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무릎까지 빠지는 눈속을 서너 시간 걷다보면 아름답다는 느낌은 사라지고...


2008년 2월 2일(토).

뫼솔산악회의 안내로 낙동정맥 10번째 구간을 산행한다. 코스는 『황장재-대둔산-두고개-먹구등-875m봉-느지미재-대전사』로 마루금 도상거리 약 12Km에 날머리의 실제거리는 약 8Km 정도이다.


주왕산을 지나는 이번 구간은 황장재에서 피나무재까지의 도상거리 약 24Km를, 눈 쌓인 겨울철을 피해, 한 번에 무박으로 주파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참여자들의 편의를 고려해야하고 수익도 생각하여야하는 산악회 입장에서는 명산인 주왕산을 무박으로 지나쳐버리기엔 너무 아쉽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주왕산 계곡과 가메봉을 코스에 넣고, 이 구간을 둘로 나누어 산행한다. 좋은 발상이다. 첫 구간은 황장재에서 왕거암까지 마루금을 걷고, 왕거암에서 가메봉을 거쳐 큰골을 지나 대원사로 하산한다. 두 번째 구간은 피나무재에서 역으로 왕거암까지 마루금을 걷고, 왕거암에서 가메봉과 사창골을 경유, 대전사로 하산한다.


이렇게 구간을 나눌 수 있는 것은 다시 두 가지 사항이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는 마루금의 구간 나뭄은 필히 왕거암이 되어야하고, 산행하는 시기는 눈 덮인 겨울철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일몰 전 하산이 가능하고, 주왕산 계곡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주왕산을 간다고 해서인지 평소보다 많은 30명 내외의 대원들이 참여한다. 추위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차창에는 성에가 하얗게 서린다. 아침식사를 위해 버스가 치악 휴게소에 잠시 머문다. 버스에서 내리니 아랫도리가 써늘하다. 버스가 조령터널을 지나기 전까지는 주위의 산들이 온통 눈에 덮여 하얗다. 하지만 조령터널을 지나자 마치 딴 세상에 온 것처럼 주위 풍광이 일변한다. 주위 산에는 눈의 흔적도 없다. 주왕산은 어떨까? 산악회에서는 이미 현지 상황을 조사했을 터인데도 별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눈이 없는 모양이다.


버스가 서안동 IC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9시 30분 경, 안동시내 통과한다. 이제 1시간이면 황장재에 도착할 것이다. 좁은 좌석에서 불편하게 앉아, 이것저것 산행준비를 하지만 산에는 눈이 많지않다고 생각하여, 스패츠는 준비하지 않는다. 하지만 버스가 황장재에 접근하자 주변 산에 눈이 하얗다. 서둘러 스패츠를 꺼내 착용한다.


산행을 시작해서 무덤 1기가 있는 능선 분기봉까지의 오르막길에는 잔설 정도의 눈이 깔려있지만, 주능선에 이르니 눈은 점차 깊어지고, 앞서 산행을 한 사람들도 없어, 선두가 럿셀을 하며 길을 낸다. 눈이 내린지는 한참 된 모양이다. 푸석푸석하게 얼은 이른바 죽은 눈이다.


선두가 설피도 없이 럿셀을 해서 길은 낸다. 럿셀도 힘들겠지만, 온통 하얗게 눈이 덮인 산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길 찾는 것이라고 한다. 길을 찾느라 신경을 쓰고, 럿셀을 하느라 힘을 쏟는 선두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먹구등을 지나면서 잠시 뒤로 빠진 엄 대장님은 두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한다. 두통은 체력소모가 과했다는 이야기이고, 어지럼증은 백설 위에서 길을 찾느라 신경을 쓰다 얻는 눈에 홀린 증상이다.


후미는 선두가 애써 내어 놓은 눈길을 따라 어기적어기적 쉬지 않고 열심히 걷는다. 두고개에서 선두와 중위그룹이 만나고, 먹구등에 이르러서는 후미마저 합류하여 모든 대원들이 기나긴 기러기편대를 이루며 함께 진행한다. 선두 그룹이 교대로 럿셀을 하며 나가다 길을 찾기 위해 잠시 멈춰서면 뒤따르는 편대도 올 스톱이다. 깊게 빠지는 눈 속을 3~4시간 동안 어기적대며 걸어보라! 평소에 아름답게 느껴지던 눈이 지겹게 느껴질 것이다.


황장재에서 느지미재까지의 도상거리 약12Km를 걷는데 선두, 후미 구분 없이 약 6시간이 걸렸다. 시간당 2Km를 걸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나마 날씨가 따듯하고 바람이 없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 만약 날씨가 춥고 바람마저 강하게 불었다면 길 찾는데 더 애를 먹었을 것이고, 신발 속에 눈이 들어가 발이 젖은 많은 대원들은 동상에 걸려 평생을 고생할 뻔 했다.


느지미재에서 대진사 주차장까지는 일반거리로 약 8Km가 된다. 눈 덮인 계곡, 어두운 밤길을 2시간 만에 주파한다. 그리하여 오늘의 총 산행시간은 약 8시간이 소요된다. 선두고 후미고 구분 없이 참여한 대원들이 모두 최선을 다한 결과다. 산악회가 홈 페이지에 계시했던 오늘 구간의 산행소요시간 7시간은 눈이 없을 때의 기준시간이고, 산행 전 후미대장이 버스 속에서 제시한 6시간은 후미를 독려하려는 정책적인 시간이겠지만, 실제로 걸린 8시간은 오늘 산행에 참여한 모든 대원들이 하나같이 최선을 다해 이룩한 시간이다.


다음 구간은 피나무재에서 왕거암을 지나고, 다시 느지미재에서 큰 골을 거쳐 대진사로 하산할 계획이라고 한다. 느지미재는 황장재에서 피나무재까지의 24Km중 대충 절반에 해당하는 약 12Km 지점에 위치한다. 이러다보니 산악회에서는 다음 구간의 산행소요시간을 얼마로 보고, 또 서울 도착시간을 언제로 예정하는 지와 참여 대원수는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 하는 두 가지 사항이 자못 궁금해진다.

버스는 10시 41분, 황장재에 도착한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0:31) 황장재 도착-(10:43) 산행시작-(10:53) 봉, 왼쪽 우회-(11:01) 이정표<황장재 1K/먹구등 7.9K>-(11:09) 능선분기, 우-(11:12) 봉, 왼쪽 우회-(11:16) 능선안부-(11;19) 쌍묘-(11:20) 갈평재/이정표-(12:13) 봉-(12:19) 봉-(12;21) 묘 1기-(12:48) 대둔산 갈림길-(12:54) 대둔산 정상-(12:58~12:59) 대둔산 갈림길-(13:12) 봉-(13:21) 799.7m봉-(13:51) 묘 있는 안부-(14:02) 732m봉-(14:09) 바위지대-(14:47~14:54) 두고개/간식-(15:17) 먹구등-(15:22) 봉-(16:07) 봉, 우-(16:22) 명동재-(17:02) 느지미재-(17:37) 큰골/이정표-(17:50) 내원마을 터-(19:00) 버스』 마루금 6시간 12분, 간식 7분, 날머리 1시간 58분, 총 8시간 17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산행준비는 버스에서 모두 마쳤음으로 버스가 황장재에 도착하자 바로 들머리로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은 날머리가 길어 자칫 일몰에 걸릴 가능성이 있음으로 느지미재까지는 3시 반(약 5시간 소요)까지 도착하고 날머리 소요시간을 2시간 30분로 예상하여, 6시까지는 하산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운 터라 전에 없이 서둘러 선두구릅에 끼어든다.

산행시작


황장재의 고도는 약 360m, 대둔산의 높이는 905m다. 잔설이 깔린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봉우리 하나를 왼쪽으로 우회하고 남쪽으로 뻗은 능선을 걸으며, 오른쪽으로 눈 쌓인 661.7m봉을 가까이 본다. 11시, T능선에 올라 오른쪽으로 진행하고 1분 후, 능선 안부에 세워진 이정표를 지난다. 황장재에서 1Km 떨어진 지점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정표상의 거리는 도상거리가 아닌, 실제거리인 모양이다.

잔설이 깔린 급 오르막

오른쪽으로 보이는 661.7m봉

첫 번째 이정표


11시 8분, 눈이 하얗게 덮인 묘가 있는 능선 분기봉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능선에는 잔설 수준을 넘어 눈이 제법 쌓여있지만 아직은 행보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11시 12분, 661.7m봉으로 분기하는 능선 분기봉을 왼쪽으로 우회한 후 안부를 지나 쌍묘가 있는 작은 봉우리에서 정면 나뭇가지사이로 가야할 대둔산을 본다.

능선분기봉의 묘

쌍묘에서 본 대둔산


11시 20분, 이정표와 V자 모양의 멋진 나무의자가 있는 사거리 안부에 내려선다. 길평재다. 이어 급경사 오르막을 거쳐, 11시 36분, T자 능선에 올라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능선이 좁아지며 쌓인 눈이 점점 깊어진다,

길평재의 나무의자

이정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날등길


11시 41분, 먹구등 5.8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쓰러져 눈에 묻혀있는 봉우리에 올라 왼쪽으로 내려선 후 봉우리 하나를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11시 52분, 먹구등 5.2Km/황장재 3.7K를 알리는 이정표와 송이 불법채취 금지 현수막이 있는 T자 능선에 올라 왼쪽 가파른 오르막으로 진행한다. 등산로 변에 반 이상이 찢겨 달아난 낡은 텐트가 방치돼 있다.

쓰러져 눈에 묻힌 이정표

가파른 T자 능선에 버려진 텐트


황장재에서 대둔산까지의 도상거리는 약 3.7Km이다. 눈이 많이 쌓인 길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대둔산까지는 앞으로도 1시간 정도는 더 가야하는데, 이곳 이정표에 황장재 3.7Km라고 쓰인 것을 보니 황당한 느낌이 든다. 급경사 오르막이 이어지고, 눈길은 점점 깊어져 정강이까지 이른다. 소나무들과 잘 어우러진 바위지대를 지나고, 눈앞의 봉우리를 대둔산으로 생각하고 오르지만 또 다른 봉우리가 눈앞을 막아선다. 다시 이를 넘는다. 전면에 너른 능선이 펼쳐지고, 무덤 1기가 하얗게 누워있다. 고산 분위기가 역역하다.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능선을 지나고

고산 분위기가 물신 풍기는 너른 능선에 묘 1기가 하얗다.


앞에 봉우리가 또 다시 보이지만, 넉넉하게 너른 능선, 그리고 원시림처럼 울창한 숲은 이미 대둔산 경내에 들어섰음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울창한 낙엽송 숲 사이로 평탄한 눈길이 이어지고 눈은 거의 무릎까지 빠진다. 12시 48분, 무덤 1기가 있는 능선 분기지점에 오른다. 선두그룹이 잠시 쉬었다가 왼쪽 마루금을 따라 출발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 봉우리를 넘어야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분기지점이다.

빽빽한 낙엽송 사이로 이어지는 눈길

 무덤이 있는 대둔산갈림길


오른쪽 대둔산으로 향한다.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푹푹 빠지는 눈길이 장난이 아니다. 12시 54분, 너른 대둔산 정상에 오른다. 비닐 정상표지판 하나가 달랑 나무 등걸에 매어져 있을 뿐 조망도 별로다. 12시 58분, 능선 분기지점으로 되돌아와 동남쪽으로 명동재와 먹구동을 보고 동쪽 조망을 카메라에 담은 후, 마루금을 따라 내려선다.

대둔산 정상

동쪽 조망

140도 방양의 조망, 나뭇가지 사이로 명동재와 먹구등이 가깝다.


완만한 내리막 능선이 이어진다. 눈이 없으면 힘들이지 않고 기분 좋게 달릴 수 있는 길이지만,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에서 앞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어기적어기적 걷자니 힘은 힘대로 들고 진행 속도는 거의 절반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1시 22분, 삼각점이 있다는 799.7m봉에 오르지만, 눈에 덮인 삼각점은 확인하지 못한다. 이어 좁은 날등길을 지나고, 무덤 1기가 있는 너른 능선 안부를 걷는다.

왼쪽 명동산에서 흐르는 능선

799.7m봉, 삼각점은 확인하지 못한다.

무릎까지 빠지는 날등길

앞사람 발자국 따라 어기적어기적 걷다보니 지겨워지기 시작하는 눈길


오르막길을 오르다, 왼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명동재와 먹구등의 깨끗한 모습을 본다. 2시 2분, 732.6m봉에 오르지만 역시 삼각점은 확인하지 못한다. 길 찾기와 럿셀에 바쁜 선두그룹은 삼각점을 찾는 노력을 포기한 모양이다. 이어 바위지대를 오른쪽으로 우회하고, 내리막길을 달려, 2시 47, 두고개에 내려선다. 선두그룹이 진행을 멈추고 모여 있다.

왼쪽으로 보이는 명동재와 먹구등

732.6m봉

바위지대 1

바위지대 2

두고개에서 멈춰선 선두그룹


길을 확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른쪽으로의 탈출을 의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선두가 멈춰 있으니, 겨우 숨을 돌리고, 산행 후 처음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즐긴다. 이윽고 대원들은 직진하여 가파른 오르막을 줄지어 오르고, 휴식을 마친 나도, 2시 54분, 서둘러 이들 뒤를 따른다. 급한 오르막을 지나 봉 하나를 넘고, 앞에 보이는 먹구등으로 향한다.

먹구등으로 향하는 대원들


3시 17분, 표지판이 걸려 있는 먹구등에 오른다. 두고개를 출발해서 24분이 지난 후다. 눈이 없다면 13~14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휴식도 없이 왼쪽으로 진행하여 명동재로 향한다. 봉우리 하나를 넘고, 좁은 능선을 걸으며 왼쪽으로 하얗게 얼어붙은 저수지를 굽어본다. 선두를 교대하고, 길을 찾느라 시간이 한 없이 흐른다. 다시 봉 하나를 넘고, 4시 22분, 명동재에 올라,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먹구동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명동재로 향한다.

명동재


내리막길에 느지미재가 가까워지자 럿셀을 하겠다고 앞서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정면 나뭇가지 사이로 왕거암, 가메봉이 가까이 보인다. 5시 2분, 느지미재에 내려서서 오른쪽 골짜기를 따라 하산한다. 해떨어진 다음에 걷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뛰듯이 달린다. 몸에 열이 나며, 찬 공기와 만나니 안경에 김이 서려 시야가 흐려진다.

정면으로 보이는 왕거암, 가메봉

느지미재


5시 37분, 가메봉 갈림길인 큰골에 이르고, 5시 50분, 옛 내원마을 터를 지난다. 6시가 넘으니 주위가 어두워진다. 헤드 랜턴을 켜고 국립공원의 잘 닦인 산책로를 달려 내린다. 7시 정각, 주차장 식당 앞에 정차해 있는 버스에 오른다.

큰골 이정표

내원마을 터

산행 종료


식당을 빌어, 산악회가 마련한 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버스는 7시 30분,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11시 25분 양재에 도착하여. 막차로 고속버스터미널까지는 왔으나, 7호선은 이미 끊긴 후다. 할 수없이 역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12시 20분 경 집에 도착한다. 자지 않고 기다리던 집 사람이 한마디 한다.


"당신이 청춘인줄 알아요?

 

(2008. 2. 3.)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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