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 노란 산수유에 맺힌 빗방울


2007년 3월 24일(토).

새벽부터 봄비가 내린다. 가뭄 끝에 전국적으로 내리는 단비다. 서울, 중부지방은 10~30밀리의 비가 내리고, 오후에나 그칠 것이라는 예보다. 거기에 바람까지 분다고 하니, 산행에 적합한 날씨는 결코 아니다. 아무리 방수채비를 단단히 해도 축축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고, 조망은커녕, 시계(視界)가 짧아 지형을 살필 수 없어, 길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바람까지 강하게 불면, 젖은 몸이라 체온을 빼앗길 위험도 크고, 공연히 마음만 바빠진다.


이런 날씨라면, 일반산행의 경우에는 쉬는 것이 보통이지만, 구간 스케줄이 꽉 짜인 대간산행에서는 이 정도 날씨에 빠지는 법이 없다. 오늘은 가고파 산우회가 안내하는 한남금북 정맥 여덟 번 째 산행일이다. 코스는『머구미 고개(2.7Km)-국사봉(1.9Km)-살티재(2.2Km)-604m봉(3.2Km)-쌍암재(3.1Km)-대안리(19번국도)』로 도상거리는 약 13.1Km이다.

구간 개념도


마루금은 주로 충북 청원군과 보은군의 군계를 따르지만, 571번 도로가 지나가는 쌍암재를 건너, 구룡산 분기봉에서 군계를 버리고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안리로 향한다. 등산로가 뚜렷하고, 표지기가 걸려있어 길을 잃을 이험은 크지 않으나, 475m봉에서 오른쪽으로 분기하는 능선을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버스가 경유지를 통과할 때 마다, 어김없이 고정멤버들이 차에 오르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침식사를 위해 음성휴게소에서 30분간 정차 한 버스는 10시 31분, 지난 번 하산했던 머구미 고개에 도착한다. 이 회장이 오늘은 비구름으로 시계가 불량하니, 선두와 후미가 함께 움직이자며, 산행준비를 마치고, 10시 35분에 출발한다고 선언한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0:33) 산행시작-(10:39) 등산로 진입-(10:46) 380m봉-(10:50) 능선분기봉, 좌-(10:57) 약 405m봉-(11:21) 약 500m봉-(11:30) 국사봉-(11:31) 헬기장-(11:40) T자 능선, 우-(11:44) 바위능선, 좌 우회-(12;05) 살티재-(12:25) 580m봉-(12:48) 무덤 1기-(13:02~13:11) 604m봉/간식-(13:18) 참호봉-(13:31) 안부사거리-(13:39) 520m봉-(13:43) 갈림길, 직진-(13:48) T자 능선, 좌-(14:02) 시멘트 도로-(14:07) 토지지신 석비-(14:19) 쌍암재-(14:25) 밭 지나, 숲으로-(14:27) 절단된 철조망-(14:41) T자 능선, 좌-(14:51) 426m봉-(15:19) 475m봉-(15:23) 우측 내리막 길-(15:43) 무덤 1기-(15:48) 시멘트 도로-(15:55) 19번국도』간식 9분포함, 총 5시간 22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대원들은 이미 버스에서 우중산행 준비를 마친 후라 특별히 시간이 걸릴 것이 없다. 10시 33분 경, 이 회장을 선두로. 32번 국도를 건너고, 용창공예 앞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걷다가, 왼쪽 시멘트 도로로 접어든다. 10시 39분,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오른쪽 임도로 들어서고, 바로 왼쪽 숲으로 이어지는 둥산로로 진입한다.

32번 국도를 건너, 용창공예 앞을 지나고

등산로로 진입한다.


10시 46분, 고도 380m 정도의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함께 이동한다던 대원들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속도를 내어 따라 갈 생각을 버리고, 내 페이스대로 꾸준히 걷는다. 10시 50분, 능선 분기봉에서 왼쪽으로 진행하여 안부를 지나고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뚜렷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요소요소에 표지기가 보여 등산로만 따라 걸으면 된다.

약 360m 정도의 봉우리


가파른 봉우리에 올라 안부로 떨어지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 과정을 반복하며 꾸준히 고도를 높여간다. 비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바람도 강해진다. 활짝 핀 산수유 노란 꽃이 빗물을 함초롬히 머금고 있다. 조용한 산길을 아무 생각 없이 꾸벅꾸벅 걷는다. 시계가 고작 2~3m 정도라 주위를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다. 돌 많은 날등 길을 지나 약 500m의 봉우리를 넘은 후, 11시 30분, 국사봉 정상(586.7m)오른다. 비에 젖은 삼각점이 보인다.

돌 많은 날등길


 

국사봉 정상의 삼각점


국사봉을 내려서서 바로 헬기장을 지난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등산로는 날등을 거쳐, 오른쪽으로 내려서면서 우람한 소나무들 사이를 지난다. 11시 40분, T자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향하고, 이어 등산로는 왼쪽으로 굽어 비탈길을 내 닫는다. 11시 44분, 바위능선을 왼쪽으로 우회하여 다시 능선에 올라 바위지대를 지난다. 이어 510m 정도의 봉우리를 넘어 오른쪽으로 내려서서, 12시 5분, 안부 사거리에 이른다, 오른쪽으로 돌탑이 있는 살티재가 보인다.

바위능선을 지나고,


 

살티재 돌탑


비에 젖은 미끄러운 급경사 오르막을 거쳐 봉우리 하나를 넘고, 12시 25분, 580m봉에 오른다. 다시 봉우리를 넘어 능선을 따라 이어지던 등산로가 왼쪽으로 급히 떨어지더니,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12시 48분, 노란 우의를 입고 우산까지 바쳐 든 후미대장이 무덤 곁을 유유히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580m봉에서 독도를 하는 심산대장

낙엽 쌓인 무덤가를 지나는 후미대장


미끄러운 급경사 오르막을 천천히 오른다. 벌목한 나무들이 보기 싫게 버려진 604m봉이 바로 앞에 다가온다. 1시 2분, 오늘 구간에서 가장 높은 604m봉 정상에 오른다. 삼각점이 있으나 마모가 심해 글자 판독이 어렵다 빗발은 많이 가늘어 졌지만, 젖은 땅에 앉아, 식사를 할 기분이 아니다. 3시가 조금 넘으면 하산 할 듯싶으니, 하산 후 식사를 하기로 하고, 선채로 심산대장의 샌드위치를 나누어 먹고, 1시 11분, 604m 봉을 내려선다.

눈앞의 604m봉

604m봉 정상


1시 18분, 군 참호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 3줄로 차탄 막을 친 철사줄을 따라 급경사 내리막을 달려 내린다. 1시 31분, 안부 사거리에서 직진하여 520m봉에 올랐다 내려서면서 왼쪽으로 크게 돌고, 다시 봉우리 하나를 넘어, Y자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눈앞의 봉우리를 오른다. 이어 T자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돌고, 봉우리사면을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무덤이 있는 곳에서 숲을 벗어나, 임도를 거쳐, 2시 3분,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다.

520m봉

T자에서 왼쪽 능선길

무덤가로 내려서 숲을 벗어나고

시멘트 도로에 내려서서, 왼쪽 마을을 본다.


시멘트 도로를 건너, 임도를 따라 오른다, 오른쪽 길가에 '토지지신'이라는 검은 색 석비가 보이고, 그 너머로 잘 손질된 묘 여러 기가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4시 8분, 임도는 고개 마루턱에서 끊어지고, 오른쪽 등산로에 표지기가 걸려 있다. 등산로를 따라 작은 봉우리를 넘고,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서면서, 오른쪽에 특이한 형태의 무덤을 보고 카메라에 담는다. 2시11분, 왼쪽으로 인삼밭과 마을을 보면서, 직진하여 맞은편 잣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토지지신

특이한 형태의 묘

비구름에 덮인 인삼밭과 마을


잣나무 숲을 지나, 잡목 넝쿨이 무성한 고개를 넘어, 2시 19분, 571번 도로가 지나가는 쌍암재에 내려선다. 교통 표지판을 카메라에 담고, 도로를 건너, 시멘트 옹벽을 올라선다. 너른 빈 밭이 펼쳐지고, 밭 뒤로 늘어선 나무들이 안개 속에 그림 같다. 밭을 가로 지른다. 해동(解凍)이 된 밭에 발이 푹푹 빠진다. 겨우 밭둑으로 올라서고, 밭이 끝나는 지점에서, 2시 25분, 왼쪽 숲으로 들어선다.

쌍암재

해동이 된 너른 밭


꽃망울이 많이 커진 진달래 군락지로 들어서자 바로 갈림길이다. 오른쪽에 표지가가 걸려 있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던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으로 굽어지며, 눈앞에 묘한 광경이 펼쳐진다. 철조망 맨 윗단에 표지기들이 촘촘히 걸려있고, 그 아래 철조망을 깨끗이 절단하여, 신작로 같은 등산로를 둟어 놓았다. 어느 극성맞은 대간꾼의 솜씨인 모양이다.

대간꾼들의 함성


최후미로 쳐져 가파른 오르막을 천천히 오른다. 심산대장도 후미대장도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어느새 비도 그쳤다. 활짝 핀 노란 산수유가 빗방울을 머금고 있어 더한층 아름답다. 2시 41분, T자 능선에서 왼쪽으로 내로서고, 다시 봉우리 하나를 넘은 후, 2시 51분, 소나무들이 아름다운 426m봉을 지나고, 2시 57분 안부에 내려선다.

비는 그쳤지만 비구름은 여전한 426m봉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봉우리 두 개를 넘고, 날등길을 거쳐, 3시 19분, 시멘트 벽돌로 쌓은 참호가 있는 475m에 오른다. 이런 시멘트벽돌 참호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능선을 따라 3곳에 배치되어 있다. 475m봉을 내려선다. 오른쪽 급경사 내리막으로 사람들이 내려 간 흔적이 보인다. 표지기는 없지만, 마루금은 475m봉에서 오른쪽 90도 각도로 급히 떨어지는 능선으로 이어진다는 선답자들의 후기를 기억하고,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급경사 내리막을 조심조심 내려선다.

475m봉의 참호

위쪽 능선에서, "가고파, 가고파."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응답을 하니, 잠시 기다려 달라는 소리가 함께, 473.1m봉 쪽에서 되돌아오는 후미대장의 모습이 보인다. 후미대장은 내 모습을 보더니, 이 회장과 통화를 한 후, 비탈길을 따라 내려온다. 산악회에서 나누어 준 개념도에는 475m봉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약 500m 정도 떨어져 있는, 473.1m봉에서 동쪽으로 진행하여, 32번 국도로 내려서도록 마루금이 그어져 있다. 산악회가 그린 마루금을 따라 473.1m봉으로 향하던 후미대장은. 표지기가 보이지 않자 이상하게 여기고 되돌아오다, 나를 만난 것이다.


둘이서 낙엽이 쌓인 비탈길을 내려선다. 길이 희미해지더니, 어느 사이에 사라져버리고, 표지기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길을 잘 못 들어선 것이 분명하다. 잠시 멈추어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우리는 지금 산 사면에 서 있고 왼쪽으로 펑퍼짐한 능선이 보이는 것 같은데, 오른쪽은 안개에 가려 지형을 식별하기 어렵다.


왼쪽 능선에 올라 보니, 저 아래로 마을과 국도 위를 달리는 차량들이 보인다. 능선을 따라 없는 길을 만들면서 내려서서, 3시 53분, 커다란 무덤을 지나고, 시멘트 도로에 내려선다. 저 아래 버스가 보이고, 3시 55분, 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 입구에 서 있는 버스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감한다.

버스가 서 있는 마을입구 시멘트 구조물


버스에 도착해 보니, 시멘트길 건너, 정맥 마루금인 절개지에 표지기가 요란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알바를 한 것인가? 475m봉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분기하는 하산지점을 모르고 지나쳤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다른 하나는 475m봉을 지나, 오른쪽 비탈길을 따라 내리다가, 오른쪽 내리막 능선으로 붙어야하는데. 안개 때문에 오른쪽 능선을 보지 못하고, 왼쪽 펑퍼짐한 능선을 따라 내려서서, 마루금을 벗어나게 된 모양이다.

 

4시 10분 경, 473.1m봉까지 진행하여 전방의 국도로 내려선 대원한 한 사람이 도착하자, 버스는 바로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우중이라 식사준비가 어려워, 식사는 휴게소에서 해결하기로 한다.

 


(2007. 3. 25.)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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