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보·이념틀 중대 국면…
美, 어제의 미국이 아니고 中, 보기보다 우호적 아니며 日, 변함없이 뒤통수만 쳐, 교과서 전쟁에서 지면 대통령 자리도 지워져
임기의 절반을 막 넘긴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두 가지 중대한 사안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미래의 한국을 지켜낼 안보(安保)의 틀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고히 하는 이념의 틀, 즉 역사 교과서 개정에 관한 것이다. 이것들은 대통령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제다.
박 대통령은 엊그제 한·중·일 정상회담을 마침으로써 우리나라 안보의 맥을 쥐고 있는 미국·중국·일본 세 나라와의 문제들을 일단 섭렵했다. 얻은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알게 된 것은 있다. 미국이 어제의 동맹국 미국이 아니고, 중국이 겉에 보이는 것만큼 우호적이 아니며, 일본이 몇 마디 논리적 호소에 넘어갈 일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 한 예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박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중국의 국제적 규범 위반 사항에 "한국도 목소리를 낼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사실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분명 의도적인 외교적 일탈이다. 과거 같으면 설사 회담 내에서 그런 이야기가 오갔다 해도 공개하지 않았으며, 하더라도 '우려'를 표명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상례였다. 미국은 우리가 지금 중국과 경제적으로 어떤 형편에 처해 있는지, 북한 문제에 중국의 영향력이 어떤 정도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이 작심하고 있는 난사군도 문제에 우리에게 반대 목소리를 내달라고 공개 주문하는 것은 힐난에 가깝다.
이것은 분명 미국의 변화다.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트럼프가 연일 던지고 있는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과 미국 언론들이 사드 배치 문제,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 등을 비추며 한국의 친중(親中) 행보를 비판하는 기사를 특필하는 등의 무드를 타고 오바마까지 나서 한국을 은근히 몰아붙이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중국이 미국이 비워주는 양만큼 채워줄 것도 아니다. 그럴 리도 없고 그래서도 곤란하다. 중국은 한국을 "가까운 이웃나라로서 우호교류의 천 년 역사를 이어가자"고 했지만 우리는 침략과 종주의 역사를 기억할 뿐 '사람 사이의 깊은 인연'은 기억에 없다. 이번 회담에서도 중국 측 보도에 의하면 중국은 EEZ 재조정을 통해 이어도를 먹어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중국의 인구와 땅덩어리만큼 배타적 경제수역도 더 넓혀야겠다니 '천 년의 버릇'이 되살아나고 있는 느낌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있어 언제나 뒤통수 담당이다. 변한 것은 없다. 위안부 문제의 '조기타결을 목표로'는 그냥 방치해두겠다는 말의 또 다른 외교적 표현일 뿐이다. 일본은 언제나 그랬지만 관민(官民)이 때를 맞춰 적절히 상반된 목소리를 내 어떤 쪽이 진심인지 헷갈리게 하는 데 이골이 난 나라다. 정부는 여전히 신사참배하고, 위안부 책임 없다고 하고, 독도는 자기 땅이라고 하는데 민간인들은 '사죄한다', '일본 정부의 개헌 반대한다'는 등 엇박자를 놓는다. 우리가 무엇보다 비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일본이 마치 미국의 비공식 대변자인 양 행세하고 미국이 그런 역할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외교·안보의 틀이 요동치며 변화하고 있는 와중에 박 정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뜨거운 감자에 손을 댔다. 이것은 박 정부의 명운(命運)을 건 싸움이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좌파와의 싸움은 일관성 있다. 이석기의 단죄, 통진당 해산, 그리고 역사 교과서 개정은 박 대통령의 이념적 트레이드마크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역사 교과서 전쟁에서 지면 그의 대통령 자리도 지워지는 것이고 여기서 이겨내면 그의 역사에 남을 업적으로 기록되는 것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총력을 경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러 정치지도자들이, 또 많은 보수적 인사들이 좌파들의 돌팔매가 두려워 눈감고 지나친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행위들이었고, 그중에서 두드러진 것이 역사 교과서였다. 박 대통령은 여기에 도전한 것이다. 당연히 좌파들이 들고일어나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은 '새 교과서'를 친일로 매도하고 있지만 그 어디에서도 논리적, 학술적 대응은 보이지 않는다.
여러 언론보도를 보면 지금의 교과서에 문제가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국정은 안 된다는 것이 지배적인 여론인 것 같다. 국정은 안 된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일부에서는 다양성을 내걸면서 이런 교과서, 저런 교과서가 존재하고 각 학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기만이다. 지난번 교학사가 우파 관점의 교과서를 펴냈을 때 좌파는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2318개 고교 중 단 한 개의 '다른 관점의 교과서'도 못 나오게 만든 아픈 기억이 있다.
교과서의 문제는 민중사학의 문제다. 서울대 좌익운동권 출신인 장로교 신학대의 김철홍 교 수는 지금의 검인정 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인민민주주의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며 "그런 책을 읽고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회주의 이론을 잘 모르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 문제를 내년 총선 때 정당투표에 내걸어도 좋다. 거기서 국정 교과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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