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래봉

기타산행기 2015. 1. 25. 16:17

 한겨울의 팔랑치

 

지리산은 경남의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과 전북 남원시, 그리고 전남 구례군의 3515면에 걸쳐, 그 능선이 73Km나 길게 이어진, 거대한 산군이다. 최고봉은 1,915m의 천왕봉이다.

 

지리산 산행은 이 거대한 능선을 동부능선(천왕봉-웅석봉, 26Km), 주능선(노고단-천왕봉, 23Km), 서부능선(성삼재-덕두산, 23Km)으로 나누고, 이들을 모두 합친 태극능선으로 구분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태극능선(펌)

 

서북능선을 살펴보자.

성삼재-고리봉(1248m)-만복대(1438m)-정령치-큰고리봉(1305m)-세걸산(1116m)-팔랑치-바래봉(1165m)-덕두산(1115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북동쪽으로 흘러, 장쾌한 지리산 주능선을 가까이에서 가장 잘 볼 수 있고, 능선이 한겨울 북서풍을 막아 주는 장벽 노릇을 하다 보니, 한겨울의 적설량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서북능선(펌)

 

백두대간이 성삼재-만복대-정령치-큰고리봉까지 이어지다, 큰 고리봉에서 왼쪽 고기리로 떨어져, 주촌리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나머지 서북능선구간은 백두대간과 멀어진다. 하여 백두대간을 한 사람들도 서북능선을 타려면 별도의 산행계획을 세워야한다.

 

하지만 23Km의 서북능선은 당일 산행으로는 불가능하여 무박산행을 시도해 보지만, 한겨울의 무박산행이 쉽지가 않고, 서북능선 산행의 최대 장점인 조망도 충분히 즐길 수 없다는 단점 때문에 무박산행을 시도하는 산악회를 찾기가 어렵다.

 

2015116()

산행과 여행을 안내하는 좋은 사람들에서 모객하는 정령치에서 출발하여 서북능선을 타고 바래봉에 이르는  산행에 반갑게 따라 나선다. 20042월 백두대간을 하면서 고리봉에서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멋진 능선을 보고 꼭 한 번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10년이 넘도록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고리봉에서 본 바래봉

 

한겨울에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을 간다는데도 36인승 버스에 빈 자리는 2군데뿐이다. 아마도 나처럼 서북능선을 답사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715분 경, 서초구청 앞에서 출발한 버스는 잠시 경유지인 죽전에 서 멈췄다가, 무서운 속도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더니, 탄천 휴게소에서 20분 간 정차한 후 다시 출발한다. 이번 바래봉 가이드는 아주머니다. 개념도를 나누어주면서, 산행시간은 정령치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 할 때부터 6시간 30분을 줄 터이니 서둘지 말고 안전산행을 하라고 당부한다.

 

차창 밖의 날씨가 잔뜩 흐려있다. 엊저녁에 확인한  당일 노고단 산악날씨는 낮에는 맑고, 예상기온이 영하 4도에서 영하 6도 정도에, 바람도 심하지 않다는 예보였는데, 가이드 아주머니는 눈 산행이 될 것 같다고 한다.

 

버스는 10시가 조금 지나, 고속도로를 버리고 함양으로 내려선다. 창밖의 날씨는 여전히 흐려있다. 이어 버스는 지리산로(861)로 들어서서, 노고단 쪽으로 향하다, 달궁 삼거리에서 오른쪽 정령치로(737)로 들어선다. 하지만 버스는 잠시 후 차량통제소 앞에서 멈춰 서고, 이어 가이드 아주머니가. 정령치로가 결빙상태라 차량통제를 하고 있다고며, 상황이 이러니 대단히 미안하지만, 날머리인 용산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원점회귀 할 수 밖에 없다며 양해를 구한다.

 

차안에서는 도로사정도 확인하지 않고 고객을 모았느냐고 질책하는 소리, 참여자들 대부분이 바래봉보다, 지리산 서북능선 탐방이 주목적인데, 결국 서북능선 탐방은 도루묵 된 것이 아니냐고 항의하는 목소리들로 한동안 시끄럽다. 하지만 불평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도 없는 일이라, 백배사죄하는 가이드 아주머니의 말에 따라 버스는 용산마을로 향한다.

 

버스는 1059분 용산마을에 도착한다. 가이드는 6시간을 줄 터이니 바래봉을 지나 팔랑치 정도까지 올랐다 5시까지 용산주차장으로 하산하라고 당부한다. 차에서 산행준비를 마친 나는 11시 정각, 바로 바래봉을 향해 도로 옆으로 이어지는 데크 길 따라 오른다. 5분 가까이 오르자 데크 길은 도로와 합쳐지고, 도로는 빙판길이다. 고도 700m 정도의 용산리가 이 정도이니, 고도 1000m가 넘는 정령치로 오르는 도로상황은 보지 않아도 알만하겠다.

용산리 도착


도로 옆 데크 길을 걷고


빙판 도로로 오른다.

 

산행을 마치고, 귀가하여 정령치 도로의 겨울 통제상황을 검색해 보니, 이 도로는 겨울 내내 차량통행이 통제되다, 빨라야 3월 말에나 열린다고 한다. 산악회에서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을 터인데 산행을 강행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119, 바래봉, 운지사 갈림길 삼거리에 이른다. 왼쪽은 도로를 따라 바래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직진하여 정면 산길로 들어서면, 능선을 타고 바래봉으로 오르는 지름길인 셈이다. 주저 없이 직진하여 능선길로 들어선다. 간간이 표지기들이 방향을 알리는 멋진 등산로가 아름다운 송림 사이로 기분 좋게 이어진다.

바래봉 운지사 갈림길


기분 좋은 등산로

 

하지만 고도가 높아지자 능선은 가팔라지고, 눈이 쌓여 얼어붙은 길이 무척 미끄럽다. 그래도 오르막길이라 아이젠을 하지 않고 한동안 버텨보지만, 미끄러운 정도가 더욱 더 심해지자 별수 없이 아이젠을 착용한다. 만만치 않은 능선 길이다. 이런 능선길을 1시간가량 걸어올라, 125, 왼쪽에서 올라오는 우회도로로 들어선다.

 우회도로로 들어서고

 

127, ‘바래봉 0.8Km/정령치 9.0Km/용산주차장 4.0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난다.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이곳에는 눈발이 흩날리고, 운무가 가득하여 가시거리가 10여 미터에 불과한데, 바람조차 강하다. 이런 날씨라면 정령치에서 산행을 시작했더라도 보이는 것은 운무뿐이었을 것이다.

바래봉 0.8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고

 

1227, 바래봉 삼거리에 이른다. 운무가 더욱 심해 1m 앞의 이정표 글씨(바래봉 0.6Km)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바람은 더욱 거세진다. 거센 바람의 저항을 뚫고 바래봉을 향해 직진한다. 운무와 바람 때문에 산행을 포기 했는지 일행들이 보이지 않는다.

운무에 가린 이정표


1232, 샘터를 지난다. 춥고 바람이 심해 물맛을 볼 생각도 없다. 내려올 때 마셔보기로 하고, 사진만 찍고 지나친다. 샘터를 지나 등산로는 왼쪽으로 굽어져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바람은 더욱 거세져 몸이 날릴 듯싶고, 등산로는 얼어붙은 눈으로 울퉁불퉁 기복이 심하다. 스틱으로 겨우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오른다.

 샘터


샘터부근의 풍광


오르막길

 

 1238, 바래봉 0.2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등산로는 다시 왼쪽으로 굽어져 가파르게 오른다. 강한 북서풍이 정면으로 불어 닥친다. 정상에 가보아야 보이는 것도 없을 터인데 그냥 후퇴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지만, 200m도 안 남은 거리에서 포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또 다른 주장이 워낙 강해, 바람을 헤치고 험한 길을 비틀비틀 오르는데, 운무 속에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는 일행의 모습이 보인다. 반갑다.

 눈꽃인가? 상고대인가?


운무 속에서 모습을 보이는 일행

 

오른쪽에 바래봉에서 본 지리산 경관 안내판 보이지만, 내려올 때 찍기로 하고, 정상을 향해 데크 길을 오른다. 1245, 정상에 선다. 바람에 날려갈까 겁이 날 정도다. 겨우 정상석과 이정표, 등을 카메라에 담고, 서둘러 하산한다.

정상석


데크 뒤로 보이는 바위가 있는 곳- 그 곳이 진짜 정상 같다.


이정표


하산하다 찍은 경관 안내판

 

바람을 등지고 내려서는 하산 길은 훨씬 수월하다, 다시 샘터에 이르러 바래봉 물맛을 본다. 깊은 곳에서 솟는 샘인 모양이다. 물맛이 미지근하다. 1, 바래봉 삼거리에 내려선다. 바람도 약해지고 운무도 다소 가신 느낌이다. 삼거리 안내판이 또렷하다.

바래봉 삼거리 안내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왼쪽 팔랑치로 향한다. 하얀 눈밭 길이 이어진다. 14, ‘지리산 반달곰안내판이 있는 전망대에 이르러 주변 설경을 카메라에 담고 눈밭 속을 걷는다.

반달곰 안내판이 있는 전망대(되돌아 올 때 찍은 사진)


지리산 반달곰 안내


주변설경


눈밭 길

 

등산로가 신작로처럼 넓다. 팔랑치까지는 철쭉으로 유명한 곳이라 등산객들이 많은 모양이다. 혼자 되돌아오는 나이 든 양반을 만난다. “가보아야. 그게 그거라 내려간다.” 고 한다. 그렇겠다고 인사를 하고, “하지만 일찍 내려가 보아야 할 것도 없으니, 조금 더 가보겠다며 지나친다.

 팔랑치 가는 길 1


팔랑치 가는 길 2

 

시계는 2~3m가 고작이다. 바람이 약해져 춥지는 않다. 거친 눈길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터벅터벅 걷는다. 조망은 없지만 새하얀 세계 속에 혼자 있는 기분도 나쁘지가 않다. 잡목들이 피운 눈꽃, 무거운 눈에 짓눌린 조릿대, 바람 길에 쌓인 눈 등 한겨울 고산에서 볼 수 있는 풍광이 아름답다.

 

잡목들이 그린 그림


눈에 짓눌린 조릿대


바람 길에 쌓인 눈 1


쌓인 눈 2


눈길

 

124, 고도 989m의 팔랑치에 이른다. 넓은 공터에, 이정표, 탐방로 안내, 비슷해 보이는 진달래와 산철쭉 구분 방법등이 보인다.

팔랑치 1


팔랑치 2


탐방로 안내

 

탐방로 안내에 의하면, 바래봉 삼거리에서 이곳까지의 거리가 0.9Km라고 하는데, 걸린 시간은 24분이다. 이런 정도면 1.5Km 떨어진 부운치까지 별무리 없이 다녀올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고, 나무계단  길을 지나, 철쭉 밭 사이로 이어지는 눈길을 따라, 앞에 보이는 나지막한 1123m봉으로 향한다.

나무계단 길


철쭉 밭


철쭉 밭 사이로 이어지는 길

 

135, 1123m봉을 지나 능선 안부까지 내려섰다가, 더 가보아도 별다른 풍광을 만날 수도 없겠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려, 221, 바래봉 삼거리로 되돌아나온다.

1123m


삼거리 이정표


삼거리 주변풍광 1


주변풍광 2

 

운무는 여전하지만 바람은 많이 약해졌다. 도로를 따라 내려 용산주차장으로 향한다. 23분 경, 능선길이 분기되는 지점에 이르지만, 이번에는 능선으로 내려서지 낳고, 도로를 따라 하산하기로 한다.

하산 길-내린 눈이 바람에 날려 바닥이 보인다.


하산 길 풍광 1


하산 길 풍광 2


풍광 3


풍광 4


풍광 5

 

눈 쌓인 도로가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경사가 급한 곳은 눈이 얼어붙은 빙판길이다, 하여 이곳도 차량통행은 불가능하겠다. 248, 용산주차장 3.2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난다. 고도가 점차 낮아지며 도로변에 안내판들이 늘어나고, 38, 이정표가 있는 운지사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들어선다.

도로변 안내판


운지사 갈림길 이정표

 

334, 능선으로 진입했던 바래봉 삼거리에 이르러 직진하여 잠시 운주사를 둘러본 후, 355분 경,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내려와 산행을 마친다.

잠시 둘러 본 운주사.

 

다른 일행들은 일찌감치 내려와 차에서 기다린 모양이다. 주어진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내려왔는데도 내가 최후미였던 모양이다. 가이드가 인원수를 확인하더니, 4시 정각 서울을 향해 버스를 출발 시킨다.

 

모처럼 지리산 서북능선을 답사할 기회라고 기대가 컸었는데, 정령치도로의 차량통제로, 기대가 무산되어 아쉽다. 느긋하게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겠다.

 

 

(2015.01 24.)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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