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사주차장에서 본 비슬산
산정산악회 3차 백두대간 대원들은 대간종주가 끝난 후에도 한 달에 두 번, 둘째, 넷째 토요일에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산행을 한다. 그래서 이 모임의 명칭도 이사회(二四會)이다. 아울러 2번의 정기산행 중 한번은 반드시 친정인 산정산악회 행사에 참여 하고 있다.
2006년 4월 22일(토).
이사회 회원들이 산정산악회가 100대 명산 탐방행사로 행하는 비슬산 산행에 참여한다. 여성회원 3명, 남성회원 8명, 모두 11명이다. 산정의 대빵님은 이날 발족하는 8차 백두대간 팀 발대식에 참석을 하고, 오늘 비슬산 산행은 7차대의 길 대장이 가이드 한다.
대구 직할시, 달성군과 청도군의 3개 시군에 걸친, 비슬산은 비파 琵(비), 거문고 瑟(슬)의 아름다운 이름이다. 산 정상의 바위가 흡사 신선이 비파와 거문고를 타고 있는 모양 같아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또는 신라에 온 인도 스님들이 이 산을 보고 영험이 있는 수도처라 하여 범어(梵語)로 '비슬'이라고 했다 해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범어로 '비슬'은 포(苞:대나무)를 의미하며, 옛날에는 이 산을 포산(苞山)이라고 불렀다는 사실과 비슬산에 유서 깊은 절과 암자들이 유독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후자의 설이 보다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비슬산 정상의 암벽
제1봉인 대견봉((大見峰-1083.6m)에서 능선 따라 4km쯤 가면 제2봉 조화봉(照華峰-1057.7m)에 이른다. 봄에는 이 두개의 봉 사이에 펼쳐진 참꽃(진달래) 군락지가 유명하고, 가을에는 무성한 갈대가 장관을 이루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한국의 산하에서 집계한 100대 명산 중 23위를 차지한다.
참꽃군락지 안내도
왜 대견봉(大見峰)인가? 전설이 있다고 한다. 당(唐)나라 문종(文宗)이 세수를 하다가 대야에 비친 절을 본다. 어느 절인가 궁금해 알아보니, 신라 비슬산에 있는 절이 아닌가? 대국(大)에서 보았다(見)해서, 대견봉(大見峰)이고, 대야에 비친(照) 중화(中華)라 해서 조화봉(照華峰)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몇 년 전만해도 서울에서 비슬산을 당일 산행코스로 잡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당일 산행지로 자주 찾게 된다. 하지만 오가면서 휴게소에서 잠시 머무는 시간까지를 감안하면, 버스를 타는 시간은 여전히 8시간 이상이 된다.
비슬산의 참꽃 구경을 하려면, 유가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도성암을 거쳐, 대견봉에 오르고 조화봉, 대견사터, 자연휴양림을 거쳐, 소재사로 하산하는 5시간 정도의 코스를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유가사 주차장이 좁아, 버스 진입이 어렵고, 유가사에서 대견봉에 오르는 능선이 가팔라 힘이 많이 드 는 외에, 참꽃축제에 몰리는 인파로 등산로가 정체되는 것을 감안하여, 산악회에서는 흔히 역 코스를 취하기도 한다. 역 코스를 취할 경우에는 4시간 정도에 산행을 마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역 코스를 취하기로 하여, 버스가 자연휴양림 정류장에 도착한 것이 11시 33분경이다. 흐린 날씨에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었지만, 참꽃축제 마지막 날이라, 이 곳 너른 주차장도 이미 만원이다. 할 수 없이 버스는 주차장을 지난 도로변에 잠시 멈추어 대원들을 하차시킨다.
주차장 만원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을 우산을 바쳐 들거나, 비옷을 입은 등산객들이 꾸역꾸역 휴양림 입구로 몰려든다. 11시 43분 자연림 휴양지 입구에서 이사회 회원들이 모여 단체사진을 찍고 산행을 시작한다. 소재사에서 인파가 몰리는 단조로운 시멘트 길을 오르는 대신, 이사회 회원들은 매표소를 지나 바로, 1034m봉으로 오르기로 하고, 길 대장에게 신고한 후, 일반 대원들과 헤어져 왼쪽 숲으로 진입한다.
비슬산 자연휴양림 돌 표지
소재사 일주문
소재사 부근의 돌탑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하지만, 신록이 시작되는 숲길이 상큼하고, 싱그럽다. 참꽃은 군락지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지, 아래 산록에서는 참꽃 구경도 못하겠다. 이윽고 약 10분간 너덜지대를 통과한다. 천연기념물 435호로 지정됐다는 이곳 암괴류(岩塊流 -Blok Stream)는 약 1만년~약 10만 년 전의 주 빙하기 후대에 형성된 것으로, 매우 드물고, 가치가 있는 지형이라고 한다.
신록
너덜지대
12시 21분, 염불암지와 연못 갈림길에 이른다. 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에서 연못 쪽으로 내려서서 시멘트길을 조금 지나, 대견사지로 오르거나, 조화봉으로 오르는 길을 택할 수가 있다. 특히 제 2봉인 조화봉을 오르려면 연못 쪽으로 내려섰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선두는 지도는 보지 않고, 지형만 보고 염불암지 쪽으로 오른 후이다.
염불암지와 연못 갈림길
염불암지에는 4층 석탑 하나가 덩그렇게 남아 있다. 길은 점점 가팔라지며, 암릉길이 이어진다. 험한 코스라 인적이 없이 한적하다. 전망대에서 보는 조화봉, 관기봉으로 흐르는 능선이 아름답고, 1034m봉으로 오르는 길에 보는 기암들 모양이 다양하다. 1034m봉이 가까워지나 보다, 네 발로 기어올라야 하는 암릉을 통과하여 너른 바위 위에서니, 바로 눈앞의 암봉이 정상이다. 채 5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다. 우리 대원들이 암봉을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염불암지 석탑
1034m봉 오르다 본 암봉
1034m봉 정상 - 우정대원 사진
1시 22분, 바위 위에서 동쪽으로 보이는 대견사지, 조화봉을 카메라에 담는다. 카메라가 배터리가 다 했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배낭을 벗어 배터리를 교환하고,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배낭을 다시 메고 정상을 향한다. 이러는 사이에 2~3분이 흐른다. 멎었던 비가 다시 제법 내리기 시작한다.
멀리 본 대원사지
조화봉
관기봉
1시 28분 정상에 오른다. 휴양림 입구에서 1034m봉 정상에 오르기까지 약 1시간 45분이 걸린 셈이다. 빗속이지만, 정상에는 등산객들이 꽤 몰려 있으나 우리 일행은 보이질 않는다. 비를 피해 눈앞의 정자로 내려갔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비슬산 정상과 월광봉을 카메라에 담은 후 정자로 향한다. 정자는 비를 피해 몰려든 인파로 만원이지만 우리 일행은 역시 보이지 않는다. 정자앞에서 등산로는 좌, 우, 직진의 3갈래로 나 있다. 지도를 꺼내 본다. 좌측과 직진 길은 유가사로 하산하는 길이고, 우측 길은 대견사지로 향하는 길이다.
1034m봉에서 본 비슬산
1034m봉에서 본 월광봉
정자
월광봉 쪽에서 내려오는 참꽃축제 인파
일행을 찾아, 서둘러 오른쪽으로 달린다. 하지만 줄지어 1034m봉으로 오르는 대열을 역류하여 혼자서 미끄러운 길을 내려서기가 민망하기도 하고,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다. 커다란 소나무 아래로 비켜서서, 우정대원에게 전화를 해 본다. 전화는 불통이다. 1시 40분 대견사지에 이른다. 비는 다소 뜸해졌지만, 너른 대견사지에도 인파가 붐빈다. 하지만 역시 우리 대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대견사지
다시 능선으로 올라, 산정산악회 종이 표지판이 월광봉 쪽을 가리키고 있는 삼거리 이정표 앞에서, 잠시 눈앞에 보이는 조화봉을 다녀올지 여부를 생각해 보지만, 비는 오지, 밀려오는 인파를 역류하는 것이 부담이 되지, 잃어버린 일행도 찾아야지, 어떻게 보아도 조화봉을 다녀올 만큼 태평스런 상황이 아니다.
조화봉 가는길
갈림길 이정표
비슬산으로 향한다. 너른 참꽃단지의 진달래들은 아직 꽃망울도 터트리지 못하고 있다. 축제가 너무 빨리 열린 셈이다. 빗발도 가늘어지고, 꽃구경도 시원치 않아, 소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마치니, 2시5분 경이다. 다시 우정대원에게 전화를 해본다. 역시 불통이다. 주어진 시간인 5시간 이내에 산행을 마치려면, 이제 남은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다. 일행 찾기를 포기하고, 혼자서 월광봉으로 향하면서 너른 참꽃단지를 비롯한 주위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는다. 다행히 비가 멎는다.
뒤돌아 본 1034m봉
월광봉
당겨 찍은 칼바위
참꽃 군락지
비슬산 가는 길
유기사 방향의 조망
가까이 본 비슬산
2시 30분 월광봉에 오른다. 비도 멎고, 사방이 트여 조망이 일품이다. 남쪽으로 석검봉(칼바위)과 조화봉이 가깝고, 북으로 대견봉과 대견봉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 아래 너른 참꽃단지, 그 뒤로 1043m봉, 그리고 그 오른쪽으로 유가사가 있는 골짜기는 운무가 가득하고, 그 뒤로 멀리 가야산이 뚜렷하다.
월광봉 정상
월광봉에서 본 주화봉
월광봉에서 본 비슬산
월광봉에서 본 가야산
월광봉을 내려서서 대견봉으로 오른다. 눈앞에 암봉 하나가 우뚝하고, 오른쪽으로는 멍울진 참꽃 뒤로 용천사 방향의 마을이 누워있다. 2시 44분 유가사 갈림길을 지난다. 이정표가 서있다. 이제 비슬산 정상까지는 1Km가 남아있다. 비슬산 정상으로 오른다. 왼쪽으로 정상에서 곧추 떨어지는 절벽이 급하고, 멀리 가야산이 구름위에 떠 있다. 뒤돌아보니, 지나온 월광봉이 내려다 보이고, 그 왼쪽으로는 운해가 장관이다.
비슬산 오르다 본 암봉
유기사 갈림길
뒤돌아 본 월광봉
남쪽 방향의 운해
억새가 무성한 지역을 지난다. 오른쪽으로 오산리 방향의 마을이 뚜렷하고, 삼성산,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첩첩하다. 돌탑을 지나고 다시 왼쪽 억새밭 너머로 펼쳐지는 운해에 잠시 시선을 빼앗긴다. 시기가 맞지를 않아 참꽃 군락지의 장관은 구경하지 못하지만, 1000미터 급 고산에서 억새와 고산 풍광, 그리고 발아래 운해를 만끽한다.
오산리 방향
삼성산 방향의 조망
정상부근의 풍광
정상에서 보는 운해
3시 12분 헬기장에서 다시 주위를 조망하고, 삼각점과 대견봉 정상석을 카메라에 담은 후, 3시 16분 경 능선을 따라 유가사 쪽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3시 33분, 전망바위에서 비슬산 정상을 되돌아보고, 급사면 비탈길을 내 달리다, 비로소 길섶에서 한두 그루 홀로 떨어져서 활짝 꽃을 피운 진달래를 본다.
비슬산 정상
정상의 헬기장과 산불 감시초소
대견봉 정상석
유가사 가는 능선길
되돌아 본 비슬산
산 아래로 내려설수록 정상의 회색빛 관목지대와는 달리 신록이 아름답고, 수도암 옆 절에 내려서니 산 벛꽃인지, 복사꽃인지 분홍색 꽃이 절 지붕을 배경으로 화사하고, 도로 변에는 초파일을 맞는 연등들이 매달려 있다. 4시 17분, 공사 중인 유개사를 대충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다시 우정대원에게 전화를 한다. 이번에는 통화가 된다.
신록
산사풍경
유가사
이미 버스에 도착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아직 도성암 부근에서 쉬고 있다고 한다. 1034m봉 바위 아래에 모여서, 우중에 우산을 받으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친 나를 찾고, 기다리느라고, 행보를 한껏 늦추었다는 이야기이다. 맥이 쭉 빠진다. 서둘러 내려오라고 이르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좁은 주차장에 산악회 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도로를 따라 내려선다. 4시 30분 경, 길가에 정차하고 있는 버스에 도착한다. 다른 대원들은 이미 모두 하산하여 식사를 마친 상태다. 배낭을 버스에 내려놓고, 식사를 끝냈는데도, 우리일행은 내려오는 기미가 없다. 비교적 용이한 코스를 택해 일찍이 하산한 일반대원들이 기다리기에 지쳐, 불만의 소리가 점점 높아지자, 듣고 있기도 민망하여, 유개사로 오르는 도로를 오르내리며, 초조하게 일행을 기다린다.
일행의 하산을 기다리며 유가사로 오르는 길을 본다.
5시 20분 경, 우정대원과 다이야대원의 모습이 보인다. 버스에 가까이 오자 이들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둘이 나란히 아스팔트 도로에서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하더니, 열심히 팔굽혀펴기를 한다. 불평을 하던 일반대원들도 이들의 코믹한 연기에, 웃는 낮으로 버스에 오른다. 이윽고 일행이 모두 도착하고, 5시 30분 경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귀로의 버스에서 고봉대원은,
"산정산악회를 3년여 쫓아 다녔지만, 꼴지를 하기는 처음이다." 라며 웃는다.
제식구도 찾지를 못하고, 빙신처럼 떨어져서, 3차대가 집단으로 꼴지를 하게한 불명예의 원인을 제공한 나에게는 "오식이"라는 별호가 주어진다. 찍소리 못하고 접수한다. 무구대원의 "삼식이", 화봉대원의 "사식이"에 이은, 명예로운 "오식이"가 탄생한 거다.
(2006.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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