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올라따바디 요새
2011년 2월 19일(토)
인도여행 5일째 날이다. 오늘은 ‘행운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따올라따바드 (Daulatabad)요새와 불교, 힌두교, 자인교의 유적들이 공존하는 불가사의한 엘로라(Ellora) 석굴사원을 방문한다. 따울라따바드 요새는 아우랑가바드와 엘로라 석굴사원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20대들을 제외한 남자들 6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함께 움직인다. 8시가 조금 넘어 로비에 모인 우리들은, 오토 릭샤 2대에 분승하여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후, 인근 상점에서 간식꺼리를 사들고, 엘로라 행 버스에 오른다. 따올라따바드까지의 요금은 14루피다.
버스터미널 건물
고물이 다 된 버스지만 운전석과 승객석이 완벽하게 분리된 육중한 모양에서 죄수 호송차 같은 느낌을 받는다. 건장한 남자 차장이 커다란 구형 휴대폰처럼 생긴 컴퓨터 입력기를 들고, 요금을 받아 기록을 한다. 버스는 211번 국도를 덜컹거리며 달린다. 차창 밖의 풍광이 황량하다. 20여분이 지나자, 차장이 친절하게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라고 알려준다.
죄수 호송차 같이 육중한 버스
따올라따바디 요새앞 도로
버스에서 내리니, 육중한 성곽과 높은 탑, 그리고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하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매표구로 다가가 표를 사고(입장료 100루피) 요새 정문으로 향한다. 매표소와 요새 정문 옆에 있는 안내문 내용을 요약한다.
육중한 성곽과 하얀 성채
따울라따바드 요새 지도(사진을 크릭하면 큰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야다바(Yadava)왕조의 왕, 빌라마(Bhillama) 5세에 의해 12세기경에 건설 된 이 요새는 옛날에는 데브기리(Devgiri-신들의 언덕)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1296년, 알라딘 킬지(Allauddin Khilji)에 의해 정복된 이후, 이 요새는 오랫동안 철옹성으로 남아 있었다. 1327년, 술탄 모하메드 빈 투굴라크(Mohammed bin Tughlak)가 수도를 델리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이름을 따올라따바드로 바꾼다.”
“높이 200m의 나지막한 언덕에 세워진 이 요새는 중세 데칸고원의 가장 강력한 요새 중의 하나다. 군사시설, 독특한 수리시설(水利施設)을 갖춘 마을, 그리고 정치, 종교적 성채라는 복합적인 기능을 갖은 이 요새의 넓이는 94.83 헥타르에 달한다.”
첫 번째 방어선인 요새 정문으로 들어서면 중정이 이어지고, 양쪽에 대포들을 진열해 놓았다. 좌우에 코끼리 상이 조각된 두 번째 방어선인 중문을 통과하고, 오른쪽에 우뚝 솟은 붉은 탑을 바라보며 진행하다, 왼쪽 계단으로 올라서서, 하티 호즈(Hathi Houz) 거대한 수조를 굽어보고, 바라트 마타(Bharat Mata-인도의 어머니) 사원으로 들어선다. 넓은 경내, 그리고 기둥들이 촘촘한 회랑을 보며 사원의 규모를 짐작해 본다. 사원 제일 안쪽에 아름다운 바라트 마타 조각상이 서 있다.
요새 정문
정문 안에서 요새를 둘러보는 신부님과 김 화백
중정에 진열된 대포
제2의 보루인 중문
코끼리 조각상과 안내판바라트 마타 사원가는 길(왼쪽 계단길)
거대한 수조 - 폭 46.75m, 길이 47.45m, 깊이 6.61m라고 한다.
사원 입구
사원 전경
회랑
바라트 마타 입상
다시 주도로로 나와 우뚝 선 찬드 미나르(Chand Minar) 앞에 선다. 1435년, 아하마다사 (Ahamadshah) 2세가 세운 65m 높이의 전승탑이다. 이탑은 이후 전망탑으로, 그리고 기도의 장소로 사용된다. 탑 아래 한쪽에는 모스크 , 그 반대쪽에는 나카르 카나(Naqar Khana-Drum Hall)가 있다. 탑을 지나 폐허가 된 헤마드판티(Hemadpanti) 사원 유적지를 둘러보고, 제 3의 방어선인, 죽음의 요새, 카라코트(Kalakot)로 들어선다. 오르막 계단으로 이어지는 3중 문이다.
찬드 미나르
헤마드판티 사원 유적지
카라코트
두 번째 문 입구(우)
세 번째 문
카라코트를 지나, 치니 마할(Chini Mahal)에 이른다. 골콘다(Golkonda)왕조의 마지막 지배자인 압 둘 하산 타나사(Abdul Hasan Tanashah)가 죽을 때까지 유폐됐던 곳이라고 한다. 이어 거대한 대포가 있는 전망대에 올라, 왼쪽으로 보수 중인 니잠 사이(Nizam Shahi) 궁전과 푸른빛이 감도는 너른 해자, 그리고 해자에 걸린 다리를 굽어보고, 정면 멀리 요새 꼭대기의 하얀 성채를 올려다본다. 시선을 돌리니, 발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진 데칸고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관이다.
치니 마할
전망대
대포
보수 중인 니잠 사이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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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 - 폭 16m, 깊이 22m
다리
요새와 성채
데칸 고원
다리를 건너 손전등을 켜들고, 바위를 뚫어 만든 캄캄한 동굴 속으로 들어선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50m 정도의 오르막 동굴에는 여러 군데 속임 수가 감추어져 있다. 자칫 빛과 맑은 공기에 유혹 되어, 작은 샛길로 들어선 적들은, 바로 해자로 떨어지게 되어있다. 동굴 천장에는 박쥐들이 가득하다. 암굴을 나와, 밝은 태양 아래에서, 지나온 요새를 굽어보고 언덕위의 성채를 바라본다.
암굴
암굴 천장의 박쥐들
요새를 굽어보고 1
요새를 굽어보고 2
성채를 올려다본다.
성채에 오르기 전에 잠시 가네스(Ganesh) 사원에 들러 가네스의 이미지를 카메라에 담는다. 이윽고 12개의 아치문이 있는 팔각 성채, 바라다리(Baradari)에 오른다. 탁 트인 전망, 시원한 바람이 거의 환상이다. 인도의 젊은이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바람을 쏘이며 가이드북을 보고 있는 나를 둘러 싼 청년들, 함께 사진을 찍자고 몰려온 아가씨들... 성채 내부를 잠시 둘러보고 왔던 길을 되돌아선다.
가네스 사원
사원에 모셔진 가네스의 이미지
성채에서 본 데칸고원
함께 사진을 찍자고 몰려온 아가씨들
성채 내의 회랑
10대로 보이는 아가씨 둘이 계속 따라오며 어디서 왔고,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대답을 해주면 뭐가 그리 우스운지 까르르~ 까르르~ 잘도 웃는다. 인도는 처음 온 건지? 혼자서 여행하는 건지? 며칠이나 여행하는 지? 등 계속 묻더니, 심지어는 집사람의 이름까지를 물어온다. 쾌활하고 밝고 꾸밈이 없는 아가씨들이다.
이런 훌륭한 요새를 설계하고 건설한 똑똑한 조상들의 DNA가 틀림없이 이처럼 밝고 쾌활한 아가씨들 속에 전수되어 내려왔을 터인데, 어째서 이들은 가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는 것일까? 인종과 종교가 달라 생긴, 처절하게 오래 지속된 갈등! 그리고 잘못된 길을 선택한 지도자들.... 인종과 종교적인 갈등이 없는 우리들은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무 그늘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사진사들
중문에 이르자, 모습을 보이지 않던 김 화백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원숭이들에게 습격을 당하다, 겨우 피해 내려와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대답이다. 간식용으로 싸들고 들어 온 바나나 냄새를 맡고, 원숭이 한 마리가 쫓아오길레, 바나나 한 개를 던져 줬더니, 사방에서 원숭이 떼들이 몰려와 덤벼들더란다.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대는데, 청소를 하던 인도 아주머니가 빗자루를 휘둘러 원숭이들을 쫓아주어, 겨우 위기를 면했다고 한다. 그런 소동을 겪고 나니, 다시 움직일 기운도 없고 해서 고마운 아주머니와 함께 쉬면서, 스케치를 했다고 한다.
김 화백의 스케치
국도 변으로 나와 사탕수수 주스로 목을 축이고, 엘로라 행 버스를 기다린다.
(2011.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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