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치재에서 본 병풍산
길고 긴 호남정맥 종주도 이제 죽정치에서 존제산 넘어 천치고개까지의 도상거리 약 54.5Km가 남았다. 더워지기 전에 마무리를 하려고 이번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죽정치에서 예재까지 도상거리 약 27.5Km를 산행한다.
첫째 날 : 죽정치-송치, 도상거리 약 6.5Km
둘째 날 : 송치-예재, 도상거리 약 21Km
쓴 비용은 교통비 47,600원, 식대 및 음료수 31,400, 숙박비 7,000원 합계 86,000원이다.
산악회가 안내하는 당일산행에서는 죽정치-노고치의 17Km, 노고치-예재의 10.5Km로 구간을 나누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렇게 할 때는 일정을 2박 3일로 잡고, 순천에서 2박을 해야 한다. 1박을 줄이기 위해 잔머리를 굴려, 언밸런스하게 구간을 나눴지만, 때 이른 무더위 때문에 둘째 날에는 4월 달에 더위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한 정도로 고전을 한다.
순천은 순천을 경제권으로 하는 외곽지역이 광범위한 모양이다. 시내버스 노선이 50개에 가까울 정도로 다양하여 대단히 편리하다. 하지만 노선별 이용객 수가 많지 않다보니, 배차시간이 뜸 할 수밖에 없다. 순천역 앞 버스 정류장에는 시골 아주머니들이 보따리 서너 개씩을 갖고, 1시간이 건, 2시간이건 마냥 버스를 기다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이런 곳에서 버스를 이용하려면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순천에서 외곽으로 나가는 버스시간은 노선운행 시간표에 의해 대강 감이 잡히지만, 순천으로 들어오는 버스시간은 감 잡기가 영 어렵다. 참고 참아, 30여분 정도는 기다려보지만, 그것이 한계다. 혹시 정보가 잘 못 된 것은 아닌 가? 불안하다. 하지만 인적이 없는 시 외곽 버스정류장에서는 마땅히 물을 곳도 없다. 할 수 없이 땀 냄새가 진동하는 몸으로 염치없이 히치하이크를 시도하여, 송치에서 순천시내, 예재에서 구례 갈림길 까지, 이틀에 걸쳐 고마운 분들의 신세를 진다.
2009년 4월 9일(목)
32번 시내버스는 순천시내에서 죽청까지 하루 8회 운행한다. 그중 12시 45분 발 버스를 타려고, 7시 20분 강남 발, 순천행 버스에 오른다. 소요시간이 4시간 30분이니, 12시 경에 순천에 도착하여, 점식식사를 하고, 버스를 탄다고 생각한 것이다. 버스는 예정 보다 빠른 11시 30분경에 순천종합터미널에 도착한다.
시간이 많이 남는다. 순천은 처음이라, 두어 정거장 떨어져 있는 순천역을 향해 걸으며 시내를 구경한다. 도로를 따라 오밀조밀 상가가 형성되어 있으나, 그럴듯한 식당이 보이질 않는다. 어느 덧 순천역에 도착하여, 버스정류장을 확인하고 식사 할 곳을 찾는다. 관광안내소가 있어 문을 밀어보지만, 안에 불은 켜져 있는데, 문은 굳게 잠겨있다. 아마도 직원이 식사를 하러간 모양이다.
순천역
한낮의 태양이 뜨겁다. 기상청의 예보로는 금주 말까지 한여름 날씨가 계속되다, 내주에야 정상기온을 되찾을 거라고 한다. 역 앞의 우동 등을 파는 편의점으로 들어선다. 제육 김치 덮밥을 주문한다.(3,000원) 나오는 음식을 보니, 인스턴트식품을 데운 것이다.
그런대로 맛은 괜찮아 후딱 먹어치우고, 12시 30분,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한다. 혹시 예정보다 빨리 도착하여, 12시 45분차를 놓치게 되면 다음 차는 2시 50분에 있다. 보따리들을 앞에 늘어놓은 시골 아주머니들이 정류장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나도 의자 한 귀둥이를 차지하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도착하는 버스들을 구경하며 버스를 기다린다.
관광안내도(부분), 오른쪽 아래 순천역, 중앙에 가야할 청소년 훈련소
32번 버스 출발지는 호반 아파트라고 한다. 순천역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인지는 알 수 없으나 늦어도 1시경이면 도착하리라 짐작하고 도착하는 버스마다 유심히 번호를 들여다본다. 1시가 지나는데도 버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뭐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앉지도 못하고 서성댄다. 10분 정도 더 기다리다 안 오면 포기하고 택시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1시 4분, 승객 댓 명을 태운 32번 버스가 도착한다. 죽청에 가느냐고 확인하고 요금을 묻는다. 기본요금 1,000원 이라고 한다. 버스가 지방도로로 들어서자, 승객들은 어느 사이에 다 내리고, 버스에는 나 혼자다. 버스가 한적한 지방도를 씽씽 달려, 1시 34분, 종점인 죽청마을에 도착한다. 죽청마을에서 청소년수련소까지는 하루에 2회만 연장 운행을 한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1,2Km 떨어진 순천청소년수련소를 향해 아스팔트 도로를 터덜터덜 걷는다.
죽청마을 유래
청소년수련소 가는 길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3:34) 죽청마을-(13;54) 청소년수련소-(14:26) 죽정치-(14;32) 로프-(14:39) 470m봉, 우-(14:46) 430m봉, 좌-(15:03) 갈림길 회귀<7분 알바>-(15:07) 장사골재-(15:10) 무명봉-(15:15) 측백나무 숲-(15:18) 벌목지대-(15:19) 왼쪽 등산로 진입-(15:29) 400m봉-(15:35) 묘봉-(15:39~15:40) 농암산-(15:49) 봉, 왼쪽 우회-(16:12) 570m봉, 좌-(06:20) 병풍산 갈림길-(16:37) 임도-(16:40) 붉은 지붕농장-(16:42) 아스팔트도로, 우-(16:43) 오른쪽 산길 진입-(16:46) 참호봉-(16:49) 도로 삼거리-(16:53) 묘3기봉, 우-(16:55) 임도-(16:56) 경주정공 가족묘-(16:57) 헬기장-(17:00) 아스팔트도로-(17:02) 송치재-(17:28) 송치터널』들머리 52분, 마루금 2시간 36분, 날머리 26분, 총 3시간 53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차량통행도 없는 호젓한 도로를 따라 오른다. 하얀 벚꽃이 도로주변에 흩날린다. 죽청저수지를 지나 도로가 한 굽이 휘어지자 저 앞에 청소년훈련소 건물이 모습을 보인다. 1시 54분, 훈련소 원내로 들어선다. 왼쪽에 유스호스텔 건물도 보이지만, 주차장은 텅 비어 있고, 사람들이 전혀 눈에 뜨이질 않는 한적한 분위기다.
죽청저수지
관리사무소 앞, 등산안내도가 있는 곳에서 오른쪽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오른다. 이어 아스팔트도로는 시멘트 도로로 바뀌고, 오른쪽에 하얀 탱크가 보이는 곳에서 임도 갈림길을 만난다. 오른쪽 임도로 접어들고, 2~3m 지나면, 왼쪽 절재지에 희미한 발자국이 보인다. 표지기도 없다. 절개지를 지나면 비로소 죽정치로 오르는 등산로가 뚜렷해지고, 간간이 낡은 표지기들도 보인다. 2시 26분, 이정표가 있는 낮 익은 죽정치에 도착하여, 표지기들이 걸려 있는 왼쪽 마루금으로 진입하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등산안내도(사진 크릭하면 크게 보임)
하얀 탱크
죽정치- 하얀 탱크가 있는 곳에서 오른 쪽 임도를 따라와도 된다.
마루금 진입
2시 32분, 로프가 걸린 암를길을 오르며 뒤돌아 지난 구간의 정맥 마루금의 흐름을 카메라에 담는다. 앞에 보이는 것이 갈매봉(508.2m)이고 뒤에 우뚝한 봉우리는 갓꼬리봉(689m) 쯤 되겠다. 2시 39분, 470m봉에 올라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등산로는 북쪽으로 이어진다. 한낮의 더위에 조끼도 벗어 배낭에 챙긴다.
로프길
뒤돌아 본 정맥 마루금
470m봉
잡목 숲이 이어진다. 숲속에 울긋불긋 보이는 진달래가 곱다. 2시 46분, 430m봉에 올라, 이번에는 왼쪽으로 내려선다. 왼쪽으로 산 한 면을 벌목하여 개간하는 골짜기가 내려다보인다. 등산로는 산 사면을 타고 좁게 이어진다. 우회로라고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한동안 따라 걷는다. 문득 오른쪽에 보이는 능선은 점점 멀어지고, 등산로는 산 아래로 향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표지기도 보지를 못했다, 즉시 알바라고 판단을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선다.
벌목하여 개간 중인 산사면
3시 3분, 갈림길에 이른다. 개간중인 골짜기를 내려다보느라고 모르고 지나쳤건 갈림길의 오른쪽에 표지기들이 걸려있다. 잘못 들어섰던 왼쪽 길을 줄곧 따라 내려서면 장척마을에 이르게 된다. 무심히 걷다 7분 정도 마루금을 벗어났던 것이다. 3시 7분, 고도 340m의 안부인 장사골재에 내려선다. 왼쪽으로 내려서는 희미한 길이 보인다. 직진하여 오르막길을 오른다.
되돌아 온 갈림길
장사골재
3시 10분, 봉우리 하나를 넘고, 아름다운 측백나무 숲을 지난다. 이어 벌목지대로 나와 잠시 임도를 따라 걷다, 왼쪽 숲으로 들어선다. 3시 29분, 능선 같은 410m봉을 지나고, 이어 붉은 속살이 보이는 석축 묘가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갓꼬리봉, 갈매봉 등 지나온 능선을 바라본 후, 삼각점<구례 464 1985 재설>과 정상표지판이 있는 농암산 정상(476.2m)에 오른다.
측백나무 숲
벌목지대 임도
묘역에서 본 정맥 마루금
농암산 정상
정상표지판
커다란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잡목 숲 사이에 연분홍 고운 진달래꽃이 눈길을 끈다. 저 만치 혼자서 피어있는 모습이 말 그대로 산유화(山有花)다. 군락지에 떼 지어 피어, 처절한 느낌마저 주는 진달래와는 달리, 진달래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아 더 더욱 반갑다. 커다란 바위를 지나고 540m봉을 왼쪽으로 우회한다.
진달래꽃 1
진달래꽃 2
4시 12분, 능선분기봉인 570m봉에 오른다. 오늘산행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좌우 양쪽에 표지기들이 걸려 있다. 마루금은 왼쪽이다. 이어 좁은 능선길을지나, 4시 20분, '道'자 돌 말뚝이 박힌 병풍산 갈림길에 이르러, 왼쪽 마루금으로 내려선다. 오늘은 3시간도 안 되는 짧은 산행이라 마루금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병풍산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더운 날씨라 포기한다.
570m봉
병풍산 갈림길
평탄한 능선길을 걷는다. 등산로가 내리막으로 이어지며 시야가 트여, 가야할 능선과 송치, 그리고 송치터널 개통 후 폐도로가 된 17번 국도가 구불구불 이어지고, 그 뒤로 시설물이 있는 바랑산이 보인다. 이어 임도로 내려서서 이를 따라 진행하며 오른쪽으로 병풍산을 가까이 보고, 지금은 폐가 된 빨간 지붕의 농장과 축사를 지나, 아스팔트도로에 이른다.
가야할 능선과 송치 그리고 구 도로와 바랑산
임도에서 본 병풍산
붉은 지붕의 농가
아스팔트도로를 따라 내리다, 오른쪽 산길로 들어서고, 4시 46분, 벙커와 교통호가 있는 봉우리를 넘어 아스팔트 도로 삼거리에 이른다. 직진하여 묘 3기가 있는 봉우리를 넘고, 임도를 건너, 잘 손질된 김해정공 가족묘를 지나 헬기장을 통과한다.
도로 삼거리
김해정공 가족묘
다시 아스팔트 도로에 내려서서 잠시 이를 따라 걸으면 오른쪽에 2층 벽돌건물과 너른 주차장이 있는 송치재다. 전에 야망연수원이었던 건물은 비어있는 것 같은데, 너른 주차장에는 웬일로 군 트럭과 찦차 그리고 군인들이 보인다. 5시 2분, 송치재에 내려서서, 돌표지를 카메라에 담고, 내일아침의 산행들머리를 확인한다.
야망연수원과 훈련 나온 군인들
송치재 돌표지
지금은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17번 도로, 좌우 어느 쪽으로 내려서는 것이 좋을지 몰라 군인 아저씨에게 묻는다. 왼쪽 도로를 가리키며 그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순천 가는 버스정류장이 있다고 친절히 알려준다. 도로를 따라 걷는다. 바로 눈 아래 보이는 송치터널로 이어지는 도로를 향해, 구도로는 이리구불 저리구불 한 없이 돌아내린다.
구불구불 구도로
내일 아침 다시 이 길을 오를 생각을 하니 한심하다. 마침 길가에 '엄마농원/민박' 팻말이 걸린 예쁜 농장이 보인다. 찾아 들어가 하루 숙박비가 얼마냐고 묻자, 몇 사람이냐고 되묻는다. 혼자라고 하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보일러를 때야하니, 50,000원은 받아야하는데 부담이 클 터이니, 미안하지만 시내로 나가 숙박을 하라고 권한다.
엄마농원
아스팔트도로를 터덜터덜 내려선다. 5시 28분, 터널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버스를 기다린다. 외목리에서 나오는 여러 노선의 버스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지나가지를 않는다. 이쪽만 아니라 반대쪽으로 지나는 버스도 없다. 30분을 기다려도, 별 무소식이다. 마침 타이탄 트럭 한 대가 구도로 쪽에서 내려온다. 얼른 뛰어가, 차를 세우고, 시내까지 태워달라고 부탁한다.
송치터널
40대쯤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아랫마을 가는 길이라며 미안해한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다시 버스를 기다리는데, '500m 전방 휴게소'라는 팻말이 우연히 눈에 들어온다. 우선 맥주나 사 마시고, 택시라도 부르려고 휴게소를 향해 터덜터덜 도로를 따라 내린다. 갑자기 뒤에서 클랙션 소리가 나더니, 타이탄 트럭이 노견으로 들어서서 멈춘다.
조금 전에 아랫마을에 간다던 아저씨다. 가다 생각하니 늙은이 부탁을 거절한 것 같아, 되돌아오는 길이라고 한다. 고맙고 미안하다고 새삼 인사를 하니, 블록 몇 장을 사야할 일도 있어 시내로 나가기로 했으니 걱정 말라며, 말을 놓으라고 한다. 순천대 앞에서 차에서 내린다. 아마도 이런 것이 남도 인심인 모양이다. 마음속까지 훈훈해지는 느낌이다.
순천의 메인 도로변, 나지막한 단층 기와집에 '삼산식당'이란 간판이 보인다. 한눈에 보아도 오래 된 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주머니가 반색을 한다. 간혹 혼자 등산 온 사람들이 찾아든다고 한다. 맥주 한 병에 삼겹살 1인분을 주문하자, 어쩌면 주문도 똑 같다며 웃는다. 순천대 부근에는 24시간 운영하는 유심천 관광호텔 찜질방이 있고, 건너편 김밥 집도 24시간 영업을 한다고 알려준다. 죽정치, 송치재, 노고치, 접재를 지나는 시내버스들이 지나는 정류장이 식당 앞에 있어 홀대간꾼들이 자주 찾아드는 모양이다.
친절한 아주머니 덕에 푸짐한 식사를 즐기고 (12,000원), 유심천 호텔 찜질방을 찾아든다. (7,000원)
(2009.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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