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악산-실운현-응봉


춘천을 가려고 46번 국도를 북상하여, 가평읍에 접근하면, 갑자기 산이 높아지고, 골이 깊어지는 것이 흡사 심산유곡을 지나는 느낌이다. "지방 경계에 있는 긴 터널을 빠져 나가자, 설국(雪國)이었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생각난다.


가평군은 한반도의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아, 서울과 춘천간의 교통의 요지이고, 중부전선의 요충지다. 가평군은 동쪽으로 강원도 춘천시와 홍천군이 맞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남양주시, 남쪽으로 양평군, 북쪽으로는 포천군, 화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한강이 가평군의 군계 일부를 이루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산이 가평군의 울타리 노릇을 한다.


가평군이 다른 군과 경계를 이루는 크고 작은 산의 수를 세어보니, 31개나 되고, 군내에 있는 산이 또 22개가 된다. 결국 가평군은 50개가 넘는 산을 거느린 산의 나라(山國)인 것이다. 가평(加平)이라는 지명이 역설적으로 이를 잘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산의 나라에 평지를 가 한다. - 산속의 작은 평지라는 의미가 바로 가평(加平)이 아닌가?

가평의 산- 가평군 홈 페이지에서 전재


산꾼들이 이런 산의 보고를 무심히 지나칠 리가 없다. 가평의 군계를 이루고 있는 마루금 종주를 시도하는 산꾼들이 늘어나고, "가평군계"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지난해 잭 대장의 안내로 한북정맥 종주를 마친 산이사회는 올해 이 가평군계를 산행하기로 하고 첫 산행지를 촉대봉과 응봉으로 정한다.


2007년 1월 13일(토).

가평군계 첫 산행을 위해 집결지에 모인 대원은 모두 15명으로. 여자대원 5명, 남자대원 10명이다. 오늘 코스는 『홍적고개(4.4Km)-천수사 갈림길(1.4Km)-촉대봉(2.5Km)-응봉 군사도로(1.5Km)-실운현(4Km)-화악 2리』로 도상거리 약 13.8Km 정도다.


일반적으로는 실운현에서 시작, 홍적고개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하지만, 응봉 군사도로의 통행 가능성 여부가 불투명하고, 사창리에서 실운현까지의 도로가 제설이 되지 않아, 차량 통행이 불가능해지자, 할 수 없이 역 코스를 취한 것이다. 따라서 약 8Km에 걸쳐, 고도차 약 1000m 정도를 극복해야 하는 오르막이 큰 부담이 되고, 실운현에서 화악 2 리까지의 시멘트 도로를 걸어 내려와야 하는 것이 고역이다. 날씨는 추운데, 눈 쌓인 고산에서, 바람이라도 분다면, 어려운 산행이 될 듯싶다.


15명의 대원을 태운 25인승 밴은 9시 50분 경, 홍적고개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린 대원들은 스패츠를 착용하는 등 산행준비에 바쁘다. 산행준비를 마친 대원들은 통나무 계단 위에 모여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9시 57분,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9:50) 홍적고개 도착-(9:57) 산행시작-(10:13) 첫 번째 이정표-(10:36) 두 번째 이정표-(10:57) 세 번째 이정표-(11:25) 네 번째 이정표-(11:38) 930m봉-(11:46) 개구멍바위-(11:55) 다섯 번째 이정표-(12:01) 990m봉-(12:32) 암봉 우회-(12:56~13:30) 촛대봉 정상/중식-(13:50) 절벽-(14:30~14:40) 안부 휴식-(15:07) 군사보호지역 경고문-(15:34) 전봇대 보임-(15:38~15:41) 군사도로-(16:18~16:30) 설운현-(17:30) 하산 완료』점심시간 약 34분, 마루금 약 5시간 59분, 날머리 60분, 총 7시간 33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홍적고개에는 경기도의 "안녕히 가십시오." 안내판과 "어서 오십시오."라는 강원도 환영인사가 걸려있다. 그 외에 가평군에서 세운 몽덕산, 가덕산의 등산 안내판이 보이고, 촉대봉까지의 거리를 알리는 작은 팻말<촛대봉 5.8Km>이 서 있으나, 촉대봉 진입로에는 철조망이 쳐져있다.

홍적고개

들머리 단체사진- 경담

등산객들의 발에 밟혀 쓰러진 철조망을 넘고, 짧은 통나무 계단길을 지나, 가파르게 이어지는 널찍한 방화로를 오른다. 남쪽 사면의 방화로에는 눈 흔적도 없다. 날씨는 쌀쌀하지만, 바람도 없고, 쾌청하여 등산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다.

눈 흔적도 없는 방화로를 오르고


10시 13분, 첫 번째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에 선다. <촛대봉 5.2Km, 하산 0.6Km> 눈 덮인 삼각점이 있고. <춘천 408, 2005 재설> 오른쪽으로 촉대봉과 눈을 이고 있는 하얀 응봉(1436.4m)의 머리 부분이 보인다. 봉우리를 내려서서 안부에 내려서고, 다시 방화로가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10시 29분, 고도 500m 정도의 봉우리에 올라선다. 눈 쌓인 방화로를 오르는 대원들이 보인다.

촛대봉과 응봉

눈 덮인 방화로


10시 36분, 두 번째 이정표<촛대봉 4.5km, 하산 1.3Km>를 지나고, 10시 57분, 산행 시작 후 딱 한 시간 만에 세 번째 이정표<촛대봉 3.7Km, 하산 2.1Km>를 지난다. 2006년 3월 28일, 고래 대장이 실운현까지 우리와 꼭 같은 코스를 밟으며 산행을 한 적이 있다. 교통사고와 스키장에서 당한 두 차례의 다리 부상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데다, 감기 몸살로 몸의 컨디션이 최악인 상태에서 "꽃피는 춘삼월 칼바람과 눈보라와의 사투 ........"를 벌인 산행이었다고 한다.


그 때의 고래대장 산행기를 길잡이 삼아 산행을 하다 보니, 요소요소에 길 표지가 될 만 한 것을 빼 놓지 않고 기술한 정확성에 새삼 놀라고, 자세한 시간 기록이 큰 참고가 된다. 고래 대장은 눈보라 속을,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산행을 했음에도 세 번째 이정표까지 1시간 5분이 걸렸으니, 쾌청하게 좋은 날씨에 산행을 한 우리와 5분밖에 시간차가 나지 않는다. 이를 보니, 일몰 전에 오늘 산행을 마칠 수 있을까가 걱정이 된다.


계속하여 방화로를 오르내리며, 고도를 높여간다. 이윽고 방화로가 끝나고 능선이 이어지더니, 11시 18분 커다란 바위를 오른쪽으로 우회한 후, 암릉길을 오른다. 이어 11시 25분, 네 번째 이정표를 지난다. <촛대봉 2.9Km, 하산 2.9Km>

큰 바위를 우회하고 암릉길을 오른다.


눈 쌓인 가파른 경사를 오르며, 오른쪽으로 촛대봉을 보고, 뒤돌아 지나온 능선을 바라본다. 홍적고개 너머로 가덕산과 북배산이 가깝게 보인다. 11시 38분, 930m봉에 오르니, 북서쪽으로 명지산, 귀목봉 등으로 힘차게 이어지는 능선이 아름답다.

뒤돌아 본 가덕산, 북배산

명지산 방향의 조망


11시 46분, 고래대장이 개구멍 바위라고 명명한 바위 밑을 지나, 직벽으로 이어지는 위태로운 암릉길을 내려선다. 아래에서 지헌대원이 스틱을 받아주고, 손잡을 곳, 발 딛을 곳을 알려주며, 도와준다. 심산대장과 내가 통과한 후에도, 추운 곳에 혼자 남아서, 뒤에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11시 55분, 다섯 번째 이정표<촛대봉 2.1Km, 하산 3.7Km>를 통과하고, 12시 1분, 삼거리인 990m봉에 오른다. 이정표가 서 있다. <화악리 2.9Km, 홍적고개, 4.4Km, 촛대봉 1.4Km> 왼쪽 방향이 화악리 하산길이고, 촛대봉 오르는 길은 오른쪽으로 90도 굽은 정북 방향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흰 눈을 뒤집어 쓴 화악산이 보인다. 이곳까지 2시간 4분 걸렸다. 고래대장은 눈보라치는 악 조건에서도 2시간 6분이 걸렸음을 감안하면, 아직도 갈 길이 아득하다.

990m봉 이정표


12시 8분, 노송이 하늘과 땅 양쪽으로 가지를 벌리고 있는 큰 바위를 지나고, 이어서 암봉을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급경사를 오르막을 올라 다시 능선을 걷는다. 12시 26분, 눈 쌓인 능선길가에 대원들이 모여 쉬고 있다. 아마 후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들을 지나쳐, 혼자 촛대봉 정상을 향한다. 고도가 높아지며, 바람에 노출된 능선의 눈들은 부석부석 얼어 있다. 암릉을 우회하며 얼어붙은 발자국을 따라 오른다. 앞에 뾰족한 촛대봉이 버티고 있고, 왼쪽으로 하얀 논에 덮인 응봉이 보인다.

바위 위의 노송


12시 36분, 다시 커다란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하여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잠시 멈추어 서서,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대원들이 뒤따라오는 기색이 없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우리 일행은 쉬고 있다고 생각했던 능선길에서 점심식사를 했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는 가파른 오르막을 코앞에 두고 점심상을 차리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나의 성급한 판단이 잘못이었던 것 같다.

촛대봉 오르며 뒤돌아 본 지나온 길


12시 56분, 검은 정상석이 서 있는 촛대봉 정상에 오른다. 조망이 그만이다. 촛대봉은 동절기 설경이 좋다고 하지만, 동쪽과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눈들이 많이 녹아, 실제 설경은 별 볼일 없지만, 촛대봉 정상의 조망은 일품이다. 바로 가까이에 경기도의 최고봉인 화악산이 흰 눈을 이고 누워있고, 그 오른쪽으로 화악산에 버금가는 응봉이 역시 흰 눈에 덮여 있다. 사방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은 후, 정상석 옆의 너른 돌 위에 혼자 앉아 정상주를 마시고, 점심식사를 한다. 햇볕은 따듯하고, 바람 한 점이 없다. 어느 곳으로 눈을 돌려도 조망이 일품이다.

촛대봉 정상

강원도의 촛대봉 정상 안내판

촛대봉에서 본 화악산

촛대봉에서 본 100도 방향의 조망, 지암마을과 춘천호

60도 방향으로 보이는 춘천호

점심을 다 마쳤는데도 일행이 올라오는 기색이 없다. 주위의 풍광을 다시 카메라에 담으며 일행을 기다린다. 이윽고 심산 대장이 혼자서 올라온다. 점심을 마치고 먼저 출발했다고 한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일행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1시 30분 경, 심산대장과 함께 응봉을 향해 출발한다.


촛대봉을 내려서는 북쪽 사면은 눈이 깊게 쌓여 길이 보이질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응봉으로 방향을 잡고, 눈 많은 능선을 피해, 조심스럽게 사면을 내려선다.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화악산에서 설운현을 거쳐, 응봉에 이르는 능선이 깨끗하게 보인다. 장관이다.

촛대봉 내려서며 본 응봉


1시 50분 경, 3~4m 쯤 돼 보이는 절벽 앞에 선다. 절벽 아래에 빨간 표지기가 보인다. 우회로를 찾아보지만, 그럴 듯한 곳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고래대장은 이곳에서 정상부근까지 후퇴하여, 오른쪽으로 우회했다고 하는 곳이다. 심산대장이 절벽 끝의 나뭇가지를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서다, 나뭇가지를 놓고, 눈 쌓인 사면을 그대로 미끄러져, 눈 위로 떨어진다.


장가도 못간 아 새끼들이 둘씩이나 있는 몸인지라, 한참을 망설이다 두눈 딱 감고, 심산대장의 뒤를 따라 눈구덩이로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는다. 허리까지 눈에 묻힌다. 하지만 엉덩이에 닿는 감촉은 마치 솜 방석에 앉은 느낌이다. 묘한 기분이다. 다시 한 번 미끄러져 내려오고 싶은 기분을 겨우 억제한다.


정강이까지 빠지는 눈 속을 헤치며 안부를 지나, 능선에 올라서서, 신발 속에 가득 들어온 눈을 털어내고, 비로소 스패츠를 착용하느라 한없이 시간을 보낸다. 재빨리 스패츠를 신은 후, 기다리다 지친 심산대장이 먼저 출발을 하고, 정상 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지헌대원과 화봉대원이 모습을 나타낸다.


촉대봉을 지나서는 눈이 깊고, 길이 없다. 하지만 응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외줄기라 엉뚱한 곳으로 길을 잘못 들어설 염려는 없다. 심산대장이 앞장서서 럿셀을 하며 길을 낸다. 남쪽 사면의 눈은 많이 녹았지만, 북쪽 내리막 사면의 눈은 무릎까지 빠진다.

 

심산대장이 럿셀하여 터놓은 길


2시 30분경, 눈이 허벅지까지 빠지는 안부를 지나, 남쪽 사면의 오르막길에서 대원들이 모여, 후미를 기다린다. 여자대원 두 사람을 앞세운 경담대원이 모습을 보인다. 백두대간 때부터, 힘들어 하는 대원들의 뒤를 말없이 받혀주는 믿음직스런 모습이다. 과일을 나누어 먹고, 2시 40분 경, 심산대장과 먼저 출발을 한다. 이제 산행 가능한 시간은 2시간 30분 남짓하다. 일몰시간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지헌 부부가 뒤따라온다. 고도가 높아지며, 능선의 눈은 푸석푸석 얼어 있지만, 북쪽 사면과 안부의 눈은 여전하다. 지헌대원이 럿셀을 돕는다. 암릉지대를 지나, 3시 7분, 군사지역임을 알리는 경고문을 지나고, 3시 34분, 전봇대가 보이는 곳에 선다. 오랜만에 표지기들이 눈에 뜨인다. 이어서 짧은 너덜지대를 지나고 ,3시 38분, eoUfYYeSWKK_0rpmFBoRAQ.jpg응봉 군사도로에 선다. 지뢰매설지역이라는 위험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군사도로에서 보는 조망이 압권이다. 촉대봉부터 이곳까지 이어진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화악리 계곡이 아득한데, 오른쪽으로 화악산의 모습이 웅장하다.

위험지역 안내문

군사도로에서 본 지나온 능선 1

군사도로에서 본 지나온 능선 2

군사도로에서 본 삼악산 방면의 조망

가까이 본 화악산


주위 사진을 찍고, 서둘러 군사도로를 따라 내려선다. 정면으로, 광덕산, 상해봉, 복주산, 하오현이 펼쳐진다. 장관이다. 바람이 거세게 마주 불어온다. 사진을 찍느라고 장갑을 벗은 손이 시리다. 배낭을 벗어, 재킷을 꺼내 입고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추위 속에서도 우정대원과 지헌대원은 내리막에서 엉덩이 썰매를 타며 좋아한다.

군사도로에서 본 북쪽 조망- 광덕산, 상해봉, 회목현, 복주산

 

사창리


4시 18분, 차단기가 높게 들린, 설운현에 도착하여, 일행을 기다린다. 설운현에서 보는 북쪽 조망이 시원하다. 한북정맥을 하면서 걸었던 능선이 뚜렷하고, 수피령 그리고 멀리 대성산까지 조망된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짹 대장이 최후미다. 설운현에서 단체기념사진을 찍고, 4시 30분 경, 하산을 시작한다.

설운현


심산대장은 단체사진 찍기도 생략한 채, 먼저 하산한다. 역시 산행경험이 많은 심산대장이 다르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4Km나 남았는데, 중간에서 꾸물대다가 해가 떨어지고, 미끄러운 내리막 눈길에서 나둥그러지기라도 하면, 골절상을 입기가 십상인 상황이다. 안전제일 !!, 역시 관록은 무시할 수가 없다.


구불구불 눈 쌓인 군사도로가 한 없이 이어진다. 아이젠을 꺼내 착용한다. 지는 해를 받고 우뚝 솟은 아름다운 응봉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이윽고, 군사도로가 넓은 터널공사 도로로 이어진다. 무릎과 허리에 많은 부담을 주는 눈 덮인 내리막길을 서둘러 내려선다. 5시 27분, 저 아래 밴이 보이고, 수덕산(794.2m)이 황혼 속에 아름답다. 5시 30분 경, 버스에 도착하여 오늘 산행을 마감한다.

응봉

일몰 전 하산


(2007. 1. 15.)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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