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암리 하산길에 뒤돌아 본 가리왕산 상봉

산정산악회에서는 우리나라 100대 명산의 탐방산행을 기획하고 있다. 월 2회 산행하여, 약 5년간 이어지는 야심 찬 탐방기획이다. 그리고 그 첫 산행지가 가리왕산(加里旺山, 1561m)이다.


가리왕산은 큰 산이다. 중왕산(中旺山, 1,305m)과 중봉(1,341m), 하봉(1,380m)을 좌우로 거느려 주능선 거리가 15Km에 달하고,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덕유산(1,614m), 계방산(1,577m), 태백산(1,567m), 소백산(1,563m)에 이어 8번째로 높은 산이다.

상봉에서 본 중왕산 방향 능선

잠시 가리왕산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자.

"강원도 정선군과 평창군에 걸쳐 있는 정선의 진산인 가리왕산은 산이 높고 웅장하다. 전형적인 육산으로 등산로의 경사도가 완만하고, 산 능선에는 고산식물인 주목, 잣나무, 단풍나무 등 각종 수목이 울창하다. 동강(東江)에 흘러드는 오대천과 조양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며, 산의 이름은 그 모습이 큰 가리(벼나 나무를 쌓은 더미)같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가리왕산에는 8개의 명승이 있다. 맑은 날 동해가 보인다는 가리왕산 상봉의 망운대와 백발암, 장자탄, 용굴계곡, 비룡종유굴 등이 그 것이다.이 중 제1경인 망운대가 으뜸이다. 상봉 망운대에 서면 오대산, 두타산, 태백산, 소백산, 치악산 등의 명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상부근에는 주목나무와 천연 활엽수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상 한국의 산하에서 펌)


한국의 산하, 1년간 접속통계에 의한 인기순위는 100대 명산 중 74위라 한다.

상봉에서 본 중봉과 하봉

2005년 12월 31일(토).

2005년 마지막 날, 대부분의 회사들이 어제 종무식을 마치고, 오늘부터 연휴가 시작되기 때문인지, 이른 아침의 지하철은 평소에 비해 승객들이 훨씬 뜸하다. 산악회 버스가 경유하는 서초구청 시민회관 앞도 다른 때와 달리 썰렁한 편이다. 12월 초부터 기승을 부리던 추위도 오늘은 많이 누그러졌지만, 대기하는 산악회 버스들도 보이지 않고, 버스를 기다리는 산꾼들도 많지가 않다.


孤峰, 和峰, 鏡潭(은영), 深泉, 芝軒, 藝苑 등 3차대 대원들을 반갑게 만난다.


경유지를 모두 거치고, 버스가 중부고속도로로 진입하자, 버스 안은 산꾼들로 만원이라, 산악회 선두대장과 총무는 통로에 깔판을 깔고 앉는다. 일반 등산객들도 몇 사람 있지만, 대부분이 산정 산악회 1차에서 5차까지의 백두대간 종주대원들이다.


버스가 영동고속도로 소사 휴게소에서 30분간 정차하고 출발하자. 정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오늘의 산행코스를 설명한다. <<장구목이 골 입구-임도-주능선-정상-중봉-오잠동 갈림길-임도-계곡-숙암리>>로 도상거리 약 12Km, 소요시간은 약 6시간이다.


이 산은 약 30년 전에 산악인들에게 알려져, 그 이후 산악인들이 꾸준히 찾는 산이지만, 워낙 덩치가 큰 산이라, 개발된 등산로를 벗어나면 아직도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많다고 한다. 오늘 산행하는 코스는 최근에 인기 있는 코스로, 특히 임도에서 알바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를 한다.


어제 이곳에도 다소 눈이 내렸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어느 정도 인지는 가 봐야 알겠다고 한다. 겨울산행인 만큼, 시간에 너무 구애받지 말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산행을 하라고 강조한다.


버스가 용평에 접근하자 고속도로 변에 제법 눈이 쌓여, 심설산행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하지만 버스가 진부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59번 국도로 내려서서 정선을 향해 남쪽으로 달리자,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흐르는 오대천은 꽁꽁 얼어붙어 있지만, 눈 흔적은 보잘 것이 없다.


10시 49분 버스는 장구목이 골 입구에 도착하고, 버스에서 내린 대원들은 서둘러 산행준비를 한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0:49 장구목이 골 입구-11:00 산행시작-11:50 너덜지대-12:06 장구목이 임도-13:22 장구목이 삼거리-13:29~35 정상-13:45~14:05 중식-14:43 중봉-15:10~15:23 오장동 갈림길-16:00 임도-16:45 숙암리>> 중식시간 20분포함, 총 5시간 45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몇 년 전만해도 장구목이 골 입구는 찾기가 쉽지를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대형버스가 정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고, 이정표<가리왕산 정상 4.2K>, 등산 안내도를 세워놓은 외에도, 물레방아, 장승 등을 마련하여, 무심코 들머리를 지나칠 걱정이 없어졌다. 버스가 만원이라 많은 대원들이 배낭을 짐칸에 실었기 때문에, 배낭을 꺼내 산행준비를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장구목이 골

장구목이 골 입구의 물레방아

장구목이 골 입구의 장승


11시경, 3차 대원들은 우스꽝스럽고, 외설스럽게 생긴 장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왼쪽 개울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로 들어선다. 비교적 수량이 풍부해 보이는 개울물은 꽁꽁 얼어 있으나, 개울가나 등산로에는 눈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잔돌이 많은 등산로는 완만한 오름세로 이어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등산로에는 잔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11시 9분, 얼어붙은 계곡 위로 걸쳐진 임시 통나무다리를 건너고, 등산로는 점점 가팔라진다.

통나무 다리도 건너고...- 경담 대원 사진

계곡을 오른쪽에 두고 산판길을 따라 등산로가 이어진다. 계곡이 깊어지며, 꽁꽁 얼어붙은 어름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청아하다. 이제 계곡의 상류로 이어지는 돌 많은 등산로는 온통 눈으로 덮여 있다. 북쪽 사면이라, 전에 내린 눈이 녹지를 않고, 그 위에 어제 내린 눈이 덮여, 등산로 주변의 설경이 제법 그럴듯하다. 이름표를 단 주목이 간간이 눈에 뜨인다. 7인의 3차 대원들이 기러기 편대를 이루고 이런 계곡길을 천천히 오른다.


11시 50분 계곡이 끝나고, 너덜지대가 이어지며 경사가 급해진다. 약 15분 후 눈이 하얗게 쌓인, 장구목 임도에 도착한다. 이정표가 서 있다. <국도 3.0K, 정상 1,2K>, 임도에서 보는 주능선의 상고대가 마치 하얀 솜을 펼쳐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3차 대원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정상을 향해 가파른 비탈길을 오른다.

너덜지대를 오르는 대원들

 

장구목 임도 - 임도에는 이렇게 펜스가 쳐져있다.

 

임도에서 본 능선의 상고대

약 30여 분간 급경사 오르막이 계속된다. 눈도 제법 쌓여, 발목 깊이는 되는 듯싶다. 고도가 높아지며 아름답게 펼쳐지는 상고대의 절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3차대와 떨어져 후미로 쳐져 혼자 걷는다. 아무도 없는 은백(銀白)의 세계를 앞선 발자국을 따라 꾸벅꾸벅 걸어 오른다. 바람이 이나 보다. 하얀 눈꽃이 반짝이며 흩날린다.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등에는 땀이 배이지만, 볼에 와 닿는 대기는 차갑게 느껴진다.

 

상고대 1

상고대 2

상고대 3

오르막 경사가 완화되는 느낌이고, 등산로도 부드럽게 이어진다. 정상이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큰 산일 수록 정상에 가까워지면 산 흐름이 부드러워진다. 푸른 잎에 분가루를 뿌린 듯한 주목이 군데군데 눈에 뜨이고, 완만한 산사면의 상고대는 절정을 이룬다. 이처럼 아름다운 상고대는 처음 경험한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절경 속에서 한 해를 보내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주목

1시 22분 장구목이 삼거리 능선에 오른다. 이정표가 서 있다. <정상 , 중봉 2.2K, 장구목이 임도 1,2K > 오른쪽으로 설화가 만개한 정상을 카메라에 담고, 배낭을 벗어 놓은 후,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이 또한 장관이다. 능선길이라 눈이 푹신하고, 키 작은 관목에 핀 서리꽃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주능선에서 가까이 본 상봉

장구목이 삼거리 이정표

정상 가는 길

1시 29분 정상에 선다. 정상에서는 3차 대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함께 어울려 사진을 찍은 후 주위를 둘러본다. 너른 정상에는 돌탑과 상봉 이정표<중봉 2.2K>, 그리고 정상석들이 서 있다. 역시 관목에 핀 상고대가 절경이고, 지금은 바람이 없지만, 마치 깃발처럼 한쪽 방향으로 휘어진 나뭇가지가 이곳의 풍향과 풍속이 어느 정도인가를 웅변으로 증언하고 있다.

정상의 상고대

정상석과 돌탑

또 다른 돌탑

모진 풍상에도 꿋꿋한 나무

유감인 것은 습기가 많은 대기의 영향으로 주위의 조망을 즐기지 못하는 점이다. 기껏해야 서쪽으로 중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가깝고, 동쪽으로 중봉과 하봉이 빼꼼이 보일 뿐이다. 가리왕산의 제 1 경, 망운대의 절경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유감이나, 맑고, 쾌청한 날씨라면 절정을 이룬, 오늘의 상고대를 즐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마음을 달래며 온 길을 되돌아 내려선다.


배낭을 벗어 놓았던 장구목이 삼거리,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서, 3차 대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막걸리와 매실주 잔이 돌고, 오랜만에 눈 위에 차려진 점심상이라 더 한층 흥취가 깊다. 바람이 지나가면, 점심상 위로 눈가루가 하얗게 흩날린다.


점심을 마치고, 중봉을 향한 능선길을 천천히 걷는다. 너른 능선에는 제법 많은 눈이 쌓여있다. 지금은 하얀 설원이지만, 봄나물이 지천이고, 야생화가 아름다운 초원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간간이 보이는 오래된 고목과 대추 빛 주목들이 능선 길의 단조로움에 싱그러운 변화를 주고 있다. 시계가 트이질 않아 조망을 즐길 수 없는 것이 내내 유감이다.

능선길에서 본 고목

 

가까이 본 중봉

 

능선길의 주목

2시 43분 중봉에 이른다. 너른 공지에 돌탑과 이정표가 서 있다. <상봉 2.2K, 중봉임도1.7K> 급경사 내리막에 대비하여 아이젠을 신고, 무릎 보호대를 착용 한 후, 왼쪽 비탈길로 내려선다. 북동쪽 사면의 하산 길은 가파르고,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어, 설산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중봉의 돌탑

왼쪽 나뭇가지 사이로 설화가 만개한 부드러운 상봉이 가깝게 보인다. 나뭇가지에 가려, 깨끗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내리막길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검푸른 색이다. 그런 하늘을 향해 뻗은 키 큰 나무들 가지에도 설화가 피어 햇빛에 반짝인다.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서리나 눈이겠는데, 이를 무엇이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역시 상고대인가? 아니면 수빙(樹氷)인가?

상고대인가? 수빙인가?

눈 덮인 키 작은 산죽 밭을 지나고, 자작나무 숲이 이어진다. 자작나무를 보면 오마 샤리프(유리 지바고)의 형형한 눈망울과 줄리 크리스티(라라)의 젖은 눈동자가 떠오르고, 배경음악 "라라의 테마" 음악이 들려온다. 이제 스토리는 다 잊었지만, 아름다운 장면, 그리운 멜로디는 생생하게 기억된다. 그래서 영화가 좋다.

자작나무 숲

오장동 임도 이정표

이렇게 펜스의 문을 통해야 등산로에 오를 수 있다.

3시 22분 오장동 임도에 내려선다. 孤峰 대원과 和峰 대원은 앞서 내려간 모양이다. 남은 3차 대원 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다. 후미를 보던 정 대장도 합류하여 한 동안 함께 휴식을 취한 후, 열린 펜스 문을 통과하여 숙암리로 향한다. 하산 길의 낙엽송 조림지역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낙엽송 길

4시경,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에서 藝苑 대원과 鏡潭 대원이 아이젠을 풀고, 스패츠를 벗으며 쉬고 있다. 나도 아이젠, 무릎 보호대를 풀고, 이들과 어울려 천천히 임도를 내려선다. 저 아래 숙암리가 보인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 쳐진 작은 분지다. 뒤돌아보니, 첩첩한 산 뒤 저 멀리 가리왕산의 상봉이 보인다.

첩첩산중의 작은 마을 숙암리 - 경담 대원 사진

4시 45분 경, 숙암분교를 지나 산행을 마친다. 버스에 올라 배낭을 내려놓고,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따끈한 오뎅과 소주로 추위를 쫓는다. 이윽고 정 대장이 후미일행과 함께 도착하고, 이들이 식사를 마치자, 5시 23분 경,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버스는 9시가 채 못 되어 서울에 도착하고, 오늘 鏡潭이라는 멋쟁이 아호를 얻은 은영 대원이 한방 쏘겠다며, 3차 대원들을 논현동 비어할레로 유혹한다.


(2005. 1. 2.)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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