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눈으로 변해 잡목가지에 눈꽃이 피었다.


지난해 12월 중순, 송현 선배의 전화를 받는다. 무주공산을 따라 호남정맥 당일산행을 하는데, 할 만하니 생각이 있으면 나오라는 전화다. 송현 선배는 화요맥에서 영춘지맥, 계방지맥 등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된 사이다.


"70전에야 산악회를 따라다니며 산행을 할 수도 있겠지만, 70이 넘어, 달리는 체력으로 젊은이들 뒤를 쫓는 것도 보기 흉하니, 우리 늙은이들 서너 명이 함께 모여 산행하기로 합시다. 특히 호남정맥은 한번 출발하여 2박 3일 정도 머물며 두 구간 정도를 산행하게 되면, 멋진 남도음식도 즐길 수 있을 터이니 가히 금상첨화가 아니겠소."


이처럼 권유하던 양반인데 한 1년 정도 소식이 없더니 느닷없이 호남정맥을 하는 중이니 나오라는 것이다. 마침 매월 2, 4주 토요일은 몇몇 사람들과 함께 금북정맥종주를 하던 중이라, 12월 넷째 주 산행을 마치고, 동행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호남정맥 종주 길에 따라나선다.


2008년 1월 12일(토).

7시 5분 전, 양재역에 도착하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참여인원이 많은지, 지정석이다. 내가 21번, 송 선배는 22번 좌석이다. 버스가 구형이라, 전후좌우 공간이 몹시 좁아, 배낭을 앞좌석 등받이에 걸고 보니, 숨 쉬기도 거북할 정도로 답답하다.


버스가 경유지를 모두 거치자, 탑승자는 37명에 달해, 버스 안에는 거의 빈 공간이 없다. 이상하다. 정맥산행을 안내하는 산악회들은 20명 정도의 회원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실정인데, 이 산악회는 흐리고 비가 온다는 오늘 같은 날에도 만석에 가까운 성황이니, 뭔가 비결이 있는 모양이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이니 '저 마다 주인'이 되는 재미에 이처럼 성황을 을 이루는 것인가? 하지만 요즈음에 공산(空山)이 어디 있나? 송전탑이 지나 가거나, 통신탑이 차지하고, 그것도 아니면 산불감시초소 등이 자리 잡고 있어 공산이 사리진지는 이미 오래다. 공산이 없는데 주인타령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러니 이름 덕은 아닌 듯싶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린다. 점차 개이겠다는 예보와는 달리, 차창 밖으로 겨울비가 처량하게 내린다. 우리나라 기상청은 정신 좀 차려야한다. 어제만 해도 중부와 강원지역에 예보에 없던 폭설이 내려, 곳곳에서 교통사고가 빈발하고 수도권의 교통이 마비되어, 지각사태가 발생한다. 미국은 특정 지역의 한 달 후의 일기예칙까지 정확하고, 중국도 일기예보가 잘 맞는 편이라고 한다. 일기예보는 국민들의 생활, 재산, 그리고 생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매우 중요한 정보다. 작금의 더욱 더 부정확해진 일기예보가 전문성을 무시한 현정권의 코드인사와 관계가 있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버스가 한 시간 남짓 고속도로를 달리다 톨게이트를 지나지만, 버스 안에서는 어디를 지나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윽고 버스는 탄천 휴게소에 정차한다. 비로소 버스가 천안에서 논산, 천안고속도로로 진입했음을 알 수 있겠다. 약 20분간 정차한 버스가 다시 고속도로를 달리자, 선두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오늘의 산행 개요를 설명한다.


당초에는 운암삼거리에서 구절재까지 도상거리 약 15.9Km를 산행할 계획이었으나, 지난 목요일 실사를 해보니, 예상보다 업 다운이 심해, 힘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렸었는데, 오늘은 날씨도 좋지 않으니, 소리개재까지만 간다는 것이다. 아~하, 이것이로구나. 사전 실사를 하고, 무리한 산행을 하지 않는 것. 이게 사람들을 모으는 비결이로구나. 그렇게 보니 다른 산악회와 달리 고모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자고로 고모들이 많으면 분위기가 밝고, 사람들이 꼬이기 마련이다. 고모들에게 산행은 '긴 것'보다 '짧은 것'이 더 좋은 모양이다.


고속도로를 버린 버스는 국도로 내려서고, 9시 59분, 운암삼거리의 어부집 앞에 대원들을 내려놓는다. 사방에 비구름이 가득하고 한겨울에 내리는 부슬비가 처연하다. 대원들이 어부집 추녀 끝에 몰려서서 우중 산행준비를 하느라 부산하다. 오늘 산행을 소리개재에서 마감하면 도상거리는 고작 8,7km에 불과하고, 산행시간도 4시간이 안 걸리겠기에, 송 선배와 나는 배낭도 차에 둔 채, 물통만 하나 달랑 허리에 차고 산행길에 나선다.

산행 들머리 어부집

운암삼거리 교통표지판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09:59) 운암삼거리-(10:03) 산행시작-(10;19) 봉,약 340m-(10:24) 350m 능선분기봉, 좌-(10:35) 안부-(10:49) 전위봉-(11:02) 묵방산 갈림길-(11:04) 묵방산-(11:06) 묵방산 갈림길-(11:13) 갈림길, 좌-(11:23) 임도, 좌-(11:24) 오른쪽 숲으로-(11:25) 대나무 숲-(11:27) 시멘트도로 3거리, 우-(11:30) 여우치-(11:32) 천안전씨 묘-(11:34) 토지지신비-(11:37) 283.5m봉-(11:38) 광산김씨 합장묘-(11:40) 안부, 직진-(11:45) 갈림길, 좌-(11:48) 묘 4기-(11:53) 가는정이-(12:05) T자, 우-(12:25) 부러진 전신주-(12:27) 능선분기봉, 우-(12:35) 무덤 있는 분기봉, 직진-(12:49) T자, 우-(13:00) T자, 좌-(13:03) 성옥산-(13:11) 파평윤씨 묘-(13:14) 가족묘-(13:21) 소리개재』로 총 3시간 18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어부집 화장실을 빌어, 잠시 용무를 보고 나오니, 대원들은 이미 보이질 않는다.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잠시 내려서고, 옹벽이 끝나는 곳에서 덤불을 헤치며 숲으로 들어선다. 이어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자, 왼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초당골, 27번국도, 그리고 옥정호 한 귀퉁이가 내려다보이고 운무에 가린 묵방산 일부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왼쪽으로 줄곧 시원한 옥정호를 굽어보며 산행하는 것인데 아쉽게도 날씨 때문에 그런 재미는 포기하여야 한다.

왼쪽으로 보이는 27번국도와 옥정호 그리고 운무에 싸인 묵방산(우)


이 지역에는 어제부터 줄곧 비가 내렸다고 한다. 축축하게 젖은 낙엽을 밟으며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70을 이미 넘긴 송 선배는 아직도 젊은이들 보다 걸음이 빠르다. 그 사이에 어디로 사라졌는지 뒷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10시 19분, 고도 약 340m 정도 되는 봉우리를 지나자, 비가 눈으로 바뀌어 가는 눈발이 휘날린다. 초당골과는 약 130m 정도의 고도차인데도 한쪽은 비, 다른 한쪽은 눈이 내린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다시 낮은 봉우리 하나를 넘고, 10시 24분, 350m 능선 분기봉에 이른다. 이곳에서 북으로 진행하면, 402m봉을 지나, 모악산으로 이어지고, 마루금은 왼쪽으로 남쪽을 향해 직각으로 꺾어진다. '만경, 동진 분수점'이라는 비닐표지판과 전북 산사랑회에서 세운 표지목이 보인다. 표지목에는 묵방산 1.3Km, 모악산 5.8Km, 초당골 1,0Km라고 거리가 표기되어 있다.

350m 분기봉


왼쪽 비탈길을 달려 내린다. 긴 내리막이다. 10시 35분, 벌목한 나뭇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안부를 지나 코가 땅에 닿을 듯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비로소 앞에 송 선배의 뒷모습이 보이고, 10시 49분, 전위봉에 오른다. 계속 내리는 눈이 잡목가지 위에 아름다운 눈꽃을 피운다. 잠시 평탄하던 길이 다시 가팔라진다. 11시 2분, 묵방산 갈림길 비닐표지판이 있는 T자 능선에이르러,오른쪽으로 진행하고, 2분 후, 묵방산 정상에 오른다. 표지판 하나만 당랑 걸려있는 평범한 봉우리이다. 운무에 가려 조망은 제로다.

전위봉, 그 동안 내린 눈이 나뭇가지에 소복하다

묵방산 갈림길

묵방산 정상

눈 내리는 호남정맥 마루금


가파른 내리막길을 달려 내린다. 쇠락한 무덤을 지나고, 산악회 비닐표지판이 왼쪽 비탈길을 가리키고 있는 갈림길에 이른다. 무심코 달리다가는 직진하기 쉬운 곳이다. 짙은 운무를 뚫고 가파른 길을 달려 내린다. 이윽고 임도에 내려서서 왼쪽으로 진행하고, 1분 후, 표지기들의 안내로 오른쪽 숲으로 들어선다. 독도에 신경을 써야할 곳이다.

갈림길에 깔아 놓은 산악회 표지판

짙은 운무를 헤치고

임도에서 왼쪽으로 내려서고, 1분 후 오른쪽 숲으로


산속에서 뜻밖의 물웅덩이를 만나고, 푸른 대나무 숲을 거쳐 여우치 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도로에 내려선 후, 갈림길을 만나 오른쪽 언덕길로 진행한다. 이어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를 지나고 무덤 2기를 거쳐, 여우치에 이른다. 눈은 언제 그쳤는지도 모르게 그쳐버렸다.

산속에 웬 물웅덩이?

 

커다란 느티나무를 지나고

무덤 2기를 거쳐 여우치를 지나는 대원들


안개 속으로 보이는 여우치 마을은 초라한데, 부근에는 호화 묘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큰 규모의 묘소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조상을 귀하게 여기는 호남인들의 성정(性情)을 잘 나타내주고있는 듯싶다. 11시 34분, 토지지신비를 지나고, 11시 37분, 삼각점<갈담 236, 1884 재설>이 있는 283.5m봉에 오른다. 나뭇가지에 비닐 표지판이 걸려있다.

호화 묘로 불리 울 정도의 천안전씨 묘

283.5m봉의 정상표지판


봉우리를 내려서서 광산김씨 합장묘를 지나고 안부를 거쳐, 다시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니, 4기의 무덤이 있는 무덤가에서 선두그룹이 모여 간식을 들며 쉬고 있다. 묘역에 서니, 개 짖는 소리가 가깝게 들리고, 가는정이 마을과 749번 지방도로는 내려다보이는데, 아쉽게도 도로변 오른쪽의 너른 옥정호는 안개에 가려 흔적도 없다. 11시 53분, 정읍시 산외면 교통표지판이 있는 삼거리에 내려서서 길가의 하운암 산장을 카메라에 담고, 길 건너 옥정호 산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 오른다.

4기의 묘가 있는 묘역에서 본 가는정이

하운암 산장

옥정호 산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


11시 55분, 옥정호 산장을 지나 갈림길에 이르러, 오른쪽 시멘트 도로를 따라 오르고, 밭을 가로 질러 숲으로 들어서니 등산로는 왼쪽으로 굽어지며 서쪽으로 향한다. 12시 5분, T자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두어 개 넘고, 쓰러진 전신주가 있는 안부를 지나, 봉우리에 오른다. 오른쪽에 표지기가 보인다. 하지만, 무심히 직진하여 내려서면 운정리로 빠지게 되니 주의해야 할 곳이다. 급한 오른쪽 내리막을 달려내려 벌목지대를 지나고, 다시 능선에 진입하여 작은 봉우리를 넘어, 죽어 넘어진 나무들로 가득한 안부를 지난다.

죽은 나무들이 가득한 안부


12시 49분, T자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고, 이어 능선을 왼쪽으로 우회한 후, 정면이 운무로 가득한 눈 덮인 능선에 오른다. 대원 두 사람이 진행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 정면이 탁 트인 이곳에서 왼쪽으로 3분 쯤 진행하면 성옥산 정상에 이르게 된다. 세 사람이 함께 성옥산으로 향한다.

눈 덮인 T자 능선의 대원들


1시 3분, 성옥산 정상((388.5m)에 오른다. 삼각점과 두 개의 정상 표지판이 보인다. 하지만 아무 조망도 없는 정상에 오래 머물 필요가 있겠는가? 직진하여 서둘러 하산한다. 1시 11분, 파평윤씨 합장묘를 지나고, 짧은 덤불지대를 거쳐, 가족묘인 듯싶은 너른 묘역을 내려선다. 

청옥산 정상 삼각점

정상 표지판

가족묘 같아 보이는 너른 묘역


1시 17분, 숲을 벗어나자, 왼쪽으로 옥정호와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눈 아래 보이는 작은 규모의 공동묘지의 왼쪽을 따라 내려, 1시 21분, 715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소리개재에 이른다. 삼거리 도로변에 산악회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눈 아래 보이는 작은 공동묘지, 왼쪽으로 내려선다.

옥정호와 마을

소리개재


버스에 올라 방수 재킷을 벗어 놓고, 조끼를 걸친 후, 버스 옆에 마련한 막걸리 파티장에서 하산한 대원들과 어울린다. 화요맥에서 함께 산행을 했던 낮 익은 대원들을 반갑게 만난다. 막걸리 몇 잔으로 갈증을 풀고, 시장기도 달랜 후 주위를 둘러본다. 다음 구간으로 가야할 방향에서 정읍행 시내버스가 내려온다. 그러고 보니 이곳이 정읍시 산내면 상두마을이다.

다음에 가야할 방향과 정읍 행 버스


2시가 넘어 후미가 도착하자, 버스는 대원들을 싣고 산내면 매운탕 집들이 진을 치고 있는 식당가로 들어서서 미리 예약한 매운탕집 앞에 정차한다. 40명 가까운 인원이 한방 가득히 들어앉는다. 고모들이 준비해온 붉은 대추술 병이 돌고, 소주잔이 오간다. 이윽고 매운탕이 끓고,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는다. 선두 대장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무주공산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동호인 모임이라, 회비에서 차비 등을 공제하고 남는 돈은 이처럼 먹어서 없앤다고 한다. 아~하, 이것이 사람들을 모으는 또 다른 비결이로구나...고개가 끄덕여진다. 과연 특이한 형태의 동호인 모임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1시간 30분 가까이 거하게 치러진 뒤풀이가 끝나고, 4시경 매운탕 집을 나선다.

거한 뒤풀이

산내면의 매운탕집 골목, 옥정호에서 잡은 물고기가 주재료인 모양이다.

 


(2008. 1.13.)








at 01/09/2011 03:09 pm comment

잘 보았습니다 감사히 담아갑니다

at 12/18/2010 03:29 am comment

담습니다 우림님 감사합니다

엘빈 at 01/19/2008 03:44 pm comment

잘보았읍니다 멋진산행 수고하셨어여....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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