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올라따바디 요새

 

2011년 2월 19일(토)
인도여행 5일째 날이다. 오늘은 ‘행운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따올라따바드 (Daulatabad)요새와 불교, 힌두교, 자인교의 유적들이 공존하는 불가사의한 엘로라(Ellora) 석굴사원을 방문한다. 따울라따바드 요새는 아우랑가바드와 엘로라 석굴사원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20대들을 제외한 남자들 6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함께 움직인다. 8시가 조금 넘어 로비에 모인 우리들은, 오토 릭샤 2대에 분승하여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후, 인근 상점에서 간식꺼리를 사들고, 엘로라 행 버스에 오른다. 따올라따바드까지의 요금은 14루피다.

버스터미널 건물

 

고물이 다 된 버스지만 운전석과 승객석이 완벽하게 분리된 육중한 모양에서 죄수 호송차 같은 느낌을 받는다. 건장한 남자 차장이 커다란 구형 휴대폰처럼 생긴 컴퓨터 입력기를 들고, 요금을 받아 기록을 한다. 버스는 211번 국도를 덜컹거리며 달린다. 차창 밖의 풍광이 황량하다. 20여분이 지나자, 차장이 친절하게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라고 알려준다.

죄수 호송차 같이 육중한 버스

따올라따바디 요새앞 도로

 

버스에서 내리니, 육중한 성곽과 높은 탑, 그리고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하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매표구로 다가가 표를 사고(입장료 100루피) 요새 정문으로 향한다. 매표소와 요새 정문 옆에 있는 안내문 내용을 요약한다.

육중한 성곽과 하얀 성채

따울라따바드 요새 지도(사진을 크릭하면 큰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야다바(Yadava)왕조의 왕, 빌라마(Bhillama) 5세에 의해 12세기경에 건설 된 이 요새는 옛날에는 데브기리(Devgiri-신들의 언덕)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1296년, 알라딘 킬지(Allauddin Khilji)에 의해 정복된 이후, 이 요새는 오랫동안 철옹성으로 남아 있었다. 1327년, 술탄 모하메드 빈 투굴라크(Mohammed bin Tughlak)가 수도를 델리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이름을 따올라따바드로 바꾼다.”

 

“높이 200m의 나지막한 언덕에 세워진 이 요새는 중세 데칸고원의 가장 강력한 요새 중의 하나다. 군사시설, 독특한 수리시설(水利施設)을 갖춘 마을, 그리고 정치, 종교적 성채라는 복합적인 기능을 갖은 이 요새의 넓이는 94.83 헥타르에 달한다.”

 

첫 번째 방어선인 요새 정문으로 들어서면 중정이 이어지고, 양쪽에 대포들을 진열해 놓았다. 좌우에 코끼리 상이 조각된 두 번째 방어선인 중문을 통과하고, 오른쪽에 우뚝 솟은 붉은 탑을 바라보며 진행하다, 왼쪽 계단으로 올라서서, 하티 호즈(Hathi Houz) 거대한 수조를 굽어보고, 바라트 마타(Bharat Mata-인도의 어머니) 사원으로 들어선다. 넓은 경내, 그리고 기둥들이 촘촘한 회랑을 보며 사원의 규모를 짐작해 본다. 사원 제일 안쪽에 아름다운 바라트 마타 조각상이 서 있다.

요새 정문

정문 안에서 요새를 둘러보는 신부님과 김 화백

중정에 진열된 대포

제2의 보루인 중문

코끼리 조각상과 안내판


바라트 마타 사원가는 길(왼쪽 계단길)

거대한 수조 - 폭 46.75m, 길이 47.45m, 깊이 6.61m라고 한다.

사원 입구

사원 전경

회랑

바라트 마타 입상

 

다시 주도로로 나와 우뚝 선 찬드 미나르(Chand Minar) 앞에 선다. 1435년, 아하마다사 (Ahamadshah) 2세가 세운 65m 높이의 전승탑이다. 이탑은 이후 전망탑으로, 그리고 기도의 장소로 사용된다. 탑 아래 한쪽에는 모스크 , 그 반대쪽에는 나카르 카나(Naqar Khana-Drum Hall)가 있다. 탑을 지나 폐허가 된 헤마드판티(Hemadpanti) 사원 유적지를 둘러보고, 제 3의 방어선인, 죽음의 요새, 카라코트(Kalakot)로 들어선다. 오르막 계단으로 이어지는 3중 문이다.

찬드 미나르

헤마드판티 사원 유적지

카라코트

두 번째 문 입구(우)

세 번째 문

 

카라코트를 지나, 치니 마할(Chini Mahal)에 이른다. 골콘다(Golkonda)왕조의 마지막 지배자인 압 둘 하산 타나사(Abdul Hasan Tanashah)가 죽을 때까지 유폐됐던 곳이라고 한다. 이어 거대한 대포가 있는 전망대에 올라, 왼쪽으로 보수 중인 니잠 사이(Nizam Shahi) 궁전과 푸른빛이 감도는 너른 해자, 그리고 해자에 걸린 다리를 굽어보고, 정면 멀리 요새 꼭대기의 하얀 성채를 올려다본다. 시선을 돌리니, 발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진 데칸고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관이다.

치니 마할

전망대

대포

보수 중인 니잠 사이 궁전


NpfhPT6ggNasZL_jcolw7Q.jpg
해자 - 폭 16m, 깊이 22m

다리

요새와 성채

데칸 고원

 

다리를 건너 손전등을 켜들고, 바위를 뚫어 만든 캄캄한 동굴 속으로 들어선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50m 정도의 오르막 동굴에는 여러 군데 속임 수가 감추어져 있다. 자칫 빛과 맑은 공기에 유혹 되어, 작은 샛길로 들어선 적들은, 바로 해자로 떨어지게 되어있다. 동굴 천장에는 박쥐들이 가득하다. 암굴을 나와, 밝은 태양 아래에서, 지나온 요새를 굽어보고 언덕위의 성채를 바라본다.

암굴

암굴 천장의 박쥐들

요새를 굽어보고 1

요새를 굽어보고 2

성채를 올려다본다.

 

성채에 오르기 전에 잠시 가네스(Ganesh) 사원에 들러 가네스의 이미지를 카메라에 담는다. 이윽고 12개의 아치문이 있는 팔각 성채, 바라다리(Baradari)에 오른다. 탁 트인 전망, 시원한 바람이 거의 환상이다. 인도의 젊은이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바람을 쏘이며 가이드북을 보고 있는 나를 둘러 싼 청년들, 함께 사진을 찍자고 몰려온 아가씨들... 성채 내부를 잠시 둘러보고 왔던 길을 되돌아선다.

가네스 사원

사원에 모셔진 가네스의 이미지

성채에서 본 데칸고원


함께 사진을 찍자고 몰려온 아가씨들

성채 내의 회랑

 

10대로 보이는 아가씨 둘이 계속 따라오며 어디서 왔고,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대답을 해주면 뭐가 그리 우스운지 까르르~ 까르르~ 잘도 웃는다. 인도는 처음 온 건지? 혼자서 여행하는 건지? 며칠이나 여행하는 지? 등 계속 묻더니, 심지어는 집사람의 이름까지를 물어온다. 쾌활하고 밝고 꾸밈이 없는 아가씨들이다.

 

이런 훌륭한 요새를 설계하고 건설한 똑똑한 조상들의 DNA가 틀림없이 이처럼 밝고 쾌활한 아가씨들 속에 전수되어 내려왔을 터인데, 어째서 이들은 가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는 것일까? 인종과 종교가 달라 생긴, 처절하게 오래 지속된 갈등! 그리고 잘못된 길을 선택한 지도자들.... 인종과 종교적인 갈등이 없는 우리들은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무 그늘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사진사들

 

중문에 이르자, 모습을 보이지 않던 김 화백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원숭이들에게 습격을 당하다, 겨우 피해 내려와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대답이다. 간식용으로 싸들고 들어 온 바나나 냄새를 맡고, 원숭이 한 마리가 쫓아오길레, 바나나 한 개를 던져 줬더니, 사방에서 원숭이 떼들이 몰려와 덤벼들더란다.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대는데, 청소를 하던 인도 아주머니가 빗자루를 휘둘러 원숭이들을 쫓아주어, 겨우 위기를 면했다고 한다. 그런 소동을 겪고 나니, 다시 움직일 기운도 없고 해서 고마운 아주머니와 함께 쉬면서, 스케치를 했다고 한다.

김 화백의 스케치

 

국도 변으로 나와 사탕수수 주스로 목을 축이고, 엘로라 행 버스를 기다린다.

 

 

(2011. 3. 17.)

'인도 배낭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 델리(Delhi)  (0) 2012.12.17
15. 푸쉬카르(Pushkar)  (0) 2012.12.17
14. 자이뿌르(Jaipur)  (0) 2012.12.17
13. 아그라(Agra)  (0) 2012.12.17
12. 바라나시(Varanasi) (2)  (0) 2012.12.17
Posted by Urimahn
,

 

 

 

후마윤의 무덤(펌)

2011년 3월 5일(토)
인도여행 18일 째 되는 날이다. 어제 늦게 아즈메르 역에서 기차를 타고, 오늘 새벽 5시 55분에, 사라 로일라(Sara Rohilla)역에 도착하여, 오토 릭샤로 델리로 향한다. 이어 6시 37분, 아우라 패리스(Aura Palace)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길잡이의 안내로 근처 한국 식당에서 오징어 덮밥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아즈메르 역 대합실까지 들어온 소

사라 로일라 역 도착

새벽의 호텔 골목

 

델리에는 볼 것도 많은데,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과 내일 뿐이다.아침식사를 마치고 김 화백과 히말라야 팀은 오토 릭샤를 타고 우선 국립박물관으로 향한다. 김 화백의 룸메이트인 노 사장은 신부님을 따라 나섰다. 10시 40분경 국립박물관에 도착한다.

국립박물관

 

20여만 점의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는 국립박물관은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민족문화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건설한 박물관으로, 1960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마침 중국 고대예술품 전시가 열리고 있어, 한 자리에서 인도와 중국의 예술품들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카메라 소지가 허용되지 않아, 밖에 전시된 컬렉션 외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입장료는 300루피다. 김연수 사장은 박물관이라면 이제 질렸다며,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그리고 굳은 입장료는 우리들을 위해서 물 쓰듯 쓰겠다고 공언한다.

카티케야 (karttikeya-쉬바의 아들, 전쟁의 신)상

돌에 새긴 아쇼카 칙령(Edicts of Ashoka)

락쉬미와 나라야나(Lakshmi-Narayama) 상

 

인더스 문명관, 쿠샨왕조 예술관, 불교 미술관, 세밀화 전시관 등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보는 이를 피곤하게 한다. 약 한 시간 정도 주마간산 격으로 휘둘러보고 밖으로 나온다. 정성원 사장은 김연수 사장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You are winner!"라고 소리친다. 안 들어오길 잘했다는 소리다. 다음은 어디로 갈 것인가를 놓고 잠시 의논을 한다. 먼 곳부터 보기로 하고, 남쪽으로 14Km 떨어져 있는 꾸뜹 미나르 유적군(Qutb Minar Complex) 을 보러 가기로 한다.

뒤쪽에서 본 꾸뜹 미나르

 

인도 최초의 이슬람 왕조는 델리 술탄국 (The Delhi Sultanate : 1206~1526)이다. 인도 서부에 거점을 둔 이슬람 세력이 왕국을 세우고, 술탄을 자처하며, 본격적으로 인도를 침공한다. 그중 꾸뜹 우드 딘 아이박(Qutab Ud Din Aibak) 왕이 힌두교도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여 1199년경에 짓기 시작한 것이 꾸뜹 미나르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오토 릭샤를 타고, 1시 20분 경, 유적군에 도착한다. 입장료가 250루피다. 이번에는 김연수 사장, 김 화백 두 사람이 함께 빠지겠다고 한다. 콜라라도 사 마시며 시원한 나무그늘에 앉아 쉬고 있을 터이니 천천히 다녀오라고 여유를 부린다. 물처럼 쓸 돈이 500루피 더 늘어나는데 마다할 리가 없다.

입구

 

입구를 통과하니 오른쪽에 무갈 모스크와 정원이 보인다. 잠시 무갈 모스크를 둘러보고 왼쪽에 보이는 꾸뜹 미나르로 향한다. 꾸뜹 미나르는 높이 72. 5m. 지름 14.5m의 거대한 5층탑이다. 1~3층은 붉은 사암, 4, 5층은 대리석을 썼다. 탑 주위에 석관이 안치된 사원들이 있다.

무갈 정원

무갈 모스크


이맘 자민(Imam Jamin)의 무덤 쪽에서 본 꾸뜹 미나르

 

이맘 자민(Imam Jamin)의 무덤을 둘러본다. 안내문에 의하면, 이 묘는 이맘 무하마드 알리(Imam Muhammad Ali)가 그의 생존 시에 건립하고 1539년에 임종을 맞아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그 외에 꾸뜹의 사위인 일투투미쉬(Iltutumish) 무덤, 알라 우드 딘의 무덤 등이 있다.

대영묘 1

대영묘 2

대영묘 3

회랑

석관

 

꾸뜹 미나르 옆에 훼손이 심해, 제 모습을 찾기 어려운 건물이 보인다. 파손된 회랑으로 둘러쳐진 안뜰에 쇠기둥 하나가 온전히 남아 우뚝하다. 위대한 왕을 칭송하는 문구를 새겼다는 이 쇠기둥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전혀 녹이 슬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거대한 알라이 미나르 (Alai Minar)가 있다. 꾸뜹 미나르 처럼 승전탑으로 쌓아올리다 미완성으로 그친 것이라고 한다. 1층을 짓다 만 상태인데, 규모는 꾸뜹 미나르에 비해 엄청 크다.

훼손된 사원

회랑

쇠기둥

알라이 미나르 (Alai Minar)

알라이 미나르 안내문

 

약 40분 동안 꾸뜹 미나르 유적군을 둘러보고 밖에서 기다리던 두 사람과 합류한다. 이번에는 정 사장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We are winner."라고 외친다. 이어 일행은 셔틀버스를 타고 꿉뜨 미나르 역으로 향한다. 지하철 승차가 뭄바이처럼 엉성하면 공짜로 탈 수도 있겠다고 기대를 했었는데, 델리는 다르다. 지하철 매표소에서 행선지인 라지브 초크(Rajiv Chowk)를 알리고 요금을 내자, 동그란 프라스틱 표찰을 준다. 이 표찰로 개찰구를 통과하고, 라지브 초크 역에 도착해서는 표찰을 개찰구에 투입한 후, 밖으로 나오도록 돼 있는 시스템이다.

꾸뜹 미나르 역

 

지하철 안이 깨끗하고 쾌적하다. 출입구 위의 전광판이 한쪽은 인도어, 다른 한쪽은 영어로 지하철역을 알려주어 편리하다. 3시가 조금 넘어, 라지브 초크 역에 도착한다. 코넷 프레이즈(Counnaht Place)가 가까운 역이라 한낮인데도 인파가 붐빈다.

델리의 지하철

라지브 초크역의 인파

 

코넷 프레이즈는 델리 최대의 상업 및 비즈니스거리다. 한가운데 조성된 센트럴 파크를 중심으로 원형 건물 군이 겹으로 배치되고, 방사선 도로가 사방으로 뻗는다. 이중 안쪽 건물 군인 이너서클(Inner Circle)에는 고급 상점, 은행, 식당, 여행사, 호텔 등 도시의 부유층과 외국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가득하다.

코넷 프레이즈 1

코넷 프레이즈 2

 

김연수 사장이 입장료를 절약한 돈으로 코넷 프레이즈 햄버거 집에서 한턱을 낸다. 어정쩡한 시간인데도 햄버거 집이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이제까지 보았던 인도와는 천양지판이다. 한동안 기다렸다 겨우 자리를 잡는다.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토 릭샤로 붉은 성으로 간다. 5시가 다 되어 붉은 성에 도착하지만, 이곳에서도 김 사장과 김 화백은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사람들로 붐비는 햄버거 집

붉은 성 안내판

붉은 성 1

붉 은성 2

 

무굴제국의 5대 황제인 샤 자한(Shah Jahan)이 1638년 수도를 아그라에서 델리로 옮기고, 이듬해 5월부터 도시기능과 요새기능을 겸비한 성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붉은 사암으로 지은 성의 붉은 색이 돋보여 이름도 붉은 성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입장료 250루피씩을 내고 정 사장과 함께 라호리 게이트(Lahori Gate)를 들어선다. 성에 대한 안내문, 그리고 1947년부터 2003년까지 성에 주둔 했던 인도 군에 대한 안내문과 궁 배치도 등이 눈에 뜨인다.

정문 라호리 게이트

궁 배치도(크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상점가인 차타초크(Chhatta Chowk)를 거쳐, 드럼 하우스를 지나자, 정면에 왕의 공식 접견장인 다이완 이 암(Daiwan I Am)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서자, 붉은 궁전 안에, 하얀 대리석 옥좌가 한층 더 위엄을 더해주는 것 같다. 이어 진주사원(Pearl Mosque), 궁중 목욕탕인 하맘(Hammam). 왕의 개인 접견실인 다이완 이 카스(Daiwan I Khas), 왕의 개인 궁전인 카스 마할(Kahs Mahal), 그리고 왕비의 거처인 랑 마할(Rang Mahal) 등을 둘러본다.

차타초크

드럼 하우스

 

다이완 이 암

옥좌

진주사원

다이완 이 카스

랑 마할 1

랑 마할 2

다이완 이 카스, 카스 마할, 랑 마할(왼쪽부터)

정원

 

약 50분 정도 붉은 성을 둘러보고 나와, 정 사장이 김 사장을 보고, 또 소리친다. ‘You are winner." 길 건너 찬드니 촉(Chandni Chowk)을 잠시 둘러보고, 오토 릭샤로 호텔부근으로 돌아와, 또 다른 한국식당인 ’인도 방랑기‘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찬드니 촉

식당, 인도 방랑기 간판

식당 내부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다. ‘히말라야’에 들러 선물용으로 화장품을 산다. 우리일행들이 약 20,000루피 정도를 팔아주니, 좀처럼 할인을 안 해준다는 히말라야에서도 10%를 깎아준다. 오늘이 인도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전예진 군이 위스키 한 병을 샀다며, 우리 방에서 모두 모이자고 한다. 초저녁 잠이 많은 김연수 사장만 빠지고, 전원이 모여, 간소한 쫑파티를 한다.

 

2011년 3월 6일(일)
인도여행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후마윤의 무덤(Humayun's Tumb), 인디안 게이트, 민속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을 들러 보기로 하고, 근처 식당에서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로 식사를 마치자, 오토 릭샤로 네 사람이 우선 후마윤의 무덤으로 향한다.

아침식사를 하며 내려다 본 거리

 

후마윤은 무갈제국의 2대 황제다. 페르샤 출신의 왕비, 하지 베검(Haji begum)이 사랑하는 남편의 사후, 그를 위해 1562~75년에 만든 무덤이 후마윤의 무덤이다. 샤 자한이 사랑하는 왕비를 위해 타지마할을 지은 것과는 반대의 경우지만, 후마윤의 무덤이 타지마할의 전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건축 양식이나, 모양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부 하리마 정원

 

김연수 사장과 김 화백은 이번에도 주변의 너른 공원이나 둘러보며 기다리겠다고 한다. 입장료 250루피씩을 지불하고 정 사장과 둘이서 무덤 안으로 들어선다. 시원하게 탁 트인 정원을 지나, 첫 번째 문을 지나면, 두 번째 정원이 펼쳐지고, 그 다음 웨스트 게이트 통과해야, 부 하리마(Bu Halima) 정원 너머로 아름다운 본 건물이 보인다. 

무덤 배치사진

첫 번째 정원

메인게이트

후마윤의 무덤

 

후마얀의 무덤은 12,000평방 미터의 기단 위에 47m의 높이로 지어졌고, 그 안에는 100기가 넘는 관들이 안치 되어 있어, ‘무갈제국의 도미터리(Dormitory of the Mughals')’라고 불린다고 한다. 묘를 둘러보고 나오면서 왼쪽 입구 쪽에 있는 아프사르왈라(Afsarwa니a) 무덤과 모스크를 본다. 둔중하고 심플한 이들 건축물에서 이슬람 건축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낀다.

기단 위의 석관들

묘 내부의 석관


옆에서 본 모습

아프사르왈라 무덤

모스크

 

후마윤의 무덤을 나와 인디안 게이트를 둘러본다. 인디안 게이트는 세계 1차 대전에 참여했던 인도인 전사자들의 위령탑으로, 높이 42m에 달하는 이 거대한 문에 약 85,000명의 전사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아름답게 조성된 공원에는 휴일을 맞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이어 오토 릭샤를 탄 채 대통령 궁 주위를 둘러보고, 민속박물관으로 향한다.

인디안 게이트

호수

대통령 궁 가는 길

 

민속박물관은 인도 각지의 민속공예품과 가옥을 모아 놓은 곳이다. 국립 박물관과는 달리 서민들의 삶을 느껴 볼 수 있는 곳으로 입장료는 무료다. 약 한 시간 여, 민속박물관을 둘러 본 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향한다. 이번에는 김 사장과 정 사장이 입장료 150루피를 아끼겠다고 한다. 김 화백은 기권하지 않고 따라나서는 내가 기특한지, 고맙게도 내 입장료 까지 부담해 준한다.

민속박물관 입구


토용

그림 그리는 화가

생음악

민화 판매점

가옥 1

가옥 2

 

국립현대미술관은 자이프르(Jaipur) 하우스라는 옛 건물 좌우에 날개처럼 신축건물을 지어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모던하고 널찍한 공간에 작품들을 전시하여, 시간이 충분하면 여유 있게 현대 인도미술을 즐길 수 있겠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정원의 조각품과 2층에 있는 타골의 두상 등 몇 작품만 카메라에 담는다.

자이프르 하우스

정원 조각 1

정원 조각 2

타골

 

국립현대미술관을 나와 오토 릭샤로 코넷 프레이즈로 이동하여, 김 화백이 쏘는 햄버거로 늦은 점심을 한다. 햄버거 집은 여전히 만원이다. 점심을 마치고 나니, 5시가 넘었다. 호텔로 돌아와 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향한다. 길잡이는 공항까지 따라 나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택시에 오르며 작별을 한다.

공항 체크 인

 

11시가 조금 넘어 이륙한 AI 310기는 다음 날 10시 경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다.

 

(2011. 4. 18.)

 

선덕 at 05/05/2011 10:10 pm comment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선덕입니다.^^어느덧 여행기 마지막편까지 올라왔네요~ 여행기 보면서 갔었던 곳들 다시 새록 새록 떠오르네요.. ^^

'인도 배낭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따울라따바드 요새와 엘로라 석굴사원(1)  (0) 2013.02.26
15. 푸쉬카르(Pushkar)  (0) 2012.12.17
14. 자이뿌르(Jaipur)  (0) 2012.12.17
13. 아그라(Agra)  (0) 2012.12.17
12. 바라나시(Varanasi) (2)  (0) 2012.12.17
Posted by Urimahn
,

 

 선덕 양이 찍어준 사진이다. 내 똑딱이에 비해 색감이 밝고, 선덕 양의 구도 잡는 솜씨가 탁월하다.

 

2011년 3월 2일(수)
인도여행 16일째 되는 날이다. 자이뿌르 일정을 마치고 푸쉬카르로 이동한다. 몇일 전 길잡이는 15인승 승합차를 렌트하여 아침에 여유 있게 출발하고, 그 비용은 우리들이 일인당 250루피씩 부담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온 바가 있다. 모두들 야간열차의 고생스러움을 익히 아는 터라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당초에는 야간기차로 이동한다고 했던 것인데, 아마 차표를 못 산 모양이다.

 

9시 호텔 앞에서 승합차에 오른다. 승합차는 편도 3차선의 고속도로를 달리더니, 10시 50분 경, 휴게소에 정차하여, 잠시 휴식시간을 준다. 휴게소에서 난(Naan)을 만드는 아저씨의 솜씨가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주위에 둘러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두 감탄한다. 다시 출발한 버스가 푸쉬가르에 접근한다. 도로확장공사, 철도부설 공사 등 공사가 한창이다. 1시경, 수영장까지 있는 멋진 그린 파크 리조트에 도착하여 짐을 푼다.

승합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휴게소에서 난을 만들고 있는 아저씨, 달인의 솜씨다.

수영장까지 있는 리조트

 

푸쉬카르는 인구 약 15,000명의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1~2시간이면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부라마 연꽃이 떨어져 만들어 졌다는 아름다운 호수, 호수 변의 가트들. 그리고 사다르 바자르(Sadar Bazaar) 메인 도로 주변의 다양한 여행자 편의시설 등으로 피곤한 여행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낙타 사파리 또한 독특한 매력이다.

푸쉬카르 호수와 자이뿌르 가트

오른쪽 산봉우리 위의 사비뜨리 사원

사다르 바자르 메인 거리

낙타 사파리

 

방 배정을 받고 난 후, 일행들은 점심식사를 하러 사다르 바자르에 있는 SR 레스토랑을 찾아 나선다. 저렴한 가격의 탈리 집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프랜즈 가이드북이 소개한 곳이다. 메인도로로 들어서자 음악소리가 요란하고 도로를 가득 메운 축제 행렬 주변에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몰려있다. 우리일행도 그 인파 속에 묻혀 뿔뿔이 흩어진다. 나중에 알아보니, 지와 페스티발(Jiwa Festival)이라고 하는 쉬바 신의 결혼 축제라고 한다.

리조트를 나와 메인 거리로 향한다.

축제 1

축제 2

축제 3

축제 4

 

축제 구경도 좋지만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혼자서 SR레스토랑을 찾아 나선다. 지도가 가리키는 지점 가까이 왔는데도 좀처럼 식당을 찾을 수가 없다. 주변에 물으니, 상호가 파푸(Papu)로 바뀌었다고 한다. 겨우 찾아서 2층으로 올라가니, 주인도 손님들과 어울려 축제를 보며 춤을 추느라고 정신이 없다. 탈리를 주문한다. 가격은 60루피다. 가이드북이 소개한대로 즉석에서 카레를 만드느라 30분 정도 기다린다.

상호가 PaPu로 바뀐 SR레스토랑

 

점심식사를 하고 가까운 브라마 사원(Brahma Mandir)을 찾는다. 유지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쉬바와 더불어 인도의 3대 신으로 꼽히는 창조의 신 부라마지만, 창조는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에 숭배의 대상에서 멀어져, 부라마 신만을 모신 사원은 전 세계에서 오직 이곳 한 곳밖에 없다고 한다. 무굴제국의 아우랑제브에 의해 파괴 됐던 것을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입장하기 전에 카메라 등 소지품과 신발을 모두 맡겨야 하기 때문에 사진이 없다.

부라마 사원

 

부라마 사원을 대강 둘러보고, 호수가로 나와 가트 주변을 어슬렁대다, 낙조를 보겠다는 생각으로 선셋 카페(Sunset Cafe)로 향한다. 6시가 다 되어 선셋 카페에 이르니, 서양인들이 노천카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있는 풍경이 무척이나 이국적이다. 흩어졌던 우리일행이 하나둘 모여들지만, 구름이 잔뜩 몰려있는 서쪽 하늘을 보면 오늘 낙조보기는 그른 것 같다.

선셋 카페

서편 호수 와 사비트리 사원

북동쪽에서 사비트리 사원과 마주보고 있는 가야뜨리(Gayatri) 사원

 

신부님이 호텔에 가서 인도 라면을 끓여 먹자며, 라면과 도마도가 든 보따리를 내민다. 함께 호텔로 향하다, 쿠키 몇 봉지를 산다. 방으로 들어서니, 신부님은 이미 정 사장 방에서 전기 곤로와 코펠을 옮겨다 놓았다. 설명서 대로 끓여본 인도 카레 라면은 몹시 짠 편이지만, 물을 더 넣으니 먹을 만하다. 럼주, 카레라면, 도마도, 쿠키로 저녁을 해결한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서 좋다.

 

2011년 3월 3일(목)
인도여행 17일째 날이다. 사비뜨리 사원에서 일출을 보려고, 히말라야 팀과 김 화백, 네 명이 새벽 5시 30분 경, 헤드랜턴을 밝히고, 호텔을 나선다. 새벽이지만 버스 스탠드 앞에 어쩌면 싸이클 릭샤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더니, 김연수 사장이, “인도 사람들이 그처럼 부지런하면, 가난할 리가 없겠죠.”라고 강하게 부정한다. 과연 버스 스탠드 앞에는 사람 그림자도 없다.

 

걸어서도 40분이면 갈 수 있다고 했으니, 탈 것이 없어도 문제 될 것은 없다. 어둠 속을 부지런히 걷는다. 6시 25분,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잠시 멈춰 서서 동족 하늘을 본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온다. 6시 31분, 사위가 어렴프시 밝아지며 불빛이 환한 푸쉬카르가 내려다보인다. 건너편 산위 불빛이 보이는 곳이 우유 짜던 소녀인 가야뜨리(Gayatri)의 사원인 모양이다.

사비뜨리 사원 아래에서 본 새벽의 푸쉬카르

 

6시 35분, 사원 앞에 이르지만, 사원 문은 굳게 닫혀있다. 사원 뒤 암릉 정상에서 해돋이를 기다린다. 7시 해뜨기 직전이다. 사비뜨리 사원 뒷모습이 선명하다. 1분 후, 해가 얼굴을 내밀고, 또 2분 후에는 산 능선을 타고 앉더니, 금방 허공으로 둥실 뜬다. 장엄한 광경이다.

해뜨기 직전의 사비뜨리 사원의 뒷모습

해뜨기 직전

햇님이 얼굴을 보이고

산 능선에 걸터 앉아 잠시 쉬더니

금방 허공으로 솟는다.

 

사원 쪽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서양인들 몇몇이 모습을 보인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푸쉬카르가 명당이다. 사방이 산으로 빙 둘러 싸인 너른 분지다. 김 화백은 자궁형 명당이라고 한다. 동쪽으로 푸쉬가르 호수와 마을이, 서쪽은 경작지로 이용할 수 있는 너른 들이 펼쳐진다.

동쪽의 호수와 마을,

남쪽의 사막과 마을 주 진입로

서쪽의 너른 경작지

 

사원으로 내려오니 문이 열려있다. 사원 안으로 들어선다. 입구의 신성한 나무를 지나 테라스에 서니, 좌우의 푸쉬카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북동쪽으로 가야트리 사원이 작게 보인다. 서로 마주보는 두 사원에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한다. 사원 안의 신상을 카메라에 담고 사원 문을 나선다.

사비트리 사원에서 본 푸쉬카르, 맨 왼쪽 작은 봉우리 위의 뾰죽한 것이 가야트리 사원이다.

신상

 

브라마가 개최한 희생제에 부인인 사비뜨리가 지각을 하여 나타나지 않자, 모든 신과 성자들에게 망신을 당한 브라마가 홧김에 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우유 짜는 소녀 가야트리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고, 희생제를 치른다. 뒤 늦게 이 사실을 안 사비뜨리가 불 같이 노하여, “브라마의 사원은 전 세계에 푸쉬카르에 딱 하나만 남을 것.”이라고 저주한다. 아내의 저주에 분노한 부라마는 가야뜨리를 신으로 승격시켜 사비뜨리와 동격을 만든다. 이후 두 여신은 부라마 사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서로 노려보고 있다고 한다. (펌)

 

산을 내려오다 만나는 나무들이 특이하여 카메라에 담고 뒤돌아 사비뜨리 사원을 바라본다. 펌프장을 지나다, 김연수 사장이 물 깃는 여인들은 돕는다. 물동이를 이고 가는 인도여인들의 뒤태가 날씬하다. 마을을 지난다. 열린 마당에 펌푸장에서 만났던 여인이 두 아이와 함께 웃고 있다. 집안으로 들어가 여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두 아이들에게 용돈을 쥐어 준 후 작별을 한다. 호텔로 돌아와 사워를 하고, 정 사장의 아침 초대에 응한다. 마지막 남은 라면과 햇반을 새벽등산을 함께한 동료들 같이 나누고 싶다는 초대다. 얼큰한 라면 국물 맛에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다.

나무 1

나무 2

뒤돌아본 사비뜨리 사원

펌프장

날씬한 인도여인의 뒤태

앞모습

 

12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짐은 호텔에 맡긴다. 호텔식당에서 볶음밥으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고 빈 방을 빌려, 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 3시에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향한다. 낙타는 실크로드를 여행하면서 명사산에서 타본 적이 있다. 엉덩이 살이 없는 편이라 엉덩이가 무척 고생을 한다. 몸의 중심을 번갈라 좌우로 옮겨 고통을 반감시키려 노력한다.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아스팔트 도로도 걷고

 

한 시간 반 쯤 진행한 후, 사막에서 한차례 휴식을 취한다. 가까이 본 낙타의 얼굴에 표정이 없다. 이어 다시 낙타에 오른다. 이제 사막화가 진행되는 지형이다 보니 여기저기 가시나무들이 서있다. 낙타가 가시나무 가까이로 접근하게 되면, 가시나무가 낙타 등에 탄 사람을 사정없이 훑고, 비명소리가 요란하다. 하여 낙타가 가시나무에 접근하면, 낙타몰이꾼이 “가시, 가시,”라고 외쳐, 주의를 환기시킨다. 6시 20분 경, 일행은 야영장에 도착한다.

휴식

무표정한 낙타

가시나무

야영장 도착

 

낙타 몰이꾼들이 모래 위에 ㄷ자형으로 두터운 담요을 깔아 잠자리를 만들고, 해지기 전에, 준비해 온 인도식 저녁식사를 제공한다. 저녁식사 후 해가 떨어지고 사방이 어두워지자, ㄷ자형 입구에 모닥불이 피워지고 이 불은 새벽까지 꺼지지 않는다. 정 사장과 김지혜 양이, 준비해온 닭으로 백숙을 끓인다.

모닥불

 

날씨도 온화하고,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다. 연령분포가 광범위하여 모닥불 주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활기찬 모습은 볼 수 없으나, 무리무리 지어 조용히 쾌적한 사막의 밤을 즐긴다, 피곤한 사람은 일찌감치 침낭 속으로 들어가 밤하늘의 별을 보며 휴식을 취한다. 이윽고 백숙이 다 되고, 술잔이 돌며 야영장의 분위기가 조용히 무르익는다.

김연수 사장의 “아름다운 밤입니다.”라는 소리에 웃음을 참지 못하는 아가씨들

백숙이 익는다. 터번 두른 양반이 캪틴이다.

 

밤이 깊어지자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춥지는 않지만 모래가 날려 귀찮다. ㄷ자로 깔아 놓은 담요 위에 자리를 잡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환경, 거센 바람 속에서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12시가 넘어 잠이 들었지만 바람이 심해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아침 6시경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새벽잠이 고이든 대원들의 자는 모습이 다양하다.

혼자 떨어져 자는 사람

바짝 붙어서 자는 사람

 

2011년 3월 4일(금)
인도여행 17일째를 맞는다. 아랫배가 살살 아프다. 엊저녁 백숙국물이 끓인 것이기는 하지만 파는 물이 아니라서 탈이 생긴 모양이다. 설사기가 있는 지뢰를 묻고나니, 뱃속이 다소 편해진다. 하지만 만일을 위해, 지사제와 항생제를 함께 복용한다.

 

 6시 30분에 모든 대원들이 기상하고, 짜이, 토스트, 바나나로 아침식사를 한 후, 7시 20분경에 호텔로 향한다. 아가씨들이 피곤한지, 모두 낙타를 버리고 수레에 오른다. 밤새 동료들 담요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신경을 쓰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김지혜 양만이 꿋꿋하게 낙타 등에 오른다.

낙타 사파리 뒷바라지를 해주신 분들

모래 위의 그림자.

아가씨들은 수레를 타고

 

9시경, 호텔로 돌아와 수영장에 잠시 들렀다 휴식을 취한다. 많이 피곤하다. 낙타 등에서 오랫동안 시달리고, 사막에서 거센 바람에 잠을 설친데다, 배탈까지 나고 보니, 피곤하지 않다면 그게 이상한 거다. 점심,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사다르 바자르에 나간 것 이외에는 호텔에서 줄곧 쉰 후, 8시 40분 경, 승합차를 타고 아즈메르 역으로 이동한다.

 


(2011. 4. 13.)

'인도 배낭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따울라따바드 요새와 엘로라 석굴사원(1)  (0) 2013.02.26
16. 델리(Delhi)  (0) 2012.12.17
14. 자이뿌르(Jaipur)  (0) 2012.12.17
13. 아그라(Agra)  (0) 2012.12.17
12. 바라나시(Varanasi) (2)  (0) 2012.12.17
Posted by Urimahn
,

 


 

자이뿌르 시티 투어 - 멋 모르고 참여했다 돈 주고, 귀중한 시간만 빼앗겼다.

 

2011년 2월 28일(월)
인도여행 14일째 날이다. 전날 아그라에서 밤늦게 출발하여, 새벽 5시 40분경, 아그라 포트 역에 도착한다. 이메일로 예약한 전자티켓 사본을 보고, 그 동안 궁금했던 몇 가지 사항을 알게 된다.

 

- 예약일 : 2월 12일, 16일 전에 했다
- 거리 : 아그라 포트에서 자이뿌르까지의 거리는 241Km다.
- 기차 등급과 요금 : SL, 4인의 요금이 서비스 차지까지 합쳐, 524루피,
- 출발예정시간 : 6시 15분

 

대합실은 있지만 복잡하여 들어갈 마음이 없나 보다, 대원들은 이번에도 플랫트 홈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기차는 한 시간가량 늦은 7시 10분경에 출발하고, 5시간을 넘게 달려, 12시 30분경에 자이뿌르에 도착한다. 이어 아딜트야(Adiltya) 호텔 체크 인 후, 잠시 쉬었다, 오토 릭샤를 타고 식사를 하러 모띠마할 디럭스(Moti Mahal Delux)로 향한다.

아그라 포트 역

대합실이 답답한지 플랫트 홈 벤치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고

기차를 기다리는 할머니, 추우신 모양이다.

 

자이뿌르는 델리, 아그라와 함께 북인도의 골든 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이라고 불린다. 라자스탄의 주도이고, 북인도 평원에서 사막지대로 진입하는 관문도시로 유명하다. 자이뿌르는 핑크시티(Pink City)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영국의 왕세자가 자이뿌르를 방문할 당시, 환영하는 뜻으로 온 도시를 핑크빛으로 장식했기 때문이다.

핑크 빛 시티 팰리스

 

모띠 마할 디럭스는 가이드 북 프렌즈에도 소개된 집으로 올드 댈리의 무굴 레스토랑 명가인 모띠마할의 자이뿌르 분점이라고 한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분위기부터 다른 느낌이다. 노 사장, 김 화백과 함께 여러 가지 맛을 보기 위해, 버터치킨, 탄드라 치킨, 개릭 난, 치즈 난, 케마 난과 한국사람 입맛에 맞는다는 고비 카레 등을 골고루 주문하고, 맥주 4병을 마시니, 음식값 1,220루피에 세금 120.40루피를 합쳐, 모두 1,340 루피다. VAT는 외국인의 경우, 주류에 20%, 식대에 5%가 붙는다.

영수증

 

모처럼 점심식사를 거하게 한 후, 릭샤를 타고 중앙박물관으로 향한다. 박물관 건물이 멋지다. 베네치안 건축과 무굴 양식이 조화를 이룬 건물이라고 한다. 입장료는 300루피다. 전시실로 들어선다. 도자기 실이다. 옛날 유물이 아니고 봄베이 예술학교 학생들의 작품인 모양이다. 작품들이 고풍스럽지 않고 특이하다. 다음 방은 세밀화들을 전해 놓았다. 작품설명을 보니, 크리스나에게 헌상되는 라다와 나무 위에서 사랑의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캄디바를 묘사했다고 한다.

중앙 박물관

센트럴 뮤지움 / 자이뿌르

가까이 본 박물관 건물

도자기 실 작품 1

작품 2

세밀화

 

요가자세를 보여주는 토용, 귀족들의 두상, 미인도, 고대의상, 악기, 장신구 등 인도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소박한 전시물들과 조각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들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주위 경관을 카메라에 담고, 멀지 않은 중심가를 향해 거리구경을 하며 천천히 걷는다. 와인 숍에 들러 럼주와 위스키를 사고, 햄버거로 저녁을 때우고 호텔로 돌아온다. 주세 때문인지 술값이 다른 도시의 절반 정도다.

요가

귀족들의 두상

미인도

고대의상

악기

DURGA 상

BRAHMINI 상

거리 1

거리 2

거리 3

거리 4

인도에서 즐겨 마신 럼주다.

 

2011년 3월 1일(화)
인도여행 15일째 날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주위를 산책한다. 핑크 시티에 비해 새롭게 조성된 신도시라 도로들이 반듯하고 여기저기 공원들이 보인다. 호텔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고, 길잡이의 권유에 따라 2층 버스를 타고 시티 투어에 나선다. 요금 200루피, 13명 중 10명이 참여한다.

아침에 걸어 본 공원길

 

2층 버스에서 보는 신도시 도로가 널찍하고 시원하다. 10시 28분, 버스는 첫 번째 방문지인 슈리 락슈미 나라얀(Shri Lakshimi Narayan) 사원에 도착한다. 슈라 락슈미는 비슈누 신의 부인으로 부와 행운의 여신이다. 왼쪽으로 성채와 같은 거대한 성이 높직이 보이고, 주위가 온통 꽃밭이다. 약 20분 동안 이 사원을 둘러보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느낌이 이상하다. 시티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인도인들뿐이고, 외국인은 우리들이 전부다.

사원 입구

왼쪽으로 보이는 성채

슈리 상

사원 전경

모자이크

정원과 성채

 

버스가 핑크 시티로 들어서고, 이윽고 시티 팰리스(City Palace)에 도착 한다. 헌데 놀랍게도 30분 안에 관람을 마치고 버스로 오라고 한다. 옆에 있는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는 처음부터 아예 빼 버린다. 30분 동안 둘러보기 위해 입장료 180루피를 내고 들어선다. 양쪽에 코끼리상이 지키고 있는 라젠드라 게이트(Rajendra Gate)를 통과하자, 붉은색 사암으로 지은 아름다운 무바라크 마할(Mubalak Mahal)이 눈부시다. 19세기 말에 지어진 건물로 당시에는 리셉션 홀로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한다.

버스는 핑크 시티로 들어서고

시티 팰리스의 상점가

라젠드라 게이트

코끼리 상

무바라크 마할

 

공식접견실이었다는 다오니카스(Dawani Khas) 홀이 화려하고, 입구에 놓인 거대한 은 항아리가 눈길을 끈다. 안내문의 설명에 의하면, 기네스북에도 오른 세계에서 가장 큰 이 은 항아리는 14,000개의 은화를 녹여서 만들었고 , 무게 약 345Kg에, 4,091리터의 물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1902년, 마하라자 사와이 마도 싱 2세는 카스트의 신성함을 잃지 않고 바다를 건너기 위해, 이 은 항아리에 갠지스 강물을 가득 채워 배에 싣고 영국으로 건너가,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서둘러 시티 팰리스를 둘러본다.

다오니카스 홀

은 항아리

안내문

용 조각

사원 상단 부 크로즈 업

사원 안

공작문

크로즈 업

왕실카페도 사진만 찍고, 차 한 잔 못 마셔본다. 박물관에 잠시 들려, 120kg의 황금가운 만을 카메라에 담고 쫓기듯 뛰쳐나온다. 1시경, 버스는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축제 행렬이 지나며, 잠시 도로를 점거하지만, 다행이 곧 풀려 큰 지장은 없다. 버스가 다음에 선 곳은 옷감 파는 점포다. 이 점포에서 버스는 1시간가량 정차하고, 이어 인근 지정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라고 한다.

황실카페

금실로 짠 120kg 짜리 황금가운

축제행렬

옷감 파는 점포

지정식당

 

요금은 요금대로 내고, 귀중한 시간을 빼앗긴다고, 대원들 간에 불평의 소리가 높다. 시티 투어가 아니라 이건 사기라고 분개하며, 이런 투어를 권유한 길잡이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다. 체념이 빠른 젊은이들은 오토 릭샤를 잡아타고, 호텔로 돌아가고, 미련이 남은 시니어들만 식당으로 들어가 걸레 빵(난)과 카레를 주문한다. 하지만 독립군인 신부님과 함께 어울렸던 인도 아가씨들은 메뉴판을 보더니 비싸다며, 다른 식당을 찾아간다. 3시가 다되어, 버스는 다음 행선지인 나하르가르성(Nahargarh Fort)로 이동한다.

나하르가르성 으로 가다 본 창밖 풍경

 

버스는 3시 17분, 나하르가르성 주차장에 도착하고, 시티 투어 가이드는 4시 30분 까지 버스로 돌아오라고 한다. 걸어서는 도저히 마하르가르성을 돌아 볼 수 없는 시간이다. 할 수 없이 300루피에 찦차를 빌어, 우리 일행 6명과 인도인 청년 한명이 동승한다. 찦차가 성으로 향하는 도중, 인도인 청년에게 이런 엉터리 시티 투어도 있느냐고 불평을 하자, 자기도 다른 지방에서 자이뿌르를 구경하러 150 루피나 주고 시티 투어에 참여했는데 실망이 크다는 대답이다. 우리들은 200루피를 냈는데, 여기서도 차이가 나는 모양이다. 3시 32분, 찦차는 성 입구에 도착한다.

입구에서 본 건너편 풍광

성문으로 들어선다.

성 안뜰

오른쪽 산 위에 성채와 성벽이 보이지만 찦차를 타도 그곳을 다녀오기는 불가능하겠다. 할 수 없이 시라(Shilla)여신 사원만을 잠시 둘러보고 주위 조망을 즐긴 후, 찦차를 타고 주차장에 도착하여 다른 관광객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린다.

시라 사원입구

오른쪽으로 보이는 또 다른 성채와 성벽

주차장에서 본 호수

 

이윽고 관광객들이 다 버스에 오르자, 버스는 ‘라자스탄 커티지 인더스트리tm’라는 기념품점과 가죽 수공예점을 들른 후,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핑크시티로 들어선다. 버스가 하와마할(Hawa Mahal)을 지난다. 서둘러 버스를 정차시키고, 그곳에서 버스와 작별을 한다. 하지만 하와마할은 4시 30분까지만 입장객을 받아, 들어가지는 못하고, 웅장한 외관만을 카메라에 담는다.

쇼핑 센터, 커티지 인더스트리

가죽 수공예점

어둠이 깔리는 핑크 시티

하와마할의 웅장한 외관

 

잠시 핑크 시티 시장통을 둘러보고, 이제껏 사지 않았던 아리바바 바지를 내가 입으려고, 200루피를 주고 산다. 그리고 호텔 마야의 멋진 레스토랑에서 생음악을 들으며, 맥주와 치킨 볶음밥으로 즐거운 저녁식사를 하며, 불쾌했던 시티 투어의 기억을 말끔히 지워버린다.

호텔 마야

생음악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정 사장이 길잡이에게 시티 투어의 운영 실태를 사전에 알고 있었냐고 물었더니, 길잡이는 “몰랐다.”는 짤막한 대답뿐이었다고 한다.

 

 

(2011. 4. 5.)

 

 

 




 

'인도 배낭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 델리(Delhi)  (0) 2012.12.17
15. 푸쉬카르(Pushkar)  (0) 2012.12.17
13. 아그라(Agra)  (0) 2012.12.17
12. 바라나시(Varanasi) (2)  (0) 2012.12.17
11. 바라나시(Varanasi) (1)  (0) 2012.12.17
Posted by Urimahn
,

 

무타만(Musamman) 사원, 아우랑제브는 이곳에 아버지 샤 자한 대제를 구금한다.

 

2011년 2월 27일(일)
인도여행 13일째를 맞는다. 아그라 행 기차 속에서는 숙면을 한다. 다행이 이번에는 내 자리가 차량 중간의 3층이다 보니, 방해를 받지 않은 점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인도의 환경에 적응하는 힘이 그만큼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북인도 트라이앵글을 연결하는 기차이기 때문인가?  기차의 출발시간, 도착 시간이 정확하다. 7시 경, 길잡이가 한 시간 이내에 기차가 아그라에 도착할 것이라며 일행을 깨운다. 여행기간이 열흘을 넘기자 일행들이 피곤한 모양이다. 잠든 모습들이 다양하다.

인도 아가씨의 잠자는 모습

 

 

꼬맹이도 깨었다 다시 잠이 들고

중무장한 이 사나이도 조는 것 같고

 

아그라는 델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220Km 떨어진 야무나(Yamuna) 강변에 있는 도시로 면적 4,816㎢에, 인구는 약 170만 정도다. 1526년부터 1658년까지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이 도시는 화려한 무슬림의 문화유산인 무굴시대의 건축물들이 산재한 곳이다. 타지마할(Tāj Mahal),

아그라 성(Agra Fort), 그리고 파테푸르 시크리(Fatehpur Sikri), 3곳은 모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타지마할에서 본 야무나 강

 

기차는 도착 예정시간 보다도 18분이나 빠른 7시 42분경에 아그라에 도착하고, 약 15분 후에는 타지 프라자(Taji Plaza) 호텔에서 체크인을 한다. 이어 호텔 식당에서 컨티넨탈로 식사를 하고(160루피) 싸이클 릭샤로 아그라 성으로 향한다.

호텔도착

 

아그라 성은 타지마할과는 야무나 강을 사이에 두고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마주보고 있다. 붉은 사암의 성채와 내부의 하얀 대리석 건물이 어우러져 웅장함과 정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아그라성은 16세기말 무굴제국의 악바르(Akbar) 대제가 수도를 델리에서 아그라로 옮기면서 건축하기 시작하고, 그의 손자인 샤 자한(Shah Jahan) 이 타지마할을 지으면서 더욱 발전시켰다고 한다.

아그라 성

 

붉은 요새(Red Fort)라고도 불리는 아그라 성은 타지마할을 축조하면서 너무 많은 재정을 낭비한 샤 자한이 말년에 그의 아들인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된 곳으로도 유명한데, 샤 자한은 야무나 강 너머의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 무삼만(Musamman Burj) 사원에 갇혀 있다가 끝내 거기서 숨을 거둔다.

아그라 성에서 바라 본 타지마할

 

10시 20분 경, 쉬바지 스마라크(Shivaji Smarak)의 기마상이 있는 아그라 성 앞에 도착한다. 기념품이나 화보집을 파는 행상들이 집요하게 따라붙고, 일요일이라서인지 매표구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외국인 매표소로 가서 표를 산다. 입장료 250루피, 발전기금 50루피, 합계 300루피를 지불한다.

사람들로 붐비는 입구

성벽과 해자


 

 외국 관광객 매표구 안내문

 

아마 싱 게이트(Amar Singh Gate)를 통해 안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원숭이들이 반긴다. 이어 워터 게이트 앞에 선다. 마치 개선문인 양 당당하다. 위풍당당하고 화려한 문 앞에 관광객들이 몰려있다. 이문을 지나면 오른쪽 파란 잔디밭 너머로 아름다운 자한기르(Jahangir)궁이 보인다. 악바르 대제가 그의 부인 조다 바이(Johda Bai)를 위해 지은 궁이라고 한다.

워터 게이트

워터 게이트 상단 크로즈 업

자한기르(Jahangir) 궁

 

이어 아그라 성 배치도를 카메라에 담고, 자한기르 궁으로 향한다. 붉은 색 사암으로 된 궁전 외벽의 치장이 정교하다. 궁 안으로 들어서서 아래층을 대충 둘러보고 위층으로 오르자 멀리 타지마할이 어렴프시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다.

아그라 성 배치도

자한기르 궁 입구

외벽 크로즈 업


전망탑

진주사원(Moti Masjid)

2층 대리석홀

 

이어 카스 궁전(Khas Mahal)과 정원, 그리고 집회장, 나기나(Nagina) 사원 등을 둘러 본 후, 진주사원으로 향한다. 대리석으로 된 이 사원 위에서 멀리 타지마할을 보고, 옥좌, 대리석 분수 등을 카메라에 담고, 다시 자한기르 궁 앞뜰로 나와 돌로 만든 물탱크를 들여다 본 후, 11시 40분 경, 아그라 성을 뒤로한다.

카스 궁전

정원

집회장

옥좌

대리석 분수

 

아그라 성을 나와 릭샤로 타지마할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한 후, 1시 30분 경, 유명한 타지마할 구경에 나선다. 타지마할은 무갈제국의 제5대 황제인 샤 자한(Shah Jahan)이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Mumtas Mahal)의 죽음을 애도해서 세운 것으로 무갈 왕조의 모든 재력과 미술, 공예의 정수를 들인 것이다.

타지마할 가는 길에 본 인도가옥

타지마할 대표사진(펌)

 

타지마할은 페르시아, 터키, 인도 및 이슬람의 건축 양식이 잘 조합된 무굴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이다. 1983년 타지마할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인도에 위치한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7년 7월 7일, 신(新) 세계 7대 기적으로 선정되었다.

가까이 본 타지마할

 

표를 사기 위해 매표소 앞에 사람들이 무척 붐비고, 4~5개의 줄이 길게 늘어져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을 헤치며 외국인 전용매표구로 접근하는데, 인도 청년 한 사람이 앞장서서 길을 만들어 주어, 비교적 수월하게 표를 산다. 입장료 250루피에, 발전기금이 500루피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더니,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매표구.

 

표를 사들고 타지마할 입구에 이르니, 엄청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표를 살 때 도와주던 청년과 다른 몇 사람의 청년들이 다가오더니, 줄을 서서 기다리다보면 한 시간 이상은 걸릴 터이니, 600루피만 주면 우리일행 6명을 바로 들여보내 주겠다고 한다. 땡볕 속에서 1시간을 기다려야하는 것은 고역이다. 긴 실랑이 끝에 100루피로 합의를 하자, 자기들 따라 오라며, 입장을 기다리는 줄 앞으로 데리고 가더니, 강제로 사람들을 밀치고, 그 사이로 들어가라고 한다. 결국 돈을 받고, 새치기를 도와주는 꼴이다.

긴 행렬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다. 청년들에게 없던 일로 하자고 한 후, 줄 뒤로 선다. 생각보다 진행이 빠르다. 약 20분 쯤 기다려, 총을 든 경비병들이 있는 문을 통과하고, 검색을 받는다. 몸 검사는 물론이고, 배낭이건, 가방이건 기분 나쁠 정도로 샅샅이 뒤진다. 술, 라이터, 칼 모두가 안 된다며, 밖으로 나가, 라커룸에 맞기고 오라고 한다. 할 수 없이 일행들의 반입금지 품목을 모아 가지고, 라커룸으로 향한다. 밖에 있다는 라커룸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물어물어, 제법 멀리 떨어진 라커룸에 배낭을 맡기고 (20루피), 다시 몸수색을 받은 후, 겨우 입장하여, 2시 42분, 타지마할 주 출입문 앞에 선다. 아름다운 문이다.

입구가 가까워진다. - 남녀유별이다.

메인 게이트

 

문을 통과하자 타지마할이 홀연히 모습을 보인다. 매일 2만 2천명을 동원하고, 22년이 걸렸다는 건축물이다. 샤 자한은 최고의 건물을 만들기 위해, 페르시아, 이집트, 중국. 이탈리아에서 일류 예술가들을 초빙하고, 건물을 꾸미는데 쓰일 보석을 구하기 위해 상인들을 여러 곳에 파견하여 중국이나 이집트에서 비취를, 미얀마에서 루비를, 다마스커스에서 진주를 가져왔다고 한다.

타지마할 1

 

흰 대리석으로 지은 이 건물은 높이와 폭이 정확하게 55미터이며, 중앙 돔의 높이는 아치형 정문과 같은 33m라고 한다. 중앙 돔 주위에 4개의 작은 돔을 배치하고, 기단 위의 네 모서리에 4개의 첨탑을 세웠는데,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에는 첨탑이 바깥쪽으로 쓰러지게 설계 되었다고 한다. 중앙에 있는 긴 저수지는 천상의 저수지를 시각적으로 복제한 것이라고 한다. 정원에 꽃을 심고, 나무들은 시야를 방해하지 않게, 벽을 따라 심었다

타지마할 2

정원 1

정원 2

                   첨탑

저수지를 지나, 기단 위로 오른다. 한 바퀴 돔 건물 주위를 둘러보고, 돔 안으로 들어서기 위해 또 줄을 선다. 타지마할의 흰 대리석 벽은 정밀하고 얇게 자른 보석과 돌로 상감했다고 한다. 상감에 사용된 돌은 주로 옥, 유리, 노란호박, 홍옥수, 벽옥, 자수정, 마노, 혈석, 녹주석 등이다. 명암의 미묘한 효과는 다양한 층의 색깔이 있는 돌을 사용하여 나타냈으며 하나의 꽃은 37개 정도의 많은 상감조각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기단위에서 본 왼쪽의 모스크

오른쪽의 대칭 건물

저수지와 메인 게이트

기단에서 본 나루터

외벽 1

외벽 2


묘실 입장을 위한 줄 서기

 

묘실 안으로 들어선다. 두 개의 석관이 안치 되어 있다. 샤 자한과 왕비 뭄타즈 마할의 관이라고 한다. 내부의 벽면과 천정이 온통 보석과 돌로 상감되어 아름답다. 묘실을 둘러보고, 오른쪽 붉은 건물로 향한다. 외부에 못지않게 내부도 화려하다.

내부 벽

천정

석관

꽃문양

오른쪽 붉은 건물

내부 홀

천정

 

타지마할을 둘러보고 라커룸에서 배낭을 찾은 후, 강 건너기를 시도하다. 포기하지만, 젊은이들은 배를 타고 야무나 강 위에서 석양의 아름다운 타지마할을 다시 본다. 고맙게도 박선덕 양이 사진을 보내줘, 그 아름다운 모습을 이곳에 담는다.

강상의 젊은 일행

석양의 야무나 강

석양의 타지마할

강에 비친 타지마할

새떼

 

강을 건너지 않은 일행들은 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 타지마할 남문 쪽에 있는 저니스 프레이스(Joney;s Place)를 찾아 들어, 소고기 덮밥믈 주문한다. 좁은 식당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옆자리의 영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에 관심이 많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들이 주문한 소고기 덮밥이 나오자, 이름, 가격 등을 묻고는 자기들도 다음에 꼭 주문해 보겠다고 한다.

 

오늘은 한밤중에 아그라 포트(Agra Fort)로 이동하여, 자이뿌르(Jaipur) 행 기차를 탄다. 식사 후. 일행은 시장거리를 둘러보며, 젊은이들을 위해 신부님이 계란 한판, 노사장이 초코파이 두 상자를 산다. 초코파이는 우리나라 롯데와 인도 회사의 합작회사가 현지에서 만든 재품으로 6개 입, 한 상자의 가격이 45루피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싸 들고 택시에 분승하여 아그라 포트로 출발한다.

 

 

(2011. 4. 10.)

'인도 배낭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 푸쉬카르(Pushkar)  (0) 2012.12.17
14. 자이뿌르(Jaipur)  (0) 2012.12.17
12. 바라나시(Varanasi) (2)  (0) 2012.12.17
11. 바라나시(Varanasi) (1)  (0) 2012.12.17
10. 카주라호(Khajurao) (2)  (0) 2012.12.17
Posted by Urimahn
,

 

 

갠지스강의 일출을 기다리며, 선덕 양 사진

 

2011년 2월 25일(금)
인도 여행 11일째다. 갠지스 강 일출을 보기 위해 4시 30분에 기상한다. 다행히 엊저녁에 복용한 진해제와 트로치 덕에 기침도 그만하고, 목의 통증도 한결 가셨다. 5시 30분, 로비에 모인 일행들은 싸이클 릭샤에 분승하여 메인 가트로 향한다.

싸이클 릭샤로 메인 가트로 향하고

 

새벽이지만 메인 가트는 일출을 보기 위해 나온 관광객들로 붐빈다. 6시 우리 일행은 보트에 올라 강심으로 들어선다. 강에서 보는 가트 주변의 모습이 장관이다. 돈 많은 사람들의 사후를 대비한 저택, 호텔, 사원 등 거대한 건물들이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같이 버티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사위가 밝아진다. 아침인데도 소원을 담은 디아(촛불)가 강 위에 점점이 떠 있다.

새벽의 강변 풍경 1

새벽의 강변 풍경 2

새벽의 강변 풍경 3

 

일출시간이 가까워지며 여명으로 짙게 드리운 구름이 붉어진다. 구름상태를 보니, 오늘 일출구경은 어렵겠다. 하지만 새벽녘의 갠지스 강 풍경은 성스럽고 신비스럽다. 바람이 일고 새들이 난다. 소나기가 올 것 같은 분위기다. 사공이 급히 배를 저어 강가에 대고, 우리들이 사원으로 대피하자 소나기가 쏟아진다. 사공이 짜이를 운반해 온다. 흔히 갠지스 강 물로 끓인 짜이라는 소리도 있지만, 아마도 호사가들이 만든 이야기 일 것이다.

여명 1

여명 2

 

소나기가 지나가자, 호텔로 돌아와, 호텔식당에서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로 식사를 한다. 바라나시에는 관광객들이 많아, 다양한 먹거리가 제공되어 이제까지와는 달리 음식걱정은 안 해도 된다. 식사 후 잠시 쉰 후, 김 화백, 노 사장과 함께 힌두대학(Benares Hindu University)을 방문한다. 신부님은 조금 더 쉰 후 독립군이 되겠다고 하고, 정 사장과 김 사장은 아가씨들과 어울려 일찌감치 호텔을 나섰다고 한다.

 

힌두대학은 1917년 인도의 민족주의자 판디트 말라비야(Pandit Malaviya)가 인도 미술, 음악, 문화, 철학 그리고 산스크리트 중심의 교육 기관으로 설립했다고 한다. 350만 평에 달하는 대학구내에는 바라트 칼라 바반(Bharat Kala Bhavan) 박물관과 뉴 비슈와나트 사원이 있다.

설립자 판디트 말라비야 동상

 

9시 경, 호텔 앞에서 싸이클 릭샤 요금을 흥정한다. 지도로 볼 때 멀지 않은 곳이라고 여겨져, 세 사람이 80루피에 가기로 흥정을 한다. 건장한 체격의 릭샤 왈라지만 세 사람을 태우고 가기가 힘든 모양이다. 언덕길은 내려서 끌고 간다. 민망하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거의 30분이나 걸려, 대학구내에 있는 바라트 칼라 바반 박물관 앞에 도착한다. 80루피에 흥정을 했지만, 100루피를 주며, 수고했다고 손을 흔들어 주니,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우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힌두대학까지 타고 간 싸이클 릭샤

 

박물관 입구에 이르러 보니, 개장시간이 10시 30분이다.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하기에, 뉴 비슈와나트 사원을 먼저 방문하기로 하고, 너른 대학구내 도로를 따라 걷는다. 왼쪽으로 강의실, 오른쪽으로 교수실을 알리는 안내판들이 보인다. 20여분 정도 걸어, 뉴 비슈와나트 사원에 도착한다.

넓고 아름다운 대학구내


 

사원 입구

 

뉴 비슈와나트 사원은 힌두대학의 설립자 말라비야가 구상하고, 부유한 빌라(Birla) 패밀리가 건립했다고 한다. 말라비야는 계급이나 편견, 그리고 종교를 뛰어 넘어, 힌두교를 재편하고자 원한다. 따리서 이 사원은 다른 많은 사원들과 달리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열려 있고, 입장료도 없다.

사원 1

사원 2

사원 3

사원 안에는 쉬바신의 링감이 있고 벽에는 힌두경전이 새겨져있다. 이 사원은 아우랑제브가 파괴한 비슈와나트 사원을 재현했다고 한다.

사원 입구 왼쪽 조각상

사원 입구 오른쪽조각상

벽에 새겨진 경전

사원내부

부라마, 쉬바, 인드라의 3면상

조각상 1

조각상 2

정원

 

뉴 비슈와나트 사원을 둘러보고,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온다. 바라트 카라 바반 박물관은 1920년에 설립된 흔치 않은 대학박물관으로 방대한 량의 그림, 세밀화 그리고 힌두교와 불교의 조각들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작은 배낭을 락카에 보관하고 입장료(100루피)와 사진 촬영권(50루피)을 사서 입장한다. 실내가 어둡다. 장내 요원에게 불을 켜 달라고 하자, 자기는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럼 책임자를 불러 달랬더니, 비로소 전시장 안에 불이 밝혀진다.

입장하면서 만난 조각상

한발, 한 손으로 고바다나 산( Mount Govardhana)를 들고 있는 크리슈나(Krishna)

세밀화 1

세밀화 2

세밀화 3

 

불이 우리들을 따라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한다. 우리가 전시물을 보는 곳은 불이 켜지고, 지나가면 꺼진다. 신경이 쓰여 집중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전력이 귀하다 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 아래층을 대강 둘러보고 2층으로 오른다. 조각실이다. 채광으로 1층보다는 낫지만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대강 둘러보고, 텍스타일 실을 거쳐 1층으로 내려온다.

2층의 코끼리 조각

                  3층의 텍스타일

뒷모습 조각


 

신상

 

안내문을 보고 기대를 하고 갔었는데 적지 아니 실망한다. 시설이나 전시상태를 보면 기준미달의 박물관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들을 많을 소장하고 있으면 뭐하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이다. 락샤를 타고 꼴까따로 되돌라 온다. 락샤가 힌두대학 정문을 지날 무렵, 가회동 아주머니가 대학으로 들어는 모습이 보인다. 꼴까따에서 호텔이 멀다고 하더니, 이 근방인 모양이다.

대학문을 나서고

꼴까따 바자르로 돌아와 케샤리 루치카 반잔(Keshari Ruchikar Byanjan)이라는 긴 이름의 레스토랑에서 딸리(Thali)를 주문한다. 140루피. 식당의 인테리어도 수준 급이고, 손님도 인도인들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다. 딸리의 양도 많고, 음식 맛도 좋다. 북인도의 정통 딸리라고 한다. 옆 자리의 서양 여자들은 1인분을 주문하여 둘이 함께 먹고 있다. 그 정도로 양이 많다.

밤에 본 반잔 레스토랑

딸리

 

식사를 마치고, 꼴까따 시장통을 둘러 둘러본다. 더럽고 복잡하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거리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상점 안으로 뛰어 들어비를 피한다. 그 복잡하던 거리가 순식간에 텅 비고, 싸이클 릭샤 한 대가 길가에서 비를 맞고 있다.

꼴까따 바자르 1

꼴까따 바자르 2

꼴까따 바자르 3

꼴까따 바자르 4

빗속의 싸이클 릭샤

 

소나기가 지난 후 잠시 더 시장 통을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다. 코후데잉 제재의 기침약이 효과가 좋아 기침도 뜸해 졌지만, 무리를 해서 감기라도 도지면 곤란하다. 마침 신부님도 돌아와 쉬고 있다. 저녁 무렵, 환전도 할 겸, 저녁식사를 하러 다시 여행자 거리로 몰려 나간다. 환전을 하고 (1불=44.6 루피) 식당 모나리자에 들러 돈까스를 주문한다. 60루피. 하지만 나온 것을 보니, 스테이크 소스를 얹은 치킨까스다. 김치까지 서브를 한다.

모나리자 레스토랑

 

좁은 식당 안에 외국인들이 가득하다. 이태리 사람, 젊은 일본여자들, 영국인 부부, 마약이라도 했는지 눈동자가 풀린 히피풍의 청년이 비실비실 웃고 있고, 68세의 모나리자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웃으며 분위기를 살린다. 벽에는 배우 김혜자 씨의 사진이 걸려 있다. 양배추를 고춧가루에 버무려 익힌 김치지만, 맛이 그럴듯하다. 럼주를 반주로 하니, 치킨까스 맛도 일품이다.

모나리자 할아버지

모나리자 식당의 김혜자 씨

식사를 마치고, 채소시장을 지나다, 40루피를 주고(우리 돈 약 1,000원) 빠빠야를 산다. 빠빠야를 판 상인은 친절하게도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먹으면 좋을 거라고 귀띔을 해준다. 여전히 붐비는 꼴까따 바자르를 지나 호텔로 돌아와 빠빠야 맛을 본다. 잘 익은 빠빠야 맛이 그만이다.

저녁의 꼴까따

 

2011년 2월 26일(토)
인도여행 12일, 그리고 바나라시에서 삼일 째를 맞는 날이다. 오늘은 오후 5시 20분 발 기차로 아그라(Agra)로 이동하기 위해, 호텔에서 3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한다. 아그라는 따지마할로 유명한 곳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오후에 호텔에서 결혼식이 있다며, 그 준비를 위해, 9시 30분에 체크 아웃을 해 달라고 한다. 대신 아침은 호텔 측에서 맥주를 곁들여, 8시에 룸서비스로 제공하겠다고 한다.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다. 빈부격차가 극심한 인도에서는 부자들이 결혼식을 할 때, 호텔을 통째로 빌려, 하객을 맞이하기 때문에 비용이 우리 돈으로 1~2억 정도 들고, 그 비용은 모두 신부 측 부담이라고 한다.

결혼식에 쓸 꽃장식 준비

덕분에 인도에서 룸서비스를 다 받아본다. 짐을 호텔에 맡기고 바라나시 중심가 구경에 나선다. 당초에는 석가모니가 최초로 설법을 했다는 사르나시를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정 사장과 김 사장이 어제 들렀던 상점가가 무척 좋았다며 부득불 안내를 하겠다는 꼬임에 넘어간 것이다. 사이클 릭샤 2대에 분 승하여 6명이 함께 출발하여, 10시가 채 못 되어 AP 씨네 몰에 도착한다. 하지만, 씨네 몰의 개장시간이 10시 30분이고, 상점에 따라서는 더 늦게 문을 여는 곳도 있다고 한다.

모던한 AP 쇼핑 몰

 

쇼핑 몰이 문을 열 때까지 햄버거 집에 들러 햄버거나 먹자는 정 사장의 제안에 따라 햄버거 집으로 들어선다. 햄버거 가격이 콜라와 프랜치 플라이를 포함하여 대강 100루피, 4,500원 정도이니, 우리나라보다는 싼 편이지만, 인도의 소득수준에 비하면 무척 비싼 가격이다. 예를 들어 싸이클 릭샤 왈라의 하루 벌이가 약 200루피라고 한다. 하루 종일 고생해서 햄버거 두 개 값을 번다는 이야기이다. 오늘 우리들의 햄버거 값은 정 사장이 쏜다.

 

이윽고 쇼핑 몰이 개장되고, 점포들을 둘러본다. 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다 보인다. 가격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좀 싼 편이다. 대강 대강 둘러보고, 씨이클 릭샤로 호텔로 되돌아와 일행들과 헤어져 혼자서 비슈와나트 사원을 보러 나선다.

 

쉬바 신이 이 사원에서 살았다고 믿을 정도로 힌두교도들에게는 중요한 사원이다. 하지만 무갈제국의 아우랑제브(Aurangzeb)는 비슈와나트 사원을 헐어 버리고, 그 자리에 모스크를 짓는다. 그 후 힌두교도들의 염원으로 비슈와나트 사원이 모스크 옆에 재건되고, 1776년 아할야 바이(Ahalya Bai)가 각각의 탑끝을 800kg 에 달하는 금박으로 장식함으로써, 금사원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미로와 같은 골목길을 이리 돌고 저리 돌아 두 곳의 출입구를 찾아가 보지만, 힌두교도 외에는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입구에는 총을 멘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하고, 길게 늘어선 입장객들의 줄에 질려, 엄중한 몸수색 끝에, 비 힌두교도들에게 허용한다는 사원 뜰까지의 입장을 포기하고, 가트로 되돌아 나와 갠지스강변을 어슬렁거리다. 호텔로 돌아온다.

다시 돌아보는 갠지스강

쉬바신이 그려진 기둥

3시 30분, 호텔에서 오토 릭샤에 분승한 일행들은 4시경 바라나시 역에 도착하여, 5시 20분, 정시에 도착한 기차에 오른다. 기차는 내일 아침 8시경에 아그라에 도착할 예정이다.

바라나시 역

바라나시 역 대합실

역 대합실에 걸린 대형 상품광고, 모델만 잘랐다.

(2011. 4. 14.)

* 우리 팀에서는 박 선덕 양이 유일하게 사르나시를 다녀왔다. 사르나시를 방문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나를 보고 고맙게도 귀국 후 사르나시에 가서 찍은 사진 모두를 보내 주었다. 대표적인 사진 몇 매를 실어 여러분들과 함께 즐기고자 한다. 박 선덕 양 고맙습니다.


 


 


 


 


 



 



 


 

'인도 배낭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 자이뿌르(Jaipur)  (0) 2012.12.17
13. 아그라(Agra)  (0) 2012.12.17
11. 바라나시(Varanasi) (1)  (0) 2012.12.17
10. 카주라호(Khajurao) (2)  (0) 2012.12.17
9. 카주라호(Khajurao) (1)  (0) 2012.12.17
Posted by Urimahn
,

 

 

 

화장장이 있는 미니까르니까 (Manikarnika) 가트

 

 2011년 2월 24일(목)
인도여행 10일째 되는 날이다. 마호바(Mahoba) 역에서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기차에 올라, 바라나시로 향한다. 대합실도 없는 마호바역 한데 승강장에서 1시간이 넘게 기다리는 동안 추웠던 모양이다. 기침이 나고 목이 따겁다. 열과 근육통 증세가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진해제, 트로치를 준비해 오지 않아, 타이레놀 한 알을 복용하고, 손수건을 목에 둘러, 목을 따듯하게 한다.

승강장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더니, 운 나쁘게도 기차에 배정받은 자리가 입구에 있는 맨 아래 칸이다. 입구 맨 아래 칸이다 보니, 입석인 승객들이 침대 가에 걸터앉아, 이야기하는 소리가 잠을 방해하고, 바퀴의 진동이 여과 없이 그대로 침상까지 전달되어 몸이 편하지 않다. 거기다 기침마저 계속 이어지니, 몸은 피곤해도, 잠 한잠 이루지 못하고 밤을 꼴딱 새운다.

차창 밖 풍경

인도인 가족과 어울린 선덕 양

큰 애가 잘 생겼다. 사진을 보내주면 좋겠는데.

 

기차는 아침 11시 20분 경, 바라나시 역에 도착한다. 일행은 복잡한 역사를 빠져나와 택시에 분승하여 호텔로 향한다. 택시는 30분 정도를 달려, 꼴까따(Kolkata) 시장 통에 있는 호텔 오케이 인터내셔날(Hotel OK International)에 우리들을 내려준다. 방을 배정하고 나서, 길잡이는 다른 때와는 달리 30분 후에 모두 로비에 집합하라고 한다.

바라나시 도착

바라나시 역사

오케이 인터내셔날 호텔

방 배정을 기다리는 아가씨들

 

앞으로 사흘 동안 이 꼴까따 시장 통과 가트(Ghat) 그리고 여행자 골목을 수도 없이 돌아 다녀야 할 터인데, 길거리가 워낙 복잡하고, 미로 같은 골목길이 많아 길잡이가 직접 주요지점을 알려주기 위해, 호텔 체크인을 마치자, 바로 재소집을 한 것이다. 길잡이는 고돌리아 사거리, 여행자 골목, 메인 가트, 화장장 등을 안내한 후, 오늘 저녁에는 보트를 타고, 강 위에서 갠지스 여신에게 바치는 힌두교의 제사의식인 ‘아르띠 뿌자(불의 의식)’를 볼 예정이니, 오후 5시 30분 까지 가트로 모이라고 지시한다.

꼴까따 시장 통

고돌리아 사거리

 

인도인들의 종교분포를 보면 인구의 80%는 힌두교도들이다. 무슬렘이 10%, 시크교와 기독교를 합쳐 5%, 그리고 지안교, 불교, 배화교 등이 나머지 5%를 나눈다. 현지인들이 강가(Ganga)라고 부르는 갠지스 강은 인도인들에는 성스러운 강이다.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면 모든 죄가 씻긴다고 믿고, 죽어서 화장을 한 재를 갠지스 강에 뿌리면 해탈하여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갠지스 강가에는 강으로 내려가는 계단길인 가트가 100여 군데나 있고, 해마다 100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갠지스 강을 찾는다고 한다.

메인 가트 1

메인 가트 2

갠지스 강 1

갠지스 강 2

갠지스 강 3

갠지스 강 4

 

길잡이는 점심식사를 하자며 일행을 “라가 까페”로 안내한다. 식당 안은 한국인 여행자들로 붐빈다. 벽에 붙은 ‘라가 추천 바라나시 1일 투어’ 한글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쌈밥,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 한국음식으로 식사를 한 후, 미로 같은 골목길을 지나, 여행자거리로 향한다.

라가 까페

바라나시 1일 투어 안내문

 

여행자거리는 2사람이 빗겨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고 지저분한 골목이다. 하지만 값싸고 음식 맛이 좋은 식당, 옷 가게, 기념품점, 찻집, 환전소, 음악 교습소 등 여행객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이 갖춰진 거리이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붐비는 곳이라 마치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이곳에서 지난번 카주라호 민속예술 공연장에서 만났던 가회동 아주머니를 다시 만난다.

여행자 거리

스파이시 레스토랑

음악 교습소

 

역시 배낭여행으로 인도에 왔는데, 일행이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이라 소외감이 느껴진다는 50대 아주머니다. 가회동은 고향 같은 곳이다. 종로구 와룡동에서 태어나고, 원서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재동국민학교를 다녔다. 가회동은 재동에서 삼청공원으로 오르는 길가에 있어, 삼청공원을 오르내리며 수도 없이 지나다니던 동네다. 고향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 함께 여행자 거리를 기웃거리며, 찻집에 들러 기침에 좋은 진한 생강차를 주문해 마시기도 한다. 오늘 저녁 우리 팀에 합류하여 배를 타고, 아르디 뿌짜 행사를 함께 보기로 한다.

찻집에서 진한 생강차로 기침을 달래고

 

가회동 아주머니와 함께, 5시 20분 경, 메인 가트로 온다. 아주머니 일행들은 보인다는데, 우리 일행은 찾을 수가 없다. 약속시간인 5시 30분이 지나는데도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행사준비를 하는 것을 보면 아르디 뿌짜 행사는 메인 가트에서 벌어지는 것이 틀림이 없는데, 이상하다. 배를 탄다는 6시가 지나도 마찬가지다. 걱정하던 가회동 아주머니는 할 수 없이 자기 팀으로 합류하고, 일행 찾기를 포기한 나는 식당을 찾는다. 식사를 하면서 구경을 하겠다는 생각이지만, 찻집은 있어도 식당은 없다. 할 수 없이 사람들이 점점 붐비는 가트 계단에 앉아 아르디 뿌짜 행사를 구경한다.

구경꾼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메인 가트

메인 가트에 모여든 인파와 강 위의 보트들

행사장 무대

 

북소리, 종소리가 요란하고 행사장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한동안 분위기에 휩싸여 구경을 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다. 행사가 끝나고 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쏟아져 나오면, 그렇잖아도 복잡한 꼴까따 바자르가 아수라장이 될 것이 뻔하다. 슬그머니 일어나 호텔로 향한다. 귀로에 기침약과 트로치인 빅스를 구입한다.

 

호텔로 돌아와 식당에서 맥주와 치킨 볶음밥을 주문하고, 식사 후 생강차를 진하게 타 달라고 부탁한다. 종업원이 포트에 넉넉하게 담아준 뜨거운 생강차를 마시고 있는데 식당 문이 열리며 김 화백과 노 사장이 모습을 보인다, 메인 가트 옆에 있는 가트에서 일행들이 기다렸으나 나타나지 않아 걱정을 했다고 한다. 멍청하게 약속장소를 잘 못 알아 가회동 아주머니와 일행들에게 폐를 끼쳤다. 미안하다.

행사 시작

 

바라나시는 오래된 도시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바라나시를, “역사보다, 전통보다 오래된 도시.”라고 불렀다. 기원전 3000년경에 인더스 강 유역에 문다족, 드라비다족 등 일찍부터 인도대륙에 살아온 여러 종족들에 의해 이룩된 인더스 문명은 기원 전 16세기에 코카서스 지방에서 남하한 아리안 족에 지배를 받는다.

 

아리안 족들은 계속 동진하여 기원전 11에서 9세기 무렵에는 갠지즈 강 상류지방으로 이주하고, 기원전 5세기 무렵에는 갠지스 강 중류지방에 정착하여 바라나시를 건설하고, 힌두문화의 꽃을 피운다. 이후 바라나시는 인도 종교, 문화의 수도가 된다.

 

바라나시의 볼거리는 갠지스 강변의 가트, 꼴까따 바자르, 여행자거리, 비슈와나트 사원(Vishwanath Temple), 바라나시 힌두대학(Benares Hindu University), 석가모니의 최초 설법지인 사르나트 등이 손꼽히지만, 일정에 구애를 받지 않는 여행자들은 인도의 전통음악을 배우고, 며칠씩 갠지스강변에서 묵으며 인도 속의 인도를 피부로 느껴보려고 한다. 하지만 일정이 꽉 짜인 우리들은 그런 여유가 없는 것이 아쉽다.

 

 

(2011. 4. 6.)

 

 

선덕 at 04/07/2011 05:27 pm comment

선생님~ 저 선덕입니다.여행기를 다시 보니 기록이 새록새록 하네요~ 다음편도 기대됩니다.^^

우림 at 04/07/2011 10:18 pm reply

선덕 양이 다녀 가셨네. 무척 반갑군요. 4월 26일에 손자 녀석 보러 미국엘 가야하기 때문에 그 전에 마치려고 부지런히 쓰고 있어요.

'인도 배낭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 아그라(Agra)  (0) 2012.12.17
12. 바라나시(Varanasi) (2)  (0) 2012.12.17
10. 카주라호(Khajurao) (2)  (0) 2012.12.17
9. 카주라호(Khajurao) (1)  (0) 2012.12.17
8. 아잔타(Ajanta)  (0) 2012.12.17
Posted by Urimahn
,

 

 

야간 조명 쇼

 

2011년 2월 23일(수)

인도여행 9일째 되는 날이다. 아침식사를 마친 일행은 덥기 전에 자전거를 이용하여, 먼저 동부 사원군을 참관하고, 그 후 카주라호 마을을 구경하기로 한다. 인도소년 찰리가 안내를 한다. 카주라호에서는 어느 상점에서나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나는 숏 다리인데 자전거는 모두 크고 높다. 게다가 내가 자전거를 타본 지가 언젠가? 까마득하다. 정 사장의 도움으로 겨우 적당한 것을 골라, 시승을 해보니, 그럭저럭 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한 5분 쯤 지나니, 제법 여유가 생겨, 자전거 타는 재미도 느껴진다. 싱그러운 바람결, 좌우로 스쳐 지나가는 풍광들....

 

9시가 조금 넘어, 바마나(Vamana) 사원에 도착한다. 동부 힌두사원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이 사원은 1050년~1075년 사이에 지어져, 비슈누 신에게 헌정됐다고 한다. 비슈누는 이사원에서는 5번째 아비타인 난장이(Vamana) 모습으로 나타난다. 벽면이나 기단을 야한 미투나로 장식한 것은 서부 사원과 같다. 바마나 사원을 나와 규모가 작은 자바리(Javari) 사원을 둘러 본 후 카주라호 마을을 방문한다.

바마나 사원

사원 입구

비슈누의 5번째 아비타, 바마나(난장이)

코끼리 추녀 장식

미투나 1

미투나 2

바마나 사원의 정원

자바리 사원

자바리 사원에서 본 카주라호 마을

 

우리들을 안내하는 찰리의 설명에 의하면 카주라호 마을에는 브라만(성직자, 학자), 크샤트리아(왕족, 귀족, 무사), 바이샤(농민, 상인, 연예인), 수드라(잡역부, 하인)와 파리야(Paraiyar-불가촉천민)가 구획을 나누어 살고 있다고 한다. 찰리네 집도 이 마을에 있고, 자기네는 크샤트리아에 속하기 때문에 불가촉천민이 사는 곳에 들어가면 안 되지만, 여러분들이 원 하시니 할 수없이 불가촉천민들이 사근 곳을 안내 하겠다며, 자기 어머니에게는 절대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한다.

마을 입구

땔감

마을에서 만나 소녀

환영(산크리스트어)

신혼집

카주라호 마을주민과 함께

 

마을 안이 조용하고 무척 깨끗하다.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 한마을에서 구획을 정해 살다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그럴 때에는 각 계급대표들이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 해결책을 찾는다고 한다. 불가촉천민들이 사는 곳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고, 사람들도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최초에 카스트제도를 만들 때에는 분업에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즉 성직자, 무사, 경찰관 등 각각의 전문적인 일들을 나누어 맡아서 하게끔 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신분을 가르는 멍에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각 계급대표가 모이는 느티나무

불가촉천민 구역

불가촉천민

 

잠시 학교도 방문한다. 아라비아 숫자와 0을 발견한 똑똑한 조상을 둔 아이들이 책상도 없는 어두컴컴한 교실에서 2교대로 공부를 한다고 한다. 비록 교육환경은 열악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밝고, 눈동자가 초롱초롱하다. 김 화백이 대표로, 아이들에게 공책이나 사주라고, 많지 않은 돈을 교사에 건네주고, 찰리네 집으로 향한다.

학교 입구

교실

학생들

 

찰리는 16살 난 인도소년이다. 영리하고. 당차고, 어른스럽다. 낮에는 호텔부근의 형 사무실에서 형의 일을 도와주고, 밤에는 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자기 동네에 왔으니, 집에 들러 짜이라도 한 잔씩 하고 가라고 초대를 한다. 찰리의 집으로 들어선다. 찰리 어머니가 우리들에게 주려고 난(Naan)을 굽고 있다. 우리들은 옥상으로 올라가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주변 풍광을 즐긴다.

우리를 안내한 찰리, 16살 소년이다. 적극적이고 영특하다.

찰리 어머니는 난을 굽고

 

찰리는 오늘 우리들을 통해서 1,000루피 이상의 소득을 올린다. 1,000루피면 우리 돈으로 25,000원 정도다. 우리 돈으로 보면 큰돈이 아니지만, 인도에서는 1,000루피면 적은 돈이 아니다. 인도의 일인당 평균소득이 1,000불 정도이니, 인도인의 한 달 평균소득은 약 3,700 루피 정도다. 찰리가 어린 나이에 하루에 1,000루피 이상을 벌었으니, 얼마나 당찬 녀석인가? 차 대접을 받고 우리들은 다시 자전거에 올라, 조금 떨어진 지안교 사원으로 향한다.

 

11시가 조금 넘어 지안교 사원군에 도착하여, 샨띠나뜨(Shantinath) 사원부터 둘러본다. 안내문에 의하면 약 100년 전에 세위 진 이 사원은 카주라호에서 가장 젊은 사원이라고 한다. 사원 안에 4,5m에 달하는 티르탕기르((Jain Tirthankar)상이 유명하고, 여타 지안의 신과 여신상들을 볼 수가 있다.

회랑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여인들

샨띠나뜨 사원 1

샨띠나뜨 사원 2

티르탕기르 상

남신 여신 1

남신 여신 2

 

 

이어 빠르스바나뜨(Parsvanath)사원과 아디나뜨(Adinath)사원을 둘러본다. 빠르스바나뜨는 10세기 중순경에 세워진 사원으로 규모가 가장 크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이 사원에 조각된 브라마, 비슈누, 까마 등은 모두 힌두교의 신들이다. 왜 힌두교의 신들이 지안교 사원에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힌두교의 신들이 지안교로 귀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빠르스바나뜨 사원 1

빠르스바나뜨 사원 2

미투나 1

미투나 2

아니나뜨 사원

 

사원들을 둘러보고 나오다. 지안박물관을 지나지만 그냥 통과 하고, 잠시 기념품점들을 둘러 보다, 우연히 마하트마 간디와 많이 닮은 노인을 만나 카메라에 담고, 호텔로 향한다.

지안박물관

간디 옹(?)

 

호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점심식사를 하고 어제 초대를 받았던 인도가정을 방문하기로 한다. DP점에 들러, 어제 찍은 사진 중 1매를 현상하여(300루피) 방문 선물로 들고, 김 화백, 구아연 양, 김지혜 양과 함께 마을로 향한다. 다행이 부인과 둘째 따님이 집에 있다가 뜻밖의 손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부인은 이웃집에 간 큰 따님을 전화로 부르고, 둘째 따님은 차와 과자를 내온다. 이윽고 큰 따님이 반갑게 뛰어온다.

세 모녀

어머니가 김 화백의 선 그리스를 뺏어 쓰고 포즈를 취한다.

 

작은 마당에 부엌과 침실 그리고 화장실이 전부다. 작은 마당에는 꽃을 심고, 강이지가 한 마리 매어있다. 작고 검소한 집이지만 집 안팎에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다. 어머니가 침실로 들어가더니, 예쁜 팔찌를 들고 나와, 아연 양과 지혜 양의 손목에 끼워준다, 지혜 양의 손이 커, 잘 들어가지 않자, 수돗가로 데리고 가서 비누칠을 하여 끼워준다. 젊은 아가씨들이 딸과 같이 느껴졌던 모양이다. 남편은 문제가 있어 따로 살고, 아드님이 직장에 다니는 데, 한국과 관련이 있는 회사라 몇 차례 한국에 다녀 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식구들이 모두 한국을 좋아한다고 한다. 살림이 넉넉해 보이지는 않지만 밝고 따뜻한 가정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길거리에 버려진 개들은 많이 보앗지만, 애완용 강아지는 처음이다. 문득 짱아가 그리워진다.

 

한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진다. 귀국하여 초대를 해주어 고마웠다는 인사와 함께 사진을 보냈지만 답신이 없다. 식사 후, 민속무용을 관람한다. (100루피) 격렬한 타악기 리듬에 맞추어 격동적인 춤사위가 이어진다. 덩더꿍~, 덩더꿍~ 우리가락과 비슷한 장단도 들려 더욱 더 흥겹다. 6 마당으로 꾸며진 무용이 약 1시간 동안 계속된다. 간간이 아크로바트까지 가미되어 더욱 흥을 돋운다.

민속무용 1

민속무용 2

민속무용 3

민속무용 4

민속무용 5

 

연이어 서부사원 군의 야간 쇼를 참관한다. (200루피) 시원한 정원의자에 앉아 별들이 총총한 하늘을 본다. 격렬한 음악에 휘둘리다, 갑자기 이처럼 정밀한 곳에 앉아 있으려니 완전히 별세계로 들어선 느낌이다. 마치 음악회에 참석했다 바로 미술관으로 이동한 것 같은 기분이다. 이윽고 사원 하나하나에 조명이 비쳐지고, 사원에 대한 설명이, 인도어와 영어로 번갈라 가며 담담하게 이어진다. 내레이터는 인도의 유명한 배우라고 한다. 환상적인 밤이다.

야간 쇼 1

야간 쇼 2

 

호텔로 돌아와 짐을 싸고, 찦차로 마호바(Mahoba) 역으로 이동하여 바라나시(Varanasi) 행 기차를 기다린다. 12시가 다된 시각, 플래트 홈에 배낭을 모아 놓고, 편하게 땅바닥에 눕는다. 이제 우리대원들도 인도생활에 점차 적응을 하는 모양이다.

마호바 역

기차를 기다리는 대원들

 

기차는 다음 날 1시가 조금 지나 도착한다.

 

 

(2011. 4. 2.)

'인도 배낭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 바라나시(Varanasi) (2)  (0) 2012.12.17
11. 바라나시(Varanasi) (1)  (0) 2012.12.17
9. 카주라호(Khajurao) (1)  (0) 2012.12.17
8. 아잔타(Ajanta)  (0) 2012.12.17
7. 따울라따바드 요새와 엘로라 석굴사원(2)  (0) 2012.12.17
Posted by Urimahn
,
 

동남쪽에서 바라본 칸다리야 사원

 

2011년 2월 22일(화)
인도여행 8일째 되는 날이다. 엊저녁부터 기차로, 찦차로 먼 거리를 이동하여 오후 2시경, 카주라호에 도착했지만, 점심을 먹고, 와인 숍에 들러 럼주를 산 것 이외는, 안마를 받는 등 무리를 하지 않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다. 카주라호는 아그라, 바라나시와 함께 북인도의 트라이 앵글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관광지다. 그래서인지 한국식당도 어제 들렀던 고향식당 외에 전라도 밥집, 총각식당 등 여러 곳이 있다.

전라도 밥집 안내문

 

오늘 아침에는 전라도 밥집을 찾는다. 8시에 문을 연다는 소리를 듣고, 8시 15분경에 식당에 들어서니, 이미 선객들이 와 있다. 한국에서 온 아줌마들이다. 델리에서 출발하여, 아그라, 바라나시를 거쳐, 카주라호에 왔다고 한다. 25일 일정으로 네팔까지 간다는 이분들의 옷차림은 두툼한 방한복이다. 일행은 28명, 대부분이 중년 부인들이라고 한다. 반갑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전라도 밥집에서 만난 부인들

 

카주라호는 면적이 21평방 킬로미터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이 일대는 14세기까지 찬델리 왕조(Chandella Dynasty)의 종교적인 수도로, 9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 이곳에 무려 85개의 사원을 건설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이슬람의 침입으로 대부분이 파괴되고, 현재 남아 있는 사원은 22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카주라호의 사원이 유명한 것은 사원 벽면을 온통 에로틱한 조각으로 치장했기 때문이다. 왜 벽면을 이처럼 에로틱하게 조각했을까? 이런 야한 조각을 보고도 흔들림이 없도록 수련하라는 의미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고대 인도사람들은 인간은 남성과 여성, 그 자체만으로는 불완전한 것이고, 남녀가 짝을 찾아 섹스로 합일한 상태가 가장 완전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설 등, 많은 설들이 분분하여, 아직도 정설이 없다고 한다.

락쉬마나 사원의 미투나

칸다리야 사원의 미투나

비슈와나트 사원의 미투나

 

아침식사를 마치고 가까운 서부 사원군부터 구경한다. 카주라호에서 볼거리는 서부 사원군, 동부 사원군 및 남부 사원군 등의 사원군과 카주라호 마을, 민속예술 박물관, 그리고 고고학 박물관 등이 있고, 북쪽으로 약 18Km 떨어진 곳에 르네폭포가 유명하지만, 미투나(Mithuna-性愛像)가 가장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곳이 서부 사원군이다. 입장료 250루피를 지불하고 사원으로 들어선다.

카주라호 지도

매표소 안내

 

파란 잔디 뒤로 보이는 사원들이 아름답다. 조금 더 들어서니 이 사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임을 알리는 돌 표지가 보인다. 가장 왼쪽으로부터 사원들을 둘러본다. 첫 번째 가까이 만나는 것이 락쉬미 사원(Lakshmi Temple)이다. 부의 여신인 락쉬미에게 바쳐진 이 사원은 다른 사원에 비해 규모가 작고 단순한 것이 오히려 시선을 끈다.

사원 1

사원 2

사원 3

유네스코 세계유산

락쉬미 사원

 

다음은 바라하(Varaha) 사원으로 간다. 안내문의 내용을 요약한다. “높은 대좌 위에 세워진 바라하 사원은 단순하고 수수하다. <중략> 사원 안에는 비슈누 신의 세 번째 아바타(Avatar)인 거대한 바라하(멧돼지)가 봉헌돼 있다.”

바라하 사원

비슈누 신의 세 번 째 아바타, 바라하

 

다음으로 찾아 간곳이 락쉬마나 사원(Lakshmana Temple)이다. 비슈누 신에게 봉헌된 사원으로 서부 사원군 중에서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곳이라고 한다. 칸다리야 마하데브, 그리고 비슈와나트 사원과 함께 서부 사원군의 3대사원으로 손꼽힌다. 사원을 시계 방향으로 돌며, 벽면과 기단 부분의 미투나들을 둘러보고 사원 안으로 들어선다.

락쉬마나 사원

락쉬미나 사원 미투나 1

미투나 2

미투나 3

미투나 4

미투나 5

미투나 6

신전내부 1

신전내부 2

 

락쉬마나 사원을 둘러보다, 혼자서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아가씨를 만난다. 이대 국문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전형적인 한국 여인상의 단말머리 소녀다. 마침 점심때가 가까워, 정 사장이 준비한 삶은 계란과 쿠키, 그리고 바나나 등을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버지가 극좌파인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얼굴에 그늘이 느껴진다. 8개월 예정으로 배낭여행에 나섰다고 한다. 마음 붙일 곳이 없었나? "FONT-SIZE:12pt;FONT-FAMILY:굴림;">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 무거워진 마음 떨치고, 칸다리야 마하데브 사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칸다라야 사원은 1025년~1050년에 걸쳐 건립 된 건물로 카주라호의 핵심 사원이다. 사원 높이가 31m에 달하고, 사원 내부에 226개, 외부에 646개의 조각상이 있다고 한다. 칸다리야 사원과 데비 쟈가담바 사원 가운데에 있는 작은 마데바 사원은 사자상이 유명하다.

칸다리야 사원과 마하데바(Mahadeva) 사원(중),그리고 데비 쟈가담바 사원(우)

칸다리야 사원의 미투나

미하데바 사원과 데비 쟈가담바 사원

미하데바 사원의 사자상

데비 쟈가담바 사원의 첨탑

깔리 여신

 

보수 중인 칫트라굽타(Chitragupta) 사원을 둘러보고, 빠르바띠(Parvati)사원을 거쳐, 비슈와나트 사원과 난디 사원에 이른다. 비슈와나트는 쉬바신의 다른 이름이고, 난디(Nandi)는 쉬바신이 타고 다니는 소다.

칫트라굽타 사원

칫트라굽타 사원의 미투나

빠르빠띠 사원

비슈와나트사원과 난디 사원 입구.

비슈와나트사원

비슈와나트사원의 미투나 1

미투나 2

미투나 3

미투나 4.

난디 사원

난디

사원 둘러보기를 마치고, 꽃들이 아름다운 정원을 걷고, 파란 잔디에 앉아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대단한 사원군이다. 과연 힌두사원의 보고(寶庫)다.

꽃 1

꽃 2

꽃 3

꽃 4

꽃 5

정원 1

정원 2

정원 3

1시가 넘어 서부 사원군 참배를 마치고, 이태리 식당에서 피자와 스파게티로 점심식사를 한다.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해도 한낮은 뜨겁다. 점심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다. 자인호텔은 자인교 신자가 운영하는 호텔로 자인사원 길가에 있어 교통이 편해 좋다. 묵은 빨래를 해서 호텔 옥상에 널어놓고, 전라도 밥집 옆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을 들러본다. 입장료 5루피, 하지만 서부 사원군 입장권이 있으면 무료다. 박물관에는 파괴된 사원에서 나온 신상들을 모아 전시해 놓았다. 사진 촬영은 불가다. 신상들을 가까이 볼 수 있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특색은 없다.

 고고학 박물관 입구

 

정 사장과 김 사장은 2,000루피에 택시를 대절하여, ‘히말라야 오라버니’를 연호하는 아가씨들과 함께 16Km 떨어진 라네폭포 구경을 하러 가고, 신부님은 론리 프라넷을 들고 혼자서 동부 사원군 탐방에 나서다 보니, 나 혼자 떨어져서, 이번에는 조금 떨어진 민속예술 박물관을 찾아 나선다. 우리말로, “어디가요, 볼펜 있어요?” 라며 꼬마들이 졸졸 따라 붙는다. 

불루 스카이 레스토랑의 이색적인 모습

박물관 입구까지 따라온 꼬마들

 

박물관에 도착하여 입장료 50루피를 내고 안으로 들어서니, 뜻 밖에도 김 화백이 노 사장, 그리고 선덕양과 함께 먼저 와 있다. 김 화백은 단순하고, 소박한 그림과 조각들에 졸(卒)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즐거워하며,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데, 역시 사진촬영은 금지다. 김 화백 일행을 안내해온 찰스라는 인도소년이 눈치빠르게 100루피만 주면 사진을 찍게 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박물관 안뜰

박물관 입구

 

김 화백이 선뜻 100루피를 주고, 선덕양이 사진을 찍는다. 덕분에 나도 공짜로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즐겁다. 헌데 찰스가 다가오며, 안에 관리인 노인이 있는데 노인이 보는 데서는 사진을 찍지 말라고 귀띔을 한다. 할 수 없이 노 사장과 내가 교대로 노인에게 사탕과 초콜릿을 드리면서, 다른 곳으로 유도를 하여, 선덕양이 마음 놓고 사진을 찍도록 바람을 잡는다. 작품도 재미있고, 노인과의 숨바꼭질도 즐겁다. 동심으로 돌아 간 느낌이다.

각종 생물들이 가득한 단순문양

인간 트리

동화 1

동화 2

철갑옷 입은 엄마

사냥

반 고호의 화풍인가?

 

코끼리 수레

관람을 마치고

 

박물관을 나와 이번에는 마을을 통과하여 호텔로 향한다. 도로보다 훨씬 아름답고 운치가 있는 길이다. 마을 쪽에서 중년부인이 모습을 보이더니, “나마스떼!”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 온다. “나마스떼!“라고 답례를 하고, 사진을 찍어도 좋으냐고 물으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기품이 있어 보이는 중년부인이다. 마침 모습을 보인 따님과 함께 호수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해준다.

마을로 통하는 길


마을로 들어서다 만난 모녀

 

사진을 찍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따님이 이메일 주소를 적어줄 터이니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한다. 따님에게서 이메일 주소를 받고, 김 화백이 기념품이라며, 볼펜을 건네주자, 부인이 잠시 집에 들러 차라도 한 잔하고 가라고 권한다. 인도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보고 싶기는 하지만, 초면에 선뜻 응하기도 어려워, 일이 있다고 사양을 하고 헤어져 호텔로 향한다.

 

 

(2011. 4. 1.)

'인도 배낭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 바라나시(Varanasi) (1)  (0) 2012.12.17
10. 카주라호(Khajurao) (2)  (0) 2012.12.17
8. 아잔타(Ajanta)  (0) 2012.12.17
7. 따울라따바드 요새와 엘로라 석굴사원(2)  (0) 2012.12.17
5, 아우랑가바드(Aurangadad)  (0) 2012.12.17
Posted by Urimahn
,

 

 


아잔타 19번 석굴의 불상

 

2011년 2월 20일(일)
인도여행 6일째. 오늘은 불교미술의 보고 아잔타를 답사한다. 아우랑가바드에서 104km 떨어진 아잔타까지 15인승 미니버스로 이동한다. 5시간 정도 여유 있게 아잔타석굴을 답사하기위해, 호텔 출발시간은 7시 30분이다. 호텔로비에 모인 대원들에게 정 사장과 김 사장이 삶은 계란 두 개씩 담은 비닐 봉투를 돌린다. 아가씨들이, “히말라야 오라버니!”를 연발하며, 반색을 하더니, 아침대용으로 즉석에서 먹어치운다. 이윽고 차가 도착하고, 일행은 차에 올라, 이틀 동안 묵었던 호텔과 작별을 한다.

큰 배낭을 메고 차를 기다리는 선아 아가씨는 여전히 씩씩하다.

이윽고 차가 도착

이틀 동안 숙박을 했던 호텔과 작별

 

미니버스는 한 시간 여를 달리더니, 8시 50분 경, 이름을 알 수 없는 휴게소에서 정차한다. 아마도 아침식사를 하라는 모양인데, 먹거리가 마땅치 않은지, 차에서 내린 대원들은 짜이를 사 마실 뿐 식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9시 10분, 버스는 다시 출발하고, 10시 40분 경, 아잔타에 도착한다.

휴게소 풍경 1

휴게소 풍경 2

아잔타에 접근

 

길잡이는 5시간을 줄 터이니, 답사를 마치고, 오후 3시 40분 까지 주차장에 모이라고 당부를 한다. 이어 매점과 식당가를 지나, 셔틀버스장 까지 우리들을 안내해 준다. 아잔타 석굴은 이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4,5Km 떨어져 있다. 버스요금은 일반버스가 7루피, 에어컨버스는 12루피다. 대부분이 에어컨 버스를 외면하고 일반버스를 이용한다. 아직은 더위가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약 15분 후, 버스는 석굴 군 앞 버스정류장에 우리들을 내려준다.

셔틀버스장으로 이동

셔틀버스에 오르고

 

매표소 주변은 꽃들이 아름다운 정원이다. 입장료 250구피를 내고. 입구로 들어서니, 왼쪽에 식당이 보인다. 반갑게도 맥주 바도 있다. 계단을 올라, 능선 위에 선다. 석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매표소

20대들의 기념촬영

식당

계단을 오르고

석굴

 

와고라(Waghora) 강변의 말발굽 모양의 석벽에 만들어진 아잔타 석굴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 후 1세기의 전기 석굴군(9번, 10번, 19번, 26번과 29번)과 5~7세기의 후기 석굴군으로 나누어진다. 인도의 불교는 8세기 이후 급격히 쇠퇴하고, 이 석굴들도 1,100년 동안 잊혔다가, 1819년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가 길을 잃은 동인도회사 소속의 영국군 병사에 의해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석굴 배치도

 

안내문에 의하면 석굴들은 약 76m 높이의 강변 수직절벽을 파서 만들었는데, 이 계곡이 조용하고 평화로워 수도승들이 우기에 수도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설명을 보고, 엘로라 석굴들을 보며 가졌던 의문의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이다. 즉 석굴은 비바람과 이슬을 피하기 위한 수도승들의 단순한 수도장이었는데, 신심이 깊은 권력자나 재산가들이 돈을 내어, 이러한 수도장들을 넓히고, 불상과 벽화 등으로 장식한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보는 석굴인 모양이다.

 

1번 석굴에 이른다. 6세기경에 조성된 비하라(Vihara) 석굴로 아잔타 석굴 사원 군에서 최고의 벽화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굴 안에 관람객들이 많은 모양이다. 관리인이 입장을 통제하여, 우리일행들이 신발을 벗은 채 줄을 서고 있다. 굴 안으로 들어선다. 컴컴하다. 관람객이 많은 석굴을 둘러보는 요령은 첫째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 둘째 영어로 설명을 하는 가이드가 있는 그룹에 끼어드는 것 등이다.

1번 석굴 줄서기

연꽃을 들고 있는 보살 -일본 호오류우절에 그린 담징의 금당벽화와 닮았다.

부다 상

천정화

 

오늘은 우리일행이 함께 움직임으로 아가씨들과 함께 숨은 그림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1번 굴에서 흑인공주 또는 보는 각도에 따라 얼굴표정이 달라진다는 부다 상 등을 찾는 식이다. 하지만 어두운 석굴에서 이들 숨은 그림을 찾기가 쉽지 않다. 2번 굴로 들어선다. 역시 6세기에 조성된 굴이라고 한다. 부다의 생애를 그린 벽화들이 수작이라고 한다.

2번 석굴의 처마장식

부다 상

벽화 1

벽화 2

 

이후 숨은 그림을 찾으며 10번 굴까지 둘러보지만 비전문가의 눈에는 모두가 그게 그것 같아 보인다. 오히려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김 화백은 굴속을 드나들기도 지쳤는지 시원한 그늘에 앉아 요가를 배우러 인도에 왔다는 화란 아가씨와 유유하게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굴 밖에는 강이 보이고 전망대가 우뚝하다.

4번 석굴 입구

6번 석굴

9번 석굴의 부처상

10번 굴

화란 아가씨가 그린 김 화백 초상

전망대

 

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굴속 드나들기를 이어간다. 벽화로 유명한 16번, 17번 굴을 둘러보고, 이어 조각가들의 보물 상자라고 하는 19번 굴로 들어선다.

이 그림이 유명한 빈사의 공주인가?

 

벽화 1

벽화 2

19번 굴

19번 굴 조각 1

조각 2

조각 3

 

이어 20번부터 30번까지의 석굴을 둘러 본 후, 아가씨들과 간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전망대로 향한다. 한참 더울 시간이지만, 그래도 굴속을 드나든 것보다 시계가 넓어 좋고,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결이 싱그럽다.

26번 굴 조각 1

조각 2

조각 3

전망대 오르다 본 마른 폭포

계곡

석굴

 

정자가 있는 첫 번째 전망대에 오르자, 아가씨들과 젊은이들은 두 번째 전망대를 포기하고, 이곳에서 쉬겠다고 한다. 앞에 보이는 두 번째 전망대가 그리 멀어 보이지도 않고, 시간도 충분하여, 혼자서 두 번째 전망대로 향한다. 16분 후, 석굴들이 있는 곳보다 200m 더 높은 두 번째 전망대에 오른다. 조망이 좋은 너른 공원이다.

정자에서 본 두 번째 전망대

전망대 안내판

전망대

전망대에서 본 석굴 군

 

잠시 주위를 들러 본 후, 정자로 되돌아온다. 젊은이들은 이미 하산을 하여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서둘러 매표소로 향한다. 식당 앞에 이르러 맥주를 마시며 식사를 할 생각으로 들어서려는데, 나무 밑 그늘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이 보인다. 할 수 없이 맥주를 단념하고, 일행들과 합류하여 함께 셔틀버스를 타고, 식당가로 나오니, 정해준 시간 보다 1시간 정도가 이르다.

하산 길

되돌아 온 정자

화란 아가씨와 기념촬영

 

일행은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대기하고 있던 미니버스로 부사발(Bhusawal)로 향한다. 버스는 거의 두 시간을 달려, 5시 17분, 부사발 역에 도착한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잔시(jhansi)로 가는 7시발 기차를 타기로 되어있는데,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대기자 리스트에 올라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부사발 역 도착

 

길잡이는 기차가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이니, 침대차 대합실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7시가 가까워지자, 과연 기차가 들어온다. 내다보니, 식당차도 딸린 멋진 기차다. 하지만 빈자리가 없는 모양이다. 잠시 정차했던 기차는 우리들을 내버려둔 채 출발한다.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길잡이가 나타나더니, 다행히 다음 열차의 표를 구했다고 알려준다.

기차를 기다리며 게임을 즐기는 젊은이들

 

8시가 넘어 기차가 들어오고, 길잡이는 우리들에게 서둘러 기차에 오르라고 한다. 무거운 배낭을 둘러메고 뛰듯이 침대차에 오르지만, 좌석이 없는 입석이다. 큰 짐을 지고 좁은 통로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린다. 짐이 많은 정 사장은 더욱 죽을 맛이다. 길잡이는 에어콘 칸에 빈자리가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사라진다.

좁은 통로에서 이리저리 밀리고

 

할 수 없이 배낭을 벗어, 염치불구하고 남의 자리에 얹어놓고, 비좁은 공간에 엉덩이를 드민다. 침대차는 3층인데 잠자기 전까지는 중간층은 자리를 접어 공간을 만들고, 6사람이 3사람씩 마주보며 앉아서 간다. 나는 좁은 복도에서 밀리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3층 좁은 공간에 걸터앉는다. 늙은이가 잘못해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 생각했던지, 자리 주인이 자신의 짐을 안쪽으로 밀어 공간을 만들더니, 더 들어와 앉으라는 시늉을 한다. 다른 인도인들도 마찬가지다. 좁은 공간인데도 자리를 만들어 아가씨들이 걸터앉게 해준다. 한 시간이 넘게 이렇게 버티다, 다행히 에어콘 칸에 빈 좌석이 있어 그쪽으로 이동한다.

염치없이 3층 남의 자리를 차지하고

 

지난번 우리들은 좁은 침대버스 속에서 추위에 시달리며 12시간이나 걸려, 뭄바이에서 아우랑바가드로 이동했지만 가이드북에는 9시 5분에 뭄바이를 출발하여, 7시간 후인, 다음날 새벽 4시에 아우랑바가드에 도착하는 침대차가 있다고 분명히 적혀있다. 그때에도 기차예약을 못한 모양이더니, 이번에도 표를 못 구하고, 고작 대기자 명단에 올려 고객들을 고생시킨다. 기차예약을 회사가 하는지, 길잡이가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누가 하든, 회사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기차예약 하나 제대로 못하는 회사! 주위 사람들에게 인도로 가는 길을 통해 인도 배낭여행을 떠나라고 권할 수가 있겠는가?

 

에어콘 칸 침대차는 사람들이 북적대지 않아 조용하다. 덕분에 저녁은 굶었지만 숙면을 취한다. 기차는 다음 날 아침 7시 경, 잔시 역에 도착한다. 길잡이는 버스대신, 회사가 긴급하게 렌트한 찦차 두 대에 분승하여 카쥬라호(Khajuraho)로 이동할 계획이니, 밖으로 나가 아침식사를 하면서 찦차를 기다리자고 한다.

잔시 역에 도착, 길잡이가 일정을 설명하지만 대원들의 표정은 어둡다,

잔시 역

역 앞 간이식당에 들어서고

 

식당에서 걸레빵(신부님이 난에 붙여준 별명)과 오믈렛 등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역 대합실의 화장실을 이용하여 아침 용무를 본다. 시간이 지나는데도 회사가 수배했다는 찦차는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즐겁기만 한 모양이다. 아침부터 트럼프를 즐기고 있다. 역 앞이라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호기심에 찬 사람들이 우리 주변을 기웃거린다.

찦차를 기다리며 젊은이들은 아침부터 트럼프를 즐기고

역 앞에서 만난 인도인 모녀. 아이의 표정이 티 없이 맑다.

 

10시가 다 되어 찦차가 모습을 보인다. 말쑥한 새 차다. 찦차가 국도를 달린다. 도로가 좁고 노면이 고르지 않아. 시속 60Km를 내기도 어려운 모양이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한차례 잠시 쉬었을 뿐인데도, 카쥬라호까지 5시간 정도가 걸려 2시경에 카쥬라호의 자인(Jain) 호텔에 도착한다. 이하 도로변 정경을 담는다.

도로변 풍경

요금 징수 - 지역경제를 위해 통행료 징수가 허용된 곳, 톨게이트가 아님.

몇 명이나 탔을까? "600" alt="" hspace="5" src="../images/d2CTD7H1qwVy4vYQl6E9EA.jpg" width="800" vspace="5" border="0">


가로수


휴게소에서 만난 젊은이들


호텔 도착

 

고향식당 메뉴

 

방 배정 후, 짐을 풀고, 바로 산티호텔의 고향식당으로 이동하여 김치볶음밥                             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이어 호텔로 돌아와 인도식 안마를 받으며(300루피)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다.

 

 

(2011. 3. 23.)

 



 

 


 

 

 

Posted by Urimah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