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폭력 난무한 도심 시위, '민주주의' 내세우며 국민 위협
타인의 권리와 자유 무시하면 민주로 포장한 천민 민주주의
민주 제도는 목표가 아니라 수단… '과잉 민주화' 물리쳐야 나라 발전

 

지난 토요일 광화문 일대에서 벌어진 대규모 도심 집회는 불법, 폭력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이었다. 쇠파이프, 각목이 등장하고 경찰버스가 갈고리에 끌려 다녔다.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고, 공공기물을 거리낌 없이 파손했다. 이날 시위 주체는 '민중 총궐기 투쟁본부'이고, 이들의 구호는 '세상 뒤집기'였다. 이날 시위의 성과는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 '국민'과 다른 '민중'의 실체를 알려준 것이고, 저들의 말대로 세상이 뒤집혔다간 원시 폭력사회로 퇴행할 것이란 사실이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시위대가 비장하게 내세운 명분도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기치 아래 저들은 대학논술시험을 치르는 12만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교통지옥을 떠안겼다. 시위대에게 민주주의란 도덕적 정당성 그 자체이고, 무오류의 가치이므로 이에 동참하지 않는 국민 위에 군림해도 죄책감이 없다. 더 나아가 생각 없고 비겁한 대중을 대신한다는 망상에 빠져 그들을 향한 비난의 손가락질을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에 숭고한 가치를 부여한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경험과 이후 민주화 과정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민주주의를 기준으로 사회를 비판하고, 이해 집단들도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내세우기보다 민주주의를 앞세워 투쟁한다. 헌법 가치인 시장경제에 반하는 주장도 민주주의란 만능키만 있으면 얼마든지 입법에 성공한다. 시민 세력 간 갈등에서도 상대방을 반(反)민주주의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쪽이 기선을 제압한다. 말 그대로 '민주주의'면 만사형통인 사회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우리 사회의 여러 난맥상을 풀기 위해선 더 늦기 전에 '민주주의'의 본질을 정확하게 봐야 한다.

'민주주의'는 영어의 '데모크라시(democracy)'를 번역한 용어이다. 이때 '데모크라시'의 올바른 번역은 '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제'다. 사회 가치가 담긴 사상이 아니라 의사결정 방식에 관한 용어다. 그런데 이것이 '민주주의'로 번역되면서, 한국에서는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선 절대적 사상이 되어버렸다. 사상이 아니라고 해서 평가절하할 일도 아니다. 개인 선택은 개인에게 전적으로 맡겨지지만, 다수가 모여 있는 사회에서 특정한 의사결정을 할 때, 서로 다른 개인 의견들을 하나로 모으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 원칙이 민주제이며, 대표적인 방법이 다수결 제도다. 민주제는 의사결정 비용을 줄이고, 나와 다른 의견에도 따르는 합리적 관행을 정착시켰다. 그러나 이런 민주제를 사상으로 격상시켜 무비판적으로 들고 나오면 역작용이 일어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국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철인(哲人)'이란 비록 현명한 개인이지만, 한 개인의 결정을 좇는 국가이므로 자칫 잘못하면 독재국가를 옹호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반감이 이런 식으로 흘러서는 사회의 번영을 가져다줄 수 없다. 민주 제도는 활용하기에 따라 결과를 달리하는 '양날의 칼'이다.

이제 우리의 민주 제도를 제대로 들여다볼 때가 되었다. 민주 제도가 국민 생활을 침해하고,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경제 자유를 억압하는 지경에 왔음에도 반민주 세력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워, 그 폐단을 지적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처음으로 도입된 제도로 서양과 비교할 때 역사가 매우 짧다. 또 서양의 민주주의가 피의 희생을 치르며 체제를 다듬어 갔던 것에 비해, 우리에게 자유민주주의 이념은 태생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이를 공고하게 다듬어 갈 절박함이 없었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민주주의에 대한 맹신으로 국가안보, 국민의 일상생활 보호, 경제 자유 등과 같은 다른 가치를 분쇄해버리는 사회 분위기다. 민주주의로 교묘하게 포장한 '인민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고, 민주주의를 응용했다는 '경제 민주화'와 같은 것들이 자리 잡아서는 애써 쌓아올린 번영의 탑을 스스로 허무는 일이 된다.

한때 자유시장경제를 공격하는 용어로 '천민자본주의'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토요일 광화문을 무법천지로 몰아간 이들도 이 용어를 많이 외쳤던 사람들일 것이다.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무시하고 그들이 외치는 민주화는 정상적인 민주화가 아니고, '과 잉 민주화'다. 이런 과잉 민주화가 쌓이면 '천민 민주주의'가 된다. 나라를 발전시키는 민주주의가 아니고, 나라의 발전을 좀먹는 민주주의라는 의미다. 민주 제도는 목표가 아니고 수단이다. 우리 목표는 국민이 더 잘사는 것에 있다.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느냐의 여부는 민주화의 그늘로 자리 잡은 '천민 민주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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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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