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에는 산이 없다. 산이 없으니 당연히 강도 없다. 아마도 강을 끼지 않은 수도는 북경이 유일할 지도 모르겠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다. 봄에는 황사로 시내는 온통 모래 투성이다. 그런데도 북경은 역대 왕조의 수도였고, 지금도 수도다. 아직까지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80년도 말에서 90년도 초까지 회사 일로 중국을 20여회 다녀왔다. 그 때 봤던 북경과 이번에 본 북경은 엄청 다르다. 거리에 일없이 몰려 있는 사람들도 없어졌고, 중국 특유의 냄새도 사라졌다.
당시에는 없었던 순환도로가 5로까지 개통됐다고 한다. 자전차는 여전하지만 다양한 차량들이 거리를 메운다. 거리를 할보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 자신에 차있다.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자꾸 우울해진다.
<북경의 국제 공항 - 10년 전에는 이 곳이 아니였다.>
<북경공항 콘트롤 타워>
<천안문은 여전하다. 오성기도, 모택동초상도, 만세 현판도...>
<천안문 앞 대로, 일요일이라 그런지 자전차가 뜸하다.>
<천안문 광장, 인민영웅기념탑 부근에서 시민들의 연날리기가 한창이다.>
<역사박물관 앞을 지나는 여인들 - 세련미는 없어도 건강하고 당당하다.>
<고궁 후문 길 , 깨끗하고 질서가 있어 보인다.- 좌측 뒷모습이 우리일행>
<첫날 차창을 통해본 스모그의 거리, 북경.>
<둘쨋 날 - 공항으로 이동 중에 본 북경>
<북경의 오후 - 어느 길이고 차들이 많아졌다.>
<북경의 고층 아파트>
일요일의 천안문 광장에는 많은 시민들이 나와 즐기고 있다. 연 날리는 여자들이 많은 것이 이색적이다. 지방에서 올라 온 듯 싶은 사람들도 눈에 뜨인다.
천안문 광장 구경을 마치자, 가이드는 우리들을 광장 끝에 있는 동인당으로 안내한다. 동인당이 천안문 가까이에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청 나라 때 궁에서 쓸 약을 조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니. 고궁 가까이 자리잡은 사연이 이해가 된다.
동인당에서는 한의사들이 즉석에서 방문객들을 진맥하고, 약을 조제해 준다. 한달치 약을 우리 돈으로 20만 - 30만원 정도받는다. 진맥을 하고 약을 원하면 바로 약을 가져다 준다. 아마도 보건제 일 것이다. 겁주고 약을 파는 상술이다. 옆에서는 약식 안마를 해주고 2천원씩 받기도 한다. 안마 받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즉석 진맥하고 처방하는 동인당 한의사 - 옆의 여자는 통역>
동인당 구경을 마친 후 우리들은 서커스를 보러 극장으로 간다. 당초에는 왕정부 거리를 둘러 볼 예정이였으나, 인솔자도 없이, 현지 가이드 혼자서 21명이나 되는 여행객을 왕정부 거리에 풀어 놓기가 불안한 모양이다. 한국 여권이 500만원, 미국 비자가 있는 여권은 1,000만원에 거래된다고 하니 가이드가 불안해 할 만도 하겠다.
덕분에 예정에 없던 서커스를 1시간여 즐긴다. 서커스를 하는 아이들의 솜씨는거의 달인의 경지에 달해있다. 집이 가난하여 버려진 아이들을 3살경부터 훈련시킨다고 한다. 뛰어난 기량에 감탄하면서도 애처럽기만하다.
<북경 서커스 - 봉 타기>
<북경 서커스 - 소녀들의 외발 자전거 타기>
<북경 서커스 - 소림 무예>
<북경 서커스 - 자전거에 몇명이나 탈 수 있나?>
저녁은 현지식이다. 규모가 큰 극장식 레스트랑이다. 무대에는 소수민족들이 고유한 의상을 입고 나와 노래와 춤을 공연한다. 기름진 중국 음식을 염두에 두고, 공항에서 산 위스키를 들고 들어간다.
위스키를 마셔도 좋으냐고 물으니 관계없다고 한다. 어름을 달래 보지만 준비된 것이 없단다. 잔을 청하고 음식을 기다린다.아가씨가 남녀 구분없이 12명 모두에게 작은 백알 잔을 돌리고, 내 앞의 술을 들어 일일히 따라준다. 음식은 크게 기름지지도 않고, 향초도 사용하지 않아 우리 입맛에 맞는다. 특히 김치 맛이 뛰어나다. 우리나라 식당에서 제공되는 김치보다 훨씬 맛이 좋다.
소수민족 복장을 한 아가씨가 잔만 비면 재빨리 술을 따른다. 술을 받고 미안해서 2천원을 팁으로 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지만, 자리를 뜨지 않고지켜 서있다. 술 좋아하는 사촌 동생이 잔을 비우자 재빨리 잔을 채운다, 동생이또 얼마간 팁을 준다.
중국 사람들의 월간 소득이 우리 돈으로 한 10만원 정도라고 한다. 중국돈으로는 월 6백, 내지 7백유안 정도인 모양이다. 10년 전 대학교수가 월 2백 유안을 받았으니 10년 사이에 소득이 4 - 5배 정도가늘은 모양이다. 우리돈으로 3천원에서 5천원 정도가이들의 하루 소득인 셈이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설 때 통이 큰 이사장이 만원짜리 한장을 팁으로 준다. 중국인들의소득 규모와 비교할 때 과한 금액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인들에 대한 서비스가 유난히 좋은 것 같다.
호텔은 북경 외곽에 위치했지만, 금년 4월에 준공한 새 건물이다. 객실에 들어서니 아직 페인트 냄새도 다 가시지 않은 듯 싶다. 집사람이 좀 춥다고 해서 히팅을 해보지만 효과가 없다.
전화로 푸론트에 문의하니 영어를 하는 아가씨를 바꿔준다. 아가씨가 이야기를 듣더니 곧 엔지니어를 보내겠다고 한다. 10여분쯤 지나서 아가씨와 기술자 2명이 찾아온다. 30도에, 강하게 작동하도록 해 놓은 계기를 보더니, 기술자가 웃으며 스위치를 끈다. 아가씨에게 뭐라고 말을 한다. 아가씨는 11월 중순이 넘야 보일러를 작동함으로 추우면 담요를 더 주겠다고 한다.
식당에서의 서비스, 호텔에서의 신속한 대응, 10여년 전과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그 때는 무얼 요구해도, "메이요 !"면 끝이였는데, 지금은 고객을 도우려는 자세가 확고하다. 중국이 엄청 변한 것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