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미회-여미관, 여주 역사실 입구에 걸린 목은 이색의 시화(詩畵)<사진 클릭하면 커짐> 막국수 촌을 출발한 버스는 2시 50분 경 신륵사 관광지에 도착하고, 버스에서 내린 나는 우선 여주 박물관 중의 하나인 황마관을 둘러본다. 전시된 조선시대 왕의 즉위식, 즉위식의 과정, 어보 등에 관한 설명과 관련 문헌들은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의 자료와 대동소이하지만, 이외에 세종대왕의 훈민 정음창제, 과학과 의학의 발전, 학문과 음악 등 세종대왕의 업적에 관한 자료들을 둘러본다,
여주박물관(황마관)
조선시대 왕의 즉위식 외(사진 클릭하면 커짐)
세종, 왕이 되시다.(사진 클릭하면 커짐)
아울러 조선 왕릉에 관한 자료와 신륵사 전경모형과 명성항후 생가모형을 전시한 기획전시실을 둘러 본 후, 여주가 낳은 소설가 류주현 문학 전시실을 돌아본다..
조선 왕릉에 관한 자료를 전시한 기획전시실
신륵사 전경모형
명성황후 생가모형
여주의 문인 묵사 류주현
대표작, 조선총독부와 대원군
문학과 예술 1(사진 클릭하면 커짐)
문학과 예술 2 황마관을 나와 여미관으로 들어선다. 여미관에는 고달사지의 원종대사탑비 비신, 혼암리 선사유적지, 신륵사, 고달사지, 영릉 등에서 출토된 중요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여주박물관(여미관)
여미관 입구(사진 클릭하면 커짐)
여미관 카페에서 본 남한강
고달사 원종대사탑비 비신,
안내문
기념 촬영하는 곳
여주 역사실
고려시대의 여주(사진 클릭하면 커짐)
전략적 요충지, 고분과 관방유적(사진 클릭하면 커짐)
고달사 발굴유적
조선시대의 여주 1(사진 클릭하면 커짐)
조선시대의 여주 2
고천시옥
왕비의 고장
왕비의 삶(사진 클릭하면 커짐)
이강공의 오강정 편액
조선 왕실의 교육 (사진 클릭하면 커짐) 두 곳의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니 어느덧 3시 10분이 넘었다. “가” 코스버스 도착시간이 3시 28분이니, 신륵사를 돌아볼 시간이 되지 못한다. 관광안내소에 들러 여강길, 여주 맛길에 관한 자료들을 얻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려 이를 타고, 명성황후 생가로 향한다.
명성황후 생가 가는 길 4시 04분, 순환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려, 명성황후생가로 향해, 왼쪽에 보이는 감고당을 지나, 명성황후생가 종합 안내도, 생가 안내, 연못을 카메라에 담고, 바로 황후생가로 들어선다.
입구
명성황후생가 종합 안내(사진 클릭하면 커짐)
명성황후생가 안내(사진 클릭하면 커짐)
연못과 정자
생가 전경
생가 안내 1
생가 안내(사진 클릭하면 커짐)
생가 안내도(사진 클릭하면 커짐) 행랑채, 사랑채를 지나, 안채로 들어서서, 이를 둘러 본 후, 오른쪽 협문을 지나 뒤뜰과 별당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어 황후의 탄강 구리비를 카메라에 담고, 명성황후 기념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행랑채
사랑채 1
사랄채 2
안채
규방
건넌방
안채 안내(사진 클릭하면 커짐)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협문
뒤뜰
장독대
별당
비각
明成皇后 誕降舊里(명성황후가 태어나신 옛 마을)
안내 명성황후 기념관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건립하였다. 전시실은 면적 520㎡로 명성황후와 고종의 어진 등의 유물 그리고·같은 시기에 활약하였던 여흥 민씨들의 유물및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백과사전에서 발췌) 기념관 앞뜰에 세워진 명성황후 순국숭모비와 추모비를 카메라에 담고,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서, 오른쪽 특별전시실에 계시된, 명성황후의 아드님이신, 순종황제의 장례식사진을 둘러본다.
명성황후 기념관
명성황후 순국숭모비
명성황후 추모비
특별전시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 순종황제(사진 클릭하면 커짐)
순종황제 장례식(사진 클릭하면 커짐) 이어 고종황제 즉위식 사진과 명성황후 진영을 둘러보고, 명성황후의 인품과 학식, 그리고 사상 등의 자료를 살펴본다.
고종황제의 등극
명성황후 진영
명성황후진영과 고종어진
인품과 학신 (사진 클릭하면 커짐)
학식
명성황후 관련 궁증유물(사진 클릭하면 커짐)
교지
아! 옥루호
명성황후 시해도 1
명성황후 시해도 2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으로부터 요동반도를 받았으나 독일, 프랑스, 러시아의 3국 간섭으로 배상금만 받고 요동반도를 토해내고 만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명성황후는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을 견제하려 하다가 희생당한 것이다. 일본은 일국의 국모를 시해한 천인공노한 만행을 은폐하려고, 일본 낭인들이 미우라 공사의 사주를 받아서 우발적으로 저질러진 사건이라고 호도하지만, 어찌 한 나라의 국모살해가 공사의 개인적인 일탈로 이뤄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일본은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을 견제하려는 명성황후를 돈으로 매수하려다 실패하자, 그녀를 없애기로 결정한 것이다.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을 밝힌다.”의 저자 최문형은 미우라가 우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내무상으로서 주한 일본공사로 자천(自薦)한 “이노우에 가오루”의 지침이었음을 밝힌다. 그는 일본의 원로로서 막강한 권력자였고 한국을 매우 잘 아는 조선 전문가였다. 저자는 명성황후의 시해가 이노우에의 일본 체류기간에 있었던 일, 각의의 움직임, 그리고 외교관과 외무상의 서신 등을 근거로 명성황후의 시해는 일본의 의지였음을 증명한다.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을 밝힌다. 명성황후 기념관을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기념관 옆에 있는 문예관으로 가 보지만 문이 굳게 닫혀있다. 정자를 카메라에 담고, 잠시 민가마을을 둘러보고 감고당으로 향한다.
민가마을
감고당
감고당 편액 – 영조의 친필이다. 감고당(感古堂)은 조선 후기에 건축된 건물로, 조선 고종의 왕후 명성황후 민비의 생가이자 숙종비 인현왕후의 친정아버지 민유중의 묘소를 관리하면서 지키던 묘막이었다. 인현왕후가 친정을 배려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일제 강점기 때 파괴되고 6.25 전쟁 때 다시 파괴되었으나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복원공사가 시작, 안채가 중수되었고 1995년에는 행랑채와 사랑채, 초당 등이 복원되었다. 감고당은 조선시대 중부지방 사대부집안의 전형적인 건축구조를 보여주고 있다.(이상 관련자료 발췌)
안채
중문채
사랑채
행랑채 감고당을 둘러본 후 관광순환버스 정류장으로 나와, 버스를 기다려 이에 오릉 후, 5시 25분 경, 여주 역에 도착, 5시 34분 발 열차를 타고 귀가한다. (2018.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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