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봉

 

북한산은 다양한 코스로 여러 차례 산행을 했지만 사자능선과 보현봉은 아직 가 보지를 못했다. 사자능선이 2007.1.15~2026.12.31까지 휴식년제로 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이 조치대로라면 지금부터 15년 후에나 사자능선을 밟아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때까지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지만, 설혹 살아 있더라도 산행은 불가능할 것이 분명하니, 사자능선을 밟아보려면 결국 범법(犯法)을 하는 도리 밖에는 없겠다.

 

사자능선은 북한산에서 가장 기(氣)가 센 능선으로 태조 이성계가 한양천도를 하면서 이 사자능선상의 사자봉에서 조선창업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무속인, 신앙인들이 암,수 사자봉과 보현봉으로 몰려들어 한밤중에도 큰소리로 울부짖는 바람에, 산 아래에 주민들의 원성을 사게 되고, 민원에 견디지 못한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사자능선을 자연휴식년제로 묶어 2026년까지 입산을 통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2013년 1월 31일(목)

아침신문의 오늘의 운세 난을 본다. 위험이 따르는 날이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운세다. 모처럼 사자능선을 경유하여 보현봉을 오르려고 작심한 날이라 오늘의 운세가 마음에 걸린다. 산행지를 바꿔볼까도 생각해 보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 강행키로 한다.

 

재벌총수였던 학교동창이 매일 오늘의 운세를 보고는, 운세가 좋지 않은 날은 출근도 하지 않고 집에서 조심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매일하는 운동으로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 70도 못된 나이에 급서(急逝)한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고 한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 하지 않던가?

 

범법자들의 기록을 살펴본다. 출입금지 능선이라 들머리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관음사를 경유했다는 사람, 전심사를 지났다는 사람, 또는 구기계곡을 따라 오르다 적당한 곳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붙었다는 사람도 있다. 전심사는 북한산둘레길을 걸으면서 지났던 적이 있는 곳이라 그곳에서부터 들머리를 찾아보기로 한다.

 

9시가 조금 넘어 집을 나선다. 7호선 강남구청역에서 승차하고, 노원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탄 후, 길음역 3번 출구로 나와, 10여분간 기다린 끝에, 9211번 버스에 승차하고, 구기터널 앞 한국고전번역원 정류장에서 내린다.

한국고전번역원 정류장(지난 가을사진) - 버스에서 내려 파란 줄 따라 거꾸로 진행

 

이어 북한산 둘레길을 안내하는 파란 줄을 따라 평창동 쪽으로 이동하여, 10시 46분, 천지골 추어탕에 이르고, 둘레길 안내표지를 따라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서, 완만한 오르막길을 약 2분 정도 올라, 전심사 100m 앞의 이정표를 만난다.

천지골 추어탕

 

 이정표

 

민가 같은 전심사 앞을 지나고, 곧이어 만나는 삼거리에서 신축공사장을 끼고 왼쪽 넓은 도로를 따라, 약 2분정도 진행하자, 오른쪽에 사자능선으로 진입하는 들머리가 보인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천지골 추어탕-전심사-사자능선-쌍사자봉-보현봉-청담샘-평창계곡-평창공원지킴터』로 산행시간은 중식시간 30분포함, 약 5시간 정도다.

들머리

 

돌계단을 올라 산길로 들어선다. 뚜렷한 등산로가 완만하게 사면을 타고 오르더니, 3분 후, 작은 전망바위가 있는 능선으로 진입한다. 첫 번째 만나는 전망바위지만 아직은 고도가 낮아 남서쪽으로 인왕산과 안산이 빼곰하게 보일 뿐이다. 전망바위에서 내려서서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선길을 산책하듯 천천히 오른다. 오른쪽으로 주택들이 가까워지며,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댄다.

능선 턱 아래까지 들어선 주택들. 이쯤이면 울부짖는 한밤중의 기도소리가 뚜렷이 들리겠다.

 

주택들이 멀어지고, 소나무 숲 사이로 신작로 같이 잘 정비된 산책로가 이어진다. 산행 들머리로 들어서서 10분 도 채 안된 시각이다. 산책길은 드믄 드믄 널린 암릉 사이로 이어지고, 오른쪽 나뭇가지사이로 시야가 트이더니 저 멀리 보현봉이 처음으로 모습을 들어낸다.

 산책길

 

모습을 드러내는 보현봉

 

11시 10분, 두 번째 전망바위에서는 구기동일대의 주택가만 내려다보일 뿐 달리 볼 것이 없었으나, 7분 후, 만난 세 번째 전망바위에서는 사모바위에서 족두리봉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후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왼쪽 주능선의 경관은 더욱 더 장관을 이룬다.

북한산 주능선, 왼쪽부터 향로봉, 비봉, 그리고 사모바위

 

구기동 주택가와 그 뒤로 보이는 족두리봉

 

암릉길이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우회로도 보인다. 남향능선이라 눈이 말끔하게 녹아 없어져, 암릉길로 들어서도 전혀 문제가 없다. 11시 29분, 작은 봉우리 위에 선다. 383m봉이라고 짐작이 되는 봉우리다. 조망이 빼어나다. 정면으로 가야한 능선이 펼쳐지고 쌍사자봉과 그 뒤로 보현봉이 우뚝한데, 그 왼쪽으로 연화봉과 문수봉이 모습을 나타낸다.

 눈 녹은 암릉길

 

가야할 능선과 쌍사자봉, 보현봉, 그리고 왼쪽의 연화봉과 문수봉

 

11시 36분, 철책 앞에 이른다. 넘기에는 높은 철책인데, 개구멍도 보이질 않는다. 다행히 왼쪽 암벽 쪽에 철책 끝이 보인다. 철책 끝을 잡고, 암벽을 돌아 내려 철책 안으로 들어서고, 11시 38분 암릉을 오르며, 왼쪽의 북한산 주능선을 가까이 본다.

철책 끝을 통과하고

 

당겨 찍은 비봉

 

 사모바위와 승가사

 

11시 42분, 암봉에 올라 족두리봉을 당겨 찍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한동안 내려선 후, 1시 58분, 또 다른 전망바위에서 나뭇가지사이로 암사자봉을 바라보고 지나온 능선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후 능선길은 가볍게 오르내리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이고, 암릉길에는 반드시 우회로가 있다.

 당겨 찍은 족두리봉

 

 지나온 능선

 

12시 21분, 등산로는 눈 덮인 암릉 사면으로 이어진다. 길이 미끄럽다. 잠시 머물러 아이젠을 착용한 후 얼음과 눈이 뒤섞인 암릉 사면을 통과한다. 이어 눈 쌓인 가파른 사면을 올라, 능선에 오른 후, 왼쪽으로 진행하여 12시 35분, 작은 봉우리에 오른다. 보라! 홀연히 정면에 암수 사자봉이 모습을 나타내고, 그 뒤로 보현봉의 화재탐지가 보인다.

눈과 얼음으로 덮인 암릉 사면길

 

암수 사자봉과 보현봉

 

눈 덮인 암릉길을 조심조심 걷는다. 따듯해진 날씨에 쌓인 눈이 녹아 아이젠을 신었는데도 미끄럽고, 아이젠 탓에 물이 줄룰 흐르는 암릉을 오르기가 쉽지 않다. 저 앞 바위 위에 웬 여인이 혼자 앉아 있다. 산에서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5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인데, 등산객 같지가 않아, 더욱 더 이상하다.

 

인사를 하고 보현봉으로 오르는 길을 묻자, 오늘 같은 날 보현봉 오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샘터가 있는 계곡 쪽으로 하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를 한다. 자신은 강동에 사는데 이 산엘 자주 온다고 한다. 길을 잘 알면 길안내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하자 그러자며 일어선다. 등산화는 신었는데 아이젠은 없고, 한손에 스틱을 집고, 다른 한손에는 짐을 들고 있다. 그런데도 미끄러운 길을 잘도 걷는다.

 

짐을 대신 들어 주겠다고 해도 무겁지 않다며 극구 사양한다. 가는 로프가 걸려있는 짧은 암릉을 지나 눈 덮인 너른 공터로 나온다. 왼쪽으로 암봉이 보이고, 눈 위에 발자국들이 뚜렷이 이어져 오르고 있다. 아마도 숫 사자봉일 것이라고 짐작을 하고, 잠시 암봉엘 다녀오겠다고 하자 아주머니가 위험하다며 극구 말린다. 발자국을 따라가다 위험하면 바로 내려오겠다고 이야기를 한 후, 암봉에 올라선다. 보라! 바로 눈앞에 보현봉이 장엄하게 우뚝하고, 그 왼쪽으로 문수봉과 문수사가 가까운데, 저 멀리에 대남문도 모습을 보인다.

보현봉

 

 문수봉과 문수사

 

 대남문

 

서둘러 공터로 내려오자 아주머니가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고, 이제 아주머니는 어디로 가실 것이냐고 묻자, 아주머니는 암사자봉 뒷면 중턱을 가리키며, 저곳에 앉았다 하산을 하겠다고 한다. 이미 1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라. 그럼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고, 눈 위에 난 발자국을 따라 올라, 소나무 아래 넓은 반석에 이르러, 배낭을 벗고 점심차비를 하는데, 이번에는 웬 아저씨 한분이 모습을 나타낸다.

 

아주머니는 아저씨를 보더니, 목사님 오셨냐고 인사를 하며, 함께 점심식사를 하자고 권한다. 그러고 보니 이분들의 정체를 비로소 짐작할 수 있겠다. 기도를 하러 온 교인들이 분명하다. 가져온 점심들을 풀어 놓고, 목사님이 한동안 기도를 드린 후, 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면서 목사님에게 보현봉 오르는 길을 묻는다. 암벽을 타고 오르는 길과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는데, 암벽길로는 15분 정도면 오르지만 위험하고, 우회로는 30분 ~40분 정도 걸릴 거라며, 정상에 올랐다 하산은 평창계곡길이 안전하다고 알려준다.

 

1시 35분 경, 식사를 마치고, 이분들과 헤어져, 오른쪽 우회로로 들어서서 비교적 잘 정비된 눈 덮인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오른쪽으로 힘차게 흐르는 형제봉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등산로는 미끄럽고 가파른 사면을 지나 T자 능선에 오른다. 왼쪽이 보현봉 오름길이고, 오른쪽은 철책 안전시설이 박힌 일선사 내리막길이다.

 형제봉 능선

 

보현봉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눈 덮인 등산로에는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어 길을 잃을 걱정도 없고, 암릉에는 예외 없이 철책이 박혀 있어 위험하지 않다. 허위허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보현봉으로 향하다, 잠시 멈춰 서서, 형제봉능선과 사자능선 사이의 평창계곡을 카메라에 담는다.

 보현봉 가는 길

 

 평창계곡과 저 멀리 삼각산

 

 마지막 오름

 

2시 8분, 보현봉 정상에 올라 지나온 사자능선과 사자봉을 굽어보고, 십자가들이 그려져 있는 바위를 카메라에 담은 후, 찬찬히 주위를 둘러본다.

 사자능선과 사자봉

 

 십자가들이 그려져 있는 바위

 

 문수봉과 문수사

 

삼각산

 

 칼날능선

 

무인산불 감시탑과 형제봉 능선

 

2시 15분, 하산을 시작한다. 왔던 길을 되돌아내려, 일선사 갈림길을 외면하고 오른쪽 사면으로 내녀선 후, 2시 42분, T자 능선에 이르러, 왼쪽에 보이는 발자국을 따라, 평창계곡으로 가파르게 내려선다.

하산하며 뒤돌아본 정상

 

 일선사 내리막길

 

 계곡 하산길

 

2시 52분, 청담샘터에 내려서서 약수로 목을 축이고 주위를 둘러본다. 샘터 위로는 로프 가드레일을 쳐 놓아 출입을 금지하고, 그 아래도 등산로 좌우로 줄을 쳐 놓거나 목책을 둘러 샛길출입을 막고, 곳곳에 특별보호구 출입금지 안내판을 걸어 놓았다. 특기할 만 한 것은 사자능선의 보호기간이 다른 지역에 비해 10년 더 길다는 점이다. 아마도 인근 주민들의 압력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담샘터

 

 샛길 출입금지

 

 특별보호구 출입금지

 

3시 18분, 이정표가 있는 일선사, 대성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고, 3시 47분, 이정표가 있는 평창공원지킴터에 이르러 오늘 산행을 마친다.

평창공원 지킴터 이정표

 

지킴터 옆에 상점이 있어 시내버스 타는 곳을 묻는다. 아주머니 한분이 오른쪽 길로 잠시 내려서다 만나는 왼쪽 계단길로, 10분 정도 내려서면, 시내버스가 다니는 큰길가로 나갈 수 있다고 친절히 가리켜준다.

 

 

(2013.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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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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