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여행(1)

국내여행 2012. 12. 18. 10:47

 

노화도 가는 뱃길.

 

‘김휴림의 아름다운 여행’을 따라 2012년 8월18일~8월19일 1박 2일 일정으로 보길도를 다녀왔다. 지난 7월 25일자 조선일보의 ‘오태진 칼럼 - 길 위에서’에 실린, ‘김휴림의 아름다운 여행’ 이야기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참여하게 된 것이다.

 

여행사 홈페이지인 ‘김휴림의 편지’에 들어 가본다. 조용하고 차분한 여행을 위해서. 여행신청하려면, 우선 회원에 가입하라고한다. 그뿐 아니라 참가신청은 본인 포함 2인으로 제한하고,(가족의 경우는 부부와 자녀 2명 포함 모두 4명) 산악회 사람들의 신청은 받지를 않으며, 버스 안에서는 대화를 금한다고 한다.

 

마침 보길도 1박 2일 상품이 있어, 회원가입을 하고, 신청을 한다. 여행비용은 1인 1실 침대 방 사용조건으로 195,000원이다. 이번 여행의 참여인원은 38명인데, 80%이상이 여자들이다. 나처럼 오태진 칼럼을 보고 온 사람들이 상당수 있어 보인다. 여행을 마친 후의 소감은 ‘아름다운 여행’과는 달리,

 

‘잘못 왔구나.’ 였다. 이유는,

 

첫째 버스를 타는 15시간여 동안,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지내려니 수양이 부족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니, 무척 답답했다. 함구령이 아름다운 여행의 필요, 충분조건인지는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둘째 여유 있고 차분한 여행을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공룡알해변과 예송리해수욕장에서 각각 1시간동안 바다를 망연히 바라다보아야 하는 것도 우리처럼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는 큰 고역이다. 산악회 사람들 신청을 받지 않는 이유를 알겠다. 두 어 시간 바다를 멍청하게 바라보기 위해, 벙어리가 된 채, 5~시간 동안 버스를 탔다면 산악회 사람들은 아마 폭동을 일으켰을 것이다.

 

보길도 지도(펌)

 

셋째 홈페이지 안내문에는 ‘이번 여행이 보길도를 여행할 때 꼭 놓치지 말아야 할 여행지를 꼼꼼히 돌아보는 알찬 일정이라고 광고를 해 놓고는, 남들이 다가는 ‘송시열의 글 쓴 바위’가 일정에 빠져있다. 하여 그 이유를 물으니, 그곳에는 가봐야 별로 볼 것도 없고, 버스 진입이 안 돼 10여분 정도를 걸어야하기 때문이란다.

 보길도 관광지도(펌)

  여행사의 일정계획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는 농성 59일 만에, 삼전도로 나와, 청나라 황제 홍타지에게 항복을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윤선도(1587~1671)는 이 더러운 땅에서 더 살 수 없다고 식솔들을 이끌고 제주도로 향한다. 하지만 도중에 풍랑을 만나 보길도로 대피해서, 섬을 둘러보니, 풍광이 수려한지라, 섬에 눌러 앉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정원과 서재를 짓고, 풍류세월을 보내며, 조선시대 국문학을 대표하는 시가를 남긴다.

 

윤선도보다 20년 후배인 송시열(1607~1689)은 서인의 거두로 남인인 윤선도와는 정적이다. 하지만 이 양반도 죄를 입어 늘그막에 제주도로 귀양살이를 가다, 태풍으로 보길도에 들렀다, 선백도 마을 앞 바닷가의 암벽에 자신의 울적한 심사를 적어 놓은 것이 ‘송시열의 글 쓴 바위’라고 한다.

 

八十三歲翁(팔십삼세옹) 83세 늙은 이 몸이
蒼波萬里中(창파만리중) 거칠고 먼 바닷길을 간다.
一言胡大罪(일언호대죄) 한마디 말이 어째 큰 죄가 되어
三黜亦云窮(삼출역운궁) 3번이나 쫓겨 가니 신세가 궁하구나.
北極空瞻日(북극공첨일) 북녘 하늘 해를 바라보며
南溟但信風(남명단신풍) 남쪽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뿐일세.
貂裘舊恩在(초구구은재) 초구에 옛 효종의 은혜 서려 있어
感激泣孤衷(감격읍고충) 감격한 외로운 속마음 눈물 지우네.

 

송시열 선생은 성격이 과격하여 정적(政敵)들이 많았으나 그의 문하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고, 글씨에도 일가를 이루었다고 한다. 하여 보길도를 찾는 시인 묵객들은 세연정에 앞서, 이곳 글 쓴 바위를 먼저 찾는다고 한다. (이상 완도군 홈 페이지에서 관련 내용 발췌)

 

넷째 이번 1박 2일 동안에 걸은 시간이 모두 합쳐서 고작 2~3시간 정도다. 휴림(休林)을 따라와서 그런가?

 

게다가 내 옆에 앉은 사람이 3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몸집이 큰 아줌마다. 짝꿍이 아줌마니 좋지 않겠느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왼손 무명지에 낀 한 돈짜리 금반지는 결혼반지는 아니고, 무슨 기념반지일 터이니, 그렇다면 결혼을 하지 않은 올드미스인가? 흔치 않은 보라색 모자, 보라색 바지차림도 눈길을 끈다.

 

여자 입장에서는 늙은이와 장시간 나란히 앉아 가야하는 상황이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고, 그런 느낌이 알게 모르게 내게도 감지가 된다. 늙은 죄 밖에 없는데, 생판 모르는 여자에게 이런 대접을 받다보니, 어처구니가 없고, 화가 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가 없으니 죽을 맛이다.

 

우리 뒷좌석도 가관이다. 남자 둘이 앉아 있는데, 한 분은 35년 생, 다른 사람은 74년 생이다. 배 이상 나이 차가 나는 두 사람이 오랫동안 나란히 앉아 있으려니, 서로 거북해 하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라 하겠다.

 

배가 통천항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남들은 다 내렸는데, 내리지를 못하고, 소안도로 간 사람이 있어. 여행사에서 픽업을 해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더니, 다음 날 아침, 버스 출발시간이 지났는데도. 한 사람이 나타나지를 않아 버스가 출발을 하지 못한다. 김휴림씨가 마이크를 잡고, 어제 배에서 내리지 못한 양반이 오늘 아침 또 늦는다며, “사람이 좋아 그런 모양이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한다. (그럼 시간을 지킨 사람들은 모두 좋지 않은 사람들이란 말인가? 공대 출신이라더니 과연 말 재주가 메주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이 양반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버스 안에서는 함구령을 무시하고, 서서히 불평하는 소리가 높아진다. “저런 사람이 사위가 되면 못 살 거야.” 하는 아줌마 소리가 들리더니,, 15분이 넘자, “택시 타고 오라고 하고, 갑시다.” 라고 점잖게 제안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예정된 출발시간보다 18분 늦게 젊은 양반이 모습을 보인다. 바로 74년 생 젊은이 인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제 자리로 가 앉는다. 그러니, 그 옆자리의 35년 생 어르신은 얼마나 황당했겠나?

 

.여정(旅情)은 연정(戀情)이라는 말도 있고, 자고로 노소동락(老少同樂)은 즐거움이라고 했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집에 와서 문득 ‘내가 74년생과 자리를 바꿨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순발력이 많이 떨어져, 그 때는 그 생각을 못 했으니 어쩌랴. 기분만 더욱 비참해진다.

 

젊은이가 “안철수 이야기”를 들고 다닌다. “사명감이 없는 사람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안철수 교수에게 어떤 사명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출마하겠다며, 출마여부를 저울질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가 않다. 사명감이 있고, 죽어도 이를 관철해야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지지율 여부와는 관계없이 선뜻 출마를 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기에, “안철수 이야기”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책이 가까이 있다 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뒤를 돌아보며, 책 잠깐 볼 수 있느냐고 물으니, 젊은이는 선선히 책을 내민다. 하지만, 그 순간 김휴림씨가 닥아 오더니,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니, 말을 하지 말란다. ‘이런 병신! 당장 차 세워, 걸어가겠다.’라는 소리가 목까지 올라왔지만, 이미 지불한 195,000원의 회비가 아까워 입 밖으로 뱉지는 못하고 참는다.

 

이야기가 무척 장황해 졌다. 하지만 김휴림씨의 사업을 방해할 의도는 전혀 없다. 오히려 조용하고 아름다운 여행을 추구하려는 그의 뜻을 높게 평가한다. 다만 버스 안에서 말을 못하게 한다고 해서, 아름다운 여행이 되는 것은 아니란 점을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이윽고 버스는 완도에 도착하여, 12시 30분 경, 바닷가에 있는 기사식당 앞에 멈춘다.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두부찌개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즐긴 후, 1시경,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라, 화흥포항으로 이동한다. 차창 밖으로 보는 완도 바다 풍경이 아름답다.

완도풍경 1

 

완도풍경 2

화흥포항에서 본 보길도 방향의 바다 풍경

 

1시 20분 경 버스는 화흥포항에 도착하여, 2시에 출발하는 배를 타려고 터미널에서 30여분을 보낸 후, 승선하여 출항을 기다린다. 완도-노화도-소안도를 왕복하는 카페리는 매시간 마다 출항하는 모양인데, 우리가 탄 배는 입항하는 다른 카페리를 기다렸다, 2시가 조금 넘어 출항하고, 2시 43분 경, 노화도 통천항에 도착한다. 배가 항해하는 동안 아름다운 남해바다를 한껏 즐긴다.

 화흥포항으로 배 들어오고, 우리 배는 출항한다.

 멀리 보이는 화흥포항

바다 농장

다가오는 보길도 방향의 섬들

노화도 통천항 터미널

 

통천항에서 버스에 올라, 보길도 보옥리에 있는 공룡알해변으로 향한다. 청명석이라고 불리는 갯돌이 공룡알을 닮았다고 해서 공룡알해변으로 불린다고 한다. 해변 가에 울창한 동백 숲이 있고, 뾰족산이 가까워 동백 숲에서 야영을 하면서 물놀이와 산행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피서지로 유명한 곳이다. 버스는 노화도와 장재도를 거쳐 보길도를 잇는 보길대교를 건너, 3시 30분 경, 보옥마을에 도착한다. 마을에서 5분쯤 걸으면 공룡알해변이다.

 보길대교

 공룡알해변 - 앞에 보이는 섬이 야도다

왼쪽 전망대 쪽에서 본 공룡알해변과 보죽산(뾰족산, 195m)

왼쪽 해안길 - 얼마 가지 않아 길이 끊어진다.

보옥-예송 간의 해안도로는 미완이다.

동백 숲

동백 숲에서 해먹으로 야영준비를 하는 미국인들,

 

약 한 시간동안 공룡해변에서 시간을 죽이고, 남 보다 조금 일찍 버스가 있는 마을로 나와 잠시 마을을 둘러본 후, 슈퍼에서 캔 맥주를 사 마시며, 올해 74세가 되는 슈퍼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장재도와 보길도에서는 전복양식이 주업인데, 남해와는 달리 홍조현상이 나타나지 않아 별문제가 없다고 한다. 다행이다.

 땡볕 아래에서 해초를 말리는 아주머니들

 보옥마을과 망월봉(364m)

전복 양식장

 

첫날은 공룡알해변을 본 후 일정을 마친다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으나, 시간이 남는 지, 예송리해수욕장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아직은 보옥리와 예송리 간의 해안도로에 불통구간이 있어, 버스는 북상하여 오르더니, 통리해수욕장을지나, 5시경, 예송해수욕장에 도착한다.

 예송리 해수욕장에서 본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광

 

아름다운 섬 보길도!, 그 보갈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 예송리해수욕장이라고 한다. 격자봉(433m)과 수리봉(406m)이 포근하게 감싸 안은 예송리마을 해변에 서면, 남도, 기도, 갈마도 예작도, 소도, 복생도 등의 섬들이이 그림 같고, 맑은 날에는 멀리 추자도와, 제주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예송리, 오른쪽에 격자봉 산자락이 보인다.

 기도, 뒤로 보이는 섬이 소안도, 왼쪽 산은 가학산(359m)

예작도

전망대에서 본 당사도, 소도, 복생도(두), 그리고 예작도

해무에 싸인 갈마도

 

예송리 해수욕장은 천연의 갯돌(검은자갈)과 상록수림이 유명 곳이라 해마다 30만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예송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이곳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여행을 한답시고, 벙어리가 되어, 멀리 찾아온 우리들은 마을은 구경도 못하고 해변만 둘러볼 뿐이다.

 자갈해변

 

 방풍림 따라 이어지는 해변길

예송리 상록수림 안내판

 

예송리 해수욕장을 둘러보고, ‘보길도의 아침’이라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노화도에 있는 ‘갈꽃섬 모텔’로 이동하여 투숙한다.

 

 

 

(2012.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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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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