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22일(화).
여행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보행인들의 절반 정도가 우산을 쓰고 있다. 비가 많이 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산 쓴 사람들 수는 적어지고, 등교하는 아이들과 함께 지나는 어른들이 많아진다.

가이드는 어제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오늘 천산천지(天山天池)를 관광해야하는데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일기예보가 제대로 맞느냐고 물었더니, 기상이변인 경우를 제외하면 정확하다고 한다. 이점도 미국과 닮은 것 같다. 미국에서도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하면, 틀림없이 비가 온다고 한다. 기상청장이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모양이다. 하기야 과거사나 들치고 앉아 있는 분위기이니,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예지가 생길리가 있겠나?

천지는 천산의 보그다 봉(Bogda-5445m) 중턱, 1980m 지점에 있는 호수다. 천산의 만년설이 녹아내려 만들어진 것으로, 길이 3,400m, 최대 폭 1,500m, 면적은 380㎢이고, 가장 깊은 곳은 105m나 된다고 한다. 주위의 울창한 침엽수림과 잘 어우러져 '중국의 알프스'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루무치에서 북쪽으로 약 90Km 정도 떨어져 있다.

 

천지


 눈 덮인 침엽수

승합차는 간간히 내리는 빗속을 뚫고 달린다. 가이드가 전화를 받더니, 호텔방에 카메라 충전기를 두고 온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 동생이 얼굴을 붉히며 손을 든다. 방을 치우러 들어갔던 호텔 종업원이 충전기를 발견하고, 호텔에서는 가이드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중국도 이제 이정도로 변했다. 호텔을 출발해서 한 시간쯤 지나 부강(阜康)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다시 30분을 달려 천산천지 입구에 도착한다. 비가 내리는데도 주차장은 관광버스로 만원이고 주위의 산들이 온통 하얗다.

부강 톨게이트

 천지 입구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아 케이블카 운행이 중지되어, 관광객들은 관광지의 승합차를 타고 호수로 오른다. 승합차는 구불구불 가파르게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힙 겹게 오른다. 차창 밖으로는 비가 아닌 눈이 쏟아지고 있고 눈발 사이로 보이는 풍광이 과연 알프스다.

관광지 관리센터

차창 밖으로 본 눈 덮인 산

소천지

이윽고 승합차는 호수 아래에 도착하여 우리들을 내려준다. 이곳에서 부터는 걸어서 호수로 올라가야한다. 여전히 눈발은 날리고, 눈 덮인 빽빽한 침엽수림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오른다. 약 10분 쯤 걸어, 천지에 도착한다. 날씨가 이렇게 사나운데도 유람선을 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한다.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둘러본다.

침엽수림 사이를 걸어 호수로

천지입구


선착장

유람선

호수변의 사원과 정자

침엽수림과 설산

하산하여 식당가를 찾아든다. 식당 앞 화단에 붉게 핀 꽃나무가 무겁게 눈을 이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우루무치로 향한다. 오후에 들어 날씨가 맑아지며, 멀리 천산의 만년설이 보이고, 고도가 낮아지면서 저지대의 가로수 모양이 시선을 끈다.

식당가

눈에 덮인 꽃나무

멀리 보이는 만년설

가로수

시내로 들어와 가이드는 느닷없이 우리들을 평양전시관으로 안내한다. 북한의 여자종업원이 홍삼 등 건강식품과 우황청심원 등 한약을 소개한다. 하지만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호상 간에 민망하기만 하다. 어디서 정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인 관광객들은 반드시 평양전시관을 들르게 되어있는 모양이다.

평양전시관

전시 상품

홍산공원을 구경한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시내 중심에 있어 우루무치 시가지를 조망하기에 좋은 곳이다. 홍산에서 굽어본 우루무치는 생각보다 훨씬 현대화 된 도시다.

홍산공원1

홍산공원2

원조루

임측서 동상

우루무치 시가지1

우루무치 시가지2

우루무치 시가지3

우루무치 시가지4

홍산공원을 둘러보고, 인민광장을 거쳐, 위구르족의 시장인 바자르를 구경한 후 '한성' 식당에서 느긋하게 저녁식사를 한다. 이어 공항으로 이동한다.

바자르 가는 길-출퇴근 시간이 아닌데도 교통체증이심하다.

인민광장

바자르 입구

시장1

시장2

시장3

(2007. 7. 5.)




우림 at 09/05/2007 11:19 am comment

정 박사가 다녀가셨네?이 처럼 답글까지 남겨 놓으니 더 더욱 고맙소.여행은 뭐니뭐니해도 삼목회 회원들이 부부동반으로 함께했던 동유럽, 북유럽 여행이 가장 좋았던 것 같소.이제는 손 교수도 여행은 힘들 것 같으니 다시는 그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안타갑군요.건강이 제일이지요.부인께도 안부 전해주시구려.

우림 at 07/13/2007 07:39 pm comment

이 여사님! 안녕하세요?다리 기부스한 것은 좀 어떤지요?튀니지에는 기회가 없어 아직 못 가봤어요.언젠가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한번 가보고 싶군요.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우림 at 07/13/2007 07:38 pm comment

김사장!힘들여 일한 후 취하는 휴식이 꿀맛 같은 휴식이지.생선에 맥주에 많이 즐겼을 거구, 김 PD님도 좋아 했겠군.잘 쉬었네요.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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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루판에서 여행 칠일 째를 맞는다. 오전에 교하고성과 카레즈를 관광한 후, 오후에는 우루무치로 향한다. 이제 이번 여행도 종착역이 가깝다.


교하고성은 투루판 시에서 서쪽으로 11Km 떨어진 '야마츠 계곡 (Yamaz Valley)'에 위치한 고원(高原)이다. 두 개의 강이 양쪽으로 흐르면서 30여m의 절벽 위에 길이 1,650m, 폭 300m의 천연의 요새를 만들어 놓는다. 기원 전 2세기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고 오랫동안 오하시스 국가인 차사전국(車師前國)의 수도였다고 한다. 이후 고창국(高昌國)이 한 동안 이 땅을 지배하지만, 당 태종 때에는 이 땅에 안서도호부를 설치하고, 원나라 때, 전쟁으로 폐허가 됐다고 한다.

절벽 위의 고원

교하고성 조감도


교하고성이 유명한 것은 '계획된 조각도시' 이기 때문이다. 땅위에 벽을 쌓고 지붕을 덮어 건축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 땅을 파들어 가며 조각하듯 건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건축 면적은 총 38만m²인데, 남북을 관통하는 주도로가 이 도시를 동서로 나눈다. 동쪽 중심부에는 왕성, 관청, 고급주택을 배치하고, 서쪽은 작업장(Workshops), 북쪽은 사원, 남쪽에는 일반주택을 배치한 계획도시하는 설명이다.

남문

남문 이정표

왕궁 터- 왕궁이라 더 깊게 파 들어간 모양이다.

지하통로

왕궁 터의 도르래


중국 정부는 1961년 이곳을 주요 역사문화의 유적지로 지정하고, 고성의 유지 보수를 위한 작업을 계속해온다고 한다. 1992년 UNESCO와 일본 정부가 이를 돕기 위해 100만 불을 기증하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도 대불사(大佛寺)는 보수 중이다. 일행들이 '짝퉁'을 만들고 있다고 농담을 하자, 교포 3세인 가이는 정색을 하면서, 그게 아니고 보수(補修)를 하는 것이라고 힘을 주어 정정한다. 역시 중국인이다.

북쪽 사원지역

보수 중인 대불사

대불사의 불상

소불사 터의 우물

사리탑

사리탑의 숲-101개의 사리탑이 있다는 설명이다.

불탑- 풀 한포기 없는 사막에 낙타가시풀만 이따금 보인다.

불탑 해설판

전망대

전망대 해설판


고성을 둘러보고, 박물관 앞 휴식 터에서 당도 높은 수박을 사서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음 행선지인 카레즈(Karez) 박물관으로 향한다.

카레즈 박물관

박물관 안의 수로


카레즈는 천산의 눈 녹은 물을 화염산과 고비사막의 지하를 거쳐, 투루판으로 끌어들인 수로시설(水路施設)이다. 박물관 앞에 게시한 해설판의 내용을 아래에 옮겨본다.


"카레즈는 이 고장의 옛사람들이 물을 얻기 위해 벌인 위대한 토목 공사다. 이 지역의 여름기온은 섭씨 80도를 웃돌고, 연평균 강수량은 16mm 이하인데, 증발로 인한 수분 손실은 3000mm가 넘는다. 물을 얻고, 증발을 막기 위해 옛 사람들이 만든 지하 수로시설이 카레즈다. 카레즈는 우물, 수로, 지하수의 3가지로 이루어진다.


투루판에는 1000개 이상의 우물이 있고, 수로의 길이는 5,000Km가 넘는다. 이를 통해 매년 3억 큐빅미터의 물을 공급 받는다. 만리장성, 대운하와 더불어 카레즈는 중국의 3대 토목공사 중의 하나다."


카레즈 박물관은 그 수로 중의 한 곳을 개방하여 관광지로 개방하고 있는 곳이다. 카레즈 모형, 카레즈의 공사과정과 방법, 공정에 쓰인 공구 등이 각종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수로를 따라 흐르는 맑은 물에 손을 담가보니, 손이 시릴 정도로 물이 차다.

수로를 파는 모습1

수로를 파는 모습2

수로

시내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하고, 약 186km 떨어진 우루무치로 향한다. 2002년에 개통했다는 투루판-우루무치간의 고속도로는 미국의 모하비사막을 달려 라스베이거스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와 아주 흡사하다.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서역 변방에 이런 고속도로를 만들다니 참으로 놀랍다.

고비사막을 가로지르는 중국의 고속도로

모하비 사막을 가로지르는 미국의 고속도로

고속도로의 형태뿐만 아니라 고속도로 주변에 철로가 달리고, 수많은 풍력 발전기들이 돌아가는모습도 비슷하다. 그 뿐인가? "600" alt="" hspace="5" src="../images/UpK0YST8_EFGDWlQ_a3MVg.jpg" width="800" vspace="5" border="0">

 

길고긴 기차

풍력 발전기

고속도로를 따라 맑은 계류가 흐르고, 그너머로 옛날 길이 보인다. 이제는 고속도로가 되어버린 실크로드, 낙타대신 화물을 적재한 트럭들이 그 실크로드를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맑은 계류가 따라오고, 그 너머로 옛길이 보인다.

낙타대신 화물트럭이 질주하고

휴게소

멀리 보이는 천산

중국의 산업화 속도가 엄청 빠르다. 70년대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보다도 더 빠른 것 같다. 2050년 경이면 GDP 규모가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예칙이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닌 것 같다.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그 이후 필연적으로 이너질 민주화 과종에서 중국은 또 어떻게 변할까? "600" alt="" hspace="5" src="../images/bzPhNpdoyjz283h8OfcQkg.jpg" width="800" vspace="5" border="0">

 

다시 찾은 렘핀스키 호텔

 한국회관

신강 제1의 백주,'古城 ' 우량예와 맛이 비슷하다. 슈퍼에서는 55위안이다.

오랜만에 우리 음식으로 포식한 일행은 호텔로 돌아와 부근에 있는 백화점을 들러 본 후 잠자리에 든다.



(2007. 7. 2.)


우림 at 09/05/2007 11:27 am comment

안녕하세요?아마 같은 코스를 다녀 온 것 같군요.8월이면 조금 더웠겠네요.하지만 그래서 더 오아시스의 진수를 느끼셨겠구요.중국이 무섭게 변하고 있지요? 사자가 잠을 깬 것 같지요?Have a good day!

Be happy at 09/04/2007 04:22 pm comment

저는 8월 13일경 실크로드 8박9일 다녀왔습니다. 그 웅장함에 과연 놀라지 않을 수 없더군요! 잊을 수 없는 뜨거운 여행이었어요

우림 at 07/05/2007 05:36 pm comment

안녕하세요?찾아주시고 답글주셔서 고맙습니다.5얼 15일, 7박 9일 일정으로 중국의 실크로드를 구경했지요.빠르게 변하는 중국을 실감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우리와 많은 면에서 비교가 되더군요.감사합니다.

at 07/05/2007 04:35 pm comment

잘 봤습니다. 얼마 전에 다녀 오셨나봐요?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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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판(吐魯番)은 우르무치에서 동쪽으로 183Km 떨어진 곳에 있는, 남북 60Km, 동서 120Km에 달하는 거대한 분지다. 특히 해발고도가 -154m로 세계에서 사해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곳이라고 한다.


실크로드의 천산 남로와 북로를 연결하는 요충지에 위치하여, 서한(西漢)시대부터 서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당(唐)나라 때에는 당의 직접 지배를 받았고, 위글 족의 서 위글 왕국시대에는 베제클리크 천불동에서 볼 수 있는 고도의 문화를 형성하는 등, 투르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고 한다. 최근에도 새로 신설된 천산지구(天山地區)로 통하는 철도의 주요 역(驛)이 되어, 예로부터 서역의 교통요지였던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투르판 시내


투르판의 기후는 고온건조하며 바람이 강하다. 여름이면 보통 40-50℃를 넘나들고, 최고 기온이 49.8℃를 기록하는 등 한낮에는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로 덥다. 그 때문에 화주(火州)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가을이나 겨울에는 선선해서 여행하기가 매우 좋다고 한다. 연간 강우량이 20mm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한낮에도 그늘에 들어가면 비교적 지내기가 쉽다. 농업이 중심이고, 특산물로는 포도, 하미과, 면화 등이 있다. 인구는 약 30만.

포도밭과 포도 건조시설


우리가 투숙한 교하장원 호텔은 4성급 호텔로 제법 규모가 큰 편이다. 아침에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시내에서 떨어진 변두리에 위치한 모양이다. 객실에 비치된 리프렛을 보니, 역시 투르판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한다. 고대의 수리 시설인 "카레즈"가 호텔에서 가깝고, 양식당(洋食堂)과 커피숍이 있어서 식사에는 불편이 없다.

교하호텔- 아침산책 시 찍은 사진

호텔 주변 풍경


아침식사를 마치고 로비에서 일행을 기다리는데, 일본인 여자 관광객 한사람이 다가오며 말을 건다. 집사람과 나를 일본인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일본 사람이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소개를 하고, 실크로드를 구경 온 관광객이라고 하자 놀라며 반가워한다. 일본인 관광객들은 13일간의 일정으로 쿠차까지 간다고 한다. 하기야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의 소설 '돈황'으로 일본인들의 실크로드에 대한 관심은 우리보다 높은 터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다. 일행들이 모이자, 즐거운 여행을 하라고 작별인사를 하며 헤어진다.


투르판에서 첫 번째로 방문할 곳은 시내에서 동쪽으로 약 50Km 떨어진 무르툭(木頭溝) 계곡 주위에 있는 토욕구와 베제클리크의 천불동이다. 승합차는 시내를 벗어나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달린다. 이른 아침인데도 국도에는 화물차, 공사용 덤프트럭들의 왕래가 빈번하고, 멀리 유정에서 석유를 끌어 올리는 메뚜기와 풍력 발전용 팬들이 눈에 뜨인다. 농업이 주산업인 사막한 가운데의 오아시스가 이제는 동력자원의 보고(寶庫)로 변신하고, 산업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천불동의 위치 (펌)

화물을 가득 싣고 고개를 올라오는 화물차


승합차가 위구르족 마을을 지난다. 마차를 몰고 가는 젊은 아낙네, 집 앞에 모여 지나가는 승합차를 바라보는 여인들과 아이들... 국도변의 활발한 움직임과는 달리 한적하고 정체된 느낌이다. 무르툭 계곡이 가까워지면서 차창 밖의 풍경이 달라진다. 황량한 진흙 산. 깊은 골짜기를 흐르는 푸른 강, 마치 미국의 그랜드캐넌을 축소 해 놓은 것 같은 광경이다.

위그루족 마을

차창 밖 풍광1

차창 밖 풍광2

차창 밖 풍광3


이윽고 승합차는 토욕구에 도착한다. 너른 주차장에 토욕구 표지가 있고, 한 귀퉁이에 공중화장실이 있다. 삼면이 트인 중국 재래식 화장실- 서양 할머니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서로 낄낄댄다.

토욕구 표지

토욕구의 위구르족 마을

 

토욕구 천불동


토욕구 천불동은 3세기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강 양쪽으로 94개의 석굴이 있는데, 중국 정부는 최근에야 그 일부를 개방한다고 한다. 위구르족 기념품 상점과 묘지를 지나고, 마을을 거쳐 개방된 석굴로 향한다. 강을 따라 새로 튼튼하게 만든 탐방로가 석굴로 이어진다. 석굴에 이르면 위구르인 가이드가 자물쇠로 잠겨있는 문을 열고, 관광객들을 들여보내고, 관광을 마치면 바로 문을 잠근다.

마을로 들어서는 관광객들- 서양 할머니와 원주민

위루르족 마을-수령이 상당해 보이는 나무가 마을의 연륜을 말하는 듯.

 

폭포도 보이고

탐방로

41호, 42호 석굴


석굴 내부는 벽화를 떼어가고 남은 빈 공간뿐이고, 간혹 남아있는 벽화 속의 불상들도 눈은 모두 도려내져 있다. 눈을 통해 영혼이 교류된다고 믿는 이슬람교도들의 짓이라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불교문화의 극치라고 일컬어지는 천불동 석굴의 가장 악랄한 도굴꾼은 독일이다. 1902년부터 1914년 사이에 독일은 황제의 후원 하에 네 차례에 걸쳐 탐험대란 이름의 도굴꾼들을 투르판에 보낸다. 2차 탐험대장 '르콕'은 토욕구에서 10개월 동안이나 거주하면서 도굴을 지휘했다고 한다. 이렇게 약탈해간 보물들 중 많은 부분이 베를린 폭격 때 소실됐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약연 때문인지 오늘 만난 서양 할머니들은 대부분이 독일 할머니들이다.

2차 탐험대장 '르콕'이 살았던 집

서양인 관광객들


토욕구 천불동을 둘러보고, 다시 국도로 나와, 베제클리크 천불동으로 향한다. 화염산을 지나고, 서유기의 주인공들의 모형도 지난다. 베제클리크 천불동도 토욕곡 천불동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내려 쪼이는 태양 볕이 뜨겁다.

 

화염산

매표소

천불동1

천불동2

20굴 입구


베제클리크 천불동을 나와 까오창(高昌)시민들의 공동묘지였다는 아스타나 고분으로 향한다. '아스타나'는 위구르어로 '영원한 휴식'이란 뜻이고, 건조하고 뜨거운 기후 때문에 많은 문화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즉 각종 문서, 비단옷이나 털옷, 개성이 있는 토기와 목기 등이 원형그대로 계속 발굴된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문서가 273년, 가장 최근 것이 778년에 쓰여 졌다고 하니, 약 500년 동안 공동묘지로 사용된 지역이다.

묘지 입구

묘 관리 구역의 조각

공동묘지


가이드의 안내로 3~4개의 발굴된 묘지들을 둘러본다. 계단을 따라 무덤 속으로 들어서면 유리관에 미이라가 안치 돼 있고, 부장품등을 넣었던 토굴이 보인다. 묘 앞에는 묘의 내용을 알려주는 묘지석이 서 있다. 아직 발굴을 안 한 묘들이 무수히 많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주도하여 발굴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 앞으로 또 얼마나 놀라운 보물이 쏟아져 나올 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당나라 시대의 무덤

묘지석

묘지 내부


고분군을 나와 가까이 있는 고창고성(高昌故城)으로 이동한다. 후한이 멸망한 이후 번성했던 도시국가 고창국의 왕성지(王城址)인 고창고성은 약 5Km의 토성으로 둘러싸여져 있다. 서기 630년 현장법사는 서안(西安)을 떠나 인도로 가는 길에 이곳에 들렀다고 한다. 불교에 심취한 고창국의 왕은 그를 극진히 영접하고, 석 달간이나 법사를 왕국에 머물게 하며 불법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고창국은 당나라에게 망한다.

우리는 당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성을 둘러본다. 성 내부에는 왕성을 비롯하여 경교사원, 불교사원, 현장법사가 머물며 강론을 했던 장소 등 다양한 유적들이 흔적만 남아있다. 고유의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노인들, 함께 사진 찍기를 기다리는 젊은 위구르인들이 폐허가 된 조상들의 유적을 찾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당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고성을 둘러 본다.

대불사

고성1

고성2

고성의 악사

함께 사진찍기를 기다리는 젊은 위구르인들

고성을 둘러본 후 , 시내로 귀환하여 점심심사를 한다. 투르판의 오후는 역시 뜨겁다. 점심을 마친 일행은 가까운 소공탑을 잠시 둘러본다. 소공탑은 신강에서 가장 오래된 고탑으로 청나라의 명장인 액민화탁이 지었다고 해서 액민탑이라고도 불리운다. 이어 포도원에 들러 포도밭을 구경하고, 위그루족의 민속무용을 즐기며 더위를 피한다.

소공탑과 액민화탑

탑에서 본 경내

포도원 입구

포도원1

포도원2

 포도원 환영공연


호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식사를 한다. 특식으로 양 바비큐가 나온다. 새끼 양을 통째로 양념을 바르며 구운 것이다. 아마도 '베이징 덕'과 조리방법이 비슷할 듯싶다. 맛이 훌륭하다.

양 바베큐


저녁이 되니 더위가 가신다. 9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사방이 밝다. 9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시원한 호텔의 야외 간이무대에서 펼쳐지는 민속무용을 구경하며 하루의 피로를 푼다.

민속무용1

민속무용2

관객과 무용수들과의 어울림


(2007. 6. 27.)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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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9일(토).

하밀의 분위기를 느껴보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주위를 산책한다. 바람이 불고 황사가 날려 산책하기에 좋은 여건이 아닌데도 아침 일찍부터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밝은 표정으로 산책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지만 가로수의 수령(樹齡)이 상당해 보이는 걸 보면 이 도시의 연륜을 짐작할 수 있겠다. 길도 널찍하고 깨끗하다. 도로 한쪽에는 아파트 같은 건물이 들어서고, 다른 한쪽에는 관공서나 상가를 배치한 모양이다. 병원 같기도 하고, 관공서 같기도 한 건물에 꽃단장을 해 놓은 것을 보면 하밀 사람들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새벽 산책 나온 사람들

잘 정비된 깨끗한 도로


꽃단장한 공공건물


천산산맥 남쪽의 작은 오아시스. 아무리 한나라 때부터 교통의 요지로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현대적인 도시 일 줄은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귀국 후 자료를 찾아보고, 자매결연을 한 광쩌우(廣州)시가 이곳에 집중 투자를 했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일행은 승합차를 타고, 회족의 왕과 왕비가 묻혀 있는 회왕릉으로 향한다. 중심가를 지나 남쪽으로 채 10분도 달리지 않아, 회왕릉에 도착한다. 17세기부터 약 200년간 이 지역을 통치했던 하밀 왕국의 왕실 묘라고 한다.

회왕릉 가는길

회왕릉 도착


그리 넓지 않은 묘역은 조용하고 깨끗하다. 왕실의 묘, 이슬람 양식의 탑이 있는 건물, 사원, 그리고 역사 진열관 등이 배치 돼 있다. 묘지형태가 독특하다. 왕릉이지만 묘지에 부장품을 함께 묻지 않아, 도굴을 당하지 않고 잘 보전되어 있다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약 20분 정도 묘역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하얀 기둥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우리들을 쳐다보는 회족 어린이를 만난다. 호기심에 찬 시선, 꽉 다문 입, 그리고 푸른 의상에서 받는 인상이 강렬하다.

회왕릉 1

화왕릉 2 - 하트형 관 모양은 남자묘, 사각의 관 모양은 여자 묘라고 한다.

이슬람 풍의 사원

역사 진열관

묘역에서 만난 어린이


회왕릉을 나온 일행은 하밀에서 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바리쿤(巴里坤) 초원으로 이동한다. 바리쿤 초원은 천산 아래에 위치한 아름다운 휴양지로 ‘죽기 전에 꼭 가 봐야할 여행지 33곳’ 중에 하나로 꼽힐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일행을 태운 승합차는 사막을 관통하는 일직선 도로를 달린다. 도로 양쪽에 새로 심은 어린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가이드 말로는 이곳 주민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해마다 15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꾸어야한다고 한다. 만약 그 중에 일부가 죽으면, 다음해에는 15그루에 죽은 나무 수만큼을 더해서 식수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바리쿤 가는 길


똑 같은 풍경이 지루하게 계속되다, 멀리 보이던 산이 가까워지면서, 차창 밖의 풍경이 일변한다. 시커멓게 솟은 바위산 사이로 도로가 구불구불 고도를 높이며 이어진다. 마치 그랜드 캐넌 속을 달리는 기분이고, 서유기에서 삼장법사의 갈 길을 방해하던 마왕들의 소굴을 지나는 느낌이다. 하지만 저 시커먼 바위산 아래에는 무진장의 광물 자원이 숨어있다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변하기 시작하는 차창 풍경

협곡 사이로 이어지는 도로

왼쪽은 험상궂은 암벽

오른쪽으로는 맑은 계류가 흐른다.


산마루턱을 넘어선 모양이다. 고도가 낮아지며, 개울가에 흙집이 보이고, 험한 바위산은 목장이 들어선 초지로 변한다. 승합차가 목장지대로 접근한다. 오른쪽에 관광목장이 보인다.

개울가의 흙집

산기슭의 목장

구릉지대의 통나무 집

목장지대로 내려서고

오른쪽에 보이는 관광목장


10시 40분 경, 차에서 내리니, 하밀과 달리 해발고도 2000m가 넘는 이곳은 무척 춥다. 서둘러 가방에서 재킷을 꺼내 입고, 말을 타고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둘러본다. '죽기 전에 보아야할 33곳' 중에 하나라는 이야기에 군말 없이 동의한다.

승마 요금표

승마

목장풍경1

목장풍경2

목장풍경3

마상에서 본 천산

울타리 너머로 본 천산


바라쿤 초원에서 약 한 시간 정도 승마를 하며 주위의 풍광을 즐긴 일행은 하밀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한 후, 선선("FONT-SIZE:12pt;MARGIN:0px;COLOR:#000000;TEXT-INDENT:0px;LINE-HEIGHT:160%;FONT-FAMILY:'굴림';TEXT-ALIGN:justify;">

 

6시 25분 경, 쿠무타크 사막에 도착한다. 전 세계를 통 털어, 오아시스에서 가장 가까운 사막, 붉은 색이 강렬한 모래가 자랑인 사막, 이것이 쿠무타크 사막이고, 이제 쿠무타크는 종합관광리조트로 개발되어 각광을 받고 있다. 에어 콘이 달린 파오에서 숙박도 하고, 열사의 사막여행을 체험하는 코스가 있는 가하면, 전동차를 타고 사막을 달리는 리크레이션도 있다.

쿠무타크 사막도착

관광 안내판

이정표.

쿠무타크 사막 1

크무타크 사막 2


전동차 이용요금은 25불, 이번 여행에서 유일한 옵션이다. 전동차를 타고 사막을 질주한다. 사막은 평탄하지 않고 의외로 업 다운이 심하다. 차가 뒤집히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스릴이 있다. 모래산 꼭대기까지 올라간 전동차는 노란 깃발이 꽂혀있는 마지막 봉우리는 오르지 못한다며 걸어서 오르라고 한다.

전동차

쿠무타크 사막 모래산 정점


전동차를 타고 붉은 사막을 누빈 일행은 모래조각 공원을 둘러 본 후, 약 80Km 정도 떨어져 있는 투루판으로 향한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일행은 투루판에 도착하여 교하장원에 체크인을 하고, 호텔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한다. 여행사에서는 양고기 꼬치구이를 특식으로 준비하여 오늘 하루 강행군을 한 일행을 위로한다.

모래 조각공원

작품 1

작품 2

작품 3

작품 4

교하 장원 도착- 黃昏飮馬榜交河 라는 현판이 보인다.


한나라 때 이 땅을 빼앗은 이후, 중국이 얼마나 힘들여 이곳을 지키는 지를 짐작하게 하는 이백(李白)의 한시 한편을 소개한다. 가이드의 말로는 지금도 중국 군대의 1/3이 신강성에 주둔하고 있다고 한다.


塞下曲 -李白-

五月天山雪 無花祇有寒 (오월천산설 무화기유한)

笛中聞折柳 春色未曾看 (적중문절류 춘색미증간)

曉戰隨金鼓 宵眠抱玉鞍 (효전수금고 소면포옥안)

願將腰下劒 直爲斬樓蘭 (원장요하검 직위참루란)


변방의 노래 -이백-

오월에도 천산엔 눈이 쌓여, 꽃은 없고 추위만 있을 뿐이네.

절양유 피리소리 들려오지만, 봄빛은 일찍이 볼 수 없구나.

새벽에는 종과 북 따라 싸우고, 밤이면 말안장 끼고 잠드노라니

허리에 찬 칼 뽑아, 곧바로 누란을 베어버리련다.


唐나라 군대가 원정간 곳은 오월에도 살을 에는 天山지역 樓蘭이다.

樓蘭은 신강 박물관에서 본 미이라 '樓蘭의 美女'의 그 樓蘭國이다.
<折楊柳>는 헤어질 때 버들가지 꺾어주며 부르는 이별의 노래다.


(이상 崔 一成 譯解 - 펌)


(2007. 6. 14.)




우림 at 06/21/2007 12:47 pm comment

집에 오셨구먼.7월 8일은 어디를 가는데?삼목회 모임, 6월 28일, 12시 30 분, 태화.만사 제치고 참석해야지요. 모두들 나올 것 같은데.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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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8일(금).

여행 나흘째 되는 날이다. 명사산에서 보는 일출이 장관이라는 소리를 듣고, 돈항산장의 3층 커피숍에서라도 해 뜨는 걸 보려고,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6시에 올라가보니, 커피숍은 닫혀 있고, 전각으로 통하는 길도 막혀있다. 할 수없이 3층 테라스에서 해뜨기를 기다린다. 6시 11분경, 여명이 밝아 오며, 주위가 환해진다. 6시 26분, 이윽고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지만, 사막 위가 아닌 나무 위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여명

나무 위의 일출

해뜰 무렵의 명사산과 돈황산장


돈황의 역사는 기원전 111년 한무제가 흉노족을 정복하고 하서4군(河西四郡)의 하나로 돈황군을 설치한 후, 이곳에 한인을 이주시켜 서역 지배의 거점으로 삼은 때부터 시작된다. 이후 돈황은 타림분지 (Tarim Basin)를 남북 양쪽으로 지나는 길목으로 실크로드의 요충지가 된다.


이 실크로드를 통해서 불교가 후한시대에 중국 본토에 전해지고, 동진시대에는 유명한 막고굴이 만들어 진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이 막고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세계의 여러 계층의 많은 사람들이 돈황에 관심을 갖는다.

돈황시 1

돈황시 2


일행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막고굴(莫高窟)로 향한다. 막고굴은 돈황에서 동남쪽으로 25킬로미터 떨어진 명사산 산기슭에 있다. 이 지역의 수성암(水成岩)층이 하천의 침식으로 절벽을 만들고, 그 절벽에 무수한 석굴사원을 파 놓은 것이 막고굴이다

막고굴의 석굴들(퍼온 사진)- 뻥 뚫린 곳은 약탈 된 곳이다.

막고골 진입로의 백양나무 가로수

막고굴 경내로 진입하면서 본 그림

 막고굴 안내석


서기 366년, 동진(東秦)의 낙존 스님이 동굴사원 건축을 시작한 이후, 북위(北魏), 서위(西魏), 북주(北周), 수(隋), 당(唐), 송(宋), 원(元)나라 때까지 1,000여 년 동안 약 700여개의 석굴이 만들어 졌고, 그 중 천연색 불상과 벽화가 들어 있는 굴이 492개라고 한다. 대부분의 불상은 흙으로 만든 후, 그 위에 석회를 입히고 색을 칠한 소조불상(塑造佛像)이고, 벽화는 석회를 칠한 벽면 위에 다채로운 색채로 불교회화를 묘사했다고 한다.

45굴의 가섭과 보살상-막고굴 매표소에 계시된 사진

45굴의 보살과 아난상 - 상동


막고굴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07년 영국의 지리학자 A. 스타인과 그 다음해 프랑스의 P. 펠리오에 의해서라고 한다. 당시 스타인은 약 1만 건, 펠리오는 약 1만 5천 건의 고문서를 사 들였다고 한다. 막고굴은 1987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

입구-'석실보장'이란 현판이 붙은 단순한 이 문은 막고굴의 외형과 잘 어루린다는 평이다.

안으로 들어서면서 왼쪽으로 보는 비천 조각상

밖에서 본 431번 굴, 열쇠로 잠겨 있다.

9층루

굴 내부를 견학하려면 막고굴 전문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한다. 막고굴 전문가이드는 막고굴 연구소의 연구원이라고 한다. 현재 관광객들에게 공개하고 있는 굴은 25개에 불과하고, 가이드는 이 중에서 10여개의 굴을 선정하여 안내한다고 한다.

우리 일행도 입구에서 카메라를 맡기고, 중국인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막고굴을 견학한다. 몸이 크고 성실해 보이는 가이드는 북경대학에서 우리 말을 배웠다며, 견학하는 굴 내부의 불상이나 벽화들을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한다. 막고굴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이하 적당한 그림들을 퍼다 소개한다.


45굴의 7존상-당나라 불교 미술의 걸작, 막고굴의 대표작(펌)

16호 석굴에 들어서자, 그는 옛날 이곳에 살던 왕원록 이라는 도사가 벽이 갈라진 것을 보고, 막대기로 찔러 본 후, 벽을 파내자, 그 곳에 또 다른 동굴을 발견한다. 그것이 장경동(藏經洞)이라 불리는 17호 석굴이다. 17호 석굴에는 발굴 당시 벽화 3000여 매, 그리고 고서 54,000여권이 숨겨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부분을 "도둑놈" 들이 훔쳐가, 지금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다고 가이드는 목소리를 높인다.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도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아래는 그가 우리들을 안내한 석굴과 설명한 내용의 요약이다.

막고굴의 주요 석굴 위치도(펌)

44번 석굴 : 'P78' 이라는 번호가 붙어 있다. 펠리오가 붙인 번호라 한다. 33m의 불상이 있다.
96번 석굴 : 9층루 안에 있는 석굴이다. 35.5m의 대불이다. 부처님 얼굴이 심술궂어 보인다, 측천무후가 모델이라고 한다.
148번 석굴 : 16m의 와불
130번 석굴 : 불상과 비천도
53번 석굴 : 'P84' 1200년 전의 벽화, 청대 복원,
244번 석굴 : 수나라 때의 목신불(과거, 현재, 미래)
259번 석굴 : '동양의 모나리자 미소'라고 불리는 불상
328번 석굴 : 부처, 가섭, 아난 그리고 두 보살상.

우리가 보지 못한 석굴 중에 112번, 172번의 비천상, 335번의 고구려 왕자 모습이 보이는 당대의 벽화, 428번의 북조시대의 전라 비천상등이 유명하다고 한다. 기본 입장료 이외의 수고비를 별도로 지불하여야 하지만, 사전에 가이드와 상의하여 꼭 보아야 할 곳들을 골라보는 것도 요령이라 하겠다.


148번 석굴의 와불(펌)


57번 석굴의 부처와 보살(펌)


57번 석굴의 1000명의 불자 좌상(펌)


85번 석굴의 보수 작업(펌)

"도둑놈"들 중에는 일본의 오다니(大谷)도 들어 있다고 한다. 오다니가 도둑질한 유물 가운데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60여점의 벽화와 조각, 공예품 등 모두 1천700여점이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고 하니, 국내에서도 막고굴의 유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참배하는 삼장법사(펌)


장건의 서역 출정도(펌)

막고굴 안내를 마친 가이드는 우리들을 기념품 파는 곳으로 안내하여 돈황과 막고굴의 문화재 도록(圖錄)을 추천한다. 우리말로 해설한 것도 있다. 동생네가 손녀 딸 주겠다고 한권을 구입한다.

막고굴 관광을 마친 일행은 다시 돈황 시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한 후, 잠시 야광석제품 전문매점을 둘러본다. 이어 312번 도로로 변한, 실크로드를 달려 또 하나의 오아시스인 하밀로 이동하여, 4성급 호텔인 가격달 빈관에 투숙한다.


하밀로 향하는 도중에 지나는 사막

새로운 실크로드 312번 도로

사막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만년설의 천산산맥

톨게이트

하밀의 가격달 빈관


(2007. 6.10.)





우림 at 06/21/2007 12:51 pm comment

전문가가 아니면, 막고굻은 그렇지 뭐,명사산이 좋지, 일출, 일몰을 보면 좋겠는데,패키지 따라가면 맘 대로 돼나?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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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밤새 고비사막을 달린다. 기차가 레일의 연결부위를 지날 때마다나는 덜컹거리는 소리가 오히려 잡념을 없애, 나는 쉽게 잠이 들었지만, 예민한 집사람은 정차하는 역마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에 잠을 잘 수 없었다고 불평이다.


유원(柳園)에 도착하면 버스로 바로 돈황으로 이동하니까, 화장실도 들러야 하고, 돈황 기후에 맞도록 옷도 갈아입어야 한다. 그래서 5시 30분에 일찌감치 기상한다. 차량 하나에 화장실이 둘, 세면실이 하나 있어, 일찍 일어나니 붐비지 않아 좋다. 이어 가벼운 차림으로 옷을 바꾸어 입는다. 우루무치는 서울과 기온이 비슷하지만, 돈황은 한낮의 최고기온이 섭씨 35도~36도까지 치솟고, 햇빛이 강하기 때문이다.


6시가 지나자 사막에 여명이 밝아 온다. 복도에 나와 앉아 해뜨기를 기다린다. 30분 쯤 지나니 해가 뜬다. 하지만 사막의 일출은 생각만큼 장쾌하지 않다. 기차는 6시 40분, 유원역에 도착한다. 역에 돈황의 현지 가이드가 나와 있다. 22세, 깜찍하게 생긴 아가씨다. 역시 흑룡강성 출신으로 조선족 3세라고 한다. 돈황은 이곳에서 약 130Km 떨어져 있어, 차로 약 2시간 정도 이동해야하니, 유원에서 아침 식사를 하자며 일행을 역 근방의 식당으로 안내한다.

사막의 일출

유원도착


전형적인 중국 식당이다. 이른 아침이라 식당에는 우리 일행밖에 없다. 메뉴도 전형적인 중국의 아침식사 메뉴다. 쟈스민 차, 분유를 탄 것 같은 더운 우유, 멀건 흰쌀 죽, 삶은 계란, 누런 호빵 등이다. 그리고 만두가 추가됐는데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라 선뜻 손이 가지질 않는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찾는 이가 있지만, 커피가 있을 리 없다. 커피는 4성급 호텔에도 없고, 5성급 호텔쯤 가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커피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커피믹스를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뜨거운 물은 어디서건 얻을 수 있다.


식사를 마치고 승합차에 올라 돈황으로 향한다. 돈황으로 가는 길은 사막을 관통하는 일직선 도로다. 멀리 야트막한 검은 구릉(丘)이 마치 산맥처럼 이어지고, 가까이 보는 사막도 검은 색을 띤 곳이 많다. 이른 아침인데도 허허벌판의 사막에서 외롭게 통신선을 보수하는 사람의 모습도 보이고, 허물어진 토성 같은 것도 멀리 보인다. 한나라시대에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던 길이 약 300킬로미터에 달하는 '한나라 장성(長城)'의 잔해라고 가이드가 알려준다.

사막을 관통하는 일직선 도로

검은 사막

통신선을 보수하는 사람

흉노족을 막으려고 쌓았던 한나라 장성의 잔해


돈황이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백양나무 가로수가 보이고, 밭들이 눈에 뜨인다. 돈황에 가까워질수록 도로변의 가로수가 울창하다. 승합차는 9시 50분 경, 호텔인 돈황산장에 도착한다. 일행은 체크인을 하고 잠시 쉰 후, 10시 30분, 명사산으로 향하기로 한다. 돈황산장는 4성급 호텔이지만 고풍스런 분위기가 풍기는 멋진 곳이다.

돈황이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가로수와 밭이 보인다.

돈황진입

돈황산장

프런트 데스크

로비

일기 예보판


명사산(鳴沙山)은 돈황 시내에서 5Km 정도 떨어져 있다. 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다. 큰 도시 가까이 이처럼 사막이 있다니? 착각하기 쉽지만,  큰 도시 가까이에 사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막가운데  큰도시가있는것이다

명사산 가는 길


이윽고 승합차는 명사산 관광지 주차장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니 열기가 후끈하고, 투명한 햇살에 눈이 부시다. 오전이라 관광객들이 붐비지 않아 다행이다. 그늘에서 마작을 즐기며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 기념품 상점들을 기웃거리며 가이드를 따라 관공지로 들어선다.

길가 그늘에서 벌이는 마작판

기념품 상점

 정문

명사산, 월아천 풍경 명승구

정문현판

명사산


이곳에서 낙타를 타고 명사산을 오른다. 모래 썰매도 타보고, 월아천(月牙泉)을 둘러본다. 관광사에서 제공하는 기본은 낙타를 타고 월아천 주위를 둘러보는 정도이고, 명사산 제일 높은 봉우리까지 다녀오려면, 1인당 15불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우리 일행 8명은 여기까지 왔으니 제일 높은 봉우리까지 다녀오자고 쉽게 의견이 모아진다.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도록 커다란 주황색 덧신을 신고, 배부 받은 번호표와 같은 번호의 낙타를 탄다.

배부 받은 번호표와 같은 번호의 낙타에 오르고,


낙타를 타고 내릴 때는 안내원의 도움을 받는다. 일단 타고 나니, 말을 탔을 때 보다 훨씬 안정감이 있다. 마스크를 쓰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낙타 위에 높다랗게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서 산으로 오르는 기분이 그만이다. 이윽고 가장 높은 봉우리 아래에 이르러 낙타에서 내리고, 나무계단을 설치한 가파른 사면을 걸어,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서 신기루처럼 멀리 보이는 돈황 시가 아름답다.

낙타를 타고 명사산을 오른다.

낙타 위에서 본 명사산

정상 오르는 길

정상으로 이어지는 모래 능선을 걷고

정상에서 신기루 같은 돈황을 본다.


정상에서는 대나무로 만든 썰매를 타고 내린다. 썰매에 기름칠을 하면 빨리 달린다고 하지만, 경사가 급해 보여 그냥 타니. 미끄럼이 시원치 않다. 양손으로 모래를 밀며 꼬챙이질을 해본다. 밀리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손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다. 모래 썰매를 타려면, 썰매에 기름칠을 해달라거나, 장갑을 준비할 필요가 있겠다.

쌓아놓은 모래썰매 위에 앉은 집 사람과 동생


다시 낙타를 타고 월아천으로 향한다. 월아천은 명사산 안에 있는 초승달 모양의 호수다. 길이 약 2백m, 폭30m의 이 아름다운 호수는 수천 년 동안 한 번도 마른 적이 없고, 모래에 파묻힌 적도 없다고 한다. 자연의 신비가 오묘하다. 명사산의 아름다운 능선을 만들고, 월아천이 모래에 묻히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풍향(風向) 때문이라고 한다. 명사산의 바람은 항상 아래서 위로 분다고 한다.

월아천


약 1시간 30분 정도, 명사산 관광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러 돈황 시내로 귀환한다. 명사산에서 보는 일몰이 장관이라는데 그걸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섭섭하다. 식당에서 가이드, 동매 양이 돈황의 명주라는 황주(黃酒)를 건네준다. 사막에서 나는 인삼 같은 식물로 담근 술인데 남자에게 좋다고 한다. 알코올 도수는 17도, 맛은 소흥주(紹興酒)와 흡사하다. 술 이름을 메모를 하지 않아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다른 분들은 술을 안 하니, 매제(妹弟)와 내가 반주용으로 즐기기에 딱 좋은 술이다.

돈황의 상징인 반탄비파 무녀상


점심식사를 하고, 양관(陽關)으로 향한다. 양관은 돈황에서 남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관문으로, 한 나라 때는 실크로드 남로상의 요지였다고 한다. 오랫동안 바람과 모래에 시달려 지금은 사구(砂丘)위에 옛 흔적만이 보일 뿐이지만, 지금도 큰바람이 지나간 뒤에는 병기, 도기, 화폐 등이 발견된 다고 한다.

양관으로 향하다또 다른 관문인 옥문관 안내판을 본다.

멀리 보이는 양관


양관에 이르러 새로 쌓은 성문을 지나, 박물관을 구경하고, 관문에서 통행 허가를 받은 후 오픈 카에 올라 옛날 양관 터로 이동한다. 옛 양관 터에서 아득히 멀리 바라보이는 타크라마칸 사막이 아직도 인상에 남는다. 훌륭한 관광지다.

양관 성루

양관 박물관

장한 출사서역 상

통관증을 발급하는 아가씨

양관고지(陽關故址)


 옛 양관의 유적

 회랑

망대

아득하게 보이는 타크라마칸 사막


양관을 둘러보고 돈황으로 돌아오는 길에 돈황고성을 들르기로 한다. 다시 사막을 관통하는 직선도로를 달린다. 도로에서 운전연습을 하는 군 트럭의 행렬을 만난다. 이 도로에는 중앙분리대가 없어 추월을 하려면 반대편 차선을 이용해야한다.

운전교습 중인 군 트럭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막 가운데 웅장하게 서 있는 돈황고성에 도착한다. 돈황고성은 중일 합작영화 인 '돈황'을 촬영하기 위해, 1987년 일본이 투자하여 지은 세트장인데, 그 이후에도 이곳에서 약 20여 편의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성문을 들어서니, 대로가 나오고, 길 양쪽으로는 민가와 주점들이 즐비하다. 돈황과 고창,·낙양 등 중국의 5대 고도(古都)를 모델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땡볕 속에서 산책하듯 둘러보고 나온다.

돈황고성


호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간다. 오늘 저녁은 특별 식으로 낙타 발바닥 요리를 준비했다고 한다. 낙타가 귀할 때는 왕궁에서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요리였지만, 낙타가 흔한 지금은 서민들도 즐겨 먹는다고 한다. 맛은 우리의 도가니탕과 비슷한데, 돈황의 황주와도 궁합이 잘 맞는다.


명사산에서 낙타를 탈 때 줄곧 따라 다니며 우리들의 모습을 촬영하던 젊은이가 식당에서 TV를 통해 그 내용을 재생해 보여준다. 돈황의 유명한 유적들 사진과 함께 CD ROM에 담아 준다고 한다. 가격은 15불. 나중에 집에 돌아와 재생해 보니 화질이 많이 떨어진다.


별식으로 포식을 한 일행은 발 맛사지를 받고, 호텔로 돌아온다. 한낮에 그리 덥던 날씨가 저녁에는 알맞게 시원하다.

 


(2007. 6. 2.)






savina at 06/07/2007 03:09 pm comment

오늘 비로서 다 보고 갑니다.어제는 누가 심술을 부렸는지 그렇게 안 뜨더니..ㅎㅎ

 

 

savina at 06/07/2007 03:03 pm comment

우림님.불꺼진 창' 너무 감사합니다.옛날 배웠던 노래라 더욱 기뻐요. ^^*

 

 

우림 at 06/07/2007 12:04 pm comment

안녕하세요?실크로드 따라 오셨군요.돈, 신앙, 그리고 모험심, 열사의 사막이나, 만년설 덮인 고산들도 이들의 발걸음을 못 막네요.절묘하게 배치된 오아시스들이 큰 도움이 됐겠지요.이제는 철도가 깔리고, 고속도로가 달리는 길.편하게 따라가 보면서 발전하는 중국의 힘에 압도 당했지요.

 

 

savina at 06/06/2007 04:30 pm comment

우림님 명사산과 돈황 ㄱ그리고 그 유명한 월아천까지 잘 보았습니다.사진이 잘 안 뜨는 것이 있네요.고침을 해 보다가...너무 잘 봤습니다.감사합니다.

 

우림 at 06/06/2007 03:14 pm comment

안녕하세요?어제는 정선지맥 다섯번째 구간을 산행했지요,고양산, 상정바위산 등 1,000m가 넘는 산들이요.오지의 정선 땅, 트루판 보다 훨씬 좋답니다.앞으로 물건 살 때는 꼭 봄아줌마와 먼저 상의할께요.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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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가 다 된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편안하고 조용한 잠자리 덕분에 깊은 잠을 잔 모양이다. 6시 경에 잠을 깨니 심신이 모두 가뿐하다. 6시 30분, 모닝 콜 소리에 응답을 해 주고, 집 사람과 함께 호텔을 나와 거리 구경을 한다. 아직 어둑한 시간인데도 고층건물들이 즐비한 대로변에는 도로를 청소하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뜨인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의 우루무치


 

공중전화 부스와 화장실이 붙어있다

공원과 백화점


7시경 호텔로 돌아와 식사를 한다. 뷔페식이지만 음식의 종류가 다양하다. 즉석에서 조리해주는 에그 프라이와 삼색 우동, 여러 종류의 죽, 시리얼, 빵, 밥, 딤섬, 치즈, 햄, 소시지, 베이컨, 과일 등 동 서양 음식이 고루 갖춰있다. 순박해 보이는 여자 종업원들이 커피를 따라주고, 접시를 비우자 재빨리 다가와 치워준다. 아직 간단한 영어도 못하고 세련되지도 않았지만 손님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겠다는 마음이 전해온다.


먼저 실크로드를 다녀 온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김치, 고추장, 김, 깻잎 통조림 등을 준비해 왔지만, 호텔에서의 조식에는 전혀 불편한 것이 없고. 점심이나 저녁에 접하게 되는 현지식에도, 소수민족들이 많이 사용한다는 향초는 찾아볼 수가 없다. 양고기도 기름을 빼고, 맵게 조리하여 크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현지식에서 싱싱한 상추, 콩나무물 무침, 가지무침 등이 나온다. 따라서 김치나, 김까지는 필요가 없고, 입맛을 돋우는 고추장이나 깻잎 통조림 정도를 준비하면 충분하겠다.


8시 30분, 일행은 전용 승합차에 올라, 남쪽으로 약 75Km 떨어져 있는 남산목장으로 향한다. 시내를 벗어난 승합차는 일직선으로 쭉쭉 뻗은 도로를 달린다. 지방도로라서 그런지 중앙선 표시도 없고, 보수한 자리가 많아, 많이 덜컹거린다. 목장이 가까워지자 만년설을 이고 있는 천산이 보이고, 도로를 점령하고 있는 양떼들이 눈에 뜨인다.

남산 가는 길

눈 덮인 천산

 

도로까지 나온 양떼들


10시경, 천산목장 관리사무소 쯤 되는 곳에 도착한다. 무슨 일인지 현지인들이 심하게 다투고 있다. 1 위안(우리 돈 약 130원)을 지불하고 버스를 개조해 만든 공중 화장실에 다녀 온 후, 우리 일행은 말을 타고 천산폭포로 향한다.

손님 수 때문인지 심하게 다 투고 있는 마부들 - 뒤쪽의 울창한 나무는 설송

 

버스를 개조한 공중 화장실

 

우리들이 타고 갈 말


제주도의 조랑말도 타 보지 못해 내심 걱정을 했지만, 현지인 마부와 함께 타기 때문에 위험하지는 않다. 다만 안장이 너무 딱딱하여 엉덩이 고생이 심한 편이다. 엉덩이에 살이 없는 사람들은 미리 두툼한 방석을 놓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좋겠다.

마부와 함께 말을 탄다.- 위험한 것은 없지만, 말이 무척 힘들어 하는 것 같다.


말을 타고 언덕을 오르내리고, 계류를 건너기도 하며, 폭포로 향한다. 계곡으로 들어서자 냉기가 느껴지고, 개울가에는 두텁게 쌓인 눈이 가끔씩 눈에 뜨인다. 고도 약 2000m 가까운 산악지대라, 공기가 투명하게 맑다.


시간이 지나면서 말 타는 요령이 자연스럽게 익혀진다. 몸에 힘을 빼고 허리를 편 후, 말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요령인 것 같다. 마부들은 유목민족인 카자흐족이라고 한다. 남녀 구분 없이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면서 말을 몬다.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자, "안녕하세요?"라는 대답이 온다. 발음이 정확하다.  이들도 우랄알타이 어족에 속한다더니, 그래서 그런 모양이다.

연기 오르는 파오도 보이고

좁은 사면길도 지난다.

깎아지른 암벽과 계류 그리고 계곡 길

시간이 가며 익숙해져서 말 위에서 뒤돌아 보고 찍은 사진


약 30분 쯤 올라 시멘트다리 앞에 이른다. 자연보호를 위해 말들은 더 이상 오를 수 없다고 하여, 말에서 내린 일행은 계곡을 따라 걷는다. 깎아지른 암벽 사이로 골짜기는 점점 깊어지고 서늘한 기운도 심해지는 느낌이다. 신양교(新陽橋)라는 무지개다리를 건너 폭포 아래 선다. 천산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이 바위구멍을 통해 암벽으로 떨어지고 있다. 잠시 폭포 주변을 돌아 본 후, 말들이 기다리는 다리목으로 되돌아 와 다시 말을 타고 올라왔던 길을 내려선다. 출발점에 도착하여 수고한 마부 여인에게 1달러 팁을 주니, 무척 수줍어하며 받는다. 주위의 청정한 자연만큼이나 때 묻지 않은 모습이 보기가 좋다.

내가 탄 말과 마부-핸드폰이 성가셨던지, 내 잠바 주머니에 넣어 놓고는 싱긋이 웃는다.

신양교

신양교 안내석

천산폭포

암벽에서 솟는 물


남산목장에서 내려오다, 파오에 들러, 그 안을 구경한다. 파오의 안주인은 마유를 대접하기 위해 조촐한 다과상을 준비하고 손님들을 맞는다. 겉에서 보기보다 안은 널찍하고 화려하다. 마유도 처음 먹어보지만 먹을 만하다. 파오 구경을 마친 일행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우루무치로 향한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천산, 가까이 보이는 암봉(岩峰)과 목장, 그리고 사막인 평지- 이것이 남산목장 주변의 풍광이다.

우리들이 들어선 파오

화려한 파오의 내부

특이한 남산목장의 풍광


우루무치 시내로 돌아와서 동방용주점(東方龍酒店)이라는 식당에서 현지식으로 식사를 한다. 하지만 식성이 비교적 까다로운 집사람에게도 큰 불편이 없어 보인다. 가이드에게 신강성에서 가장 좋은 백주(白酒)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고성이라는 술을 내준다. 52도짜리로, 잘 알려진 우량예(五糧液)와 비슷하게 술맛이 부드럽다. 백화점 슈퍼에서 55위안에 팔고 있으니. 가격은 7~8불정도 하는 비교적 저렴한 술이지만 맛이 훌륭하다. 귀국할 때 우루무치 국제공항 면세점에서 이 술을 사려했으나, 비싼 마오타이, 우량예만 있고, 고성은 없어 실망한다.

켐핀스키 호텔 창문으로 내다본 고성 광고

점심을 마치고 신강자치구박물관(新疆自治區博物館)을 구경한다. 신강역사문물 전시실, 미이라 전시실, 민족민속 전시실의 3개의 전시구역으로 나누어진 이 박물관에서는 특히 미이라 전시실이 관심을 끈다. 약10여구의 미이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누란(樓蘭)의 미녀'라는 미이라가 유명하다. 이는 타클라마칸 사막에 인접해 있던 누란이란 나라의 3,800년 전 여인이라고 한다.

 

그 외에 투구판 아스타나 고분에서 출토된 당나라 초기의 '까오창' 왕국의 대장군 '장송' 의 미이라 등이 눈에 뜨인다. 이들 미이라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얼굴에는 화색도 도는 것 같으며, 머리카락, 수염, 손톱 등이 생생하고, 이도 튼튼해 보인다. 이는 화학적으로 처리한 이집트의 미이라와는 달리 타클라마칸 사막의 건조한 기후가 자연스럽게 사체에서 수분을 증발시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강자치구박물관

박물관의 미이라-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도본 찍은 것을 퍼왔다.


박물관을 나와 카페트 공장을 둘러 본 후, 돈황으로 이동하는 야간열차에서 먹을 과일을 사러 과일시장에도 가보고, 한국식당인 '한성'으로 이동하여 저녁식사를 한다. 손님들이 북적대는 이곳은 우루무치에 있는 두 개의 한국식당 중에 하나라고 한다.

과일시장

성업 중인 한국식당, 한성


식사를 마치고, 8시 44분 돈황 행 야간열차를 타러 우루무치 역으로 이동한다. 넓은 역 광장에는 다민족 탑이 있고, 역 부근에는 얼굴모양, 복장이 서로 다른 많은 인종들이 북적댄다. 객실은 4인 1실의 침대차다. 열차가 출발하고 우루무치를 벗어나자, 거친 황무지가 이어진다. 통신선을 연결한 통신주가 이어지고, 한두 대씩 차가 달리는 도로가 선로를 따라 오는 가하면, 가끔씩 풍력발전기들이 눈에 뜨인다.

다민족 탑

우루무치 역

타고 갈 열차

 

통신주만 따라오는 황무지

해 떨어진 사막 - 달리는 도로위의 차가 검게 보인다.


기원 전 100여 년 전부터 교역자, 모험가, 승려, 학자들이 생명에 위험을 느끼며 걸었던 황무지 사막의 실크로드를 우리는 지금 침대차에 누워 달리고 있는 것이다.

 


(2007. 5. 30.)





우림 at 06/02/2007 09:26 pm comment

발목에 반 기브스라니요?남산목장에서 낙마한 건 아니쟎아요? 서울 대공원에 가서 또 말 타신 모양이로군요.어쨌던 한여름에 힘드시겠네요. 하루 빨리 쾌차하세요.내일은 금남정맥 산행하는 날이라,오늘은 집에 죽치 앉아, 봄 아줌마 독촉에 따라3일째 사진을 정리했습니다.열심히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부군께 안부 전해 주십시오.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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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이 인천-우루무치 간을 주 2회 정기적으로 운항하게 되자, 관광회사들은 실크로드 패키지 상품을 개발하여 관광객들 유치경쟁을 벌인다. 덕분에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던 실크로드 답사가 한결 쉬워졌다. 한진관광에서 대한항공 마일리지 10만 마일로, 7박 9일간의 실크로드 여행비용(품격여행 999,000원)을 대체해 준다는 소리를 듣고, 동생네가 함께 가보자고 유혹을 한다.


실크로드.

학교에서 지리와 역사를 배우면서 들은 이름, 실크로드! 동양과 서양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곳, 불교문화와 이슬람문화가 충돌하고 타협하던 곳, 수많은 인종들과의 만남, 그리고 일확천금의 돈 벌이가 가능한 곳, 하지만 열사(熱砂)의 사막에서 신기루에 이끌린 죽음, 눈 쌓인 고산에서의 추락사와 동사, 흉포한 비적(匪賊)들과 벌여야하는 사투(死鬪) 등으로 앞서 이 길을 걷던 사람들이 남긴 유골들을 이정표 삼아 걸어야하는 모험의 길.

 

실크로드 지도- 실크로드는 하나의 길이 아니다. BC 100년경 지구상에 있던, 중국, 인도, 아라비아, 그리스-로마의 4대 문화권을 연결하는 다양한 교역로가 모두 실크로드다.(펌)


젊었을 때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랜드로버를 빌어 타고 한 달 정도의 일정으로 서안(西安)에서부터 로마(Rome)까지의 모험의 길을 달려보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러니 이번 여행이 우루무치, 투루판, 하밀, 돈황 등, 겨우 맛보기 정도의 실크로드 답사이기는 하지만, 실로 뿌리치기가 힘든 유혹이다. 망설이던 끝에 이미 일정이 잡힌 정선지맥 두 구간과 금남정맥 한 구간의 산행을 포기하고, 5월 15일부터 5월 23까지, 7박 9일간의 여정을 따라 나선다.


2007년 5월 15일 (화)

삼성동 공항터미널에서 4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지만, 시내를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출국장 모임의 장소에, 10분이 늦은, 5시 10분에 도착한다. 마일리지를 이용한 관광객이 8명, 실속여행자(899,000원)가 17명이라고 들었는데, 모두들 벌써 체크인을 하러 갔는지, 썰렁한 모임의 장소에는 동생부부만이 기다리고 있다.


여행계약서에 사인을 해주고, 인터넷 비행기표와 중국비자를 건네받는다. 관광회사 직원은 중국비자를 잘 챙기라고 특별히 당부를 한다. 우루무치 행 KE 883편의 출발시간이 7시 20분이니, 서두를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동생 부부와 함께 네 명만 달랑 남다보니, 공연히 마음이 바빠져서 서둘러 대한항공 체크인 카운터로 향한다.


에어버스 330-300 기종의 좌석은 2/3 정도가 찬 듯싶다. 7시 20분, 정시에 출항한 비행기는 예정시간 보다 2분 빠른 11시 48분에 우루무치 공항에 도착한다. 우루무치가 서울보다 1시간이 늦으니, 비행시간은 5시간 28분이 걸린 셈이다.


서역 삼만리(西域 三萬里).

우리나라에서 삼만 리 떨어진 서역 땅에 내려선 것이다. 그 옛날 혜초스님이 불경을 구하기 위해 지나 간 곳, 신라의 왕자가 다른 나라 왕자들과 함께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러 지나간 곳, 그 당시 그들은 2~3년을 걸어 이곳에 왔을 것이다. 생각에 이에 미치자 삼국을 통일한 신라인들의 진취적인 기상이 새롭게 느껴진다.


입국 수속은 의외로 간단하다. 비자 사본을 회수할 뿐, 여행사에서 작성해준 입국카드도 받지를 않는다. 가방을 찾아 나오는데도 가방 검사는 고사하고, 짐표를 확인하는 사람도 없다. 국제공항 치고는 비좁고, 초라한 입국장에 '한진관광 마일리지'라고 쓴 피켓을 든 젊은 현지가이드가 보인다.

우루무치 국제공항의 도착 항공기 알림판

 

작고 초라한 입국장- 종이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이 현지 가이드다


현지 가이드 뒤로 6사람이 모였지만, 두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포커스여행사, 보물섬 여행사 등 타 여행사 관광객들은 가이드를 따라 줄줄이 나가는데,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혹시 실속 여행자들을 따라 갔으면 골치 아프게 됐다며 가이드가 걱정을 한다. 이윽고 중국 이민국 직원이 비자를 들고 사람을 찾는다. 입국할 때 비자 사본을 회수하고, 출국할 때 비자 원본을 회수해야 하는 데, 실수로 원본까지 회수했던 이민국 직원이 비자 원본을 되돌려주려고, 주인을 찾는 것이다. 성함을 확인한 할머니 한 분이 비자를 받아 챙기고, 원본을 찾으러 이미그레이션 카운터까지 되돌아갔던 할아버지가 돌아오니, 비로소 일행 여덟 명이 모두 모인다. 가이드의 안내로 우리들은 공항을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승합차에 오른다.

33년생 할아버지와 38년생 할머니 부부 - 여행 내내 우리들의 좋은 귀감이 되어 주셨다.

이춘지씨 부부

동생부부

 

우리의 전용 승합차와 기사 양반


흑룡강성 출신의 조선족 3세라고 자신을 소개한 현지 가이드는 이 승합차가 앞으로 우리들이 이용할 전용차라고 알려주자 차 안에서 불만의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곳 신강성은 북경과 20년 정도 차이나(CHINA)는 곳이니, 어쩔 수 없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비로소 잠잠해진다. 1시 10분 경(서울시간 2시10분), 승합차는 켐핀스킨(Kempinskin) 호텔에 도착한다. 멋진 5 스타급 호텔이다. 고급객방(高級客房-Superior Room)의 방값이 1,280 위안(우리 돈 약 16만원)이다. 가이드는 6시 30분에 모닝콜을 하겠다고 한다. 첫날부터 강행군을 할 모양이다.

현지 가이드

 

돈황 가이드

 

켐핀스키 호텔


(2007. 5, 24.)


우림 at 05/28/2007 01:11 pm comment

안녕하세요?들러주시고, 답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팬이 되어주신다니 더 더욱 반갑군요.정기적으로 다니는 산행기록을 먼저 정리해야하기 때문에 기억이 남아 있을 때 정리해야겠다는 부담감은 있지만,어쩔 수 없이 실크로드 여행기록 정리는 다소 시간이 걸릴 듯 싶네요.먼저 정리해 놓으시면 컨닝도 할 수 있을 터인데....부군께도 안부 전해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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