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봉암 현판


2008년 8월 23일(토).

무주공산의 안내로 호남정맥 무등산 구간을 산행한다. 코스는『백남정재(320m/2.5Km)-북산(800m/4.5Km)-장불재(910m/2.6Km)-안양산(853m/1.2Km)-둔병재(420m)』로 마루금 도상거리 약 10.8Km에 들머리 약 0.8Km를 합쳐, 산행거리는 11.6Km 정도다.


무등산구간은 호남정맥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무등산(1186.8m)이 출입금지구역이라 비록 꼬막재 갈림길에서 장불재까지는 마루금을 벗어나 왼쪽으로 크게 우회하지만, 입석대, 서석대에 서면 무등산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고, 장불재에서 안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마능선의 암릉과 억새밭에서 보는 조망이 가히 일품이기 때문이다.


명산이기 때문인가? 무등산은 한 번에 자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이기를 거부한다. 북산에 올랐을 때부터 운무가 시야를 가리더니 이후 하산할 때까지 가랑비가 찔끔거리며 비구름이 거치질 않는다. 암릉은 미끄러워 발걸음 마다 신경이 쓰이고, 빗물을 담은 억새밭이 대원들의 온 몸을 적신다.

 

신비로운 계절의 변화에 절로 감탄을 하게 되는 시기다. 8월 15일이 지나자 열대야로 잠 못 이루던 날씨가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기운이 돌고, 한 낮의 땡볕은 여전하지만, 그늘에 들어서면 더위가 가신다. 이런 계절의 변화와 무등산이라는 명산 덕에 경유지를 모두 거친 산악회 버스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다.


버스가 호남지역으로 들어서자, 빗발이 오락가락한다. 좁은 땅인데도 이 지역에는 빗발이 굵은데, 조금 내려선 곳에는 햇살이 가득하다. 오전부터 갤 거라는 예보가 맞으려는 지 버스가 푸른 논 사이를 가르며 하얗게 이어지는 시멘트도로를 달려 무등리에 들어설 때, 비는 그치고, 비구름이 산허리를 타고 서서히 오른다. 10시 58분, 버스는 무등촌에 도착하여 대원들을 내려놓는다.

무등촌 빨래터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0:58) 무등촌-(11:00) 산행시작-(11:16) 백남정재-(11:30) 급오름 시작-(11:53) T자, 좌-(11:55) 갈림길, 우-(11:57) 목장안부-(12:22~12:42) 북산정상/중식-(12:48) 신선대-(13:00) 꼬막재 갈림길-(13:18) 돌표지<신선대 입구>-(13:30)거리표지판<장불재3,0Km>-(14:01)이정표<장불재 1.8Km>-(14:02) 규봉암 갈림길-(14:04~14:06) 규봉암-(14:08) 규봉암 갈림길-(14:23) 거리표지판<장불재 1.3Km>-(14:25) 석불암 입구-(14:53~14:58) 장불재-(15:10) 첫 암봉-(15:39) 936m봉-(16:14) 능선 3거리-(16:32) 헬기장-(16:38~16:40) 안양산 정상-(16:49) 갈림길, 우-16:57) 억새밭 끝-(17:16) 임도-(17:24) 등산로 입구/공터-(17:25) 출렁다리-(17:30) 둔병재/버스』중식 20분 포함, 총 6시간 30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버스에서 내린 대원들은 잠시 모여 단체 사진을 찍고 마을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2주 전에 내려왔던 길인데도 동네길이라서 그런지 전혀 생소하다. 이윽고 빗물에 젖은 산길로 접어들고, 11시 16분, 낮 익은 돌탑이 있는 백남정재에 도착한다.

백남정재


완만한 오르막을 거쳐 작은 봉우리 두 개를 넘자, 북산을 향한 급 오름이 시작된다. 백남정재와 북산간의 도상거리는 약 1.2Km, 고도차가 420미터에 달하니 그 가파름을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미끄러운 길을 천천히 오른다. 11시 53분, T자 능선에서 왼쪽으로 진행하고, 650m봉 직전에서, 산악회가 깔아 놓은 표지판의 지시에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650m봉 직전, 오른쪽으로 내려서라는 표지판,


잠시 가파른 내리막을 거쳐 억새가 무성한 광일목장 안부로 내려선다. 비구름이 능선을 타고 오르다 산봉우리에 걸려 있고, 억새밭을 지나는 대원들의 뒷모습이 한결 여유롭다. "이처럼 아름다운 곳은 아껴가며 천천히 걸어야지."라며 뒤에 오는 여자대원들이 탄성을 발한다. 억새밭을 지나 숲속으로 들어서다 북동쪽으로 바라본 무등리가 그림 같다.

산봉우리에 걸린 비구름

목장 억새밭을 지나는 대원들

무등리 방향


숲속으로 들어서서 완만한 오르막 등산로를 따라 북산으로 향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운무가 짙어진다. 12시 23분, 돌탑, 삼각점, 그리고 통신시설이 있는 북산정상에 오른다. 비구름이 가득한 정상에서 송 선배를 비롯한 대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바람이 부니 춥다. 윈드재킷을 꺼내 입는다.

북산 정상

삼각점

정상의 시설물

식사


북산에서 보는 무등산 조망이 좋다는데, 주위가 온통 운무에 싸여 가시거리는 2~3미터가 고작이다. 아쉽다. 약 20분간 식사를 즐기고, 12시 42분, 송 선배와 함께 북산을 내려선다. 목장 철선을 따라 억새밭을 지난다. 철선이 오른쪽으로 굽어지는 곳에서 철선을 넘어 왼쪽 억새밭으로 진행하고, 12시 48분, 신선대에 이른다. 맑은 날씨라면, 바위에 올라 신선 기분을 내고 싶은 곳이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아니다. 사진만 찍고 신선대를 지난다.

정상에서 내려서서 억새밭을 지나고

신선대

억새밭이 끝나고 숲길이 이어진다. 나뭇가지에 표지기도 보인다. 숲을 통과하여 임도로 내려선다. 꼬막재 갈림길에 이른 것이다. 산악회가 깔아 놓은 표지판이 임도를 벗어나 묘한 방양으로 진행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두 가닥의 길이 보인다. 운무는 더욱 짙어져 1 미터 정도의억새밭만 눈에 들어올 뿐 마루금을 짐작할 능선은 보이질 않는다. 

 숲길

임도에 놓인 표지판, 누군가가 건드린 모양이다, 방향이 이상하다.


나침반을 보고 서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다. 다행히 잠시 운무가 걷히며 오른쪽으로 능선이 보인다. 지금 걷는 길은 능선에서 멀어지며 아래로 향한다. 무등산 주능선 왼쪽 사면으로 이어진다는 우회로와는 거리가 먼 것이 분명하다. 임도로 되돌아와 임도를 따라 걷는다.

억새밭 사이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걷고


1시18분 신선대 입구 돌 표지가 있는 무등산 일반 등산로로 들어선다. 이정표도 보인다. 규봉암까지 3.3Km라고 알려준다. 돌이 많은 넓은 등산로를 빠르게 걷는다. 돌이 없는 곳에는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1시 30분, 꼬막재에서 1.9Km 떨어진 곳이라고 알려주는 거리표지판을 지난다. 인근에서 올라온 젊은 등산객이 건빵으로 먹으며 쉬고 있다가, 묻지도 않았는데, 왼쪽 길로 내려서면 멋진 폭포가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신선대 입구 돌 표지

돌 많은 등산로

거리표지판


산죽이 깔린 암릉길을 오른다. 왼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짙은 비구름을 이고 있는 인계리가 내려다보인다. 1시 56분, 돌 더미에 편히 앉아 하계를 내려다보며 신선놀음을 즐기던 대원들이 술 한 잔하고 가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입석대를 꼭 가보고 싶은 욕심에 손을 흔들고 지나친다.

암릉길

비구름이 걷히는 인계리

신선노름을 즐기는 대원들


2시 1분, 이정표가 있는 이서영평 갈림길을 지나고, 1분 후 규봉암 입구에 이르러 오른쪽 암릉길을 오른다. 2분 후, 현판 글씨가 멋진 일주문에 오르니, 왼쪽에 거대한 돌기둥 두 개가 우뚝하고, 음각된 글씨가 뚜렷하다. 절 경내로 들어서서 병풍처럼 둘러친 암봉 아래 자리 잡은 관음암을 둘러보고 시원한 석간수를 마신다.

이정표

규봉암 입구

일주문

돌기둥

관음전

요사채와 암벽

암벽 아래 전각


빗방울이 후드득 후드득 떨어지고 바람이 인다. 서둘러 규봉암을 나와 장불재로 향한다. 몇 차례 너덜지대를 건너고, 2시 25분, 석불암 입구를 지난다. 2시 47분, 장불재 0.1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쉼터에 이른다. 비에 젖은 테이블과 의자들이 번들거린다. 가랑비가 간간이 이어지고 운무는 더욱 짙어진다.

너덜지대

석불암 입구

쉼터


2시 52분, 운무가 자욱한 장불재에 이른다. 화순군수의 환영팻말, 농무(濃霧) 속의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등산객들, 장불재 표지석이 눈에 뜨이고, 이정표는 입석대 0.4Km, 서석대 0.9Km 라고 알려주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가 봐야 헛일이다. 아쉽지만 농무를 헤치고 백마능선을 향해 비포장도롤 걷는다.

등산안내

장불재

표지석

이정표

입석대를 포기하고 백마능선으로


"컹, 컹."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농무 속에 건물이 나타난다. 한국통신 건물이다. 등산로는 건물 왼쪽 억새밭으로 이어진다. 지금부터 안양산까지의 도상거리 2.5Km는 미끄러운 암릉과 거친 암봉, 그리고 빗물을 가득 먹음은 억새밭의 연속이다. 허리까지 차는 억새밭을 조심스럽게 헤치고 나간다. 발밑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 발걸음이 몹시 조심스럽다. 첫 번째 암봉이 비구름 속에 희미한 모습을 보이고, 이어 두 번째 암봉을 지나, 세 번째 맞는 봉우리가 개념도에 표시된 936m 암봉인 모양이다.

허리를 넘는 억새가 바람에 흔들린다.

첫 번째 암봉


 

뒤돌아 본 암봉

936m 암봉


암릉을 내려서면 다시 억새밭이다. 시야를 가리는 나무가 없으니 맑은 날씨에 백마능선을 걷는다면 그 조망이 일품이겠다. 하지만 지금은 온통 비구름뿐이다. 이후 몇 차례 더 나타나는 암봉에는 직진로와 우회로가 함께 있다. 가랑비가 내리는 상황이라 주로 우회로를 이용하여 암봉을 통과한다. 4시 14분, 이정표가 있는 능선 3거리에 내려선다. 안양산 정상까지 1.3Km가 남았다고 알려준다.

또 다른 암봉

능선 삼거리 이정표


안부를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며 빗속에 의연히 서있는 멋진 노송을 카메라에 담는다. 다시 억새와 잡목이 뒤섞인 험한 길이 이어진다. 돌 뿌리에 걸려 몸이 휘청거리고, 잡목 가지가 허벅지를 아프게 찌른다. 발에 눈이 달렸으면 좋겠다. 4시 32분, 헬기장을 지나고, 다시 잠시 억새밭을 헤치고 오르니, 운무가 자욱한 너른 안양산 정상이다. 이정표와 표지석은 보이는데 삼각점은 확인하지 못한다.

노송

 

정상이 가깝다.

정상

정상석

 

이정표


휴양림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역시 억새밭이 이어지지만, 오를 때처럼 키가 크지 않아 진행이 훨씬 수월하다. 4시 49분, 바위가 있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고, 이어 억새지대가 끝나며, 반가운 숲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반가운 것은 잠시뿐이다. 로프가 걸린 가파른 진흙길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몸의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진흙에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는다.

하산 길의 억새밭

미끄러운 하산 길


5시 16분, 표지기와 이정표가 반기는 임도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얄궂게도 가랑비는 언제 멎었는지도 모르게 멎었고, 운무도 많이 걷혔다. 5시 24분, 이정표와 등산 안내판이 있는 너른 공터에 내려서고, 출렁다리를 카메라에 담은 후, 도랑물에 신발에 묻은 진흙을 닦아낸다. 5시 30분, 삼림욕장 입구에 정차해 있는 버스에 도착한다.

임도

등산로 입구 공터

출렁다리

둔병재


버스 뒤에서 회장님이 따라주는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수돗가로 나와 간단히 세수를 한 후, 진흙덩어리가 엉겨 붙은 바짓가랑이를 낚아낸다. 옷을 갈아입을 곳이 마땅치 않다. 버스로 돌아와 마른 수건으로 몸을 닦고 젖은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하산주 파티장으로 끼어든다.

안양산 자연 휴양림 입구


이윽고 모든 대원들이 하산하자, 버스는 화순읍의 식당에 마련한 뒤풀이 장소로 이동한다. 새콤한 전어회 무침이 별미다. 뒤풀이를 끝낸 일행은 7시 20분 경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귀경버스 안은 열띤 응원 장으로 변하고, 쿠바와의 야구 결승전은 인간이 아닌 신이 연출하는 감동의 드라마다.

 


(2008. 8. 25.)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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