대로 식사를 한다. 하지만 차들이 굉음을 내고 질주하는 고속도로 변에서 선채로 하는 식사는 가능하면 피했으면 좋겠다. 식사를 마치고 휴게소에서 간식용으로 호두과자를 산다.
버스가 논산 천안 간 고속도로, 공주 서천 간 고속도로를 거쳐 청양IC에 내려 선 후, 10분 쯤 더 진행하여 10시 10분 산행 들머리인 천장호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에는 먼저 도착한 대형버스들이 여러 대 보인다. 오늘 산행코스는 『천장호 흔들다리-칠갑산-삼형제봉-장곡사 주차장』으로 도상거리는 약 8.7Km이다. 산악회 등반대장은 3시간이면 산행을 마칠 수 있겠다고 한다.
칠갑산 지도,
호수 입구에 있는 칠갑산도립공원 안내도를 살펴본 후, 이를 카메라에 담고, 벚꽃 가로수 길을 따라 오른다. 도로는 보수를 하느라고 아스팔트를 벗겨 놓아 오가는 많은 산책객, 등산객들로 먼지가 풀풀 이는데, 벚꽃은 끝 무렵이라 화사함이 덜하다. 일주일 쯤 먼저 왔으면 제철일 듯싶었다. 이어 황룡정이라는 현판이 걸린 8각정을 지나, 천장호 흔들다리 앞에 선다. 안내문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동양에서는 두 번째라고 한다.
들머리
칠갑산 도립공원 안내도
다리를 건넌다. 가운데 쯤 이르니, 과연 다리가 많이 흔들린다. 다리 위에서 칠갑산 휴게소 방향의 천장호를 카메라에 담는다. 약 5분 쯤 걸려 다리를 건너면, 천장로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 호랑이와 용 조각물, 그리고 용과 호랑이의 전설이 담긴 안내판을 만난다. 이들을 카메라에 담고, 흔들다리를 되돌아 본 후,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른다.
흔들다리
천장호
이정표
호랑이
용
용과 호랑이의 전설
뒤돌아 본 흔들다리
나무계단을 오르고 가파른 맨땅 오르막을 올라 10시 34분, 능선으로 진입한다. 119 구조대 표지목 09~01이 보인다.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200m 간격으로 표지목을 세워 놓았다. 19시 36분, 출렁다리 0.4Km를 알리는 이정표를 만나고, 이어 안부를 지나, 울창한 송림사이로 이어지는 산책길을 걷는다. 간간이 보이는 진달래들은 이미 색이 바래고, 시들시들 시들었다.
능선 진입, 표지목 09~01
송림 숲 산책길
산 사면에 하얗게 핀 산 벚꽃은 아직도 화사한데 등산로 주변의 꽃들은 꽃잎이 떨어지고 잎이 많이 돋았다. 11시 1분, 정상 3.0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난다. 신작로 같이 뚜렷한 등산로가 가볍게 오르내리며 고도를 높이고, 등산로 주변의 진달래들이 다투어 아름다움을 뽐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꽃 색갈이 짙어지는 것 같다. 저 앞에 통신탑이 있는 정상이 보인다.
잎이 많이 돋은 산 벚꽃
고도가 높아지며 진달래 색감이 짙어진다.
칠갑산 정상
11시 43분, 이정표가 있는 T자 능선에 오른다. 이정표의 팔 두 개는 땅에 놓여있고, 도림리를 가리키는 왼쪽 팔만 제대로 붙어있다. 3분 후, 정상(561m)에 오른다. 산행시작 후 1시간 36분이 지난 시각이다. 넓은 정상은 사람들로 붐빈다. 이정표, 정상석, 삼각점<청양 24/1989 제설>, 등산안내도 그리고 제단이 등이 보이다.
인파로 붐비는 정상
정상석, 증명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할 수 없이 초상권을 침해한다
이정표,
제단
동쪽 계룡산 방향의 조망과, 가야할 삼형제봉을 카메라에 담고, 11시 51분,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장곡사 주차장으로 향한다. 11시 57분,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서서, 묘를 지난다. 사람들의 붐빔이 좀 덜하다. 이어 03~21 표지목이 있는 안부를 지나 오르막길을 오른다. 함께 온 대원들이 길가에 자리를 잡고 점심채비를 하고 있지만, 나는 홀로 앞서 나간다. 가능하면 하산하여 장곡사를 둘러보고 싶기 때문이다.
계룡산 방향의 조망
삼형제봉
갈림길 이정표
붐비던 등산로가 호젓해 졌다. 삼형제봉을 향해 완만한 오르막길을 천천히 오른다. 이따금씩 마주 내려오는 등산객들과 인사를 하고 지나친다. 첫 번째 봉우리를 앞두고, 등산로는 왼쪽으로 우회하지만, 등산로를 버리고 희미한 발자국을 따라 첫 번째 봉우리에 오른다. 돌탑이 있다, 다시 등산로로 들어서서, 이번에도 왼쪽 우회로를 버리고 진달개가 만발한 좁은 암른길을 지나 두 번째 봉우리를 넘는다. 12시 22분, 삼형제봉 정상인 헬기장(544m)에 오른다. 칠갑산 정상에서 1.3Km 떨어진 지점이다. 그늘도 없는 헬기장에서 등산객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마재고개고, 장곡주차장 내림 길은 오른쪽이다.
돌탑이 있는 첫째 봉
헬기장
이정표
12시 23분, 3.7Km 떨어진 장곡주차장으로 내려선다. 119 구조대 표지목의 번호는 03~17이다. 가파른 날땅 길이 이어진다. 칠갑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7개 코스 중 가장 경사가 심한 곳이라고 한다. 약 5분 쯤 급경사 비탈길을 내려서자 등산로는 평탄해지고 등산로 주변에 활짝 핀 진달래가 곱다. 진달래 꽃 그늘에 앉아, 15분 동안 간식을 즐긴다.
헬기장을 내려서고
급 내리막 지나 진달래 꽃길
다시 급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맨땅 흙길이 미끄럽다. 아이들은 데리고 산행에 나선 일행이 조심스럽게 비탈길을 내려선다. 어른 한명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다. “아빠! 괜찮아?" 꼬마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비탈길을 달려 아빠에게 다가간다. 엉덩이의 흙을 털며 겸연쩍은 얼굴을 하고 일어서는 아빠를 보고, 동행하던 어른들이, “효자 났네, 효자 났어,”라며 농담을 한다. 12시 49분, 이정표가 있는 지천리 갈림길을 지나고, 등산로는 가볍게 오르내리며 고도를 낮춘다.
지천리 갈림길 이정표
울창한 송림사이로 널찍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간간이 모습을 보이는 진달래가 여전히 아름답다. 편한 길을 빠르게 진행한다. 13시 16분, 표지목 03~07을 지난다. 주차장까지 1.4Km가 남았다는 소리다. 3시 37분, 장곡주차장 0.5km를 알리는 이정표에서 오른쪽으로 굽어, 1시 44분 비포장도로로 하산한 후, 주차장으로 향한다.
울창한 송림 사이로 이어지는 편안한 등산로
마지막 이정표
하산지점
당초에는 버스에 배낭을 내려놓고 기사양반에게 장곡사를 다녀오겠다고 보고를 한 다음에 출발하려 했으나, 아래위 두 군데 주차장과 임시주차장 어디에 버스가 있는지를 모르는 터라 잘못하다가는 버스 찾다 날이 샐 판이다. 위 주차장을 기웃거리며 장곡사로 향한다. 마침 장승축제를 벌어지고 있어 칼라 풀한 의상을 입은 장승들이 눈길의 끈다.
장승축제
조금 더 오르니 칠갑산 노래비가 보이고, 실물과 구분하기 어려운 조형물들이 어린 아이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1시 54분, 장곡사 일주문을 지나 벚꽃 길을 걷는다. 2시 6분, 주차장에서 1.3Km 떨어진 장곡사에 도착하여 안내문,과 하 대웅전을 카메라에 담고, 돌길을 올라 상 대웅전으로 향한다. 신라 문성왕 2년(서기850년)에 건립되었다는 장곡사는 특이하게 대웅전이 두 개가 있고, 국보 2점, 보물 4점을 보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칠갑산 노래비
실물과 구분하기 어려운 조형물
일주문
장곡사 경내도로
장곡사 안내판
하 대웅전
상 대웅전
제법 규모가 큰 절이다. 국보, 보물급의 문화재들 까지 찾아 골고루 구경을 하려면 시간이 무척 걸리겠다. 주마간산 식으로 경내를 둘러보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한다. 2시 30분 경, 아래 주차장에 머물고 있는 산악회 버스에 도착하여, 뒤풀이 자리로 끼어든다. 서울서 멀지 않은 곳이라 산악회도 대원들도 모두 여유가 있아 보인다. 3시 30분 경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칠갑산은 부드러운 육산이다. 7개의 주 등산로 어느 코스를 택해도 2시간 이내에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고 포근하게 감싸 안는 느낌이다. 그래서 남녀노소,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무성한 소나무 숲, 봄철의 진달래와 벚꽃, 천장호와 흔들다리 등이 명물이고, 여름에는 아흔아홉골, 백운계곡, 냉천골이 시원하다. 여기에 유서 깊은 장곡사가 있으니 도립공원으로 손색이 없다. 주차장이 미여지도록 전국에서 모여든 인파가 이를 웅변으로 증명한다.
버스를 타고 지나다 보니, 부근의 나지막한 야산들을 과수원으로 개발하고 있다. 나무들이 자라 과일들이 주렁주렁 열리면, 찾는 사람들도 더 많아지고, 소득도 더 높아질 수 있겠다. 먹는 입을 한 입 줄이려고, 어린 딸을 민며느리로 팔아야만 했던 설음의 땅이 세월이 흐르면서 부유한 고장으로 탈바꿈하게 되면, 한 많은 칠갑산 노래도 하나의 전설로 변할 것이다.
(2010.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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