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릉 너머로 보이는 암봉

 

장마철이라 날씨가 고르지 않아 산행에 나서기가 어렵다. 주초에도 산엘 가지 못해 몸이 무거운데, 주말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온다니 신경이 쓰인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많은 비가 오기 전에 가까운 도봉산이라도 한 바퀴 돌아오려고 산행준비를 한다.

 

출근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려 9시 20분 경 집을 나와, 도봉산행 지하철에 오른다. 승객이 많지 않아 쾌적하고 조용하던 지하철에 등산복 차림의 아줌마 세 사람이 타자 한 순간에 분위기가 엉망이 된다. 저희들끼리 끊임없이 큰소리로 떠들고, 깔깔대고 웃는다. 주위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공공장소라는 의식도 없다. 서글퍼진다. 많은 이런 사람들이 선심공약에 속아 투표를 하다 보니, 부적절한 정치인들이 판을 치게 되고, 그러다보니 나라가 이처럼 시끄러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도봉산역에서 내려 들머리로 향한다. 잔뜩 흐린 날씨인데도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들이 산을 향하고 있다. 나는 오늘 4시간 정도 산행을 할 생각으로 도봉탐방지원센터에서 마당바위를 거쳐 신선대에 오르고, 다시 탐방센터로 되돌아 나올 생각이다. 가보지 못한 마당바위를 구경하고, 주능선에서 바라만보고 오르지 못했던 신선대에 올라 주위조망을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 산행코스는 아래 그림과 같다.

산행코스

 

오랜만에 찾는 도봉산이지만 음식점과 아웃도어(Outdoor) 상점들로 붐비는 산 입구는 여전하다. 주차장 뒤로 보이는 아름다운 도봉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10시 18분,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한 후 곧이어 만나는 갈림길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르는 오른쪽 길을 버리고, 왼쪽 다리를 건너, 보문능선으로 어이지는 자연관찰로를 따라 오른다.

입구 주차장에서 본 도봉산

탐방지원센터

갈림길, 하산 시 찍은 사진

 

완만한 오르막길을 약 7분 쯤 오르면 오른쪽에 도봉산 능원사(能圓寺)가 보인다. 제법 규모가 큰 절이다. 능화전(能華殿) 뒤로 도봉산이 아름답게 보이는 명당이다. 절 앞에 세워진 안내판이 봉우리들을 설명하고 있다. 흐린 날씨에도 잘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린다. 과연 서울시민들의 소중한 휴식터다.

능원사 일주문

능화전


도봉산 암봉 안내판

산책로

 

멋진 산책로를 5분 쯤 천천히 걷다보니 오른쪽에 도봉사가 보인다. 무심코 지나려다 도봉사 철불좌상 안내판을 보고, 서울시 유형문화재라는 고려시대의 불상을 구경하러, 절 안으로 들어선다. 독경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시멘트도로를 따라 올라, 대웅전에 이르러, 삼존불상을 카메라에 담고 주위를 둘러본다. 주위가 정갈하고 조용하다. 이름난 불가의 도장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도봉사 입구

도봉사 유래

대웅전

삼불좌상

 

도봉사를 나와 다시 산책길을 걷는다. 숲 해설가가 어린아이들에게 주변 숲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모습도 보인다. 산책로가 멋진 돌길로 변하고, 이정표가 있는 자운봉 갈림길에 이른다. 오른쪽으로 내려서서 자운봉 쪽으로 향한다. 정면으로 시야가 트이며 나뭇가지 사이로 선인봉과 만장봉의 멋진 모습과 포대능선이 보인다. 이어 도봉계곡으로 내려서서 서원교를 건너고, 10시 53분, 등산안내도가 있는 금강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선다.

돌 포장길

자운봉 갈림길 이정표

서원교를 건너고

등산안내도가 있는 금강암 갈림길

 

등산로는 계곡을 건너 능선으로 이어진다. 왼쪽으로 암자가 보인다. 모래흙이 허옇게 드러난 인적이 없는 능선을 따라 오른다. 11시 12분, 등산로에서 왼쪽으로 조금 벗어나 있는 전망바위에 올라, 북쪽으로 선인봉을 가까이 보고 동쪽으로 수락산을 바라본다. 가파르게 이어지는 능선길을 아무생각 없이 꾸벅꾸벅 오른다. 이따금 씩 마주 내려오는 등산객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이 길로 곧장 가면 어디가 나오느냐고 묻는다. 마당바위라는 대답이 한결 같다. 

계곡을 건너고

 

전망바위에서 본 선인봉

 

수락산

 

로프로 가드레일을 만들어 놓은 암릉길을 오르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11시 39분, 자운봉 0.7Km/도봉탐방지원센터 2.4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고, 1분 후, 마당바위를 오르며 210도 방향으로 우이암을 바라본다. 마당바위는 널찍하게 펼쳐진 완만한 슬랩이다. 빗방울이 굵어지자 마당바위에서 쉬고 있던 등산객들이 하산을 서두른다.

이정표

마당바위

우이암

 

산행을 시작한 지 고작 1시간 20분 정도가 지난 시각이고, 목표로 했던 신선대가 멀지 않은데, 비가 온다고 여기서 하산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방수재킷을 걸치고, 배낭커버를 씌운 후 가파른 암릉길을 오른다. 11시 55분, 자운봉 0.5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난다. 빗발은 다소 가늘어지는 느낌인데 안개가 덮이기 시작한다. 뒤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노란 비옷을 걸친 등산객 한 사람이 안개 속에 흐릿하게 모습을 보인다. 동행이 생겨 반갑다.

이정표

안개가 내려 덮히기 시작하는 암릉길

 

12시 10분, 돌계단을 올라, ‘낙뢰위험지역 안내판’이 있는 넓은 공터에 이른다. 신선대에서 하산한 등산객들이 쉬고 있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짙지만 다행히 천둥번개는 치지 않는다. 뒤따라오던 노란 비옷이 잠자코 공터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 암릉을 오르고, 내가 그 뒤를 따르자, 쉬고 있던 등산객이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소리친다. 암릉길이 가팔라지고 좁아진다. 이곳저곳에 ‘추락 위험’/‘샛길 출입금지’ 팻말이 보인다.

공터

낙뢰위험지역 안내판

추락위험 팻말

 

12시 23분, 로프가 걸린 가파른 암릉을 올라, 주능선 갈림길에 이르러, 직진하여 쇠기둥을 박아 놓은 암릉을 오른다. 바람이 거세고, 그동안 내린 비에 암릉이 번들번들 젖어 미끄럽다. 12시 30분, 바람이 거세게 부는 신선대에 오른다. 사방에 안개가 가득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노란 비옷의 등산객이 바위 끝에 걸터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오연(傲然)한 자세다.

로프가 걸린 암름

갈림길

정상가는 길

정상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린다. 쉽게 그칠 비가 아니다. 폭우로 변해 계곡물이 불으면 곤란하다. 올라왔던 암릉을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밧줄이 걸린 가파른 암릉에 이른다. 1회용 우비를 걸친 곱상한 아가씨가 밧줄을 잡고 올라온다. 인적도 없고, 안개 자욱한 비 내리는 암릉을 혼자 오르는 아가씨의 용기가 대단하다. 신선대 오르는 바위가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이르니, 갈림길에서 주능선으로 내려서겠다고 한다. 이곳 지리를 잘 아는 모양이다.

주능선 하산 길

 

12시 56분, 공터를 지나고, 1시 17분, 이정표가 있는 산악구조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선다. 빗발이 점점 굵어진다. 이어 산악구조대, 푸른샘 입구를 차례로 지나고, 해골모양의 바위를 카메라에 담는다. 1시 44분, 돌표지가 있는 만월암 갈림길에 이르자, 빗발이 더욱 사나워지더니 폭우로 변한다. 폭우 속을 미련하게 3~4분 걷다보니, 바지까지 젖어온다. 견디지 못하고 커다란 바위아래에 서서 비를 피하며, 맥주를 마시고, 간식을 든다.

푸른샘 입구

해골바위

만월암 갈림길

 

더위는 고사하고 오싹 추위가 느껴진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코냑을 두 어 모금 마신다. 이윽고 빗발이 가늘어지자 다시 하산을 시작하여, 안내판이 있는 도봉대피소/천축사 갈림길을 지나고, 인적 없는 산책길을 터덜터덜 걷는다. 사납게 내리던 비도 모르는 사이에 그쳤다. 2시 40분, 금강암 갈림길을 지나고, 잠시 후 도봉서원에 이르러, 유도문과 서원안내문을 카메라에 담는다.

천축사 갈림길

인적이 끊긴 산책길

유도문,

도봉서원 안내문

 

잠시 내린 폭우로 계곡의 물이 제법 불었다. 광륜사를 들러보고, 3시경,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한다.

도봉계곡

도봉산 광륜사

 

오랜만에 찾은 도봉산이다. 산이 섭섭했던 모양이다. 안개로 가리고 폭우로 응대하며 앞으로는 자주 오라고꾸짖는 것 같다. 좋은 산을 가까이 두고도 한 동안 먼 곳만 좋다고 떠돌아다닌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본다.

 

 

(2010. 7. 18.)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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