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일정의 인도배낭여행에 참여하겠다는 소리에, 집사람이 보인 반응은 역시, “잘 해보시구려.” 다. 가지 말라는 단호한 거부의 말씀이다. 칠십이 넘은 늙은이가 배낭여행을 한다는 것 만으로도 기가 찰 노릇인데, 그 여행지가 인도라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예약금을 내고 잔금을 치룬 후 출발일자가 가까워지자, 하나씩 둘씩 준비물을 챙겨주면서도, 여전히 불안한 모양이다. 쿰부히말 트래킹을 함께 했던 두 사람이 동행을 하고, 배낭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순수한 배낭여행과는 달리, ‘길잡이’가 현지에서 숙소예약과 도시 간의 이동교통편을 도와준다는 설명에 다소나마 안도가 되는 모양이다.
쿰부히말 트래킹을 함께 했던 김연수 사장(57세) 문바이에 도착하자마자 인도에 온 것을 150% 후회한다. 문바이 따지마할 호텔의 1,000루피짜리 뷔페식당에서 인도음식을 먹어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모는 것이 불결하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굶다시피 여행을 계속하지만, 점차 인도가 좋아지는 눈치다.라면을 먹고 그 국물에 햇반을 끓이고 있는 정성원 사장(47세) 식성이 까다로워 라면 30개, 햇반 30개, 짜빠로니 5개를 여행용 트렁크에 담아온다. 하지만 이번 인도여행에서 대오각성하여 앞으로는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이런 것들을 들고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길잡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나온다. 회사의 설명을 그대로 옮긴다.
“저희 ‘인도로 가는 길’에 소속된 인솔자는 가이드가 아닌 ‘길잡이’입니다. 유적지 설명을 해주며 하루 종일 함께 다니는 패키지여행의 가이드가 아닌, ‘여행의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유적지로 가는 길만 가르쳐주면 팀원들은 자유롭게 그곳을 찾아가게 됩니다. 또한 길잡이 개개인의 인도여행 노하우를 전수하여 팀원들이 쉽게 인도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6개월 이상의 여행경험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길잡이는 여러분과 같은 배낭여행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과 함께 여행기간 동안 함께 길을 찾아다닐 것입니다.“
배낭여행자들을 도와주는 ‘인도로 가는 길(주)’의 ‘인도 추천 20일’ 상품을 선정한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인도로 가는 길’이 주선하는 ‘남미 5개국 + 파타고니아’ 백 팩에 참여하기 전에 인도여행을 통해 회사가 지원하는 내용이 어느 정도인가를 확인하고 싶었고,
둘째는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의 한 곳인 인도. 힌두교, 이슬람교, 그리고 불교 문화유적의 보고인 인도. 전 국민의 40% 이상이 극빈층에 속한다는 인도. 사회주의 노선을 버리고 전 세계에 문호를 개방한 이후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인도. 엄격한 신분제도로 스스로에 굴레를 씌우고 있는 인도... 이런 다양한 모습의 인도를 보고 싶었고,
셋째 비록 절반의 배낭여행이지만 젊었을 때 해보지 못했던 배낭여행을 꼭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행일정은 2월 15일 인천공항 출발, 뭄바이-아우랑가바드-잔시-카주라호-바라나시-아그라-자이뿌르-푸쉬카르-델리를 거쳐, 3월 7일 귀국한다. 회사에 납부한 비용은 1,460,000원, 여기에 교통비 식대 등 하루 생활비로 15불 정도가 필요하다고 하니 총 소요비용은 1,800,000원 쯤 든다는 계산이다.
여행코스
여행 준비물은 회사가 사전에 상세한 리스트를 작성해 주어 많은 도움이 된다. 후답자들을 위해 그 중에 특히 유의해야 할 몇 가지 준비물들을 정리해 본다.
1. 가이드 북 : 회사에서는 ‘프랜드 / 인도 네팔’ 가이드북을 필수 준비물로 추천한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로운리 플래닛(Lonely Planet) 보다 이용하기가 편했고, 게다가 책에 첨부된 쿠폰을 잘 활용하면 적지 않은 비용을 세이브할 수가 있어 좋다. 예를 들어 ‘인도로 가는 길’에서는 책을 구입한 후, 쿠폰을 오려 회사로 보내주면 여행비용의 5%를 할인해주고, (우리 일행들 대부분은 무심히 보아 넘겨 기회를 잃었지만, 꼼꼼한 여성 한분이 그 혜택을 받았다.) 현지 한국식당들, 예컨대 델리에 있는 ‘인도 방랑기’ 같은 식당에 해당쿠폰을 제시하면 식대의 10%를 할인해준다. 꼼꼼히 챙기시도록...
2. 배낭, 배낭커버, 작은 가방 : 배낭은 35L~45L 크기가 필요하고, 작은 가방은 도시 관광 시 필수품이다. 나는 큰 아들 녀석이 97년 대학생 시절에 메고 유럽을 일주했던 착불식 배낭과 회사가 사은품으로 제공한 배낭커버를 유용하게 활용했다. 앞으로 다시 세월이 흐르고, 손자 준균이가 이 배낭을 메고 여행을 하게 되면, 3대가 메고 다닌 실로 귀한 배낭이 될 것이다.
라면과 햇반으로 가득한 트렁크와 앞뒤로 멘 배낭
3. 침낭 : 열차나 버스로 도시 간을 이동할 때, 그리고 사막에서의 비박 시 필수품이다. 나는 크기를 확인 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침낭을 구입했다가 반품을 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배낭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침낭을 고르는 것이 좋다.
반품한 큰 침낭과 새로 산 작은 침낭
4. 의류 : 많은 의류를 가져갈 필요가 없다. 내복은 2벌이면 족하다. 습도가 높지 않아 땀이 나도 곧 마르고, 땀 냄새가 심하지 않아, 자주 갈아입을 필요가 없어 겉옷도 많이 필요하지 않을 뿐 더러, 현지에서 싸게 살 수도 있다. 다만 얇은 스웨터 한 벌은 꼭 지참하는 것이 좋다.
5. 신발 : 운동화가 좋고, 샌들은 현지에서 값싸게 구할 수 있다. 나는 현지에서 300루피(원화 7,500원 정도)를 주고 산 샌들을 주로 신고 다니고, 집사람이 준비해준 아쿠와 트래킹화는 출국과 귀국 시에, 그리고 사막 여행 중에 사용했다.
6. 버프(Buff)와 목캔디 : 회사가 제시한 필수품 목록에는 빠져 있지만 먼지가 몹시 심해 코와 압을 막을 수 있는 버프, 그리고 홀스와 같은 목캔디가 꼭 필요하다. 버프는 손수건으로 대용이 가능하고 목캔디 홀스, 또는 빅스는 현지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이번에 여행을 함께한 사람들은 모두 14명이다. 운 좋게도 함께 움직이기에 꼭 알맞은 규모다. 20대 여성 5명, 남성 2명, 60대 남성 1명, 50대 남성 2명, 40대 남성 2명에 30대의 ‘길잡이’와 내가 포함된다. 특기할 할 만한 것은 쿰부히말 동창생 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은 모두 뿔뿔이 신청을 한 사람들이다.
특히 20대의 남녀 7명은 하나 같이 개성이 뚜렷하고,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생각한 바를 과감하게 실천하는 결단력과 용기를 지닌 신세대들이다. 여행비용이 마련되자, 다니던 직장도 미련 없이 버리고, 인도로 가는 길을 택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중뿔나게 튀지도 않고, 전체와의 조화를 생각할 줄도 아는 현명함을 지닌 젊은이들이다. 20여 일 동안 동고동락했던 얼굴들을 담는다.
노형업 사장(61세). 환갑 기념으로 인도로 가는 길에 참여하신 과묵한 신사다.
김성규 신부(58세). 술과 답배를 즐기는 소탈하고 호방한 신부님. 나의 룸메이트. 혼자 다니기를 좋아해 독립군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김세현 화백(48세). 포용력이 있고 침착하여 길잡이가 우리 팀 조장으로 지명한 양반. 항상 웃는 얼굴로 대원들 돌본다. 훤칠한 키에 세련된 차림, 따듯한 배려로 20대 처녀들의 ‘오라버니’가 된다.
김용환 길잡이(34세). 키가 훤칠하고 피부가 흰 호남이다. 역마살이 있어 프리렌서 길잡이 노릇을 하면서 인도인들에게 호통을 치지만, 속마음은 무척 여려 보이는 양반이다. 이번 여행에서 꽃 피는 춘삼월 호시절을 맞는다.
전예진(28). 여자이름의 터프 가이. 모친이 인도에서 산 다이아가 가짜인 것으로 판명되자, 판매자에게 크레임을 청구하기 위해 인도로 가는 길에 참여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 통 크고 배짱 좋은 사나이. 신부님이 술 좋아하는 것을 알고, 인도에서의 마지막 날 밤, 위스키를 들고 찾아 와 모두 함께 쫑파티를 즐긴다.
박선덕(28). 한비야 여사처럼 세계 일주를 하고 싶고, 사진작가가 되기를 바라는 대담한 아가씨. 가이드 북 공부를 철저히 하여 가야할 곳을 빠뜨리는 법이 없고, 쿠폰할인도 챙긴다. 팀 내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되고, 인도 가정에 홀로 초대를 받아 공주대접을 받기도 한다. 여정(旅情)이 연정(戀情)인가?
네팔 방문을 위해 2주 체류연장.
김혜설(25). 항상 헐렁한 옷을 즐겨 입는 여유 있는 여자. 목소리도 허스키하다. 커다란 카메라에 부지런히 인도를 담는다.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대답을 않더니, 며칠 후 재차 묻자, 돈 많이 벌어,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지어주고 싶다고 한다. 꿈은 이루어지는 법! 세계를 품에 안은 원대한 꿈! 반드시 이루어 질 겁니다. 인도가 너무 좋아 3일 간 체류연장.
구아연(26세) 경영학을 전공하고 자신의 액세서리점포를 직접 운영하는 것이 꿈인 재원, 따듯한 손길, 밝은 미소로 항상 분위기를 살린다.
김신애(24세) 전공을 살려 유치원 보모가 되고 싶은 아가씨. 아담한 몸매에 목소리도, 하는 짓도 꼭 아기 같아, 꼬맹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이런 아가씨가 선뜻 험한 배낭여행에 나선 것이 신기해 보일 정도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전형(典型)을 보는 것 같다.
김지헤(24세) 대갓집 맏며느리 감. 기초가 튼실하고, 넉넉함이 보이는 아가씨다. 바람이 사납게 몰아치는 사막에서의 비박 시, 꼬박 밤을 새우며, 잠자는 동료들의 담요를 챙겨주는 강한 머터니티를 보여준다. 호텔로 돌아 올 때도 다른 아가씨들은 모두 수레를 타고 가는데, 끝까지 고통스러운 낙타의 등을 고수한다.
김준모(21세) 막내, 나와는 거의 두 세대 간의 차를 보인다. 영상과 미디어 관련산업에 종사하고 싶어 한다. 훤칠한 키에 호리한 몸매. 누님들을 위한 선머슴 노릇을 자청하는 마음씨 착한 막내다.
한국 배낭여행객들을 자주 만난다. 대부분이 우리들처럼 여행사들의 주선으로 인도로 가는 길에 나선 사람들이다. 중년 부부들이 많다. 길잡이 김용환씨의 말에 의하면 전에는 독자적인 배낭여행자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지금은 길잡이의 도움을 받는 배낭여행자들로 대폭 교체가 됐다고 한다.
인도를 찾는 외국인들 중에는 한국인과 미국인들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유럽인들이다. 이에 비해 일본인이나 중국인들은 적은 편이라고 한다. 개방적인 인도인들은 외국인들을 만나면 흔히 국적과 이름을 묻는다. 코리아라고 대답하면, 사우스냐, 노우스냐 라고 재차 묻는다. 인도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반응은 호의적이다.
인도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어느 곳을 가도 생동하는 느낌이 느껴진다. 인도가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는 물가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를 잡는 것이 당면과제지만 묘책이 있을 리가 없다. 길잡이 김용환 씨도 앞으로는 인도 여행비용이 대폭 늘어날 거라고 전망한다.
(2011.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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